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23화 (123/212)

제123화

쿠우우우웅-

지팡이를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은 오만하게도 왜 7위계 마법사가 신이라 불리는지 알 수 있었다.

알렌이 사방을 둘러봤다.

그란델의 의지에 따라 바람이 흐르고, 바람이 모이며, 바람이 고인다.

하늘, 땅 할 것 없이 사방의 모든 곳에 바람이 머물렀다.

거대한 구름 벽에 둘러싸인 신역은 그가 이 공간의 주인임을 완벽히 납득하게 만들었다.

저 압도적인 모습에 절망할 법도 하지만, 도리어 알렌은 미소 지었다.

그는 이미 그란델이 신역을 펼칠 줄 알고 있었다.

처음에 그란델을 기습해, 신역을 사용하기도 전에 죽일 방법을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성공의 여부의 가능성을 넘어서, 알렌은 일부러 그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다.

‘왜?’

기회였기 때문이다.

알렌은 단순히 그란델과의 전투를 복수심만으로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복수도 중요하지, 하지만 그 목적만 가질 필요가 있을까?

‘그란델은 노련한 마법사다.’

마탑주의 자리에 올라가기 전까지 많은 전투를 치렀겠지.

그 자리는 단순히 위계가 높다고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니, 그를 위해 많은 업적과 쌓으며 싸움을 이어왔을 것이다.

내부에서도, 외부에서도.

하지만.

‘그가 언제까지 전성기를 유지할까.’

보통 위계가 높을수록 젊은 외모를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그것도 한계에 이르러 늙게 되는 건 피할 수 없다.

일전에 보았던 그늘진 여왕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수십 년을 팔강으로 지냈음에도 체력전에 밀려 자크니르에게 패배 했었지 않나.

지금은 결국 한계를 돌파했지만, 그란델은 그녀 같은 경우가 아니었다.

‘제아무리 실력을 유지한다고 해도, 한계가 존재하지.’

그는 현재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알렌은 그 반대.

그란델이 삶의 마지막 촛대가 타고 있다면, 알렌은 수많은 촛대 중 하나가 타오르고 있다.

그 차이에 알렌은 판돈을 올렸다.

세상에는 알렌이 알지 못하는 실력자도 즐비하며, 원작과 검은 책에서 언급된 수많은 적이 있었다.

그건 이번 마탑 습격을 통해 구체화될 것이고, 결국 자신의 앞을 막아설 날이 오겠지.

그렇기에, 나서야 했다.

쉴 틈도 없이 달려 나가다 거대한 벽 앞에 짓눌리기 전에, 애써 앞지른 실력의 차가 다시 좁혀지기 전에.

‘이번에 새로이 확인하고, 다시 조정해야 한다.’

그것이 알렌이 은밀하게 습격을 감행하지 않고, 그란델과 정면승부를 고집하게 된 이유였다.

지금 스스로를 불에 던져 단단히 제련되지 않는다면, 더욱 강한 철에 부딪혀 박살 날 뿐이었기에.

‘그란델, 너는 무슨 답을 들려줄까.’

한동안 녹색의 안광을 내뿜으며 가만히 알렌을 내려다보던 그란델이 입을 열었다.

“왜, 말이 없지? 이제 도망이라도 치고 싶나?”

강한 기세를 내뿜으며 휘몰아치는 바람 속의 중년은 조금 전의 신중한 모습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만했다.

알렌은 답하지 않았다.

“생각이 바뀔 만도 하지, 신역을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은 이 영역에 대해 무지하거든. 6위계가 운으로 7위계를 이기니, 뭐니 그런 논쟁까지 벌일 정도로.”

중년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란델이 입을 열었다.

그는 젊은 시설로 돌아오며 기개와 자존심, 명예와 오만함을 모두 돌려받은 듯 거침이 없었다.

“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 모르니 이런 짓을 벌인 거겠지. 휘스를 납치하고 외딴곳으로 유인까지 하고…, 이제는 감히 홀로 나를 상대하기까지.”

그는 마치 젊음의 혈기가 그리운 듯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덕분에 신경 쓸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했던 이들의 위험을 느낄 수 있었어.”

“…….”

“그들은 너 때문에 죽을 거다. 이 일과 관련되어 있든, 관련되어 있지 않든 단지 너와 인연이 있다는 것만으로.”

그란델은 이제서야 자신을 습격한 의미를 이해했냐는 듯 친절히 설명했다.

“웃기지도 않지. 네가 사용하는 그 충격파의 근본도 내 마도서에서 나온 것이거늘.”

그란델은 마치 그 때문에 알렌이 충격이라도 받으리라 생각한 듯 했다.

“…그것이.”

하지만.

“무슨 상관이지?”

지금의 알렌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이었다.

“그들은 이미 각오를 했다. 그따위 말에 내가 흔들릴 줄 알았나?”

알렌은 이미 나아가기로 했다.

그 길에 이제 무엇이 있든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알렌이 평온한 표정으로 되받아치자, 그란델의 눈이 가늘어졌다.

“네 탓에 수많은 이들이 죽는다는 말이다. 이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겠나? 아니, 네 동생의 서클을 깨부순 이유도 깨닫지 못하는 주제에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군.”

그는 고개를 몇 번 젓더니 짧게 답했다.

“됐다. 이제 진정으로 끝내지.”

그란델은 시시한 얼굴로 알렌을 쳐다보더니, 양손을 활짝 펼쳤다.

신역 안에서 마법사는 신이라 칭한다.

그것이 그 영역 안의 일일 뿐일지라도, 실재하는 것에는 거짓이 없다.

그렇기에 현존하는 법칙을 뒤틀고, 존재하는 공간을 비틀며, 끝에는 실재하는 현실을 개변한다.

그의 지팡이가 공중에 떠올라 빛을 발함과 동시에 그란델은 펼친 양손을 크게 돌렸다.

쿠우우웅!!

그의 심상에 따른 상상은, 아무런 전조도 없이 알렌의 주위에 나타났다.

알렌이 없애버렸던 겨울의 정령, 아니 그 모습을 빌린 듯한 수백의 사슴 떼가 알렌을 노려봤다.

눈에 의지라곤 없는 정령체가 알렌을 본 즉시 살의를 품으며 달려들었다.

사아아아-

눈앞에 보이는 수백의 정령은 그 형체만을 빌릴 뿐인 저 하늘의 극저온의 바람임이 분명했다.

숨결 한 번에 살을 에워싸 부서뜨릴 것 같은 추위가 일제히 알렌을 향해 조여 들었다.

알렌은 물레를 돌렸다. 그로도 모자라 그물로 주위를 방어하며, 동시에 빛의 알갱이가 그를 감싸 안았다.

온도가 내려간다.

숨 한번 내쉴 때마다 하얀 서리가 퍼져나가며 공간을 통째로 얼릴 듯 에워쌌다.

알렌은 어떻게든 방어하며 수십, 수백 개의 녹청색 날붙이를 아무렇게 날렸다.

아무런 의미 없는 이러한 공격에 정령 몇 개체를 뚫고 지나갔으나 곧 정령은 순식간에 되살아나 알렌을 향한 공격을 지속했다.

의미 없는 발버둥.

그란델은 그 모습에 아무런 의심이 들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라면, 하늘 저 위의 바람을 빌려오는 것에 시간을 소모했을 것이다.

동시에 마력도 꽤 소모했어야 겠지. 그러나 신역 안에서라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곳은 바람이 머무는, 바람의 세계였다.

알렌의 발버둥을 지켜보던 그란델이 진중한 얼굴로 수인을 맺으며 영창을 뱉었다. 어찌 되었든 알렌은 그에게 경각심을 심어주었고, 그에 맞는 수준의 보답을 주어야 했다.

바람 계통 마법은 약하다.

불과 같은 화력도 없고, 물과 같은 유연함도 없다. 그저 칼바람이나 뿌리며, 폭풍을 흉내 낼 수 있을 뿐.

하지만, 그 바람 계통 마법의 정점에 선 그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보여주마, 바람 계통 마법의 극의를.”

그의 수인이 완성되며 그란델이 손바닥을 내리쳤다.

아틀라스(?τλα?)

영겁형벌(刑罰永劫)

만천근(滿天斤)

순간적으로 알렌의 머리 위쪽 공간이 물결치더니 주위에 보일 만큼 엄청난 파문을 그리며 압력을 가했다.

주위를 통째로 누르는 압력에 알렌 주위의 협곡이 부서졌고, 이윽고 그 압력은 중앙에 있던 알렌에게 향했다.

산 위와 지상의 기압이 다르고, 지상과 지하의 기압이 다르다.

그것의 원리를 빌려 비틀어낸 자신의 성명 절기.

신역 밖에서는 엄두도 못 낼 마법이 영역 안에서는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었다.

대기가 울리는 것을 보며 그란델은 눈을 감았다.

‘이제 원시 회랑이 끝난다면, 남은 이들을 처리….’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이런 느낌인가.]

“……!”

[이것이 진정으로 자신의 신역을 구축한 자의 영역이군. 내가 도달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광경이야.]

“…뭐라?”

[자신의 의지로 일정 구역의 권한을 강제로 빼앗는다. 그 빼앗은 구역을 어떻게 구축할지는 마법사의 영역이고.]

세계에는 주인이 없으니.

눈을 크게 부릅뜬 그가 경직된 목을 돌렸다.

밖에서의 계획을 세우려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여유롭게 끼던 팔짱을 다급히 푼 그가 손을 들었다. 오랜 시간 그를 도와주었던 본능이 다급히 경종을 울렸다.

‘어떻게, 어떻게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저 속에서 일어서는 것조차 불가능한 일일진대…!

수백의 정령이 둘러싼 서리의 세계. 그 중앙에서부터 짓눌린 공간의 중심에서, 검은 인영이 일어섰다.

[그렇다면, 반대도 불가능하지 않겠지.]

알렌이 자리한 중심으로부터 작은 진동이 일었다. 그 진동은 순식간에 신역 전역에서 퍼지더니 무언가와 공명하기 시작했다.

“저건…!”

의미 없이 신역 전역에 박혀있던 녹청색의 날붙이, 그것이 진동하며 실타래로 풀렸다.

그란델이 경악했다. 그저 발버둥의 일환으로 알았던 것이, 처음부터 세워놨던 계획이라 말인가.

그러나 그가 무언가 행동하기 전에,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

신역 전체를 감싸던 먹구름에 실타래가 박혀 든다. 침식된 먹구름은 이내 거대한 벽이 되어 사방을 단단히 에워쌌다.

바람이 드나들던 협곡은 수백, 수천, 수만의 실타래가 뒤덮여 본래 모습은 찾을 수도 없었다.

검은 먹구름으로 가려진 단절된 공간과 바닥을 가득 채운 실타래가 신역을 구성했다.

마치 거대한 우물 속에 들어온 듯한 광경.

“이, 이건 무엇이냐!”

이미 구축한 신역을 빼앗는다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어느새 공포심에 물든 그가 미친 듯이 발광했다.

마법을 퍼부으며 발버둥 치는 그의 동작이, 한순간 멈추었다.

그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결국 눈을 빼앗기고 말았다.

물레가 바닥에서 실을 뽑아냈다. 우물의 중앙에서 뽑아낸 실이 짜여지며 거대한 그물이 되었고, 우물의 천장에 빛의 알갱이가 하늘을 틀어막았다.

“……설마.”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그란델이 홀린 듯한 눈으로 바라보다,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후우우웅-

일정한 박자에 따라 실이 뽑혀, 엮기고, 다시 풀린다. 끝나지 않을 영원 속에서.

그리하여 빚어지는 건 하나의 흐름이었다.

그로서는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지도 못했던 광경.

“이건 시간 그 자체가 아닌가….”

무수히 이어지는 하나의 법칙.

그제야 알렌이 사용했던 마법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물레를 이용해 마법을 과거로 되돌리며, 그물을 이용해 현재를 비틀고, 뭔지 모를 빛의 알갱이가 미래를 바꾼다.

이러한 마법을, 진정 구현하는 것이 가능한가?

7위계라는, 마법사의 신역이라는 것을 구축했기에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 이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힘이 아니다…, 아니란 말이다!”

어찌 인간이 이러한 광경을 창조해낼 수 있단 말인가.

변화 학파조차 실마리 하나 잡지 못했던 것을, 시간 마법의 마력 형태조차 아직 인지 못 한 것이 마법계의 현실인데.

저 어린 마법사가 어찌 미래에도 도달하지 못할 영역을 넘볼 수 있다는 말인가. 몰락한 신 아니, 대신 정도는 되어야…!

“시간이 아니다. 운명이지.”

잘못된 생각을 정정하기라도 하듯, 알렌이 물레의 옆에 내려섰다.

무수한 실타래는 그를 환영하는 듯 기쁘게 요동치며 그의 곁을 맴돌았다.

그러나 결국 흐름을 벗어나지 못한 듯 실타래는 다시 돌아갔고, 알렌의 곁에 남은 건 단 하나의 실 가닥이었다.

그 실은 알렌과 그란델을 제법 깊게 잇고 있었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파악한 것이 현실인데, 어찌 시간이라고 생각하나.”

있는 듯 없는 듯 곁을 맴도는 실 가닥을 바라보며 알렌이 말했다.

“그보다, 하나 질문을 하지.”

많은 고민을 했다.

1년 사이, 무수히 흔들렸고 제대로 된 결심마저 지키기 힘들었다.

“마탑주 그란델, 너는 네가 한 행동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나?”

“뭐라고?”

처음 결심과 다르게 상황은 계속 달라졌다.

“네가 한 행동 모두를 옳게 생각 하냐고 물었다.”

자신의 실수 탓에 죽은 자들을 만났을 때.

욕심을 위해 누군가의 희생을 방관해야 할 때.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버릴 자들을 선택해야 했을 때.

자신의 결심에 발목이 잡혀, 지인의 죽음마저 침묵했던 때.

그 끝에는, 자신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서도 알 수 없어졌다.

“…하, 하하! 이제 와서 묻는 게 고작 그런 것이냐?”

한동안 헛웃음을 터트리던 그란델은 조소를 담아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답해주지, 그래. 나는 내 모든 행동을 옳다고 생각한다. 네 동생의 서클을 부순 것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그런가.”

그렇다며 되었다.

네 대답을 들었으니, 이제 그 답을 들려주지.

알렌은 담담히, 의지를 담아 선언했다.

[나, 알렌 라인하르트는 세계에 제약한다.]

도시의 처음 들어왔을 때, 마나의 맹세를 봤을 때부터 어렴풋이 떠올리던 것을.

[정의를 시험하기 위한 심판대를.]

불투명한 실타래가 공간을 뚫고 어딘가와 이어진다.

[선악의 무게를 재기 위한 저울을.]

선과 악.

옳고 그름.

정당성과 부당함.

그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없다면, 그 탓에 행동이 제약이 걸린다면.

[죄인을 처형하기 위한 단두대를.]

그렇다면, 다른 이가 판단하면 될 일이다.

[이곳에서, 티르(Tyr)의 결투를 신청한다.]

자신이 아닌, 세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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