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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45화 (145/212)

145화

추수제는 아무런 방해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준비된 일정을 끝내고, 하루의 공연을 마치고, 공짜로 뿌려진 음식에 많은 여행자와 걸인이 드라기아스의 이름을 외치며 찬양했다.

과시하듯 드러낸 병력과 은밀히 퍼진 강자들의 기세에 감히 그들을 난동 부릴 세력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렇게 추수제의 날이 흘러가는 사이, 알렌을 비롯한 엘로스와 엘리프 그리고 순환교 역시 짜기라도 한 듯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오늘은 어디로 갈 생각이지?”

“…음, 갈 만한 곳은 다 갔으니 조금 조용한 곳으로?”

그는 정말 아무런 계획이 없는 것처럼, 레이첼이 짠 일정에 따라 느긋하게 축제를 즐겼다.

“그렇게 하지.”

만약을 대비해 그를 은밀하게 감시하던 이들 역시, 그의 그런 모습에 점점 긴장을 풀었다.

그가 어느 순간부터 검을 놔두기 시작했지만, 그들은 그것에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약혼녀와 함께하는데 검을 놔두는 건 이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간에 그녀와 함께 가기로 한 경매가 규모가 커졌다며 마지막 날로 일정을 변경한 것 빼고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아, 그리고 축제로 들어오는 인원이 조금 많아진 점이 있었지만… 축제의 번잡함에 가려져 별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을 계획한 몇 명을 제외하고.

그렇게 추수제의 마지막 날.

열흘간 지속된 추수제의 마지막 밤을 화려하게 장식할 화려한 마법과 들끓는 열기로 요동치는 거리.

알렌은 레이첼과 함께 옷을 차려입고, 마차에서 내렸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니, 아쉽네요.”

“이 정도면 충분히 즐겼지 않나?”

“그건….”

그녀는 챙이 달린 모자를 위로 올리며 활짝 웃었다.

“당신의 대답에 달려 있을 것 같은데요?”

알렌은 그녀가 무어라 답할지 예상했다는 듯 덤덤하게 답했다.

“이번 일을 마치고도 원한다면, 알려 주지.”

“…정말요?”

그녀는 의외라는 눈을 했지만, 알렌은 나름 몇 번을 생각하며 내린 결론이었다.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한다. 실수한 것에서 무언가를 배우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보통 사람의 경우에는 그렇겠지.’

그러나 한 번 저지른 실수에서 뭔갈 배우는 사람이 있는 반면,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배우는 사람도 있다.

알렌은 이 일을 숨김으로써 생길 일과 엇갈린 생각으로 인해 생겨난 사고에 관한 여러 사례를 알았다.

가문의 후계자 교육은 일 처리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렇기에 그는 다른 이들이 알고 있는 수준의 정보를 알려줄 생각이었다.

사람은 다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모르는 것이 있으면 불안해하니, 그 불안함만 해소한다면 다 해결된 문제였다.

애초에 모든 걸 숨긴다는 것도 오만한 생각이었으니.

“흐음….”

그녀는 알렌의 답에 뭔가 고민하는 얼굴로 경매장에 들어섰다.

그들은 신분을 증명하자마자 아래층과는 다른 위층으로 안내되었다.

고개를 돌리니 사람이 얼마 보이지 않았다.

제국 수석 집행관은 이번 경매를 마지막으로 떠날 생각인지 짐을 다 챙긴 상태였고, 견왕의 아들은 경매에 관심이 없는지 코를 골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도 다른 이들은 힐끔 바라보기만 할 뿐 나서는 이들은 없었다.

괜히 수인족과 얽히면 귀찮기만 할 뿐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돌아간다면 사업은….”

“예, 그렇게 하기로….”

작게 대화를 나누는 귀족들과 드라기아스 가문의 식솔들.

경매장을 지키기 위한 기사들이 곳곳에 자리했고, 사용인들은 중간중간 그들을 위한 다과를 옮겼다.

알렌은 아무것도 모른 채 어떤 물건이 나올까 기대감 어린 눈으로 자리한 아래층의 사람을 보았다.

이번 경매는 함정이다.

아마 엘리프와 엘로스 모두 노리는 바를 위해 행동하겠지.

‘하지만….’

그 누구도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것이다.

자신을 제외하고는.

“안녕하십니까! 이번 경매에 참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번 경매를 진행하게 된 메딘이라고 합니다.”

고개를 돌렸다.

중년의 남자 하나가 미소를 지으며 단상 위로 오르고 있었다.

“말을 더 길게 할 필요는 없겠지요. 자! 그럼, 이번 드라기아스 가문에서 주최하는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경매가 시작되었다.

* * *

막스는 발을 동동 구르는 다른 신도들에게 시선을 향했다.

“왜 그러나, 일이 실패할까 봐 두려워서?”

“그게….”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있던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남자 한 명이 대표로 나섰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말해보게. 가드.”

“이건 저희 성교(聖敎)를 의심하는 것이 절대 아니며, 사도님에 대한 불신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 자네의 믿음은 알고 있으니 말해보게. 뭐가 문제인가?”

그 말에도 안심이 되지 않는 듯한 얼굴로 막스를 보던 가드는 조심스럽게 그의 뒤쪽을 가리켰다.

“저, 저것이 정말로, 정말로… 사도님이 원하시던 게 맞습니까?”

그들은 현재 남은 모든 물건을 챙겨 도시 밖으로 탈출한 상태였다.

그리고 알렌의 부탁에 따라 본단과 대화를 나눈 후 필요한 물건을 받았다.

그렇게 일주일의 준비 끝에, 그들은 마침내 알렌이 명했던 모든 것을 끝마칠 수 있었다.

“어떤 것을 걱정하는 건지 제대로 말하게. 그렇게 모호하게 말하면 모르지 않는가.”

가드는 그들의 앞에 놓인 마법진을 바라봤다.

사도님이 직접 교단에 요청해 받아낸 최상급 차단 결계와 몇 없는 상급 마법 스크롤이 배치된 마법진.

“이 평원 모두를 불태우시는 게 사도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맞을까요?”

“흐음….”

막스는 그를 묘한 눈초리로 바라봤다.

“…드라기아스 가문에 괴물이 있다 해도, 남은 사람들은 죄가 없습니다. 이 평원을 불태운다면 대륙 곳곳에 식량부족 문제가 발생할 것이고, 대륙의 많은 이들이 굶주릴 겁니다.”

“맞네, 맞는 말이야.”

가드는 그가 반발하지 않고 맞장구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그게 일반적인 불이었다면 말일세.”

“…예?”

막스는 뒤쪽에서 대화를 지켜보던 이들을 바라보며 히죽 미소 지었다.

“자네들이 순환교에 입교한 지 얼마나 되었지?”

“…이제 2년 차입니다.”

“그럼 이런 대규모 작업은 처음이겠군.”

“예.”

막스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결계로도 가려질 수 없는 강력한 마력의 파동이 퍼져나가며, 불꽃이 크게 소용돌이쳤다.

“우리 순환교는 본래의 순환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지, 사람을 마구 죽이려는 게 아니네. 그건.”

콰앙!

평범한 불꽃과 다른 하얀 불꽃이 중앙 평야 전체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지. 그를 의심하지 말게. 이번 일을 지적한 건 좋았지만, 믿음이 더 굳건했다면 하지 않았을 일이네.”

그들이 입을 다물었다.

막스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저들과 몇 년을 동고동락하며 저들의 심성이 나쁘지 않다는 것은 알았기 때문이다.

단지, 무르익지 않았을 뿐.

“어서 돌아가서 남은 일도 처리하세. 이 일로 믿음이 더 굳건해졌으리라 믿고.”

“…알겠습니다!”

가드와 그와 함께 의견을 모았던 이들이 소리쳤다.

살아있는 것이 아닌, 죽은 물체만을 태우는 불꽃이 소리 없이 평원을 뒤덮기 시작했다.

막스가 인자하게 웃었다.

훈훈한 분위기가 서로를 감돌았다.

* * *

“어떤 미친 새끼들이 평야에 불을 질렀다고?”

엘로스는 방금 자신이 들은 게 제대로 들은 건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뭐? 불을 질러? 누가? 어디를?

그러나 그의 머리는 상황을 회피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의 눈이 엘리프에게 향했다.

그는 자신보다 소식을 먼저 들은 듯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명령을 내렸다.

“가문의 전 병력을 움직인다. 병사, 기사, 마법사 할 것 없이 모두!”

“그럼 경매장의 이들은….”

“내가, 모두라고 한 것을 듣지 못했나?”

엘리프가 굳은 목소리로 묻자, 기사는 더 이상 반문하지 않고 다른 이들과 함께 경매장을 떠났다.

경매장이 술렁거렸다.

“무슨 일이래?”

“…뭐? 평야가 불탔다고?”

드라기아스가 수백 년간 쌓은 자본은 저 넓은 평야를 소유함으로써 만들어졌다.

저 비옥한 옥토의 곡물과 엘프 못지않은 생산력으로 교류를 하며 우위를 점했고, 많은 지원을 바탕으로 심심치 않게 강자가 튀어나왔다.

현 팔강 중 삼대 가문 출신은 없었지만, 전대 혹은 전전대로 올라간다면 하나씩은 찾을 수 있을 정도.

이번 드라기아스 가문의 가주, 벨리드 드라기아스 역시 팔강보다 못하나 7위계에 다다른 실력자라 알려져 있었다.

가문의 보고에 있는 유물과 비장의 무기까지 꺼낸다면 팔강을 상대로 버티는 것도 가능할 터.

그런 그들의 젖줄이 불타고 있다는 소리에 가문의 일원들은 직계, 방계 할 것 없이 심장이 아찔해졌다.

“…드라기아스 가문의 평야를 불태웠다니.”

오랜만에 미친놈이 나타난 건가?

수석 집행관 요한 라헨바흐는 보복이 두렵지도 않은지 일을 저지른 이들에 대한 동정심이 먼저 들었다.

사자가 침묵하고 있다고 해서, 그 갈기를 벗기러 오는 멍청이가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도시를 떠날 준비를 했다.

추수제도 다 끝났고, 괜한 일에 휘말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윽, 깜짝이야.”

코를 골던 견왕의 아들 휴즈는 소란에 급히 깨어났으나 아직 상황을 덜 파악한 듯 눈을 깜빡였다.

“…무슨 일이야.”

그가 흘린 침을 닦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렇게 누군가는 탈출을 준비하고, 누군가는 아직 상황파악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 엘로스는 결단을 내렸다.

‘계획이 흐트러졌지만, 이게 더 나을 수 있다.’

본래는 경매장을 자신의 병력으로 뒤덮어 형님의 정체를 만천하에 공개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의 단점은 경매장 주위의 병력이 너무 강해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도 시기를 노리고 있었는데….

‘지금만큼 그의 곁에 병력이 적을 때는 없다.’

그는 신호를 보냈다. 그의 신호에 주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일단의 병력이 경매장으로 쳐들어왔다.

쾅!

“뭐, 뭐야!”

“…이건 또.”

하나하나가 4위계로 이루어진 병력들.

그 사이사이에는 이름을 알린 용병도 있었고, 이 근처에서 활동한다는 전사도 있었다. 거기에 홀로 돌아다니는 5위계 마법사까지.

그가 몇 년 동안 각종 이권과 권력을 바탕으로 모은 이들.

가문의 병력은 사용할 수 없기에 비밀리에 모으기 위해서는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분위기를 압도하기에는 충분했다.

대가문을 상대하기에는 힘들어도, 경매장의 인물을 붙잡기에는 모자라지 않으니.

“모두 가만히 계십시오!”

그들이 약속한 대로 경매장을 포위한 그때, 엘로스가 1층의 단상 위로 떨어졌다.

“제가 이 일을 벌인 건 다름이 아닙니다.”

몰래 빠져나가려던 수석 집행관 요한은 흥미로운 얼굴로 몸을 낮췄다.

잘만하면 보기 드문 대가문의 분열 혹은 그와 관련된 비밀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제국을 위해, 황족을 위해서 그는 잠시 지켜보기로 했다.

“…오, 싸움인가.”

물론, 그와는 조금 다른 이유로 눈을 빛내는 이들도 있었다.

휴즈는 갑작스레 일어난 소란에도 재밌는 일이 벌어진 것 같아 보이자 눈을 반짝이며 단상을 쳐다봤다.

“…알렌.”

“괜찮다.”

알렌은 그 모든 일을 레이첼과 함께 한 편의 연극처럼 내려다봤다.

단상 위에 있던 엘로스는 당황과 의심 그리고 흥미가 섞인 시선 앞에서 숨을 내쉬었다.

“제가 왜 이 시기에, 이 혼란 속에서 이런 짓을 벌였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몇 년간 준비한 일이다.

그러나 그는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최선을 다했다 자신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는 품 안에서 작은 붉은 빛이 감도는 단검을 꺼내 들었다. 그가 그 물건을 꺼내 들기 무섭게, 경매장 내의 인물 대부분이 몸이 굳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알렌, 괜찮은 것 맞죠?」

그건 알렌도 마찬가지였다.

‘저건… 용의 노심, 용혈, 용의 기운을 가진 이를 억제하는 물건인가.’

드래곤 슬레이어.

용을 죽이기 위한 도구.

“저희 드라기아스 대공자이자 저의 형님, 엘리프 드라기아스의 몸을 빼앗은 악룡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제국 수석 집행관과 수인 연합 그리고 귀족 몇 명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멈칫했을 때, 준비했던 하나의 물건을 더 꺼내 들었다.

자신의 피에 흐르는 모든 용혈을 강제로 뽑아낸 정수.

그가 그것을 꺼내 깨트리자 마치 주인을 찾아가듯 붉은 안개가 나타나 엘리프의 몸에 닿았다.

그 순간, 그의 몸에서 검은 악룡의 형상이 떠오르며 안개가 흡수되었다.

그 모습을 본 엘로스가 싱긋 웃었다.

“안 그렇습니까. 악룡 니드호그, 저희의 선조를 집어삼켰던 조소하는 뱀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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