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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44화 (144/212)

144화

전야제는 축제의 시작을 알리듯 화려하게 마무리되었다.

그사이에 사고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드라기아스 가문의 병사가 빠르게 조치를 해 큰 잡음은 일어나지 않았다.

알렌은 아침과 밤의 사이, 짙푸른 색의 하늘이 구름까지 물들일 즈음 방을 나섰다.

철컥-

밤사이에 거한 술판이 벌어졌는지, 골목 여기저기서 고주망태로 쓰러진 사람이 즐비했다.

「알렌.」

“왜.”

밤사이 침묵하고 있던 그녀는, 태연하게 대답하는 알렌에게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소리쳤다.

「저한테 할 말 없어요!? 지금 이렇게 태연하게 대화하는 게 이상하잖아요!」

그녀는 어젯밤에 있던 일을 떠올리며 검체를 부들부들 떨었다. 어쩌면 검신이 조금 붉게 변한 것 같기도 했다.

알렌은 그녀의 반응에 조금씩 까끌까끌해지는 턱을 쓰다듬었다.

“흠…, 너에게는 너무 자극적이었나.”

「…네?」

알렌이 진지한 얼굴로 검 손잡이를 툭툭 두드렸다.

“다음부터는 손수건 한 장이라도 올려주지.”

「…….」

“아니라면 귀마개라도 필요한가? 그런데 귀를 막으려면 어디를….”

「야!」

알렌은 그 이상 그녀를 놀리는 걸 그만두며 목적지로 향했다. 그녀의 격한 반응과는 달리, 어젯밤 그는 선을 넘지 않았다.

‘그전까지는 갔을지도.’

그녀는 먹은 나이에 비해 여린 부분이 많았다. 알렌은 베스틀라가 쫑알대는 걸 흘리며 쪽지의 내용을 떠올렸다.

-가을나기 여관

여관 이름만 덩그러니 적혀 있던 쪽지.

그 외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지만, 그는 부딪친 남자가 어디 소속인지 짐작이 갔다.

순환교.

레이첼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는 알렌에게 부딪친 직후 어깨에 가려진 순환교의 표식을 보였다.

워낙 한순간이라 알렌도 확신하지 못했으나, 그가 한 대답으로 인해 그가 순환교임을 확정지었다.

‘같은 꿈을 꾸는 자들이라….’

세상이 멸망하기를 바라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어찌 보면 그만큼 지금의 삶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소리다.

자신은 순환교를 이용하기 위해 사도가 되었으나, 가끔은 회귀 전의 상황처럼 몇 조각으로 쪼개지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너무 덩치가 커지면 이용하기 힘들 테니.

알렌은 바닥에 진한 자국을 새긴 토사물을 피하며, 낡은 목제 간판 위로 이름이 쓰인 여관에 도착했다.

추수제가 열리기 전 접어든 잠깐의 침묵과 같이 거리는 조용했다.

끼익-

그가 여관의 문을 열자, 어제 봤던 남자가 구석에 자리 잡은 탁자에 앉아있었다.

남자는 꾸벅꾸벅 졸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가 알렌을 보고는 급히 벌떡 일어서다 발이 걸렸다.

우당탕-

“…읍.”

“괜찮나?”

그가 의례적으로 묻자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예, 괜찮습니다. 사도님. 그런데…, 생각보다 늦으셨군요.”

알렌은 그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여관주인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남자는 그의 시선을 눈치채고 재빨리 입을 열었다.

“이곳은 저희 교에서 관리하는 곳이니 그렇게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그럼 저기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인가?”

알렌이 가리킨 곳을 보자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얼굴이 붉게 변해 잠든 이들이 탁자에 고개를 박고 있었다.

그의 물음에 남자는 조금도 숨기지 않고 입을 열었다.

“예, 축제인데 맨정신으로 있으면 그것도 수상하지 않습니까. 순찰병도 가끔 오는데 저래놓으면 그냥 슬쩍 보고 지나갑니다.”

알렌은 생각보다 잘 처신했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니 박멸하기가 힘들지.’

그가 확인해 본 결과 이곳에서 마력이나 다른 능력을 가진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야말로 평범한 주민 그 자체.

이들이 평소에 정체를 숨기고 행동한다면,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 한 걸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순환교에서는 무슨 일로 찾아왔지? 예언에 대한 다른 성과라도 얻었나?”

“그게… 우선 따라오시죠.”

그는 서서 말하기 좀 그렇다는 듯 안쪽으로 그를 안내했다.

그를 따라 여관의 안쪽 구석진 방으로 들어섰다. 평소 여관주인이 지내는 곳인지 생활감이 묻어나왔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남자는 재빨리 침대를 밀고 카펫을 치웠다. 그사이 먼지가 눈에 들어갔는지, 눈살을 찌푸렸지만, 결코 행동이 느려지지는 않았다.

“어후… 또 먼지가 이만큼 쌓였네. 들어오십시오. 이 안에 들어가면 놈의 눈에 띌 일이 없을 겁니다.”

“…놈?”

그는 더 말하기 힘들다는 듯 애매하게 웃고는 카펫 아래의 구멍으로 들어갔다.

「따라가게요?」

베스틀라가 뚱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알렌이 놀린 것에 토라져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걱정은 되는 모양이었다.

‘들어가야지. 일단 사도의 신분이니까.’

여기서 그들을 의심하는 것은 순환교에 대한 불신으로 보일 수 있다.

그가 망설임 없이 내려가자, 남자는 바쁘게 무언가를 찾아 작동시켰다. 벽면에 격자무늬로 빛무리가 떠오르더니 웅웅- 울리며 투명하게 변했다.

“결계인가?”

“예? 예. 본단에서 내려온 물건입니다.”

알렌은 실타래에서 몇 가닥 뽑아 결계에 접촉했다.

차음, 보호, 분리, 공간, 차폐.

‘꽤 수준이 높은데.’

보통 결계 아티펙트나 유물은 목적에 따라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소리를 숨기거나, 기척을 차단하거나, 공격을 막아내거나.

이곳의 결계는 모조리 숨기기 위한 술식이 내장되어있었다. 무언가로부터 눈을 피하려는 것처럼.

「알렌, 이곳에 들어오니까 그 기운도 없어졌어요.」

‘용의 기운?’

「네.」

그가 눈을 감고 조용히 있는 게 불안했는지, 남자가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저, 사도시여….”

“이름이 뭐지?”

알렌이 갑작스레 묻자 그는 잠시 그를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막스, 막스라 불러 주시면 됩니다.”

“그럼 이야기해보게, 무슨 이유로 나를 여기까지 불렀나.”

“예, 그럼 놈의 눈도 피했으니 이제….”

“잠깐.”

알렌은 아까부터 그가 말하던 ‘눈’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계속 ‘눈’이라 하던데, 누구를 말하는 거지?”

“…모르셨습니까?”

그는 알렌이 당연히 알 것이라 생각한 듯 당황한 얼굴을 하더니, 급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저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모든 것을 정화합니다. 그건 앞으로의 세상을 위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지요.”

알렌은 무어라 말하려던 것을 참았다. 설명을 듣는 것이 먼저였다.

“저희는 각지에서 많은 일을 하고 있고…, 그건 이곳 중앙 평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부에서는 본단에 쌓인 기록을 통해 수백 년 전 죽었어야 할 괴물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추측하고 몇 년 전부터 저희를 이곳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는 의아한 얼굴로 알렌에게 조심스레 질문했다.

“…선지자께서 사도가 여기 있으니 일을 도우라고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아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그렇게 말하며 알렌을 쳐다봤다. 알렌은 인상이 구겨지려던 걸 참았다.

‘사도 자리를 맡았으니 알차게 써먹겠다는 건가.’ 사도가 생겼으니, 일을 시키겠다는 심보.

알렌은 저번에 보았던 썩어버린 뿌리를 떠올리며 혀를 찼다.

어차피 자신의 목적과도 일치하니 거절할 생각은 없었지만, 마음대로 일을 시키려는 게 괘씸했다.

‘…아니, 잠깐.’

그러나 알렌은 곧 그들을 이용할 방법이 생각나자 입가에 부드러운 웃음을 띄웠다.

“그런 소리는 들은 적 없지만… 교단의 일이니 당연히 협조하지.”

“가, 감사합니다. 사도시여. 역시….”

그의 눈에 역시 사도라는 생각과 함께 존경심이 묻어났다.

“일단 아는 걸 말해보게. 그래야 돕든 말든 할 게 아닌가.”

“예, 알겠습니다. 우선 엘리프 공자에 대한 것부터….”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조용히 알렌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베스틀라는 홀로 생각했다.

역시, 음흉하다고.

* * *

드라기아스의 지하.

가주와 몇몇 측근들만 알고 있는 지하 통로를 내려가면, 검은 연기가 자욱하게 둘러진 공간이 있었다.

울퉁불퉁한 바위와 지상의 흙과는 전혀 다른 자흑색의 땅.

마치 산맥 하나가 땅에 통째로 박혀 있는 듯한 공간에 중년 남자 하나가 걸음을 멈춰 섰다.

드라기아스 가문의 가주, 벨리드 드라기아스는 바깥의 위세와 어울리지 않는 태도로 입을 열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다. 선조 님.”

“들어오라.”

공간을 울린 목소리에 그는 멈춘 발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하늘하늘 흔들거리는 연기를 뚫고 중앙에 도달하자, 그곳에는 순금으로 지어진 거대한 궁전이 있었다.

깡- 깡-

아직도 개축 중인 궁전은 용 하나가 들어가 살 정도로 어마어마한 넓이를 자랑했는데, 그 벽 사이사이로 드워프들이 달라붙어 일하고 있었다.

벨리드는 노예처럼 일하는 그들을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선조시여, 진행 중인 일은 언제 처리하기를 원하십니까.”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와 함께 나타난 것은 엘리프 드라기아스였다. 그는 자신의 황금 궁전을 돌아보며 활짝 미소지었다.

제 아들의 얼굴로 짓는 미소에도 벨리드는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그렇다면 추수제는 계획대로 진행하시겠습니까?”

“그래, 대신 중간에 있는 경매는 마지막 날로 옮기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벨리드가 평소와 답지 않게 말을 끌자 그의 몸을 차지한 시체를 멘 조소하는 자, 니드호그(Niðh?ggr)가 쳐다봤다.

“왜 그러지?”

“…엘로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는 그걸 묻는 게 꺼려진다는 듯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니드호그는 그의 물음에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다는 듯 싱긋 웃었다. 그가 ‘엘리프’로 활동할 때 자주 짓는 미소였다.

그러나 나오는 말은 사뭇 모욕적이었다.

“맏아들을 버리고, 막내까지 관심을 거두었으면서, 둘째는 안타까운가?”

“…….”

“삼대 가문이 아닌 ‘드라기아스’ 가문만을 남기고 싶다고 하더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군.”

벨리프는 치욕 받은 적이 없다는 듯, 묵묵히 그의 답을 기다렸다.

“걱정할 것 없네.”

‘엘리프’는 엘로스가 좋았다. 가문을 위해 굴복한 그와 셋째 그리고 그의 변화가 달가운 듯 입을 다무는 놈들에 비해 엘로스는 얼마나 기개가 넘치는가.

자신이 힘을 되찾고 ‘끝’을 대비하기 위해 십 년간 엘리프의 몸으로 생활하는 데 있어 엘로스는 지루한 삶의 활력소나 다름없었다.

“그도 따지자면 내 혈맥을 이은 아들이나 다름없으니. 그래도….”

라인하르트 가문 아래에 있는 비처의 존재가 불투명해지자 다른 대안을 찾던 상황이었다.

“이제 정리는 해야겠지. 죽일 생각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게. 단지, 조용한 삶을 살게 될 뿐.”

엘닉스의 보고로 용의 혈맥과 감응하는 용의 노심의 존재를 확인했고, 그것만 손에 넣는다면 죽은 육체를 되살릴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 안도의 기색이 배어 나오자 니드호그는 손을 내저었다.

“이만 물러나게. 그 녀석이 도시를 빠져나가지 않는지만 확인한다면 무엇을 하든 막지 말게.”

삶의 마지막은 즐기게 해야 하지 않겠나?

조소와 즐거움이 담긴 괴물의 시선에 벨리드는 천천히 몸을 돌려 돌아갔다.

그가 떠나가자 니다푤(Niðafj?ll)은 망치를 두드리는 소리만 이따금 들려왔다.

니드호그의 눈이 순금의 궁전 저 깊숙한 곳에 보관된, 썩어빠져 독액과 진물이 흐르는 육체를 응시했다.

“…앞으로 한 걸음.”

그 한 걸음만 무사히 내디딘다면 무력하게 당했던 저번과 다르게 이번 ‘끝’은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벨레드의 바람대로 세계에는 삼대 가문이 아닌 드라기아스 가문만이 남을 것이고, 자신은 새롭게 몸을 회복할 수 있겠지.

그가 다시 황금 궁전으로 되돌아갔다.

이번 일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기 위해서는 사기(死氣)를 최대한 흡수할 필요가 있었다.

어두운 산맥은, 다시 적막한 고요 속으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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