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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30화 (130/212)

130화

알렌과 마리아는 아카데미에서 출발해 장장 이레간의 이동 끝에 동부 협곡 지대의 중심 도시, 바이데른에 도착했다.

아카데미의 학생이라는 신분만으로 쉽게 검문을 통과한 그들은 곧장 중심의 성으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내성은 보는 것만으로 웅장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협곡에서 나는 수많은 재료로 지어진 성과 이곳 특유의 붉은 암석으로 만들어진 성벽.

그들의 재력에 비해 사치스러운 재료를 사용하거나 한 것이 아님에도,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알렌과 마리아는 정문의 앞에서 집사의 안내를 받아 응접실로 안내되었다.

“잠시 후면 이번 일의 책임자이신 엘린 님이 도착하실 겁니다. 그때까지 편안히 쉬고 계십시오.”

집사는 예의와 예절의 한 끗의 흐트러짐도 없이 절도 있게 물러났다.

철컥-

방문이 닫히자, 알렌은 별다른 행동 없이 다른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응접실에 들어왔을 때부터, 아니 정문에서부터 그를 계속 쳐다보는 눈길이 있었다.

“…왜 그러지?”

그를 쳐다보던 시선의 주인, 마리아는 알렌의 물음에도 뭔가 걸리는 게 있는 듯 빤히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알렌.”

“왜 부르지?”

“혹시 이곳에 가족이 있어?”

알렌이 뜬금없는 소리에 인상을 찌푸리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귀족은 자신의 혈통을 철저히 관리한다.”

설령 한낱 사생아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까지, 그들은 철저하게 혈통의 유출을 확인한다.

“그 말은 3대 가문과 라인하르트 가문, 모두를 무시하는 발언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그런 말을 꺼내지 않기를 충고하지.”

알렌이 그녀의 무례하다고 느낄 만한 발언에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저 말이 그녀의 본심이 아닌 것을 안다.

그녀가 의외로 몇몇 부분에서는 상식이 부족하다는 사실도.

그러나 이곳은 3대 가문이었다. 그들의 요청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러 왔다고 한들, 그들의 영역에서 무례하다고 느낄 만한 발언을 하는 것은 옳지 않았다.

“이곳에 우리 가문 사람이 있을 리 없지 않나.”

그녀는 알렌의 말에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으면서도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러나 여전히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 건 멈추지 않았다.

알렌은 그 정도는 상관없다는 듯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악마 계약자, 라.’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그런 상대를 자신이 직접 추적하게 되다니.

그러나 그는 에스테도르에 소속되거나 계획적으로 악마와 계약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제물을 원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무지하다고 봐도 상관없겠지.

그러니 루피너스 가문에서 어떤 정보를 주느냐에 따라 추적의 난이도가 달라질 것이다.

그렇게 이번 임무에 대해 생각하며 얼마나 시간을 보냈을까,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고개를 돌린 알렌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그의 태도에도 들어온 여성은 사무적인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안녕하십니까. 이번 임무를 지원하게 될 책임자, 엘린이라고 합니다.”

문을 연 하녀의 옆으로, 어깨까지 내려오는 와인 색 단발을 가진 여성이 있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마리아의 시선이 더욱 진해졌다.

알렌은 가까스로 당황을 지워내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악마 계약자 추적을 맡게 된 알렌 라인하르트라고 합니다.”

“마리아 카리타스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어색하게 굳은 얼굴은 그가 그녀를 보며 얼마나 놀랐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었다.

“자, 오늘은 이동의 여독도 있을 테니 일의 개요와 간단한 것만 설명하겠습니다. 그러니….”

엘린은 명백히 알렌 쪽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조금만 집중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

이 지역 특산물로 이루어진 호화로운 식사를 마친 저녁.

붉은 노을에 비치는 협곡의 광경은, 특유의 붉은 암석의 색이 섞여 바이데른에서만 볼 수 있는 명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평소라면 알렌도 잠시 그 모습을 구경해 볼 법했지만, 그는 배정받은 객실에서 나오지 못했다.

“…같은 가족이냐 물었지.”

마리아는 그녀의 요청으로 그와 조금 떨어진 옆 방에 자리한 상태.

3대 가문이라고 해도 학생들이 겪는 낯선 곳의 불안감은 이해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기에 엘린은 흔쾌히 허락했다.

“정말로?”

알렌은 엘린이라고 소개한 여성을 떠올렸다.

자신이 아는 이와 매우 비슷한 와인 색 머리카락을 가진 다른 이를.

‘어머니….’

엘리자 라인하르트.

알렌은 그녀의 가문이 어디였는지 알지 못했다. 아니, 알아볼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했다는 게 맞겠지.

라인하르트 가문은 옛날에는 대단했다고 하지만 현재는 몰락해 가는 상황.

그런 집안에 시집을 보낼 가문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외가와 별다른 교류가 없었음에도 이상함을 느끼지 않았다.

당연했으니.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생각이 복잡했다. 그럼 어머니는 3대 가문의 사생아인가? 정실의 자녀가 라인하르트 가문으로 와서 얻을 이득은 없을 텐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인물의 흔적을 발견하니 머리가 아팠다.

그렇게 얼마 동안 방 안에 있었을까.

악마 계약자 추적에 대한 계획이나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해 아무것도 정하지 못한 채로 시간만 보내고 있을 즈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알렌은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답했다.

“누구십니까.”

“엘린입니다.”

알렌은 그녀의 접근에 눈을 가늘게 뜨고 태연히 물었다.

“한밤중에 무슨 일로 오셨는지?”

“공자님께 낮에 실수로 전달하지 못한 사항이 있어서 말이에요.”

정말 그것뿐인가? 알렌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지금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 내일….”

“엘리자.”

알렌의 말이 멈췄다.

“그녀가 부탁한 일이 있습니다.”

그의 침묵을 다 이해한다는 듯 밖에서 목소리가 이어졌다.

“혼란스러우실 겁니다. 하지만… 잠시 이야기로 들어보시면 이해하실 겁니다. 문을 열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후.”

잠시 눈을 감으니, 냉정함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어차피 한 번은 확인해야 하겠지.’

애초에 저들의 말이 맞을 거라 확신할 수는 있나? 알렌의 눈이 문 너머의 모습을 짐작하듯 잠시간 응시했다.

“알겠습니다.”

철컥-

문이 열리자 엘린이 아까 봤던 것과 같은 옷차림으로 등불을 들고 서 있었다.

그녀는 알렌의 선택이 옳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돌렸다.

“따라오십시오. 오늘 밤밖에 시간이 없습니다.”

알렌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그들은 저택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를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그 모습에 알렌은 짐작했다.

‘가주의 허락이 있었군.’

밤에 경비를 도는 이들마저 없다는 건 그녀보다 더 위에서 개입했다는 뜻이었다.

어머니는 생각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을 수 있다. 아니면 혈족을 끔찍이 여긴다는 소문답게 사생아라도 잘 챙겨주는 것일 수도 있고.

알렌은 판단을 미루며, 그녀의 뒤를 따랐고.

탁-

“여기입니다.”

어느 방의 문 앞에 도착했다.

고동색의 흑단 나무로 만들어진 문은, 관리를 잘한 듯 아직 겉으로 윤기가 반짝였다.

엘린은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다는 듯 알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들어가십시오. 그녀가 이 방으로 알렌 님을 안내해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는 알렌이 들어갈 때까지 지켜보겠다는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알렌은 의문과 긴장 그리고 어머니의 비밀을 알 수 있다는 일말의 기대감과 함께 문손잡이를 비틀었다.

끼익-

그리고.

“이건….”

알렌의 놀란 듯한 목소리와 함께 방문이 닫혔다.

철컥-

그녀는 그가 나오기를 기다리겠다는 듯 자리를 지켰다.

어두운 그림자 사이로 작은 등불만이 조용히 복도를 은은히 비췄다.

* * *

방 안에는 성인 남자의 허리까지 닿을 듯한 서류의 산이 여러 개나 있었다.

그 자료에 적힌 글자를 읽던 알렌의 안색이 변했다.

“영혼을 원래 몸으로 되돌리는 방법….”

이세계와 현 세계의 상관관계.

한 몸에 두 개의 영혼의 가능성에 대한 의문.

영혼을 뽑아내는 강령술.

일반적으로 찾을 수 있는 자료에서부터 알렌은 손도 댈 수 없었던 강령술에 대한 지식까지.

수많은 책과 자료가 마치, 누군가가 쉽게 알아볼 수 있게끔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알렌이 홀린 듯 자료로 손을 뻗었다.

그의 눈이 빠른 속도로 서류를 읽어나갔다. 이 자료는 그가 회귀 전에 얻었던 지식보다 더 깊고 넓었다.

그렇게 서류의 산 하나의 속독을 끝마쳤을 때, 알렌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니의 짓인가.”

어머니가 이곳에 안내해 달라고 했다고 하니, 이 자료를 모은 사람은 엘리자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는 자료 읽는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회귀 전에도 같은 일이 있었다는 거겠지.’

처음 방에 들어왔을 때까지만 해도 그가 얻지 못했던 지식에 홀려 시간을 낭비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본다면 지금 회차에서만 진행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활동한 지 1년이 지나지 않았는데 이 정도 정보다.’

그런데 회귀 전에 10년 동안 어머니가, 엘리자가 모은 정보는 고작 이것보다 적었을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것의 몇 배는 더 많은 자료를 축적했을 것이고, 알렌보다 더 깊은 연구를 진행했겠지.

그러나 알렌이 기억하는 엘리자는 여전히 사치에 물든 모습뿐이었다.

그렇다는 건, 그녀가 율리우스를 되돌릴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알렌이 율리우스를 습격하고, 회귀하는 10년의 기간 동안.

거기까지 생각에 다다른 알렌은 잠시 끔찍한 기분을 느꼈다.

동생을 구할 방법이 없다고?

율리우스를 죽여야만 하는가? 김우진을 몰아낼 방법이 정말….

‘잠깐.’

그렇다면 어머니가 자신에게 이곳을 보여준 이유가 뭔가.

잠시 암담한 눈빛으로 자료를 보던 그는, 그녀의 의도를 다시 떠올려 볼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자신이 확인했던 자료를 다시 보라고?

아니, 그런 시시한 이유가 아닐 것이다. 고작 그런 절망을 나누기 위해서 회귀 전에 그런 연기를 십 년간 할 수 있는가?

“그래, 시야를 크게 넓혀서. 만약 이 자료를 보여 준 의도가 이 상황 자체와 관련되어 있다면….”

알렌의 논리가 비약에 비약을 더했다.

만약 루피너스 가문에 온 것조차 계획되어 있었다면.

마리아를 일행에 동행시킨 것도 전력을 더해 주기 위함이라면.

그녀가 가문의 힘을 빌려 무언가를 알려 주기 위함이라면?

“악마 계약자인가?”

알렌의 뇌리에 임무서의 계획, 회귀 전의 악마, 악마 계약자의 추적이 서로 원을 그리며 이어졌다.

악마 계약자가 무언가에 단서를 쥐고 있다.

그의 눈이 밝아졌다.

“그래, 그렇다면 이 자료들을 보여 준 의도도 간단하군.”

그녀는 그저, 홀로 무언가를 하려는 아들에게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을 위해 이런 자료들을 보여 준 것이고.

불안이 피어나면 걱정과 후회를 낳는다.

그럼에도 앞서 피어난 나태와 무기력이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어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알렌은 그저 회귀 전의 기억과 겹쳐져 포기를 입에 담았을 뿐이다.

‘희망은 있다.’

알렌은 한 번 더 되뇌었다.

희망은 있고, 율리우스를 되찾을 수 있다.

마치 집착과도 같이 옮아 매는 감정에 그는 저항하지 않았다. 그를 부정할 수는 없다. 이 목표는 이제 그의 인생 자체가 되었으니.

이제 생각할 건 두 가지.

‘악마 계약자를 어떻게든 추격해서 그 단서를 붙잡는 것 그리고.’

어머니가 왜 라인하르트 가문으로 시집왔는가.

드라기아스 가문만이 라인하르트 가문의 비밀을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이곳에서도 정보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알렌은 몸을 돌렸다.

계획해야 할 게 많았다.

자신의 어머니가 만들어 준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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