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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18화 (118/212)

제118화

교류회를 연 지 3일이 지났다.

그동안 마탑이 뛰어난 연구성과를 보이며 압박하기도 했고, 반대로 아카데미 측의 발표가 마탑을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갈수록 더해 가는 교류회의 열기에 고위 마법사들은 그저 흐뭇한 얼굴로 경쟁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경쟁은 앞으로의 발전을 부채질해 줄 좋은 동력원이었으니까.

그 사이 마탑의 고위층에서 조용히 아카데미 측과 접촉을 했었지만, 일부를 제외한 이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알렌도 공간 마법 토론에 한 번 참여했다.

그러나 별다른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괜한 주목을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아는 이들도 없었고.’

레이첼에게도 이번 교류회에 빠지는 게 좋겠다며 권했다.

이넬리아와 린벨은 엘피스에 남아 잠시 상단의 기반을 다지는 것을 돕게끔 했다.

그녀들의 무력이라면 순조롭게 거래망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알렌은 오후에 프란시스카와 만나기 전, 미리 잡았던 약속 시간에 맞춰 커다란 건물 앞에 도착했다.

7대 마탑을 제외한다면, 독보적일 정도로 높은 층수와 넓은 부지.

일선에서는 연금 학파도 마탑으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 위세가 엄청났다.

페르타에서 활동하는 연금술사 대부분이 이곳에 소속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안으로 들어간 그는 곧장 신분과 이름을 확인받곤 응접실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똑똑-

“마르골 님, 알렌 라인하르트 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들어오시라 하게.”

안에서 허락이 떨어지자 안내인이 문을 열며 비켜섰다.

알렌이 들어가자, 안에는 왜소한 몸집의 젊은 남성이 뒤돌아 서 있었다.

철컥-

문이 닫히자, 그는 알렌을 향해 돌아섰다.

“안녕하십니까, 연금 학파의 수장인 마르골이라고 합니다.”

“갈슈딘 아카데미에서 재학 중인 알렌 라인하르트입니다.”

“그것 말고 하나 더 있지 않습니까?”

그는 웃으며 알렌을 자리로 안내했다.

“저희 학파의 후원자가 아니십니까.”

알렌과 같이 거래 관계에 있는 자들을 은유하는 명칭이었다.

알렌보다 반 뼘 작은 키에 옅은 금발을 가진 그는 소문으로 들었던 것과 조금 달라 보였다.

‘말더듬이라 학파의 수장에 걸맞지 않다고 들었는데….’

그건 따로 꾸며 낸 모습인가?

알렌의 얼굴에 잠시 의아함이 드러났던 걸까, 그는 익숙하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밖에서 말하는 것과 다르니 조금 당황하신 모양이군요. 괜찮습니다, 처음 만나는 분들도 모두 같은 반응이거든요.”

그는 알렌이 실례에 대한 사과를 입에 담을 새도 없이 말을 이었다.

정말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실험에만 몰두하다 보니, 사람을 대하는 게 어렵게 되더군요. 독대하는 것까지는 상관없지만…, 많은 사람 앞에서는 소문과 다를 게 없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이렇게까지 고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웃어넘겼다.

알렌은 문이 닫히자마자 그에게 돌아섰던 마르골의 모습을 떠올리며 납득했다.

그가 보기보다 심계가 깊다는 사실도.

‘말더듬이라는 사실을 그가 더 널리 퍼트렸을지도 모르겠군.’

처음 만난 이들은 높은 확률로 그를 얕잡아 볼 것이다.

그는 그걸 이용해 이득을 취하겠지.

알렌의 앞에서 저 말을 하는 이유도, 엘릭서의 조제서를 넘긴 것에 대한 호의나 다름없었다.

“그럼 밖에서도 실수하지 않게 조심해야겠군요.”

알렌이 숨겨진 뜻을 잘 눈치챈 듯 보이자 마르골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하하, 역시 젊은 인재는 언제 봐도 기분이 좋군요. 따로 시간을 마련한 보람이 있었어요.”

젊은 나이에 학파의 수장이 된 인물은 역시 쉽게 볼 수 없었다.

“차는 제가 따로 준비해도 괜찮겠습니까?”

“예, 부탁드립니다.”

알렌은 깊게 올라오는 향을 맡으며, 일상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제가 후원한 조제서가 많은 도움이 됐을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도움이 됐습니다. 그 덕에 요즘 수요가 폭발해 얼마나 매출이 나왔는지 모르는데요.”

일반적인 후원 관계라면 해야 될 이야기들.

엘릭서의 유용성과 효과.

판매 전략과 더욱 끈끈한 후원자로서의 관계 확인.

“원하신다면 최근 학파에서 개발한 포션의 시제품도 드리겠습니다.”

“주신다면 감사히 받도록 하지요.”

“준비해 둘 테니, 내려가실 때 챙겨 가시면 됩니다.”

알렌이 이곳에 오기 전부터 준비된 것 같은 말투에 그의 치밀함을 엿볼 수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을 향해갈 때쯤, 알렌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알렌은 말하기 힘든 이야기를 하듯, 슬쩍 문을 바라봤다.

그의 태도에 마르골은 안심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누가 들을 염려가 없으니 말하셔도 됩니다.”

“그란델 님에 관해 물어도 되겠습니까?”

“…그란델 님 말씀이십니까?”

“예, 그분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물음에 마르골의 표정이 진중하게 물들었다.

“왜 그걸 묻고자 하시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일단 들어 보겠다는 어조.

그러나 그의 태도에는 곤란한 질문은 답할 수 없다는 의사가 드러났다.

알렌은 별것 아니라는 듯 가벼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아, 제 동생이 그란델 님의 제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란델 님의 제자…?”

“예, 13년 전, 제가 다섯 살이 되었던 때….”

그러나 알렌이 말을 다 잇기도 전, 마르골의 안색이 변해 외쳤다.

“그만, 그만.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대답해 줄 수 없는 문제군요.”

그의 태도에 알렌이 직감했다.

‘무언가 있다.’

아직 자세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몇 년 전이라는 시기만 듣고도 그의 말을 멈춰 세웠다.

그 말은, 알렌이 직접적인 일은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그의 사정을 짐작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살면서 모르는 것이 더 나은 일이 더 있습니다.”

“알기에 더욱 조심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해결할 수 없는 일은 마음에 근심만을 더할 뿐입니다.”

“그건 제가 판단할 일입니다.”

알렌과 마르골의 눈이 마주쳤다.

마르골은 골치 아픈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은 기색이 강했고, 알렌은 기껏 잡은 단서를 놓칠 마음이 없었다.

“마르골 님을 곤란하게 만들 의도가 아닙니다. 단지 그가 그렇게 행동한 이유가 궁금할 뿐이지요.”

“…행동한 이유가 궁금하다?”

“일의 전말을 알려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조그마한 단서면 됩니다.”

알렌의 목소리에 담긴 집착을 느낀 탓일까, 마르골의 눈썹 사이에 깊은 골이 생겨났다.

“그건…, 잠시 생각 좀 해 보겠습니다.”

마르골은 여러 가지를 고려했다.

알렌과의 거래 관계.

그가 제공한 하급 엘릭서의 조제서로 얻은 이득.

그의 현재 위치와 미래에 도달할 위치.

정보를 제공하며 짊어질 위험과 반대로 얻을 가치.

그는 여러 가지 방면에서 저울질하며 깊게 고민했고, 판단을 끝마쳤다.

‘…단서 정도는 줄 수 있겠지.’

지금 입에 담을 정보라면 그가 아닌 다른 이들에게도 대가를 제공한다면 들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말해 드리지요.”

그의 대답에 알렌은 집중했다.

지금 그의 입에서 나올 정보는 그란델의 처우를 결정 내릴 것이다.

“마탑의 고위층에게만 도는 은밀한 소문이 있습니다.”

학파의 수장쯤 되면 알 수 있지만, 반대로 그 정도 위치가 아니라면 접할 수도 없는 소문.

“누구는 믿지 않고, 누구는 비웃으며, 누구는 무시하지만….”

그 누구도 쉬쉬하며 쉽게 입에 담으려 하지 않는다.

그때 마르골의 얼굴은 언뜻 두려워하기도, 세계의 비밀을 엿보는 호기심 가득한 학자 같기도 했다.

“소문은 간단합니다.”

그 말소리는 어느 순간부터 작아져 소곤거리는 듯했다.

“대몰락이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며, 심지어 용과 거인의 시대 전에도 기록되지 않은 시대가 있었다.”

알렌의 손에 힘을 주었다. 잠시 꿈틀거리던 베스틀라가 잠잠히 변했다.

“그러나 세상이 멸망하는 데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나지막한 속삭임이 귓가로 모여들었다.

“시대가 특이점에 이를 때…,”

잿빛의 멸망이 잠에서 깨어난다.

* * *

휘스 아로나는 페르타에서 소문난 망나니였다.

폭력과 폭언을 일삼으며.

항상 술과 재물을 가까이했다.

특이하게도 여자에 손을 대지는 않았는데, 그의 자의라기보다는 그의 할아버지인 그란델의 경고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자신의 권력이 그로부터 나온다는 걸 알았기에, 그의 명령만큼은 절대로 어기지 않았다.

그 모습 덕분인지 그란델은 어지간한 사고가 아니면 그가 사고 친 것들을 덮어 주었다.

그렇기에 수면 위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실제 놈에게 당한 사람은 꽤 많았다.

“…이 정도나 된다는 말입니까?”

알렌은 마르골과의 독대를 끝내고, 그녀가 알려 준 주소로 찾아갔다.

“네, 이것도 도시 안에 있는 사람들만 추린 거예요.”

그녀는 알렌이 말했던 조사를 끝마쳤다며, 그를 방으로 안내했다.

‘…하루 이틀 준비해 온 게 아닌데….’

전생에는 그란델을 죽이는 것에 실패했나? 그렇기에 휘스 아로나만 죽이고 도망을 쳤던 건가.

프란시스카는 그의 생각도 모른 체 예전부터 준비했던 자료들을 막 조사한 것처럼 그에게 건넸다.

“짧은 시간 동안 준비한 것치고는 엄청난 양인데…, 혹시 미리 준비해 뒀습니까?”

“설마요. 그저, 예전부터 관심이 많아서 보관해 둔 거랍니다?”

그녀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그녀의 부정에도 쌓인 자료들의 양은 그녀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 양이 많군요. 혹시 따로 정리해 둔 자료가 있습니까?”

그의 허리춤까지 쌓인 서류의 양은 절대 단시간 안에 살펴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다.

“잘 알고 계시네요?”

그녀는 그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는 듯, 방금 건네준 것보다 얇은 서류철을 여러 개 꺼내 들었다.

“보통 여기까지 조사를 했다면, 남은 건 분류하는 것뿐이니 말입니다.”

분류해서 일을 처리하는 건 서류 작업의 기본이었다.

펄럭-

그녀는 첫 번째 서류철을 건네며 말했다.

“거기 있는 건 휘스 아로나에게 당한 이들 중에 크게 다친 이들만을 표시해 둔 거예요.”

“큰 부상, 말입니까?”

“최소, 서클이 부서질 정도의 중상.”

멈칫-

“…서클이 부서질 정도의?”

“네, 그 상대가 대부분 두각을 드러내기 전의 아이들이지만요.”

그녀는 알렌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서류철을 건넸다.

“네, 다음은 도시에서 실종된 사람의 명단이에요.”

“실종자 명단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관계가 없어 보이는데 말입니다.”

“실종자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거든요.”

“공통점?”

프란시스카의 입가에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정확히는 그들이 실종되기 전에 이름을 알릴 거라 기대받았던 유망주라는 점이에요.”

알렌의 눈이 깊어졌다. 그녀는 알렌의 반응에 단아한 미소를 감추지 않으며 마지막 서류철을 꺼냈다.

“마지막은 공자님이 가장 궁금하실 정보.”

알렌의 시선이 그녀가 건네준 서류의 제목으로 향했다.

“…그란델이 직접 죽였을 거라 추정되는 이들?”

“네.”

서류철은 앞서 받았던 것보다도 얇았다.

그녀는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서류의 첫 장을 넘겼다. 그곳에는 열 명도 채 되지 않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모두 천재라 불릴 만한 인물들이에요. 그란델과 만난 이후 모두 죽었고요.”

그녀의 눈이 첫 장 가장 위에 있는 이름에 향했다.

‘에릭, 레아.’

그녀는 부모의 이름에도 감정적인 틈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기대와 광신이 뒤섞인 눈으로 그를 응시했을 뿐.

알렌은 마르골에게 들었던 소문을 떠올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시대가 특이점에 이르면, 세상이 멸망한다.’

그 소문은 마탑의 고위층이라면 다 알고 있다고 가정해야 했다.

‘만약, 그란델이 벌인 일이 그와 관련되어 있다면?’

특이점이 어떤 건지 판별하는 기준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만약 그란델이 그 특이점을 한 명의 천재로 인해 발생하는 시대적 발전을 뜻한다 생각했다면.

‘그것을 위해 세상을 발전시킬 수 있을 만한 인재들을 해친 거라면.’

알렌의 눈이 세 개의 서류철을 훑었다. 점점 가설이 세워졌다.

휘스 아로나의 악행에 서클이 부서진 아이들.

어느 순간 실종된 유망주들.

그란델과 만난 후 죽은 천재들.

비슷한 상황이었다.

엄청난 천재. 하루 만에 서클을 완성했다. 마나를 하나의 입자로 본다고 했다. 마도서. 아이. 서클이 부서졌다? 함정. 죽음. 유망주. 그리고 율리우스. 율리우스. 율리우스.

‘13년 전의 일도 그것과 관련이 있다면.’

알렌의 입가가 길게 찢어졌다.

“알렌 공자님.”

프란체스카의 부름에 알렌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섰다.

“어때요. 도움이 되었나요?”

“…확실하게.”

“그렇다면….”

그녀가 소름 끼치게 웃으며 속삭였다.

“이걸로 충분하신가요?”

그들을 죽일 만한 이유로.

붉은 핏기가 도는 눈동자가 반달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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