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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39화 (139/212)
  • 139화

    “이번 일에 대한 보상은 마차에 실어놨습니다.”

    “감사합니다.”

    “뭘요. 알렌 님도 저희 가문의 특징을 알고 계실 텐데요.”

    그녀가 은근히 웃으며 묻자, 알렌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아꼈다.

    어머니 엘리자가 루피너스 가문의 직계라는 것은 소수의 인원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다.

    자식들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일.

    어머니가 직접 알린 친우와 루피너스 가문 그리고 다른 몇 세력의 고위층을 제외하고는 모르겠지.

    자신이 그걸 알게 되었다고 해서 티를 낼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흠, 뭐 그런 태도도 나쁘지 않지요. 아직 기간이 남았는데, 더 머물지는 않으시겠습니까?”

    “아뇨, 괜찮습니다.”

    며칠 더 머물 수는 있겠지만,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드라기아스의 일도 있고, 아네르도 일을 마친 즉시 떠났다.

    ‘인맥을 쌓을 수도 있겠지만….’

    루피너스의 직계인 어머니를 두고 멀리 있는 길을 돌아갈 필요는 없을 터.

    알렌이 고개를 젓자 그녀도 더 권하지 않았다. 하지만 루피너스 가문의 이름을 먹칠하지 않겠다는 듯 공간이동 마법진을 사용케 했다.

    알렌은 마리아와 함께 아카데미와 제일 가까운 도시로 이동했다.

    마차에 실린 여러 선물이 덜컹대며 그들의 배포를 보여주는 듯했다.

    ‘거의 보름이 지났군.’

    생각한 것보다 더 빠르게 아카데미로 돌아갈 수 있겠지. 알렌은 품 안에서 느껴지는 현자의 돌의 감촉을 느끼며 웃었다.

    * * *

    ====================

    [임무 보고서 : 악마 계약자 추적]

    임무 지역: 대륙 동부 협곡지대의 도시 바이데른.

    임무 개요: 현지의 3대 가문 루피너스 가문의 지원을 받아 악마 계약자 추적 및 사살. 악마 소환 저지 및 제단 파괴. 악마 관련 서적 제거.

    임무 대상: 알렌 라인하르트, 마리아 카리타스.

    임무 결과.

    1. 악마 계약자 ‘라이너’ 사살 및 동부 협곡의 도적 떼 사살.

    2. 몬스터의 대규모 광폭화를 위한 제단 발견 밎 일부 파괴.

    3. 악마 계약자가 보유 중이던 몬스터 광부 사살 및 계획 저지 시도.

    4. 악마의 분체 포착 및 섬멸.

    최종 책임자 : 엘린 루피너스.

    * 루피너스 가문은 위의 사실을 모두 인정하며, 조금의 거짓이 없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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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음.”

    갈슈딘 아카데미의 이사장 아나스타샤는 방금 그녀에게 전해진 문서를 확인했다.

    “악마가 나왔다고 했나요?”

    “예, 직접 현지의 정보가 도착해야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이미 소문이 파다합니다.”

    “…마리아의 상태는 변화가 없었나요?”

    “정신 공격에 의한 타격은 없어 보입니다. 아마 루피너스 가문에서 빌려줬다던 하얀 투구의 영향이 아닐까 판단됩니다.”

    그녀는 그 말에 침묵하며 묵묵히 보고서를 재차 살폈다. 그녀의 모습에 수십 년 전에 죽었다 알려진 마법 교수, 베오른은 입을 다물었다.

    살점 없이 뼈로 이루어진 생김새.

    세간에 알려진 리치라는 존재로 수명이 다해가는 마법사가 더 오래 살고 싶은 욕심에 변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몸에서는 사기(死氣)와 흑마력 모두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거짓말처럼.

    “정말 영향이 없는 게 맞나요?”

    “돌아온 즉시 확인했습니다. 감정적 동요도 없고, 정신도 안정된 상태였습니다.”

    “누가 그녀와 함께 있었죠?”

    “알렌 라인하르트, 저희가 주시하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그 이름을 또 듣네요.”

    아나스타샤는 가늘게 뜬 눈으로 알렌의 이름이 적힌 보고서를 응시했다.

    그녀가 이번에 마리아를 루피너스 가문에 보냈던 이유는 간단했다. 마리아의 실력이라면 어렵지 않은 일인 데다가, 그들의 일을 해결했다는 명성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루피너스 측에서도 만약을 대비해 정신의 모든 공격을 방어하는 하얀 투구도 빌려준다고 했고.

    하지만 진짜 악마가 나타나고 그녀와 전투를 벌였다?

    “…용사의 신기가 있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닌데.”

    그런데 왜 이리 마음에 걸릴까.

    아나스타샤는 마리아를 잘 알았다.

    어렸을 때부터 감정에 대해서 어색해 보였던 그녀. 하지만 그게 장점이 되었으면 장점이 되었지, 단점이 되지는 않았다.

    그 성격 덕분에 더 쉽게 꺾을 수 있었으니까.

    ‘알렌.’

    아카데미에서 주시하는 학생 중 하나이자, 다른 쪽에서 괜히 신경 쓰지 말라 언급한 존재.

    그건 율리우스도 마찬가지였으나, 한 가지 걸리는 점은 율리우스가 숨어서 일을 꾸민다면 알렌은 자신의 행적을 숨기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다.

    입학한 직후부터 마리아와 매일 시간을 가지는 것도 그렇고.

    아나스타샤는 곧 자신의 불안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알아냈다.

    그녀는 자신이 힘들게 깎은 작품이 그 때문에 망가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권능 하나 없이 지상의 기술로 만들어내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하늘에서 추락한 후, ‘그들’은 필요에 따라 하나로 합쳐졌다.

    그 덕에 지상의 강자들 못지않은 힘을 얻을 수 있었으나, 기존에 가지고 있던 다른 모든 것이 사라졌다.

    신도와 신전 그리고 사도와 신앙.

    그 모든 것을 되찾기 위해 그녀는 수백 년을 준비했고, 아카데미를 일구어냈다.

    마리아의 존재도 마찬가지.

    고대 유적을 비롯한 다양한 유물과 잊힌 기술을 발굴해낸 것도 모자라, 초대 용사의 유골까지 구하고 나서야 만든 완성품.

    그런 그녀를 생각지 못한 조건 때문에 바뀌게 둘 수는 없었다.

    ‘…조만간 그쪽에서 부서진 용사의 신기가 어디 있는지 알아낸다고 했지.’

    카샤와의 거래는 그들의 목적을 알 수 없어 꺼림칙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

    “베오른.”

    그녀는 변화 없이 그 상태로 정체되어야 한다.

    “부르셨습니까.”

    “조만간 마리아의 임무를 보낼 테니 그곳으로 보내요.”

    “알겠습니다. 그것만 처리하면 되겠습니까?”

    그녀는 짧게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마리아에게 임무를 할당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더 걸릴지 모른다.

    그러니.

    “알렌 라인하르트, 그도 다른 곳으로 임무를 배정하면 되겠지요.”

    마리아를 떠나보낼 수 없다면, 알렌을 떨어트리면 된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임무를 끝마친 학생을 곧바로 다시 보낸다면 분명 다른 말이 나올 겁니다.”

    “지금 시기에 하나 있잖아요?”

    그녀의 말에, 베오른은 떠오른 것을 입에 담았다.

    “드라기아스 추수제 말씀하십니까?”

    “본래 이 시기에 성적 우수자에 한해서 혜택을 줬으니, 차석인 데다 임무도 마친 그라면 적합하겠죠.”

    그는 그녀가 한 말을 이해했다.

    적합하지 않더라도, 그는 적합한 이유를 가지고 뽑히게 될 것이다.

    “아, 그의 약혼녀가 있던가요?”

    그녀가 생각난 듯이 떠올린 말에 베오른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레이첼 그라나프. 2학년 마법 학부 학생입니다.”

    “그녀도 참가시키세요. 그렇게 하면 그도 고민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녀가 웃으며, 장난기 어린 얼굴로 물었다.

    “약혼녀가 축제를 기대하는데, 거절하는 남성은 없잖아요?”

    * * *

    “이번 드라기아스 추수제에 참가하지 못할 것 같아.”

    “알렌, 다시 말해봐요.”

    레이첼은 눈앞에서 냉랭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그가 마리아와 아카데미에 돌아온 후에 이틀이 지났다.

    임무 보고를 끝마친 알렌 앞에 좋은 소식이 있다며 레이첼이 그를 찾아왔다.

    “알렌! 우리가 이번에 드라기아스 추수제에 가는 인원으로 뽑혔어요!”

    그 대답에 관한 결과가 이것이었다.

    말 한마디를 잘못하면 파탄 날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알렌은 잠시 숙고했다.

    ‘…이번 초대는 이상하다.’

    그가 드라기아스 가문의 초대를 받으려 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2학기가 끝난 후의 이야기였다.

    작은 정보를 얻는다고 해도 철저한 준비를 하고, 만약을 대비해야 한다.

    사실 2학기 끝도 길게 잡은 거지, 확실한 준비가 된다면 바로 접촉할 생각도 있었다.

    루피너스 가문이 그를 임무의 형식을 빌려 초대했다면, 같은 반열에 있는 드라기아스 가문이 불가능할 리가 없으니까.

    그런데 그가 임무를 끝마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드라기아스 추수제에 갈 인원으로 뽑히게 되다니.

    알렌은 이번 일이 드라기아스에서 꾸민 일이 아닌가 의심했다.

    그렇기에 알렌은 상투적인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시기가 어수선하니, 추수제를 즐기는 것보다는 실력을 기르는 것이….”

    “당신.”

    그러나 레이첼은 같은 마음이 아닌 듯했다.

    “지금 시기가 어수선하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 짓을 해요?”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그를 노려봤다.

    “저번에 내가 물었을 때, 아니라며.”

    “…아니, 그건 그녀가 부상의 회복을 다 하지 못해서….”

    “그럼 엘릭서나 마시지, 당신이랑 손을 왜 잡는 건데?”

    알렌은 입을 다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제대로 설명하고 싶었다.

    마리아가 악마의 정신 공격으로 기절했다 깨어난 직후였다. 그래서 그녀가 그 이후에 손을 달라는 것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건 순전히 그녀가 정신적 안정을 취하려고 한 것뿐이었으며, 사심은 없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걸 알렌 자신이 설명하면서도 그녀가 제대로 이해하리라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잠시 정신적 안정을….”

    “그게! 말이 안 된다니까!”

    지금 이런 반응처럼.

    “아니, 당신이 생각해봐도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해요?”

    “그건….”

    그렇다.

    알렌은 레이첼에게 마리아와 자신의 관계에 관해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것을 온전히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회귀에 대해서도 밝혀야 했으니까.

    「알렌, 이건 당신이 이길 수 없는 것 같은데요.」

    ‘…….’

    「그러게 마차에 내린 후에도 왜 계속 잡고 있었어요?」

    마리아가 돌아올 때 자꾸 손을 달라고 하느라 익숙해진 탓이었다.

    알렌은 자신이 외통수에 걸렸음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해할 만했군. 내가 사과하지. 앞으로 너를 제외한 누구와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

    그가 굳은 얼굴로 확실히 다짐하자, 레이첼이 어느새 그의 옆자리로 다가와 알렌의 손을 붙잡았다.

    깍지까지 낀 손에 알렌의 팔이 끌렸다.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잖아요.”

    그녀가 사근사근한 말투로 바뀌어서 입을 열었다.

    “어쩌다 손잡을 일이 생기면 생기는 거죠. 당신을 믿지 않는다는 게 아니에요.”

    그녀는 슬쩍 머리카락을 넘겼다. 순간 드러난 목선으로 그의 시선이 닿았다 떨어졌다.

    “하지만 생각해봐요. 내가 그런 감정을 느끼는 이유가 뭐겠어요?”

    “…그건.”

    레이첼은 알렌이 대답하게 두지 않겠다는 듯 얼른 입을 막았다.

    “불안해서잖아요. 불안해서.”

    일주일에 몇 번은 만나며, 저녁은 항상 같이 먹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도시에서 유명한 곳은 그녀와 함께 가며, 시험으로 바쁜 와중에도 그녀와 만났다.

    “그런 모습을 내가, 다른 여자랑 그러는 걸 보면 어떻겠어요. 특히, 저번에 아니라고 했던 여자랑.”

    알렌의 얼굴에 그런가 하는 의문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무성의했군.”

    “그러니까 드라기아스 추수제에 참석하자는 거예요. 기껏 뽑혔잖아요?”

    그녀의 호수 같은 눈동자가 알렌을 응시했다

    “당신은 나랑 같이 가기 싫어요?”

    “아니, 언제나 기쁘지.”

    그녀는 자신의 후회 중 하나니까.

    알렌의 대답에 그녀가 물 흐르듯이 물었다.

    “그러니, 이번 드라기아스 추수제. 갈 거죠?”

    “…그러지.”

    알렌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와 한번 포옹하고 입을 열었다.

    “저는 그럼 먼저 준비해보러 갈게요.”

    “준비할 게 그렇게 많나…?”

    “많아요! 대륙 십 대 축제 중 하나인데, 대충하고 갈 수는 없잖아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떠나갔다.

    알렌은 멀뚱거린 얼굴로 바쁘게 걸어가는 그녀를 볼 수밖에 없었다.

    떠나가는 레이첼의 입가로 여우 같은 미소가 걸렸다.

    「…와.」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베스틀라는 감탄사밖에 내뱉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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