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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48화 (148/212)

148화

알렌은 베스틀라를 땅에 꽂았다.

푸욱-

베스틀라의 검 끝에서 차가운 안개가 솟아올라 그의 머릿결을 흔들었다. 차가운 냉기는 바닥을 얼리며 주위로 점차 영역을 넓혀나갔다.

알렌은 차분한 눈으로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마법의 형태를 한 천재지변을 바라봤다.

알렌의 손끝이 움직였다. 수천 가닥의 실타래가 심장에서 뿜어져 나와 그의 앞에서 둥그런 물레로 엮였다.

운명(運命) 제 1법(法) - 노른 우르드(Norn Urðr)

과거규정(過去規定)

손바닥으로 물레를 떠밀자 물레가 회전하며 도시를 갈아버릴 듯 회전하는 폭풍과 닿았다. 폭풍은 그저 산들바람처럼 흩어졌다.

알렌은 그에 그치지 않고 손을 반 바퀴 회전시켰다.

폭풍을 흩어버린 물레에서 실타래가 뿜어져 나오며 그물로 엮였다. 활짝 펼쳐진 그물이 끝없이 떨어지는 불의 비와 맞닿았다.

운명(運命) 제 2법(法) - 노른 베르단디(Norn Verðandi) 현재역변(現在易變) 촤아아악! 불의 비는 홍수처럼 덮치는 파도와 맞닿더니 하얀 수증기를 뿜어내며 증발했다.

알렌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생각보다 마력 소모가 컸다. 니드호그의 마력은 알렌보다 몇 배는 많다. 그런 놈의 마법에 간섭하기 위해서는 알렌의 마력 소모도 클 수밖에 없었다.

‘신역을 쓸 수 없는 이상 무리한 마법전은 피해야 한다.’

어차피 이곳은 진짜 도시가 아니다. 그 모습을 빌린 다른 공간이지.

이곳의 부상은 현실에도 영향을 끼치지만, 무너진 건물은 별개의 것이었다. 판단을 마친 그가 자신을 노리는 운석을 향해 그물을 밀었다.

운명(運命) 제 3법(法) - 노른 스쿨드(Norn Skuld)

미래부지(未來不知)

세상을 반쪽으로 보이도록 붉은 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운성이 땅에 닿는 순간 빛의 알갱이가 덮쳤다.

쿠웅!

땅이 뒤흔들리는 충격과 함께 부서졌을 땅은 처음의 충격과 다르게 뒤이은 후폭풍은 없었다.

알렌은 그 이상 손을 쓰지 않고 땅을 박찼다. 피부를 검게 물들인 그림자가 걸음마다 솟아오르며 눈을 현혹했다.

꽈릉-!

쏟아지는 낙뢰. 본체를 찾을 필요 없이 대지를 통째로 휩쓰는 뇌우가 쏟아졌다. 알렌의 검이 빛났다.

료스솔. 빛의 태양은 삿된 것을 물리치며 세상을 밝힌다. 번쩍이는 광구가 하늘을 가린 먹구름에 한줄기 길을 만들었다.

알렌이 힘을 감추지 않고 건물의 옥상을 밟았다. 쿵! 그의 몸이 길게 솟구쳤다.

니드호그는 자신의 마법을 막아낸 것에 굴욕감을 느꼈다. 더 굴욕적인 것은, 자신은 저 마법을 따라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것.

악룡은 노호성을 내지르며 사기를 터트렸다. 그의 등이 꿈틀거리더니 두 쌍의 날개가 더 튀어나왔다. 머리 위로는 세 쌍의 뿔이 솟아났고, 몸집은 두 배 이상 더 커졌다.

부상을 당하기 전, 전성기 시절의 모습.

아직 부상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해 이 정도가 한계였으나, 이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가 축적해둔 힘을 사용하자 검은 아지랑이 같은 사기가 몸을 휘감았다. 알렌의 곁을 연신 맴돌던 유령 무리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알렌은 공중에서 몸을 뒤틀었다.

베스틀라가 수십 배는 커지며 무게가 늘어났다. 그의 팔에서 핏줄이 꿈틀거리며 거력을 일으켰다. 거검이 하늘을 갈랐고 유령 무리가 접근하는 그 순간 유령 무리는 얼어붙어 버렸다.

니드호그가 숨을 들이마시고 숨결을 내뱉었다.

검게 물든 용화가 공기를 들끓게 만들며 쏘아졌다. 알렌은 막으려 했다, 그러나 한순간 무형의 압력이 자신의 사지를 붙잡았다.

「알렌! 드래곤 피어예요!」

몸이 붙잡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 니드호그의 눈에 비웃음이 여렸다. 시커먼 불길이 덮치기 직전, 거대한 방패가 하늘에 떠올랐다.

제국의 문양이 새겨진 방패였다.

콰앙! 일순간 불의 숨결이 막혔다. 그와 함께 누군가 알렌의 몸을 휙 잡아당겼다. 방패는 잠시나마 막은 것이 한계인 듯 박살 났다.

알렌은 피어를 강제로 풀어내며, 자신의 몸을 잡아당긴 사내를 보았다.

황토색 털과 쫑긋거리는 귀, 견왕의 아들 휴즈였다. 그는 알렌과 함께 땅에 내려섰다. 고개를 돌리자, 그 말고도 냉정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남자가 있었다.

‘제국 수석집행관.’

요한 라헨바흐.

그는 알렌을 힐끔 보더니 아공간에서 할버드 하나를 꺼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돕겠습니다. 이 소란에 대한 건 나중에 듣겠습니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알렌은 그가 나설 줄 예상치 못했으나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니드호그의 전력이 생각보다 더 강했다.

내심 7위계의 최상위 이상의 실력자가 아니면 승리할 자신이 있던 그에게, 니드호그는 팔강급 실력자라 봐도 좋았다.

‘4위계가 언데드에 특화되어 있기에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루피너스 가문의 비도프니르 정도로 생각했으나 그보다 배는 까다로웠다.

니드호그는 용이다.

거인과 함께 고대 제국 이전의 시대를 지배했던 지배자.

대몰락이라는 예기치 못한 재난에도 살아남은 니드호그는 제대로 된 육체를 갖지 못한 상태에도 강했다.

자신을 찌르는 시선에 고개를 돌리자 휴즈가 반짝이는 눈으로 알렌을 쳐다봤다.

“너! 강하다! 그러니, 돕는다!”

그는 공용어가 조금 어색한 듯 어눌한 말투로 말했다. 보통 다른 종족이라도 공용어 정도는 익혀두는 법인데….

알렌은 순수한 얼굴로 웃는 그를 보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우리 부족 와라! 내 여동생 소개해 준다!”

알렌은 그가 웃으며 소리치는 것에 애매한 웃음으로 답했다. 그는 그것으로 충분한지 거대한 창을 들고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버러지들이 더 있었군.”

세 쌍의 날개와 여섯 개의 뿔, 거대한 덩치 위로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놈은 살아있는 재앙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알렌은 몸을 짓누르는 압박감을 느꼈다.

드래곤 피어.

몇 번이고 이야기 속에서 등장한 이야기다. 드래곤이 살의를 뿜어내면 그것만으로 주위의 초목이 시들고, 약한 생명체는 목숨을 잃는다.

인간이 용의 마력을 모방하여 마법을 썼다면, 수인은 드래곤 피어를 따라 해 오러를 사용했다.

「알렌 정신 차려요!」

알렌은 굳으려는 몸에 억지로 힘을 주며 검을 들었다.

슬쩍 확인해 보자 요한과 휴즈 역시 각자의 방법으로 몸을 풀어낸 상태였다. 아니 휴즈는….

으득-

그의 입가에 피가 흘렀다. 고통으로 극복해 낸 건가. 과감한 결단이었다.

“…이거,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는 수지가 조금 안 맞는 것 같습니다.”

알렌은 요한이 품에서 주사기 하나를 꺼내는 것이 보였다. 그는 주저 없이 목에 바늘을 박고는 도핑을 끝마쳤다.

“이번 일을 끝마치면…, 혹할 만한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제발 그 정보가 가치 있기를 바라야겠군요.”

베스틀라의 위로 쓰인 문자가 빛나기 시작했다.

「알렌, 저번에 마녀의 숲에서 말한 거 있죠? 위험하면 비장의 수라도 쓸 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알렌은 답하지 않았다.

쿠르르르릉! 니드호그의 몸에서 끔찍한 양의 사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세 쌍의 날개가 펼쳐지자 하늘을 가릴 듯했다.

“어차피 온전한 용의 노심만 얻는다면 나설 참이었다. 건방진 인간 놈들. 방자하게 대륙의 지배자인 양 날뛰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지겨웠다. 그러니 나도 더는 망설이지 않겠다.”

니드호그의 눈 위로 악의와 광기가 덧씌워졌다. 그 감정은 수백 년간 지하에서 웅크린 것에 대한 반동이었다.

‘너무 준비가 미약했나.’

아니, 드라기아스 가문의 힘을 쓰지 못하게 막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저 괴물은 언제고 쓰러트리지 않는다면 자신을 노렸을 테니.

니드호그의 거구가 땅으로 떨어졌다. 알렌은 물러서지 않고 달렸다. 베스틀라 위로 차가운 냉기가 흘렀다. 망자를 얼리는 바람이 불었다.

“흥, 감히 이 정도로?”

니드호그가 몸을 뒤틀었다. 겉을 얼리던 얼음층이 박살 났으나, 안개는 끝도 없이 그의 움직임을 제약했다.

악룡이 사납게 웃었다.

알렌이 카스니플을 유지하는 동안 휴즈가 뛰었다. 그의 몸이 황색 빛으로 물들었다. 거창에 오러가 휘감기며 정련된 투기를 발산했다.

후욱-!

거창이 쏘아졌다. 니드호그는 피하려 했으나 그의 날개로 쇠사슬이 날아와 휘감겼다. 그를 묶어두는 시간은 찰나였으나, 거창이 닿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콰앙! 얼음층이 부서지며 드러난 속살로 썩은 피가 솟구쳤다.

“…하아.”

요한은 수석집행관 전용의 보급품이 한순간에 박살 나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지만 그를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알렌은 공격이 성공한 동시에 안개를 거둬들였다.

삼계, 료스솔. 빛의 태양을 터트림과 동시에 그림자가 그의 날개 밑 죽지로 파고들었다. 붉게 물든 창이 박혀 들었던 살을 쩌억 찢어발겼다.

니드호그의 용안이 알렌에게 돌아갔다.

“이미 몇 번이고 봤다.”

니드호그의 마법이 가까운 곳에서 폭발했다. 알렌이 급히 땅을 도약했다. 콰앙! 날아오는 화염, 베스틀라를 크게 키우자 용의 숨결이 그 위로 떨어졌다.

‘죽이기 위한 결정타가 부족한가.’

콰아앙-

검이 바닥을 파고들며 기다란 고랑을 그렸다.

니드호그에게 있어 드래곤 브래스란 간단한 공격이자 마법보다 강했다.

알렌이 밀리는 모습에 요한이 급히 할버드를 들고 내리쳤다. 니드호그의 머리 위로 빛으로 이루어진 단두대가 나타나더니 그대로 니드호그의 목을 때렸다.

쩡!

니드호그의 목을 깨부수기에는 부족했지만, 알렌에게 날아가던 숨결을 끊기에는 충분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버틸 수 있을….”

니드호그가 입을 열던 때, 하늘에서 유성이 떨어졌다.

콰직!

“흐흐, 이건 못 피했다. 도마뱀.”

니드호그의 신경이 그들을 향한 틈을 타 휴즈가 공중에서 거창을 내리찍었다. 우연이었는지 운이 좋았는지 그 공격은 니드호그의 콧잔등을 파고들었다.

“그아아아아아!”

악룡이 몸을 흔들었다. 그의 주위로 난잡하게 마법이 터져나갔다. 휴즈의 몸이 하늘을 날았다.

그러나 그를 도움 틈이 없었다. 니드호그는 분노한 눈으로 용의 숨결을 끊임없이 쏘아냈다. 돌과 쇠 모두 녹이는 용화가 주변을 폭격했다.

콰과광!

알렌과 요한 모두 다른 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들이 니드호그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기에는 한참 부족했다. 알렌은 고통과 분노에 물들어 주변에 마법을 떨어트리는 놈을 보았다.

‘…한순간만 있다면.’

시도해볼 만한 수가 있는데.

요툰스베르드 5계. 아직 완벽하게 익히지 못했지만, 그 공격은 언데드와 같은 망자에게 치명적이었다.

알렌이 어떻게 틈을 만들지 고민하던 그때, 저 멀리 서 있는 남자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작은 단검을 들고, 고요히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시도해 본다.

알렌은 자신을 지독히도 노리고 날아오는 숨결을 피하며 실타래를 풀어냈다. 수천 가닥의 실타래는 물레나 창살의 모습이 아닌 거대한 망치로 변했다.

나무망치.

오케스트라에 쓰이는 거대한 망치가 수십 자루 하늘에서 떨어졌다.

쾅!

시끄러운 굉음이 파괴의 소리와 합쳐져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요한은 알렌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니드호그를 향해 파고들자, 품에서 작은 호루라기를 꺼내 들었다.

고대 유물, 침묵의 호루라기.

그가 힘껏 호루라기를 불자, 니드호그의 감각이 일순간 흐트러졌다. 그러나 그 대가로 호루라기 역시 부서졌다.

알렌은 그의 적절한 호응에 니드호그에게 보라는 듯 차가운 안개를 뿜어냈다.

주의를 흩트리는 굉음과 고대 유물로 인해 꼬인 감각, 그리고 눈앞에서 시선을 잡아끄는 알렌.

그 모든 것 때문에 니드호그의 신경이 느슨해졌고….

푸슉-

용을 죽이는 검이 심장을 꿰뚫었다.

“…라인하르트 공자는 눈치가 좋군.”

엘로스가 희게 웃으며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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