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15화 (115/212)

제115화

알렌이 지금까지 마법을 사용할 때 실타래로 악기의 형태를 엮은 이유는 무엇인가.

간단한 이유였다.

그것을 제외한 다른 사용 방법을 떠올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공간, 영혼, 계약.

보통, 실이라고 했을 때 떠올릴 수 있는 일반적인 개념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꼭두각시의 실 혹은 실로 엮은 옷과 천 혹은 무언가를 잇다라는 생각이 일반적일 것이다.

하지만 알렌은 저런 것들로는 율리우스를 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기에 억지로, 실이라는 것의 개념과 다소 연관이 없어 보이는 것까지 억지에 가까운 믿음으로 저 세 개의 마법 계통에 입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과 맞지 않는 계통에 입문했으니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 리가 있나.

알렌은 억지로 저 세 개의 계통에 입문한 대가로 극히 소수의 마법을 제외하고 마법을 사용하지 못했다.

알렌이 지금까지 공간 마법 하나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 것도 그곳에 있었다.

실이 공간과 공간을 잇기 때문에 관련이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영혼도 마찬가지였다.

육체와 영혼이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개념으로 입문했기에 일반적인 영혼에 관련된 마법 하나 사용하지 못했다.

회귀의 마지막 때처럼, 육체와 영혼의 선을 자르는 것만 시도해 볼 수 있을 뿐.

계약도 사회의 관념적으로 이어진다라는 개념을 이용한 것에 불과했다.

그나마 제일 정상적이었기에 그나마 사용했지, 소환 마법을 쓰지 못하기에 사용될 일이 원체 적었다.

그렇기에 악기의 형상으로 엮어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실타래로 악기의 형상을 빌려 공간에 직접적인 충격을 일으켜, 상대의 영혼에 영향을 준다.

정신적인 것도 상관없고, 거대한 충격파라도 괜찮다.

광기를 일으키기도 하며, 정신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알렌의 마법적 역량은 그렇게 발달했다.

어떻게든 끼워 맞춰서, 사용할 수 있게끔. 최대한 실전에서 쓸 수 있게.

직접적인 무기의 형상으로 빚어도 상관없었지만, 단순하며 큰 피해를 줄 수 없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이것이 자신의 마력 형태에 맞춰 마법에 입문하지 않은 마법사의 최후였다.

보통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결국 마법사는 고집을 버리고 결국 제 마력 형태에 맞는 마법 계통에 입문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처음이겠군.”

그 고집을 꺾지 않고 끝에 새로운 마법 계통을 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과거에도, 미래에도 그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을 터.

알렌은 조금 감개무량한 기분이 들었다.

마법의 돌파구가 보이지 않아 검을 배웠다. 그러나 검을 배우는 것도 한계가 있던 차에 마법에 새로운 길을 발견하다니.

“이걸 연구한다면 가능할까.”

신역을 구축하는 것을.

앞으로 한 달, 아니 마탑에서의 일도 있을 테니 두 달 남았다.

“확인해야지.”

자신의 생각이 틀렸는지, 틀리지 않았는지.

그를 위해서 그란델과는 반드시 한 번은 부딪쳐야 했다.

실타래를 퍼트렸다. 그의 의지에 따라 보고에서 가져온 수십 권의 책들이 공중에 펼쳐졌다.

촤르르-

책의 장이 순식간에 넘어가며 그의 주위를 회전했다.

다시 시곗바늘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 * *

한 달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모두 만족스러운 방학을 보내셨기를 바랍니다.”

2학기가 시작된 첫 수업의 아침.

새로이 A반을 맡게 된 멕켈린 교수가 짙은 주홍색 수염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물론, 그러지 않았다고 해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하하하.”

학생들은 방학 동안 나쁘게 보내지는 않았는지 대부분 표정이 좋아 보였다. 교수의 재미없는 농담에도 그들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속된 말로 방학 물이 덜 빠졌다고 할 수 있으리라.

“우선, 공지해야 될 게 몇 가지 있습니다. 방학 사이에 새로이 입학한 1학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들과 같은 1학년이니 괜한 텃세를….”

알렌은 교수의 말을 경청하는 동시에 다른 쪽을 살폈다.

‘마리아는 여전하군.’

그녀는 그 이후 알렌과 교류를 이어 오고 있었다. 방학에도 짧은 시간을 내서 만남을 가졌으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리고 하이젤은 무슨 일이 있는 게 확실하군.’

하이젤의 눈가엔 검은 기미가 있었고, 두 눈은 깊게 감겨 있었다. 필시 세간에 떠도는 마족의 소문과 관련된 일이겠지.

그는 알렌의 시선에 힐끔 쳐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렸다.

시선에 민감하다고 했으니 더 쳐다보는 것도 우스운 일일 터. 마지막으로 율리우스에게로 시선이 향하던 중, 알렌이 멈칫했다.

‘엘닉스 드라기아스.’

하얀 인상에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던 자.

첫날에 알렌의 노심을 느끼고 접근하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잊혀졌다.

접근하려던 것도 무슨 명령이라도 받았는지, 첫날 이후로 알렌에게 조금의 관심도 없다는 듯 거리를 두고 있었다.

알렌 역시 한 가지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면 그를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프시케에서 며칠 후에 조사 결과가 나온다고 했었지.’

다만, 그 말을 하면서 그들은 라인하르트 가문의 습격에 드라기아스 가문이 연관되어 있을 수도 있다고 귀띔을 줬었다.

당장이라도 이 일을 알아보고 싶었으나 마탑의 일이 먼저였다.

마침, 앞에 있던 교수에게서도 그 이야기가 나왔기에 알렌은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며칠 후면 정기적으로 시행되는 마탑 교류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이번 교류회는 평소보다 배는 크게 진행될 예정이며 마법학도는 물론 다른 학과 학생도 참가할 수….”

한 달간 마탑에서 진행하는 마법 교류회.

과거에는 마법에 대해 토론하기도 하며, 새로운 관점에 대한 토의와 새로운 인재들의 친분을 다지기 위함이었으나 지금은 서로 간의 자존심 싸움으로 변질된 지 오래.

현재는 누가 더 우월한 논문과 발표를 준비하는지가 쟁점인 상황이었다.

“다른 학과도 가능하면 나도 갈 수 있으려나.”

“네가 가면 뭐 하게, 뭐 할 수 있는 거라도 있냐?”

“음, 아마 내가 알기로 마법사가 아니면 마법사의 대처법을 훈련받을걸?”

“오? 진짜?”

교류회에 별 관련이 없던 학생들도 교수의 말에 관심을 보였다.

“율리우스, 너는 어떻게 할 건데?”

“나도 참가해야지.”

익숙한 목소리.

알렌의 관심이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향했다.

“어? 진짜? 아카데미에 안 있으려고?”

“율리우스 님, 따로 준비해 둘까요?”

“어, 마탑에 갈 기회가 언제 또 있을지 모르잖아. 응, 레이나 부탁해.”

교실의 뒷자리, 율리우스가 하이젤을 힐끔거리며 대답했다.

‘하이젤이 마탑에 가는 걸 막아야 해.’

마탑에 가는 걸 막지 못하더라도, 그년과 만나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 그년만 아니었으면 허무한 엔딩이 날 일도 없었을 테니까.

“다만, 마법학도들이 아닌 다른 학과생들은 일정한 시험을 거쳐야 하며 대련을 통해 지원자들을 가려낼 계획입니다. 관심이 있다면 본관의….”

알렌은 그런 율리우스의 모습을 응시하다 눈이 마주쳤다.

율리우스는 한 달 전의 일을 털어 내기라도 했는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알렌도 마찬가지로 웃었다.

활짝.

* * *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은 화창했다.

첫날은 급박히 도착했을 학생들의 여독을 풀게 배려하려는 것이리라.

그 탓에 어수선함과 활발함이 반쯤 섞인 생동감이 거리를 가득 채울 듯 올올이 꽃피웠다.

알렌은 그런 소란스러운 거리의 소음에도 별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는 건 그란델에 관해서였다.

‘그란델.’

바람의 마탑주.

7명 밖에 없는 마탑의 주인이자, 충분히 강자로 불릴만한 7위계의 능력자.

또 빛의 마탑주 바르덴, 불의 마탑주 파르델과 같은 마도여황 베네사 사브리나에게 가르침을 받은 자.

그녀에게 가르침을 받고자 본래 이름을 버렸으며, 그 탓에 다른 마탑주들과 비슷한 이름이 되었다.

마도여황에게 가르침 받는 조건은 그것 하나니까.

그 때문에 그녀가 마탑 도시를 뒤에서 주무른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니 확실할 것이다.

그런 그가 그란델에 대해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팔강 베네사 사브리나.’

이번 일은 조심스럽게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잘못해서 그녀의 눈에 띈다면 그를 도와줄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알렌이 기억하는 그란델에 대한 인상은 간단했다.

이 모든 일의 시작.

그 때문에 율리우스가 폐인이 되었고, 그의 몸에 율리우스가 들어왔다.

알렌이 그를 안 좋게 생각하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객관적으로도 그의 행동은 의심스러운 점이 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처음에는, 알렌도 율리우스가 그렇게 된 것에는 별다른 의혹을 품지 않았다.

모두 자신의 탓이었으니까.

그러나, 용의 노심을 가지고 나서.

7위계의 영역을 조금 엿보고 나니.

가슴 속에서 불쑥 의심이 고개를 치켜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혹시, 마도서를 일부러 가져가도록 놔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의심이.

물론 다른 이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만 해도 누가 베스틀라를 건들까 항상 신경을 기울이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놓은 마도서를, 그것도 아직 집필 중의 물건을.

어린이이가.

‘정말 훔칠 수 있나?’

회귀 직후부터 김우진에 신경 쓰느라, 그란델에게 복수할 생각은 옅었다.

아직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책임에서 회피하려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러니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정말 자신의 의심이, 의심으로만 끝날 일인지.

자신의 의심이 기우라면 상관없다.

원래 계획대로 그의 서클을 ‘조금’ 망가뜨리기만 할 생각이니까.

단지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뿐이다.

알렌의 자업자득이라고 한들, 그가 일을 이곳까지 키웠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테니.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그가 일부러, 율리우스의 서클을 부수기 위해 그런 일을 꾸민 것이 맞다면.

‘알아내야겠지, 그렇게 한 이유를.’

절대 간단하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철컥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기숙사로 돌아오니, 이넬리아와 린벨이 먼저 자리해 있었다.

일리아나가 없는 것에 의문이 들었으나 개의치는 않았다. 린벨에게 할 말도 있었으니 오히려 좋은 기회였다.

“공자님?”

그녀는 알렌이 빤히 쳐다보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이넬리아, 오늘도 마찬가지인가?”

“…예, 공자님.”

“그런가.”

그녀는 반년간 성과를 못 낸 것에 대해 눈치가 보이는 듯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렌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그럼, 그만두지.”

“제가 더 조사해 본다면 무언가 나올… 네?”

그녀의 눈이 크게 뜨였다.

“완전히 관심을 거두지는 않겠지만, 평소처럼 움직이지 않아도 괜찮다.”

알렌은 이제는 연기하는 것인지 진짜 감정을 느끼는지 모를 그녀를 보며 베스틀라를 허리춤에서 떨어트렸다.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 공중으로 떠올랐다.

“…제가 성과를 내지 못해서 그렇습니까?”

그녀의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 알렌은 고개를 저었다. 그 반대였다.

“아니, 너무 잘해 줬기 때문이지.”

“네?”

반년간 엘피스의 모든 경매를 꿰고 있을 정도로. 그녀는 알렌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노력해 줬다.

그렇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었다.

“이곳 엘피스에서는 내가 원하는 물건을 구하지 못할 거다.”

알렌은 단언할 수 있었다.

전생에 영혼에 관련된 마법 서적을 구했기에 이번에도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은 건, 아카데미의 보고에서 아무런 자료도 발견하지 못했을 시점이었다.

“내 생각이 틀렸던 거지.”

정확히는 그가 기억하던 시기가 모호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영혼과 관련된 가장 많은 자료를 가진 이들은 에스테도르일 것이다.

사령술사와 네크로맨서가 가득하니 가진 자료가 적을려야 적을 수 없겠지.

그러니 자료가 풀리기 위해서는 그들에게서 자료가 풀려야 한다.

그 뜻은.

‘그들의 자료가 풀릴 만한 일이 생겼다는 거다.’

아마 전투의 전리품으로 얻었을 확률이 높겠지.

그렇다면 그 시기가 대략적으로 추론이 가능했다.

아마도 마탑 도시의 습격 이후, 에스테도르와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된 이후.

앞으로도 두 달은 더 지나야 했다.

“오히려 반년간 쓸데없는 고생을 시켰군.”

알렌의 칭찬과 사과에 그녀는 당황한 얼굴을 했다.

그리고는 잠시 움찔거리는 입꼬리를 가다듬더니 부드러운 어조로 답했다.

“그래도 공자님께 도움이 되어서 다행입니다.”

그 모습에 알렌은 괜히 손을 휘저었다.

“차가 마시고 싶구나.”

“아, 그럼 제가…!”

린벨이 움직이려 했으나, 알렌은 그녀를 멈춰 세웠다.

“이넬리아에게 부탁하지. 저번의 요정의 가루 였던가? 그것도 함께 첨가해서.”

“아, 알겠습니다!”

이넬리아는 총총거리는 걸음으로 잠시 방을 나섰다. 베스틀라는 알렌의 눈짓에 그녀를 따라 방을 나섰다.

철컥-

두 사람만이 남은 방 안, 알렌은 그녀와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

“린벨, 내가 몇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답해 줄 수 있겠느냐?”

“네, 물어보세요!”

연신 미소 짓는 그녀를 보며, 알렌은 며칠간 고민했던 질문을 담았다.

“노아라는 평민이 나에게 다가오는 걸 막았다고 들었는데, 무슨 일인지 알 수 있겠느냐.”

알렌은 정신을 집중했다. 알렌은 그녀를 신뢰하지만, 그녀의 행동이 알렌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면 경고해 줘야 했다.

그녀는 들키고 싶지 않은 일이었는지 말하고 싶지 않은 듯 머뭇거렸다.

그러나 알렌이 조용히 지켜보자, 결국 진지한 기색으로 변해 입을 오물거렸다.

“그게….”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내용은, 알렌마저 생각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 평민들이 알렌 님에게 부적절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뭐?”

그녀의 담담한 눈동자가 알렌을 향했다.

“노아, 그가 알렌 님의 명성을 이용하려 했거든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