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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50화 (150/212)

150화

마하 하뷔에론.

제국의 막내 황녀이자 지금도 천재라는 수식어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여자.

그녀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여러 가지나 하나를 꼽자면, 한결같이 천재라는 말이 들어갔다.

세 살 때 마력을 깨닫고, 열 살 때 3위계에 올랐다.

실제로는 더 일찍 올랐다는 말도 돌았지만, 황녀의 천재성을 시기할 다른 형제들 때문에 숨겼다는 말도 있었다.

검술에도 일가견이 있어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피에르 베르나프가 직접 한 수를 알려주기까지.

거기다 기계공학과 연금술, 정령학, 마공학에 어느 정도 성과까지 보이고 있다.

그녀의 존재는 제국의 자랑이자 자부심이었다.

국민에게 있어, 뛰어난 황태자 외에도 능력이 출중한 다른 황족이란 제국의 미래가 탄탄하다는 걸 반증했으니.

그렇기에, 그녀가 황제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알드니아 제국은 실력주의를 표방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야망의 시작은 자신보다 일찍 태어난 황태자에 대해 생각할 때부터였다. 자신이 먼저 태어났다면, 그와 수십 년의 차이가 벌어지지 않았다면.

그런 만약에 대한 상상과 제국의 정책은 그녀에게 희망을 심어줬다.

‘만약에.’

황태자가 없다면, 뛰어난 능력을 지닌 자신이 황태녀의 자리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알렌은 그녀가 정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과거에 그가 알던 정보를 조합하면 그것을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무리 아니라고 한들, 결과를 그렇게 끌어냈다면 그렇지 않을까?

결국, 그녀는 황태녀에 오르게 되었으니.

그것이 황태자의 급사와 3황자의 죽음. 그리고 2황자의 반란을 평정하고 일어섰다면 부정할 수 없겠지.

알렌은 요한과 따로 만남을 가졌다.

그에게 정보를 주기로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그가 이 일의 전말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렌은 그와 만난 자리에서 미끼를 던졌다.

“황태자를 노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정말입니까.”

그들이 누군지, 어떤 목적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도 그는 알고 있었다.

‘일라이자 황자의 일지.’

알렌은 회귀 전에 그것을 보았고, 마하 황녀가 어떤 수를 써서 황태자를 노렸는지에 대해서도 알았다.

그렇다면?

할 일은 명확하지.

“저도 자세한 정보는 모릅니다. 그저, 우연히 들었기에 말해드릴 뿐.”

“어디서, 그 정보를 얻으셨습니까.”

요한 라헨바흐는 알렌이 그 정보를 어디서 얻었을까 추측했다. 정보 길드? 그 장사치들은 제국에서 나선다면 쓸려나갈 작자에 불과하다.

그럼 갈슈딘 아카데미일까?

‘그런 무도한 자들을 일라이자 황자께서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그는 황태자를 신뢰하는 만큼 다른 황자들의 능력도 믿었다.

특히, 본래 다른 왕조였다면 능히 황태자 직위에 올랐을 것이 분명한 일라이자 황자다. 그가 아카데미 내부라고 해서 알렌이 알아낸 사실을 못 알아낼 것 같지는 않았다.

어디서 알아낸 거냐.

그런 의심이 섞인 눈빛에 알렌의 답은 간단했다.

“그늘진 여왕.”

“……설마!”

유적 실습 때 그늘진 여왕이 복수하고자 하늘의 방패, 자크니르를 습격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했다.

유적 아래에서 튀어나온 괴물 탓에 묻힌 감이 없잖아 있지만, 전 팔강의 복귀는 이미 권력자들에게 있어 하나의 주의해야 할 사항에 속했다.

“그녀가 공자와 함께 있는 겁니까?”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당연히 그늘…, 아니. 제가 실례했군요.”

그늘진 여왕이라는 말에 순간적으로 흥분한 그는, 알렌의 묘한 미소를 보고 나서야 정신 차렸다.

그가 그녀를 숨겨주고 있든, 아니면 그냥 거래 관계에 불과하든 상관없었다.

요한이 원하던 정보는 황태자를 노리는 자들이 있다는 정보에 대한 확신일 뿐.

그 이상의 정보를 얻으려면 그도 무언가를 내어줘야 했다.

“이 정도면 믿을 만하지 않겠습니까? 거짓이라면, 그냥 제가 이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몰래 흘리면 됩니다.”

정말 거짓일 경우, 그늘진 여왕은 자신의 이름을 사칭한 알렌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들었던 정보에 대해 더 알려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황태자는 정체불명의 저주에 급사했다.

“혹시 제국의 동남쪽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아십니까?”

“동남쪽에는… 드워프, 난쟁이들의 지저도시가 있지 않습니까.”

“예, 음침한 성향답게 사람도 없는 화산의 지저에 도시를 건설했지요.”

알렌은 그 저주에 대해 정확한 건 알지 못했다.

그녀가 정확히 어떤 수단을 써서 황태자를 죽였는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나 추측할 수 있는 건 있었다.

‘드워프들은 저주받은 무기를 전문적으로 만든다.’

치졸하고 마음이 좁은 드워프들은, 명검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인에게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검을 선물하기로 유명했다.

엘피스의 기차역에서 봤던 드워프들은 그나마 성격이 모나지 않은 편일 터.

“어쨌든 드워프들의 성격이 좋지 않단 건 아시지 않습니까?”

“예, 그 말은….”

“몇 달 전, 누가 지저도시에 익명의 의뢰를 보냈습니다.”

아마, 실제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 그녀가 그들에게 의뢰를 한 건 맞겠지.

“누구라도 죽일 수 있는 저주받은 무기를 의뢰한다.”

그는 그 말에 조금 미심쩍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것만으로는….”

“‘제국의 황태자라도 죽일 수 있는’ 이 말이 뒤에 붙지 않았다면 그렇겠지요.”

드워프들이 순순히 의뢰를 받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흥미를 끌 만한 요소가 필요했다.

어차피 황태자가 급사한다면, 드워프들도 알아챌 수밖에 없다.

“익명의 누군가는 의뢰의 내용이 들키리라 생각하지 않았는지, 참 내용을 대담하게 적어두었더군요.”

그늘진 여왕에게 들키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익명의 의뢰인과 강한 저주가 담긴 무기.”

그는 생각이 복잡한 듯 잠시간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알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라인하르트 대공자. 이 정보가 사실이라면 몇 번이고 전과 같은 도움을 드려도 모자랍니다.”

“저는 제가 느낀 감사의 정도만큼 보답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럼… 저는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지금은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하지만, 미리 준비해둘 필요가 있기에.”

그는 어딘가로 연락하려는 듯 급히 자리를 떴다.

알렌은 자리에 그대로 남아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했다.

‘드라기아스 가문의 일은 얼추 끝났다.’

드라기아스 가문이 라인하르트 영지의 추수제에 도적들을 보낸 이유는 그곳에 무언가가 있는 것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건 라인하르트 가문의 비처를 뜻할 확률이 높다.

아마, 사건의 전말은 이렇겠지.

니드호그는 회귀 전과 회귀 후, 모두 어떤 이유에서인지 라인하르트 가문의 비처를 찾으려 했다.

놈이 라인하르트 가문의 비처를 찾은 이유는 아마도 힘을 회복하기 위해서.

그러나 회귀 전에 드라기아스 가문은 라인하르트 가문의 비처를 찾는 데 실패하고 침묵했다. 엘로스의 일도 그렇게 조용히 묻혔을 것이다.

그러나 회귀 후, 현 시간대의 니드호그는 여전히 라인하르트 가문의 비처를 찾지 못했지만, 힘을 회복하기 위한 대체재로 다른 것을 발견했다.

그건 바로 알렌 라인하르트.

어떤 수단을 썼는지는 모르나 알렌은 용의 노심을 가지고 있고, 드라기아스의 용혈과 공명할 정도의 높은 순도를 자랑했다.

잡스러운 피가 섞여들지 않은 용의 노심은 니드호그가 힘을 회복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지녔고, 드라기아스 가문은 알렌을 초대했다.

그를 끌어들여 심장을 뽑아내기 위해.

그 후에는….

‘멸망을 알고 있었지.’

니드호그는 대몰락의 산증인이었기에 멸망이 무엇을 뜻하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힘을 키우려 했던 것이고.

아니 니드호그 뿐만이 아니었다.

유적의 지하에 갇혀 있었으나 여전히 살아 있던 베드르폴니르.

루피너스 가문의 비처에서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잠들어 있던 비도프니르.

그들뿐만이 아니라 다른 고대의 괴물도 더 있겠지.

김우진이 그런 종류의 괴물을 사냥했던 사실은 그의 수많은 업적 중 하나였으니.

‘도대체 회색 멸망은 무엇을 뜻하지?’

왜 고대의 괴물들이 끝까지 생명줄을 부여잡으며 힘을 키우려 하는가.

알렌의 시선이 허리춤으로 향했다.

베스틀라.

유적의 중앙에 있던 거대한 검이자 생전의 거인이었다고 했다.

알렌은 그녀도 분명히 ‘끝’과 관련되어 있으리라 짐작했다.

그에게 있는 책 세 권의 제목을 읽은 것과 그녀가 언뜻 보이는 의미심장한 모습은 그에 대한 추측을 확신으로 변모시켰다.

‘그리고….’

마리아까지.

이는 알렌의 직감에 불과했지만, 그녀도 관련이 없지는 않으리라 판단했다.

회색의 멸망을 두려워하던 그란델은 멸망을 늦추겠다는 핑계로 많은 유망주를 죽였다.

아마,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마탑 뿐만이 아닐 것이다.

왕국이나 제국의 고위층, 수인 연합과 엘프 대수림 그리고 갈슈딘 아카데미의 이사장도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팔강은 이 사실을 알까?

“후우….”

알렌은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율리우스, 놈은 이런 것에 대해 알고 있지 않았는데.

검은 책을 아무리 살펴도 그놈의 ‘원작’과 끝에 나타날 ‘마왕’에 대해서만 서술할 뿐 단 한 번도 다른 괴물들이 언급하던 끝에 대해서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만한 상대는….

“하이젤인가.”

그 역시 초대 용사의 전투로 죽었으나 많은 이들이 언급하던 ‘멸망’에 대해 알고 있을지 모른다.

알렌은 이번 마하 하뷔에론의 처리가 끝나면 그와 만나 보기로 결심했다.

* * *

도시 봉쇄는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렸다.

순환교에 대한 사고를 제외한다면 추수제는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다만, 며칠 동안 봉쇄된 탓에 여행객들이 바가지를 썼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다음에 다시 만난다! 꼭 우리 부족 와라!”

“…그래, 나중에 가도록 하지.”

알렌은 손을 흔드는 휴즈에게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가더라도 혼자가 아니라 짐승왕과 함께 가게 될 것이다. 그전까지는 갈 일이 없을 테니.

휴즈는 자신을 데리고 온 호위와 함께 마차를 타고 떠났다.

마차는 상당 부분이 목재가 아닌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말이 끌지 못할 거라는 생각과 달리 제법 잘 굴러갔다.

미약하기는 하지만 마차가 스스로 움직인다니.

알렌은 비슷한 소리를 일리아나에게서 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가 떠나가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요한 라헨바흐가 다가왔다. 그의 눈빛은 조금 무거워져 있었다.

“…알렌 라인하르트. 저희의 대화가 진실했기를 바랍니다.”

“저희의 대화에 한 치의 거짓이 없음은 제가 아닌 요한 님이 알 수 있을 겁니다.”

그의 말에 요한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당신이 말한 정보는 제가 직접 알아본 후에 연락드리겠습니다.”

“만약 진짜라면….”

“예, 제국은 상대가 누구든 지엄한 심판을 내릴 겁니다.”

알렌은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그리고는 요한이 날카로운 기세를 내뿜으며 알렌을 쳐다봤다. 그는 조용히, 그리고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이야기가 그저 모함에 불과하다면 책임을 지셔야 할 겁니다.”

그늘진 여왕의 이름을 사칭한 것과 제국을 능멸하려 한 것에 대한 것 전부.

알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수긍하자 요한은 재빨리 돌아섰다. 그는 지금부터 알렌이 말한 것들을 조사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제국 집행관이 떠나자 알렌은 레이첼이 기다리는 여관으로 돌아갔다.

“알렌, 어제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해요.”

이야기를 끝마치기 기다리던 레이첼이 그에게 다가왔다.

“경매장의 이야기, 다시 듣고 싶어요.”

“그래, 몇 번이고 이야기해주지. 어디가 이해가 안 되지?”

그녀가 그의 비밀을 다 알아야겠다는 듯 자세히 캐물었다.

“그러니까….”

이제, 아카데미로 돌아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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