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19화 (119/212)

119화

[과거의 원한을 해결하고 복수를 하자!

그란델을 쓰러트리고 그의 서클을 부수십시오! 제한시간 : 168 : 09 : 34]

[보상 :정신력 영구 강화, A급 특성 확정 선택권]

율리우스는 심각한 얼굴로 퀘스트를 바라봤다.

마탑 도시에 가는 걸 선택한 직후에 생겨난 퀘스트.

그는 퀘스트의 메커니즘은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가 향하는 장소에 따라 퀘스트가 생성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의외인데….’ 아니 그렇지만도 않은가.

마탑에 온 만큼 원작의 사건대로 에스테도르의 습격을 막아 내라! 혹은 도시를 지켜 내라! 같은 퀘스트를 받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란델이라니.

‘사실상, 이 몸이 망나니가 되게 만든 원인이니 당연한 건가.’

지금까지 히든 피스를 회수하랴, 퀘스트를 진행하랴.

거기다가 하이젤의 일이나 주변 주·조연들까지 영입한다고 지금껏 잊고 있었다.

하지만 율리우스는 보통이라면 기꺼워했을 A급 특성 선택권이라는 보상에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마탑주들은 지금의 하이젤이 나선다고 해도 승률이 반반이야.’

그가 전력을 다한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시기에 마기를 드러낸다는 건 미친 짓이나 다름없으니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는 보상이 너무 아까웠다.

A급 특성 선택권.

잘하면 성장이 멈춘 검술을 끌어 올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정령 친화력을 대폭 늘려 인공 정령을 완전히 지배하든지.

어느 것이라도 매력적인 선택지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어떻게 방법이 없나? 아니면 하이젤과 연합을 한다면….’

율리우스는 몇 자리 떨어진 곳에 있는 하이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가 시선을 보내기 무섭게 하이젤의 고개가 제 쪽을 향하더니, 이내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기 시작했다.

“…….”

“…….”

한동안 그렇게 서로를 응시하고 있자, 하이젤의 옆에 있던 여자도 율리우스에게 시선을 향했다.

릴리트.

하이젤이 마왕일 적 그를 섬겼던 신하.

원작에서는 서큐버스니 히로인이다, 아니다를 두고 논쟁이 일었지만 결국에는 하나의 결론으로 모였다.

‘발암이라고.’

강제적인 제약을 핑계 삼아 얼마나 많은 고구마를 선사했던가.

결국, 마지막 결말까지 말아먹었으니 나름 소설의 애독자였던 그로서는 그녀를 좋게 바라볼 수 없었다.

율리우스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돌렸다.

‘하이젤과 협력하는 건 힘들다.’

굳이 여기서 마탑주를 살해하기 위해 협력을 요청하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지 의심할 게 뻔하다.

그렇다고 문제의 원인인 릴리트를 살해한다면 하이젤이 폭주할 터.

지끈거리는 머리를 주무른 그는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마침 아래에서 그를 올려다보던 비엘리와 눈이 마주쳤다.

비엘리 카자나프.

남쪽 끝의 작은 해양 왕국의 왕녀이자, 자신보다 한 학년 위의 빙결 마법사.

그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하이젤과 릴리트를 감시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그녀의 요청으로 참관하게 되었다는 말이 옳았다.

‘…나는 마법사도 아닌데.’

하필 첫날부터 아냐를 따라 토론회에 참석했다는 것이 들켜서 그런지.

마탑 도시의 일정이 끝나기 일주일 전인 지금까지 토론회에 들어가야 했다.

그 탓에 마법사가 아닌 학생들의 훈련 일정과 하이젤의 감시 그리고 자신과 관련도 없는 토론회에 불러 다니느라 이번 일주일간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선배의 표정이 많이 안 좋네?

그녀 말고도 다른 아카데미 학생들의 얼굴도 어둡기 그지없었다.

아무래도 이번 토론회는 마탑 측이 우세한 것 같았다.

마침 빙결 학파 수장의 제자라던 남자가 소리 높였다.

“저희 빙결 학파는 저 남쪽의 깊은 해저에서 최초로 뜨거운 얼음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번 발견으로 저희 학파는 얼음이 무조건 차갑다는 ‘인식’을 깨트렸고….”

율리우스는 흥미로운 얼굴로 그의 발표를 들었다.

‘뜨거운 얼음인가.’

현대에 있을 때 들어 본 것 같은데.

그들이 보기에 뜨거운 얼음은 악마의 차가운 불과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현상으로 보이기 충분하겠지.

“얼음이 단지 수증기에 이어 물의 상태 변화에 불과하다는 현재의 이론을 뒤집을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이에 이 자리에서 선언하겠습니다.”

그는 감격스러운 얼굴로 외쳤다.

“저희 물의 마탑 부속 학파, 빙결 학파는 이 시간 이후로 물의 마탑에게서 완전히 분리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짝짝짝-

그의 설명을 듣던 마법사들이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율리우스는 다른 사람이 박수를 치니 그도 같이 일어나 박수를 쳤다.

“와아아아-!”

우레와 같은 찬탄과 놀라운 얼굴로 박수를 보내는 마법사들 사이에서 율리우스는 슬그머니 빠져나와 비엘리 선배를 기다렸다.

아카데미 학생들은 패배감에 젖은 얼굴로 토론장을 걸어 나왔다.

“선배, 무슨 일인데 저렇게 흥분하는 건데요?”

“…율리우스인가.”

그녀는 그를 옆으로 끌고 가더니 사람들이 없어질 때쯤이 되어서야 답했다.

“학파 독립은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지.”

율리우스가 여전히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자, 그녀가 자세히 풀어 설명했다.

“마법사가 아니라도 학파는 하나의 계통을 수련하는 이들이 모인 거라는 것 정도는 알겠지?”

“네.”

“그런 학파들도 수준이 나누어지기 마련이지.”

마탑 도시를 대표하는 7대 마탑.

그 아래에 위치하는 연금 학파와 변화 학파.

그 아래의 수많은 계통을 수련하는 학파들.

“잠깐, 연금술은 알겠는데 변화 학파는 뭔데요?”

“못 들어 봤나? 변화 학파는 말 그대로 변화 계통을 수련하는 이들이지.”

현재 학계에서는 시간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그저 물질의 변화에 따른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가설이 우세하다.

변화 학파는 그런 물질의 변화를 연구하며, 끝에는 시간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들이었다.

“어쨌든, 수많은 학파가 나뉘어 있지만… 진정으로 독립한 이들은 많이 없지. 7대 마탑의 속성과 관련 없는 학파는 드무니까.”

그렇기에 많은 학파가 7대 마탑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학파가 되고 싶어 한다고.

공간이나 영혼 같은 계통은 난해하고 희귀하기에 그쪽은 사람이 더 부족하다고 했다.

영세한 학파는 학파를 유지할 제자를 모집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니.

“그런 상황에서 물의 마탑의 부속 학파 취급당하던 빙결 학파가 독립했으니, 다른 이들이 보기에 얼마나 희망차게 보이겠어?”

율리우스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원작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없어서 잘 모르겠네.”

하긴, 하이젤은 마법사가 아니었으니 이런 자세한 설정까지 읊는 건 이상할 것이다.

그가 신기한 표정으로 다른 질문을 하려는 그때,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지?”

“망나니한테 몇 놈 걸렸다는데?”

“또? 근데 저거 저번이랑 같은 사람이….”

망나니란 소리에 율리우스는 홀린 듯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돼지란 단어가 어울릴 한 청년 주위로 비슷한 나이대의 청년 다섯이 소리치고 있었다.

“너 때문에 내 동생이 폐인이 되었어!”

“유망주로 불리던 우리 누나가 방구석에 틀어박힌 게 너 때문이다.”

“휘스 아로나, 그란델 님께 우리 아버지의 실종에 대한 제대로 된 답변을 촉구하오.”

그곳을 바라본 율리우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익숙한 기시감.

망나니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비슷한 일을 당한 적 있었다.

‘추수제… 였지?’

별 같잖은 놈들이 길을 막아 대서 얼마나 귀찮았는지 모른다.

“…무슨 일인데 그러지?”

비엘리는 키가 작아 벌어지는 일을 보지 못했다. 율리우스는 괜히 찔려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아니에요. 그냥 가죠. 약속도 있는데.”

“음, 그래도 보고 싶은데… 어쩔 수 없지.”

그녀의 대답에 율리우스의 눈에 무지갯빛이 맺혔다.

‘진한 주황색.’

원작의 잠깐 등장했던 조연임에도 재능이 훌륭하다. 율리우스가 활짝 웃었다.

‘저놈과 다르게 나는 그런 일이 더 이상 없는 게 다행이네.’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

그런 확신을 얻은 율리우스는 기분 좋게 걸음을 옮겼다.

“빨리 가요. 나타샤랑 아냐가 기다리니까.”

“알았다. 그, 그런데 손목은 언제 놓을 거냐?”

율리우스의 웃음소리가 깊어졌다.

* * *

한껏 기분 좋게 사라진 율리우스와 다르게, 휘스 아로나는 성가시기 짝이 없는 상황에 눈살을 찌푸렸다.

“저리 꺼져라!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런 짓을 저질러?”

그가 소리쳤음에도 상대는 물러나지 않았다.

“휘스 아로나. 마탑주 그란델 님의 손자인 너를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어쨌든 제대로 된 해명을 해야 할 거다. 그 어린 것의 서클을 깨트려? 고작 부딪쳤다는 이유로?”

“나는 그란델 님의 답변 듣고 싶소. 현재 그와 만날 수 있는 건 당신밖에 없을 테니, 당신이라도 붙잡아야겠소.”

평소에는 자신이 누군지 알 테니 적당히 하고 물러날 텐데, 이번 주는 유독 저런 놈들이 많았다.

‘아카데미가 있다고 저러는 건가?’

그들의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체면을 차려야 할 테니?

그 생각에 그는 콧방귀를 꼈다. 언제부터 자신이 체면에 신경을 썼다고.

하지만 그의 행동은 생각과 정반대였다.

“나는 모르는 일이니, 저리 꺼져! 다시 찾아온다면 그때는….”

저들의 눈에 보이는 독기에 휘스 아로나는 말하다 말고 발걸음을 돌렸다.

“휘스 아로나!”

“이 새끼를 내가…!”

“참으시오, 먼저 공격하면 우리는 절대 무사하지 못할 것이오.”

“하지만….”

“일단 그가 약조했으니, 그를 믿고 기다리….”

뭔가 계획을 꾸미는 듯한 그들의 말에 휘스 아로나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자신을 따르던 이들도 아카데미 탓인지 갑자기 일이 생겼다며 사라져 혼자밖에 없는 상황이다.

거기에 할아버지마저 요즘 무슨 일이 있는 듯 이번 주에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자신의 배경을 생각한다면 누가 건드릴 일은 없겠지만, 만약 눈이 돌아간 이가 있어 자신을 공격한다면?

‘아카데미가 떠날 때까지만 참는다.’

그때쯤이면 할아버지도 다시 그를 신경 써 줄 것이고, 사라진 자신의 패거리도 다시 돌아올 것이다.

교류회 셋째 날부터 거리를 걸을 때면 부쩍 나타나는 저들 같은 이들 때문에 이제 밖을 나가는 것도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개인 저택으로 돌아온 그는 그제야 안심이 들었다.

“개새끼들 같으니…. 이번 일만 끝나봐. 제대로 손봐 줘야지.”

할아버지의 말대로 몇 명만 건드렸더니, 저렇게 날뛰기 시작했다.

그러니 확실하게 처리한다면 앞으로는 저런 일이 없겠지.

앞으로 일주일만 참으면 이루어질 미래에 그가 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마지막에 보았던 그들의 독기어린 눈빛이 떠오르자 웃음이 뚝 그쳤다.

“…시발.”

사실 요즘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며칠 전부터 자신이 몰래 처리했던 이의 환청이 들리기도 하고, 잠을 자면 자신에게 당했던 모든 이들이 그를 물어뜯는다.

처음에는 불안감 때문이라고 자위했지만, 점점 심해지는 환청과 환각에 그도 두려움이 들었다.

“엘릭서도 몇 병이나 먹었으니 마법일 리는 없는데….”

몰래 꿍쳐 둔 상급 엘릭서까지 먹었으니 확실했다.

결국, 결론은 현재 상황 때문에 느끼는 불안감이 영향을 끼쳤다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사용인들은 왜 내가 돌아왔는데 없… 아.”

이틀 전, 하인 하나가 그의 음식에 독을 타는 악몽 때문에 열흘간 아무도 오지 말라고 소리쳤었다.

한숨을 내쉬는 그는 오늘따라 그림자가 더 짙어 보이는 저택의 통로를 지나쳤다.

획-

“누구야!”

고개를 들어 뒤를 돌아봤다. 그러나 시선만 느껴질 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검은 그림자만이 어둡게 자리한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그는 차오르는 두려움을 누르며 속도를 높였다.

꾸륵꾸륵-

“또, 또 이 소리인가.”

어디서 나는지도 모를 정신을 갉아먹는 소리.

햇빛이 구름을 가려서일까, 사용인 하나 없는 저택은 아무런 인기척이 없어 더욱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분명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는데….”

그는 떠오를 듯 말 듯한 생각을 억지로 구겨 넣고, 빠른 속도로 걸음을 옮겼다.

복도의 중간을 지나칠 때쯤, 소리가 들렸다.

-휘스 아로나.

-왜, 왜?

-무슨 짓을 했다고….

또 환청이다. 그는 귀를 막았다. 그러나 귀를 막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듯 뇌를 울렸다.

“시발, 꺼져! 왜 갑자기 나타나고 지랄이야!”

꾸륵꾸륵-

이제는 저택의 그림자까지 꾸물거리며 기어 왔다. 그의 눈이 붉게 충혈됐다.

-왜, 서클을 부셨어?

-또, 때릴 거지?

-응? 그렇지? 응?

그는 달렸다. 그러나 일 분이면 도착할 방이 보이지 않았다. 복도가 길게 늘어졌다.

꾸륵꾸륵-

그림자가 솟아오른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들은 어린아이로, 소년으로, 청년으로 변했다.

그들이 입을 벌리고 그에게 다가섰다.

꾸륵꾸륵-

“뭐야! 뭐냐고! 꿈도 아니…, 그래.”

꿈이구나.

그가 길게 웃음을 터트렸다. 꿈이구나. 꿈.

지금 상황이 꿈이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았다.

-꾸륵꾸륵

“어서 깨어나! 깨어나라고. 당장 날 깨워 줘 깨우란말이야당장깨우라고꾸륵꾸륵꾸륵꾸륵- 아?”

왜 내 입에서 소리가?

정신이 멀어진다. 발밑에서 솟아난 어둠이 그를 집어삼켰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장면은 두 개의 인형이 다가오는 장면이었다.

꾸르륵-

눈앞이 검게 암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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