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6화
덜컹-
마차의 바퀴가 돌부리를 걸고 지나갔다. 하지만 마차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대로를 지나갔다.
마차에 탄 학생들의 안색은 편안하기 그지없었다.
엘피스의 연구 지부에서 발명한 최신식 마차.
던전 실습 때처럼 낡은 마차를 탈 만도 하지만, 마탑 앞으로 가는 만큼 자존심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학생들은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듣기로는 아직까지는 말이 이끌 필요가 있으나, 복원에 성공한 유적의 기술로 곧 그마저도 필요 없게 될 것이라 했다.
그만큼 지금의 마차는 남에게 보이기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다.
“여기가 서쪽이면 아직인가?”
“아니, 서쪽보다는 북쪽에 더 가까울걸?”
“그래?”
“실제로 여기서 거대한 평야 하나만 넘으면 수인 연합이니까.”
마탑 교류회에 참가하는 인원의 선별을 끝마친 직후, 그들은 곧바로 이사장의 마법으로 갈슈딘 대사막의 북쪽으로 이동되었다.
그 후에 근처 도시에 미리 준비된 마차로 갈아타고 마탑 도시로 향하는 중이었다.
열 명이 함께 타도 충분한 크기의 마차는 떠들썩했다.
“…이번에 발표 주제는 다들 들었지?”
“그래, 들었다. 불 마법은 상태 마법인가, 현상 마법인가에 대한 거였나?”
“응, 그리고 빙결 학파에서 소란스럽다니까 무슨 커다란 거 준비하고 있을걸?”
“어차피 물의 마탑에서 파생된 놈들 아니야? 신경 쓸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마탑에서 벌일 논쟁을 미리 대비하는 학생.
미리 준비해 온 자료를 다시 살펴보는 동아리.
그것과 상관없이 지겨운 얼굴로 눈을 감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떠들썩한 분위기도 베스틀라의 목소리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알렌, 요즘 나한테 너무 신경 안 쓰는 거 아니에요? 나 너무 서운해지려고 해요.」
알렌은 깊이 사색하던 것을 멈추고 인상을 썼다.
‘관심은 무슨, 마법을 연구하느라 바쁜 것은 다 알지 않나.’
애초에 몸이 굳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몇 시간은 그녀와 검을 휘두르는데 시간을 쓰는 상황인데, 언제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그래도요! 저보다 간절함이 덜하다고요! 막 처음에는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 줄 것 같더니! 마법 좀 발전한다고 등한시하기나 하고!」
알렌은 하도 어이가 없어 무시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이건 조강지처를 내팽개치는 일이라니까요?」
그러나 그녀는 너무 시끄러웠다.
「작업 멘트까지 치면서 데려와 놓고!」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리고 애초에 마법이 먼저였다.’ 알렌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럼에도 베스틀라는 물러서지 않았다.
요즘 검을 등한시했던 모습에 대해 불만이 쌓인 것 같았다.
아니면 그냥 알렌이 마법에 더 신경을 쏟는 게 불만이었을 수도 있고.
‘성격을 생각하면 후자의 가능성이 높겠지만.’
그녀는 알렌이 마탑의 일을 끝낸 후 검에 집중하겠다고 약속하고 나서야 물러섰다.
「진짜죠? 역시 도마뱀이 사용했던 마법보다는 검이 낫다니까요?」
그 행동에 약간의 사심이 섞여 있는 것 같았으나 사실 상관없었다.
‘그때쯤이면 수련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빠질 테니.’
마탑 도시 습격을 시작으로 생겨난 혼란은 향후 몇 년간은 지속될 것이다.
베스틀라가 다시 입을 다물자, 알렌은 이동 시간 내내 잠겨 있던 사색에 다시 빠져들었다.
그가 생각하는 건 기숙사에 있었던 린벨과의 대화였다.
‘노아, 그가 알렌 님 명성을 이용하려 했거든요.’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알렌이 노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는 현재 아카데미에서 알렌 님과 율리우스 님의 명성이 치솟자, 후원자라는 자리를 이용해 지원을 뜯어내려 했어요.’
마침 알렌 님이 율리우스 님과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이며 함께 봉사 활동까지 하니 만만해 보였던 거겠죠.
그것을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조금은 분노한 것 같았다.
‘지원금만이라면 다행이지. 친절하고, 공정하다 소문이 났으니 평민이란 것과 후원자라는 걸 알리면 고대 유물까지 받아 낼 수 있다며 호언장담을 하더라고요.’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막았어요. 만약, 진짜로 많은 사람 앞에서 접근한다면 공자님이 알고도 당해 주실 수밖에 없다고 생각돼서요.’
알렌은 그녀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실제로 그런 일을 겪었더라면 밖에 내보이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그녀의 말대로 행동했을 것이다.
고대 유물이나 재정적 지원으로 일을 해결할 수 있다면 망설이지 않았을 테니까.
‘괜한 일에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아서 말하지 않았고요.’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느냐?’
‘네.’
노아와 같이 행동하는 경우가 몇 번이나 있었다고.
그 탓에 이번에 그가 찾아왔던 것도 연기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렇구나….’
엇갈렸다. 알렌은 조용히 생각을 끝마쳤다.
이건 그녀를 탓할 게 아니었다.
린벨은 이넬리아와 알렌 모두 바쁘게 움직였기 때문에 스스로 일을 처리했다.
이것에 그녀의 잘못이 있는가?
모두 결과론적인 이야기지. 그 뿐이었다.
‘…잘했다.’
그렇기에 알렌은 복잡한 얼굴로 한 마디만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처리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알렌은 여러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특히 여관에서 그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린다면 더욱이.
하지만 결론은 간단했다.
‘노아는 마냥 선인이 아니다.’
아카데미에서는 피해자였지만, 그는 알렌을 이용하려 했다.
그렇다고 그가 친구들을 잃고 퇴학을 당할 만큼의 죄를 저질렀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입장에 따라 행동이 달라졌을 뿐이었다.
마지막에 그를 원망했던 모습도, 따지자면 그란델에게 복수하려는 자신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그에게 의혹이 있는 건 맞다.
그란델의 행동이 의심스러운 것도 맞고.
그러나 그건 모두 알렌의 생각일 뿐.
사실 관계만을 따지자면, 스승이라고 한들 그가 집필 중이던 마도서를 훔쳐 화를 입은 율리우스의 자업자득인 면이 더 강했다.
율리우스가 행동한 이면에는 알렌과의 갈등이 있었고.
그럼에도 그 때문에 이 모든 일이 벌어졌다며 서클을 망가뜨리겠다는 것도, 그란델에게 있어 웃긴 일이 아닌가.
알렌이 고민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가이온과의 대련 후, 어떨 때는 행동하는 것이 생각에 얽매여 움직이지 못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깨달았다.
율리우스에게서 승리한 후 자신만의 기준에 따라 행동하기로 마음먹기도 했고.
그러나, 이 경험으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생각에 얽매이지 않는 게 아니라, 생각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그저 여러 가지를 따진다면 아무것도 못 한다는 판단에.
선악은 모호하고, 입장과 진영에 따라 갈린다.
노아가 알렌을 탓한 것이 그의 관점에서 당연하듯, 그란델의 처사가 심했다 해서 자신이 그에게 복수하는 것은 당연한가?
‘모르겠군.’
결론을 내리는 건 마탑 도시에서 정보를 얻고 난 이후의 일이 될 것이다.
그를 어떻게 할지.
알렌은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이 깊어졌다.
* * *
“도착이다!”
“탑이 여기서도 보이네, 와.”
“진짜 성벽이 없구나, 신기하네….”
학생들이 성벽 하나 없이 훤히 보이는 도시의 정경에 신기함을 내비쳤다.
그들의 외침에 자고 있던 이들도 눈을 떴고, 생각에 잠겨 있던 알렌의 시선도 그곳을 향했다.
‘빠르게 왔군.’
마탑이 다스리는 자유 도시, 페르타는 3일이 지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알렌이 라인하르트 영지에서 아카데미까지 이동하는데 한 달이 넘게 걸린 것에 비하면 지나치게 빠른 속도였다.
점점 기술의 발전이 빨라지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는 것에 알렌은 묘한 감정을 느꼈다.
‘아니, 지금까지는 아카데미가 지나치게 빨랐을 뿐인가.’
바깥 나라들은 이제야 발전을 따라잡는다는 게 옳겠지. 사실 발전 정도만을 따지면, 저기에 보이는 페르타도 만만치 않은 수준이긴 했다.
그때 베스틀라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엄청 오랜만이네요.」
알렌은 생각하던 걸 멈추고 그녀에게 무슨 뜻인지 물으려 했다. 그러나 도시의 하늘 위로 보이는 모습에 절로 입이 닫혔다.
“저거 책으로만 봤는데.”
“나는 소문으로만 들어 봤어.”
“…마탑 놈들, 고작 환영회를 위해 저딴 짓을 한다고?”
알렌은 내심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에스테도르를 견제하기 위함인가? 아니면 마족 쪽일 수도 있지.’
도시의 하늘 위로 은은하게 반짝이는 일곱 빛깔의 거대한 무지개가 아치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전날에 비가 온 것도 아니었으니, 저 무지개의 정체는 하나밖에 없었다.
“불타는 무지개, 비프로스트(Bifr?st).”
도시의 전략 무기이자, 마탑 도시에 성벽이 없어지게 된 원인.
한 번 가동하기 위해서 7명의 마탑주 중 네 명의 동의가 필요하며, 과거에 팔강마저 물러나게 한 전적이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또 마탑이 고대 유적에서 발견했다고 선전하는 바람에, 한동안 각 나라에서 유적 열풍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유명한 무기였다.
그들이 그렇게 경악한 얼굴로 도시의 입구에 도착했을 때, 기다렸다는 듯 한 명이 걸어 나왔다.
“다들 놀라신 모양입니다. 하하. 준비한 보람이 있군요.”
녹색의 고급진 로브와 깔끔하게 깎인 수염.
점잖은 노인의 모습을 한 이는 바람의 마탑을 상징하는 자이자, 이 도시에서 7명 밖에 없는 사람 중 하나였다.
‘…마탑주 그란델.’
알렌의 눈이 그의 모습을 다시금 새겼다.
“하하, 이거 말베른 교수가 아닌가. 반갑네. 자네는 정정해 보여서 좋군.”
학생들을 인솔하는 역할을 맡은 교수 말베른은 노회한 얼굴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저희가 적도 아닌데 저런 무기를 내보이다니. 아카데미에 선전포고를 하는 것이라 봐도 되겠습니까?”
그런 그의 말에도 그란델은 한 번 웃음을 터트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저런, 그럴 리가 있겠나. 선전포고라니, 너무 나아간 게 아닌가. 그저 학생들의 안계를 넓혀주기 위함일세.”
“…정말 그것뿐이십니까?”
“하하, 우리가 아카데미와 이어 왔던 교분이 어느 정도인데.”
말베른은 뭐라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이미 일은 벌어졌다. 마탑주가 직접 환영을 해 주기 위해 입구까지 나왔는데 믿을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후, 믿겠습니다.”
“절대로 위협하려던 목적이 아니었네. 저 아이들의 눈을 보게나, 얼마나 빛나는가.”
말베른은 더 이상 따질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가 그란델과 같은 7위계라고 해도 자신은 수년째 정체하고 있는 반면에 그는 마도여황에게 가르침을 받아 어디까지 성장했을지 몰랐다.
“흠, 그래도 걱정이 된다면야. 내가 마나에 맹세라도 하길 원하나?”
“그런 무례는 됐….”
“아니, 그걸로 안심이 된다면야 하지 못할 것도 없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말베른이 말릴 틈도 없이 입을 열었다.
“마나에 맹세하지. 이번에 비프로스트를 개방한 건 절대 아카데미를 위협하려던 목적이 아니네. 다른 이유 때문이라고.”
그의 선언과 동시에 주위의 마력이 움직이며 그에게로 몰려들었다.
마나의 맹세였다.
“이제 만족하나?”
“…예,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말베른은 그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이미 움직였는데, 여기서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
“이 정도는 당연하지.”
마나의 맹세는 마력 그 자체에 제약을 거는 것이다.
고리의 마력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며, 일부러 마력의 동조를 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순수하게 그 선언에 ‘세상’이 움직여 주는 것.
그 정확한 원리는 아무도 몰랐으나, 마력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었다.
‘세상이 움직여 준다.’
알렌은 그 생각에 무언가 떠오를 듯 말듯 아른거렸지만, 우선 그란델에게 집중했다.
“자, 이제 인사도 어느 정도 끝났으니 움직이세. 오늘은 여독을 풀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할 테니.”
“그러도록 하지요.”
그들은 교수의 지시에 따라 마탑 도시, 페르타에 발을 들였다.
‘자, 이제 과거 그란델의 행동에 대한 정보를 모아야 하는데….’
우선, 이때를 대비해 깊은 관계를 맺어 두었던 연급 학파를 찾아갈까?
공식적인 첫 만남이니, 연금 학파의 수장 마르골과 만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알렌은 방학에 받았던 편지를 떠올렸다.
이곳에서 한 번 해 볼 수 있는 수가 떠올랐다.
‘휘스 아로나.’
그란델의 손자인 놈을 이용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그녀가 필요했다.
프란시스카.
병적으로 망나니를 싫어하며, 우연인지 전생에 그란델의 손자를 때려죽여 마법사로부터 쫓겼던 여자.
그 망나니 놈은 그녀와 접점이 있었으니.
그렇게 알렌은 그녀와 만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알렌 공자님, 오랜만이네요?”
“프란시스카 양.”
그가 그녀를 찾기도 전에 그녀가 먼저 알렌을 찾아왔다.
밤에 야음을 틈타, 홀로 창문을 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