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7화
알렌이 프란시스카와 인연을 맺은 것은 의도된 것이 아니었다.
우연.
원래는, 김우진의 대외적인 첫 활동 무대가 되었을 사건을 알렌이 맡게 되면서 그녀와 친분을 갖게 되었다.
히벨로 갔을 율리우스가 프린달과 함께 가비아로 가게 되었고.
그로 인해 망나니를 싫어하는 그녀와 율리우스가 다투며 사건을 해결했던 미래가 사라졌다.
하지만 특별히 신경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그때만 해도 악몽과 앞으로의 행동을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바빴기 때문이다.
그녀가 젊은 나이에 4위계에 올라서고, 알렌과 같은 새로운 마법 계통을 열고 있다고 해서.
‘일라이자 황자처럼 직접 인연을 맺을 가치가 있나?’
그렇지는 않았다.
물론 그녀는 뛰어난 인재다.
미래에 율리우스 근처에 있던 인재 중에서도 상위에 위치하겠지.
그러나 독보적이라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았다.
당장만 해도 회귀, 빙의 이런 것과 상관없이 강한 실력을 갖춘 마리아나, 그보다 떨어지지만 3대 가문의 자제인 엘닉스 드라기아스도 있으니까.
그녀가 악마와 관련 있어 보이는 키메라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편지를 주고받을 정도의 관계까지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현재 그 키메라를 처분했다면 더더욱.
의미 모를 예언이나 숨겨진 사연도 마찬가지.
그녀와 관련이 있는 것이 그란델의 손자인 휘스 아로나가 아니었다면?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겠지.’
알렌에게 있어, 그녀는 그런 존재였다.
지켜볼 필요는 있지만, 깊게 관여하기에는 애매한 사이.
그렇기에 미리 연락을 보내고, 약속을 잡은 후에 협력을 요청할 생각이었는데….
“공자님, 왜 그렇게 쳐다보시나요?”
연락을 보내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찾아올 줄이야.
그것도 어두운 밤에.
알렌은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프란시스카 양,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조금 당황스럽군요.”
그러나 그녀는 왜 그러냐는 듯 뻔뻔한 얼굴로 손을 휘저었다.
철컥-
그녀가 들어왔던 창문에 다시 잠금쇠가 채워지며, 기다란 촉수가 안개처럼 사라졌다.
“이렇게 찾아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공자님이 먼저 연락을 보내셨지 않나요?”
맞다. 그러나 그건 약속 일자를 잡자는 것이었지, 이렇게 야밤에 함부로 침입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나, 예의나 예절을 신경 쓰는 귀족으로서는.
“제가 무엇을 말하는지 정말 모르시겠습니까?”
알렌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자, 그녀가 행동을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는 알렌을 잠시 바라보는가 싶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방황하던 표정을 바로 한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오랜만의 만남이라 조금 들떴답니다. 최근 마탑의 분위기가 조금 답답했거든요.”
알렌은 그녀가 무엇을 말하는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마탑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하는 게 어렵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가?
그는 몇 마디 더 하려다 그만두었다.
이번 일에는 그녀의 협조가 필수적이었으니.
그가 일의 협조를 부탁해야 하는 처지에 괜히 처음부터 관계를 어그러뜨릴 필요는 없었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지 않은 것도 아니었으니까.
“알겠습니다. 다음에는 미리 연락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사생활이라는 게 있습니다. 제가 이미 잠에 들었다면 어쩔 뻔했습니까.”
알렌이 분위기를 풀고자 담담히 입을 열고 자리에 앉자, 그제야 그녀도 살포시 웃으며 맞은편에 자리했다.
“어머, 지금 도착해서 정말 다행이네요?”
알렌은 머릿속에서 생각을 정리했다.
‘이미 무슨 이야기를 할지는 정해 놨다.’
휘스 아로나를 이용해 그란델이 과거에 일부러 그렇게 행동했는지 정보를 찾는 것.
그러나 그녀가 망나니를 싫어하는 이유가, 놈과 관련되어 있다 보니 이야기를 꺼내기 쉽지 않았다.
“혹시 이 밤에 찾아오신 다른 이유가 있으십니까. 저는 그란델과 그의 손자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 하는데.”
그렇기에 잠시 잡담을 지나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던 때, 그녀의 대답이 없었다.
“…….”
“그와 관련해서 프란시스카 양의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확실한 보상을 해 드릴 테니, 저를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
알렌은 이상함을 느꼈다. 이 물음들에 대답하지 못할 구석이 있나?
‘아니지, 그녀의 트라우마 때문일 수도 있다.’
알렌은 그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자, 눈을 감고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3분, 5분, 10분이 지나도 대답이 없자, 알렌이 눈을 떴다.
프란시스카, 그녀는 오묘한 눈빛으로 알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동자에는 기대감과 흥분, 원념, 집착 등의 수많은 감정이 섞여 분간하기조차 힘들었다.
“프란시스카 양…?”
알렌이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자, 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순식간에 표정이 되돌아왔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하지만 만약 부담된다면….”
“할게요.”
그녀는 고민한 시간이 무색하듯 일말의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망나니를 그렇게 싫어한다고 들었는데.”
그녀는 알렌의 말에 방긋 웃어 보이고는, 평소와 같은 얼굴로 대답했다.
“저도 마침 하고 싶었던 일이랍니다. 그리고….”
그녀는 가면 안에서 들썩이는 감정을 짓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칫하면 감정을 드러낼 수도 있으니까.
아까와 같은 실수는 단 한 번으로 족했다.
“알렌 님이 확실한 보상을 해 주신다고 했으니, 기대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그녀가 뒤로 돌아섰다.
알렌은 그가 준비했던 수많은 협상의 재료를 사용할 필요도 없이 일이 쉽게 풀리자 이상함을 느꼈으나, 그 의심은 곧장 사그라들었다.
그녀가 자신을 속이고, 그 망나니를 도울 일은 조금도 없을 테니.
“그럼, 밤이 늦었으니 내일 다시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녀는 그렇게 뒷모습을 보인 채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베스틀라가 비틀거리며 날아왔다.
「…하암, 알렌 누구 왔어요? 왜 이렇게 시끄러워요.」
“검도 잠을 자나? 아니, 됐으니 다시 자라.”
알렌이 잠시 한심한 시선으로 베스틀라를 보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갑자기 뭐예요! 제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래, 그래.”
익숙한 듯 그녀의 말을 받아 준 알렌은 잠시 도시의 밖을 바라봤다.
‘…시간이 많지는 않은데.’
앞으로 2주, 그 안에 모든 정보를 다 찾아야 한다.
놈들이 습격해 오기 전에.
* * *
마탑 도시에 위치한 작은 거처.
원래 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하고 있던 집은, 그가 영지로 돌아간 직후 그녀 혼자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프란시스카, 그녀는 비척대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철컥-
방의 문이 굳건히 닫히며, 그녀가 어두운 그림자에 잠겨 들었다.
그 안에서.
“하핫.”
그녀의 어깨가 들썩였다. 숨죽인 웃음소리가 방 안을 들쑤셨다.
“하, 하핫, 하하하하핫.”
작게 들리던 웃음소리는 이제 문 앞이라면 누구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커지다 순식간에 뚝 그쳤다.
“예언이 맞았어. 맞았어요, 맞았답니다?”
프란시스카의 단아한 미소가 깨져 나가며 환하게 변했다.
마치 지금,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얼굴.
그녀가 먼저 입을 열기도 전에, 알렌이 그란델과 휘스 아로나의 정보를 부탁하다니.
이게 예언이 맞았다는 증거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할아버지는 망념이니 뭐니 포기하라고 하셨지만….”
그게 가능했으면 진작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
이제 안온한 노년을 보내겠다며 복수든 뭐든 다 포기한 그와 다르게 그녀는 기다렸고, 결국 그 결실이 눈앞에 있다.
성공할 것이다.
“알렌 님, 알렌 공자님, 공자님.”
그녀는 뒤늦게 고백하듯, 기이한 열망을 담아 중얼거리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어릴 적, 그녀의 집안은 꽤나 유복했다.
중년의 나이로 5위계에 도달한 할아버지와 그의 재능을, 아니 그보다 더한 재능을 물려받은 아버지.
그리고 그런 아버지와 대등할 정도로 잠재력이 컸던 어머니.
그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그녀가 재능이 없을 리 없었다.
그런 그녀의 가족에게 문제가 생긴 건 일곱 살 무렵.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그녀의 아버지가 젊은 나이로 7위계에 올라설 것으로 많은 기대를 받던 가운데, 한참 새로운 마탑주로 입지를 다지던 그란델이 그들 부부를 초대했다.
그가 초대한 곳은 원시 회랑.
과거, 전략 무기 비프로스트를 발견한 장소이자 몇 년에 한 번씩 열리는 비밀스러운 공간.
누군가는 대몰락 직후 공간이 비틀리며 생겨난 곳이라 했고, 혹자는 고대 제국의 누군가가 만든 새로운 형태의 유적이라고 했다.
빠르면 하루, 늦으면 사흘이면 공간이 닫히지만, 그 안에서의 수련은 바깥보다 수십 배나 더 효율을 보이는 곳이었다.
그런 장소에 그란델은 친분을 다지기 위함이라며 그들과 함께 향했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누가 봐도 수상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 할아버지는 마탑에 따졌다.
-…유감스럽지만, 그 공간은 우리도 모두 개척한 곳이 아니네.
그러나 돌아오는 건 그들 부부 실수로 함정이 발동했다는 말뿐.
-할아버지 이건 함정이에요. 갑자기 돌아가실 리가 없잖아요!
-…포기하자꾸나.
프린달은 마탑에 다녀온 직후, 얼굴이 어둡게 변한 채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저 힘이 쭉 빠진 듯한 걸음으로 대외활동마저 중지했다.
그는 포기했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건 말이 안 돼요. 제대로 된 조사단이라도 파견해야 한다고요!
매일 마탑을 찾아갔다.
다른 마법사들이야 부모를 잃었다는 것에 측은지심을 품어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그녀와 같은 어린아이들은 아니었다.
휘스 아로나.
그 망나니 돼지 놈은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었는지.
그 어린 나이에 자기 권력을 아는 듯 패거리를 이끌며 온갖 사고를 치고 다니던 놈이었다.
-그만 찾아와, 엄마도 없는 년이. 너 때문에 우리 할아버지가 다칠 뻔하고, 그것도 모자라 할아버지가 잘못도 덮어 줬는데 왜 자꾸 찾아오냐고.
그는 매번 찾아오는 그녀를 괴롭히며, 아무도 보는 눈이 없을 땐 폭언과 폭력마저 일삼았다.
만약, 지나가던 마법사 하나가 돕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서클도 놈에 의해 부서졌을 것이다.
그것이 그녀가 망나니를 죽도록 혐오하게 된 계기였다.
마음대로 행동하고, 욕설과 폭력을 일삼는 것들은 그녀가 제일 싫어하는 족속이 되었다.
-꼬마야, 내가 예언 하나 해 줄까?
그런 그녀에게 한 명의 여자가 다가섰다.
자신을 카샤라고 소개하던 여자. 그녀는 평범한 마법사라면 듣지도 않을 예언을 해 주겠다며 말을 건넸다.
자포자기 같은 심정이었기에 꼬마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12년 후에 라인하르트 영지로 가도록 해, 그곳에 너랑 비슷한 나이의 소년이 하나 있을 거야. 그 아이가….
네 복수를 이루어 줄 거란다.
그녀는 홀린 듯 그 예언을 새겨 넣었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여자는 사라진 후였다.
그 후부터, 그 예언은 그녀의 모든 것이 되었다.
-할아버지, 라인하르트 영지로 가요.
프린달은 그 예언을 믿지 않았다.
그저 손녀가 기운을 차린 것과 그도 더는 이곳에 있고 싶지 마음으로 그녀의 말을 따랐을 뿐.
이것이 몰락해 가는 라인하르트 영지에 5위계의 프린달이 전속 마법사가 된 이유였다.
“그란델, 휘스 아로나.”
핏빛이 도는 눈동자에는 기대감과 서늘함이 맺혔다.
“놈들을 죽이기 위해 정보를 원한 거겠죠?”
그녀의 눈꼬리가 휘었다.
활발한 목소리로 그녀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당연히,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저는 그럴 준비가 되었답니다? 그러니 공자님도.”
알렌이 당연히 도와줄 거라는, 이해하기 힘든 광신을 담아서.
“도와주셔야 해요.”
제 복수를.
* * *
다음날부터 마탑 교류회가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교류회는 총 이 주간 이어지며, 그 사이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토론과 발표를 하게 되어 있다.
마탑 측에서 준비한 주제도 있었고, 아카데미 학생들이 준비한 것도 있었다.
그 첫 번째 주제는, 불의 마법에 대한 것이었다.
“불 마법은 상태 마법인가, 현상 마법인가에 관해 토론을 시작하겠습니다.”
마탑의 마법사 한 명이 중재자로서 선언하는 순간, 아카데미 측의 발표가 시작되었다.
“불은 지금까지 액체, 고체, 기체와 같은 제4의 상태, 플라스마의 일종으로 취급되어왔습니다. 하지만, 이는 틀린 말입니다. 저희가 따로 실험해 본 바에 따르면….”
마탑 측의 제자들은 그저 냉철한 얼굴로 아카데미 측의 발표를 들을 뿐이었다.
갈슈딘 아카데미였기에 존중심은 보여 준다.
그러나 당연히 수준은 자신이 더 높을 걸 알고 있었기에 긴장감이 들지 않았다.
“불은 단지 가연물이 높은 온도에 발화하며 연소시킬 때 생겨나는 ‘현상’에 불과할 뿐입니다. 플라스마 상태니, 불의 원소 같은 건 이미 구시대적인 가설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그 뒤를 뒷받침할 증거와 함께 불 계통의 마법을 선보이고 끝마쳤다.
“…이상입니다.”
아카데미 학생이 끝나기 무섭게 불의 마탑의 제자들이 천천히 일어섰다.
“아카데미 측의 발표, 잘 들었습니다. 이제 마탑 측 주장을 발표해 주십시오.”
중재자의 말에 마탑 측의 제자들은 준비한 반론을 꺼내 들었다.
“불 마법은 현상이 아닌 상태 마법이 맞습니다. 설령 저들의 주장이 ‘일부’ 맞아 현상에 가깝다고 한들,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마탑 측 제자는 냉담히 사실을 말하듯, 평안한 얼굴로 반론을 이어 나갔다.
“불은 고대에는 4대 원소의 하나로 인식되었고, 지금의 인류가 번성할 수 있었던 원인입니다. 이미 불의 ‘관념’ 자체가 하나의 상태로 인식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현상이다?”
율리우스는 마법사도 아니었지만, 그들의 사이에 껴 있었다.
“용의 불꽃도 가연물을 연소시켜 만들 수 있습니까? 악마의 차가운 불꽃은? 그저 하나의 알량한 결과를 가지고 수천 년간 내려온 불의 개념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우습군요.”
이유는 간단했다.
미래에 불의 마법사로 대성할 아냐가 아카데미 측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긴장된다며 옆에 같이 있어 달라고 부탁했기에, 마법사도 아닌 자신이 여기에 있게 되었다.
‘살벌하다, 살벌해.’
아카데미 측과 마탑 측은 서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으며 대립했다.
그가 예상한 고성이나 유치한 도발이 오가지는 않았으나 발표한 주장과 증거를 조목조목 짚으며 반론을 이어 나가는 모습은, 이미 하나의 전투나 다름없었다.
율리우스는 저들이 저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원작에서 보았기에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마법사들에게 뛰어남을 선보일 기회니까. 마지막에는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보완하겠지만, 처음은 기세가 중요하겠지.’
마법은 학문이 아니지만, 학문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마법사가 마법이라는 현상을 펼치는 것에 있어, 그 마법 계통에 대한 이해가 필수로 이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실력이 쌓이고 나서는 그것을 비틀어서 차가운 불꽃도 만들고, 불의 비도 내리게 할 수 있지만 거기까지 갈 수 이들은 소수의 재능있는 자들뿐이었다.
“그럼 제가 주장하는 바를 발표하겠습니다. 저는….”
율리우스는 목소리의 떨림 없이 발표하는 아냐를 흐뭇이 바라보다, 참관석에 앉아 있던 하이젤을 보고 얼굴을 굳혔다.
정확히는, 그의 옆자리에 앉은 여자를 보고.
릴리트.
‘결국, 막지 못했다.’
마탑 교류회의 참가 여부를 결정하는 대련에서 그를 떨어트리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운이 나빠 조가 나뉘었고, 알렌과 하이젤 모두 합격했다.
그 후에 따로 그를 불러내서 가지 않는 게 어떠냐고 했지만, 처음 마족과 게이트를 알려줄 때와 다르게 그는 확신이 있어 보였다.
‘아니, 내가 알아서 하지.’
다른 마족의 정보를 언급해도 요지부동인 모습에 그도 포기했다.
‘하아, 짜증 나네.’
결국, 원작의 결말은 못 바꾸나?
릴리트는 새로운 마왕에게 묶여 있다.
만약 새 마왕이 그녀와 하이젤의 관계를 알아내서 또 같은 일을 벌인다면.
‘다른 방법이 필요할지도….’
율리우스가 고개를 숙였다.
그림자가 내려앉은 그의 얼굴은, 어둠에 가려져 알 수 없었다.
율리우스 자신마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