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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14화 (114/212)

제114화

세상에는 수많은 힘의 종류가 존재한다.

인간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마력.

수인이 사용하는 오러.

주로 엘프들이 사용하는 정령술.

지금은 사라진 신전이 쓰던 신성력도 있었으며, 남쪽의 이종족 주술사들이 사용하는 주력(呪力)도 있다.

어느 한 가지에 대한 극단적인 마음으로 발현되는 프라나도 있으며. 심지어 순환교의 선지자가 사용하는 불가사의한 힘까지 있다.

세상에는 일일이 밝혀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힘이 있다.

그중에서 대부분이 본래부터 어떤 종족만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이었고, 마력도 마찬가지였다.

본래 용이 사용하던 힘.

그렇기에 압도적인 범용성을 가지고 있었고, 인간이 대륙의 패권을 쥐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신체를 강화하고, 있을 수 없는 이적을 일으킨다.

전사와 마법사는 언제나 수요를 일으켰으며, 인간의 발전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봐도 좋았다.

다만, 마력을 다루기 위해 필요한 비전만 있으면 누구든 입문할 수 있는 전사와는 다르게 마법사가 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재능이 필요했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마나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그저 대기 중의 마나를 어떻게든 끌어모아 사용하려고 할 뿐.

신체를 강화하기 위해 마력을 사용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저 몸의 구조를 알면 되니까.

그리고 그것을 연구하기 위한 시체는 어디에나 있었다.

인간은 비전의 발전을 위해 시체 수천, 수만 구를 해부할 광기가 있었다.

그렇게 안전성과 능력 모두를 사로잡은 비전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마법은?’

서클 마법 체계가 나오기 전까지 마법사의 등급을 나눌 수 없던 것만 봐도 그렇다.

육체를 사용한 비전(?傳)은 재능 따위 없이도 입문의 벽이 낮다.

마력을 끌어당겨 일정한 경로를 통해 흐르기 만들어 기술을 일으킨다. 그 안에 마법과 비견 될 만한 비전도 있지만, 그런 것 없이도 쓸 만한 비전은 넘쳤다.

하지만 마법은 아니었다.

수십 가지의 마법 체계와 서로 실력이 어떤지 붙어 보기 전까지는 가늠할 수조차 없던 시절.

좋게 말하자면 번뜩이던 재치와 수많은 발상이 시도되었고,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중구난방에 잡스럽기 짝이 없었다.

마법은 몸 안의 마력을 통해 외부의 현실을 비트는 것이다.

마력을 신체로 끌어들이는 것까지는 어떻게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마력을 외부로 투사하여 불을 만들어 낼 수 있지?

무슨 방법으로 비를 내리며, 어떻게 하늘에서 번개를 떨어트릴 수 있을까.

그 방법을 위해 인간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마력은 원래 용의 것이었으니 용의 노심으로 만들려는 자도 있었고, 눈은 사물의 본질의 보지 못하게 막는다며 뽑아 버리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뚜렷한 결과를 내지 못하거나 비대한 부작용이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시기에 나타난 서클 마법 체계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기존의 마법 체계를 모조리 폐기할 정도의 우수함.

현재의 마법사들이 단일화된 체계를 사용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용과 인간의 신체 구조는 다르다.

용의 감각 기관은 인간의 오감을 뛰어넘으며, 뇌로 받아들이는 정보량에서부터 차이가 났다.

인간은 사물의 겉모습을 보고 쓰임을 파악할 때, 용은 사물의 본질을 받아들인다.

외부의 사물을 인지하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인간보다 고등한 감각 기관.

그것을 통해, 외부에 마력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며, 현실에 간섭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인간이 마법을 사용하는데 근본적인 어려움을 겪는 이유기도 했다.

그리고 그 차이를 메꾸는 것이 바로 서클 마법 체계였다.

서클 마법은 심장에 고리를 만들어 마력을 끌어당긴다.

끌어당긴 마력은 둥근 형태로 유지되어 끝없이 회전하기 때문에 안정적이었으며, 고리의 개수를 늘릴수록 많은 마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것만으로도 마력을 담는 신체의 안전성을 매우 향상시켰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마법사들이 현재까지 단일화된 체계로 서클 마법 체계를 추구하게 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감지력(感知力).

고리의 개수에 따라 일정 범위 안의 것을 전지(全知)하게 만드는 것.

1위계에는 3m, 2위계에는 15m, 3위계에는 75m.

그 범위 안에서 마법사가 모르는 것이 없도록, 정말 용과 같은 유사 감각 기관을 형성하며 정보를 인식한다.

이것이 마법사가 쉽게 현실을 비틀 수 있게 만들며, 영역 내의 외부 마력까지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마법사가 고리의 개수를 기준으로 위계를 나누게 된 것도 이런 연유에서였다.

고리가 많다는 것은, 더 많은 것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며 현실에 투사할 수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하지만 그것 때문에 마법의 발전이 정체된 것도 사실이지.”

너무 우수했기에, 이것을 보완하며 다른 방법으로 나아갈 방법을 모색하기 힘들었다.

부족한 점을 찾기 힘들었으니까.

쿠웅-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며, 알렌이 나왔던 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새하얀 벽은 언제 문 같은 게 있었냐는 듯 실금하나 보이지 않았다.

아카데미의 보고.

그가 요 며칠 동안 들락날락한 장소였다.

얻은 공적치를 통해 아카데미에서 역대까지 모은 보물을 교환할 수 있는 장소.

“…이상하게도 영혼과 관련된 서적이 적은데.”

알렌은 의구심을 품은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영혼과 관련된 마도서가 적을 것이라고는 능히 예상할 수 있었다.

아직 영혼은 제대로 연구된 적이 있는 분야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방학식이 시작되고 나흘간 아무리 뒤져도 관련된 책 한 권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누군가 일부러 빼 놓은 것처럼.

「당신이 잘 살펴보지 않은 건 아니고요?」

“그랬으면 좋았겠지.”

아카데미의 보고는 공간이 뒤틀린 장소다.

동시에 많은 인물이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혼자서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는 곳.

방학이 되었기에 소수의 인원밖에 자리하지 않은 만큼 혼자서 둘러보기에 최적화된 시간이었다.

“그랬는데도 소득이 없다, 라.”

이건 명백히 이상했다.

이넬리아가 반년간 발품을 팔아도 서적 하나 구하지 못하는 것에서 의구심을 품었지만, 역대 쌓아 둔 보물이 가득한 보고에도 찾을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럼 이제 어쩌려고요? 이젠 어디서 책을 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잖아요.」

알렌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지.”

아카데미에 온 이유는 실력을 향상시키는 것과 영혼과 관련된 마도서 혹은 서적을 찾는 것에 있었다.

그런데 반년간 아무런 성과를 낼 수 없었으니….

‘남은 건 하나밖에 없겠군.’

알렌은 다시 보고로 돌아가 모아 뒀던 공적치로 한 달간 필요한 물건들을 모두 교환했다.

최선이 안 된다면 차선을 선택할 수밖에.

* * *

마법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인식하는 마력의 형태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마력의 형태가 곧 그 마법사가 걸어야 할 길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옅은 바람으로 마력을 인식하는 사람.

타오르는 불꽃으로 마력을 느끼는 사람.

질척이는 액체로 마력을 식별하는 사람.

각자의 인지와 마력에 대한 이해는 달랐다.

그건 용의 마력과 마법을 모방한 인간종 자체의 한계였기 때문이다.

마력의 형태를 인식한 마법사들은 그렇기에 자신의 마력의 형태에 맞는 마법 계통에 입문할 수밖에 없었다.

옅은 바람 같은 마력은 바람 계통의 마법을.

무거운 액체 같은 마력은 수 계통의 마법을.

굳건한 바위 같은 마력은 땅 계통의 마법을.

사람이 인식하는 마력의 형태가 다양했기에 발전한 수많은 마법의 계통들.

물론 여러 마법 계통들을 한 번에 입문할 수 있다.

하지만 성공을 위해서라면 하나에만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진정한 초인의 경계, 7위계에 올라서기 위해서 여러 가지를 동시에 익히는 건 오히려 독이 될 뿐이었으니까.

여러 계통을 하나로 묶어 낸 이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런 이들은 역사서에도 이름을 올린 이들.

알렌과 같이 평범한 이가 여러 계통에 집중한다고 해서 7위계에 오르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7위계란 어떤 것인가?

회귀 전 알렌이 도달했던 경지는 어디까지였는가.

고리 7개의 경지.

혹은 7서클로 불리는 경지였다.

그러나 그건 알렌이 금서와 수명을 소비해 강제로 끌어올린 것에 불과했다.

진정한 7위계의 마법사는, 자신만의 ‘신역’을 가진다.

일정 범위의 전지(全知)와 그에 따른 마법의 전능(全能).

일정한 영역 내에서 7위계 마법사는 진정 신이라 칭할 수 있다.

알렌은 가질 수 없었던 것이기도 했다.

스스로 신역을 구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귀하기 직전 요란한 준비를 해 가며 율리우스를 끌어들였고, 극소 범위의 신역을 강제로 구축해 만든 검으로 그의 영혼을 갈라내었다.

지금은 할 수 있나?

‘지금도 할 수 없다.’

마력은 용의 노심이 있는 한 무한하다.

용의 노심을 가졌기에 감지력 또한 비교할 수가 없다.

알렌의 정신이 버텨 낼 수만 있다면 진정 용과 같은 재해를 일으키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도 신역을 구축할 수 없었다.

신역은 수련한 마법 계통의 완전한 이해와 가능성이 극에 달해 현실을 비트는 것이다.

평야 위로 거대한 분화구가 나타날 수도 있고, 뜬금없이 유성우가 떨어져 내릴 수도 있다. 허공에 바다가 생겨날 수도 있으며, 중력이 거꾸로 변할 수도 있다.

세상의 규칙 따위는 상관없는 듯 주변 공간을 자신의 것처럼 주무르는 것.

신역의 본질은 그곳에 있었다.

알렌의 부족한 지식과 배움으로는 인위적인 신역을 따라하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진짜 할 수 없을까?’

알렌이 수련한 마법의 계통은 셋.

공간, 영혼, 계약.

그리고 하나를 억지로 더하자면 불안전한 시간 계통 마법으로 들 수 있겠지.

알렌이 인식하던 마력의 형태는 실타래였기 때문이다.

제각기 떨어져 있는 것을 남김없이 맺어 잇기(絡) 때문에 공간이다.

육체와 하나의 끈(繩)으로 이어진 것이 영혼(靈魂)이기 때문에 영혼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계약(契約)이 하나의 실(絲)로 이어지기 때문에 계약이다.

실타래에서 얻을 수 있는, 억지에 가까운 믿음과 율리우스의 영혼을 찾겠다는 광기로 강제로 입문한 계통들.

‘그리고… 불안전한 시간 마법은 정말로,’

시간 계통 마법이 맞나?

의문이 들었다.

시간 계통 마법에 관한 탐구는 아직도 지지부진 했다.

알렌은 자신이 시간을 거슬러 올랐다는 것 보다는, 1회차와 다른 시간축으로 이동했다는 추측이 타당성 있다고 생각했다.

우주 전체를 되돌려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보다, 다른 시간축으로 이동하는게 더 실현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하지만 시간 마법은 결과적으로 존재한다.

‘왜?’

생물에게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돌과 같은 생명체가 아닌 것에게는 통한다.

이것의 차이는 뭐지?

“생물은 영혼이 있고, 무생물은 영혼이 없다.”

정말 그것뿐인가?

실타래가 풀려나왔다.

“무생물은 영혼이 없기에 통하고, 생물은 영혼이 있기에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다고 하면 결과는 똑같지 않은가.

쇠붙이는 녹이 슬어 사라진다.

하지만 인간이라고 해서 결과가 달라지는가?

“한낱 먼지로 스러질 뿐이지.”

그렇다면 어떤 차이로 인해 결과가 달라지지?

수십 년이 지나고 확인한다면, 쇠붙이가 더 오래 남아있지 않나?

알렌의 생각이 깊어질수록 실타래가 그의 주변으로 풀려나왔다.

“결과는 같다.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럼 무엇이, 어째서, 왜.”

생각의 한계를 넓힌다. 좀 더 비현실적이고, 망상에 가까운 추측으로 뻗어서.

“쇠의 운명은 정해져있다. 대장장이에게 벼려지거나, 땅속에 묻혀 흘러가거나.”

그건 숨 쉬지 않는 모든 것들의 운명이었다.

제자리에서 변하지 않거나, 외부의 개입으로 변형되거나.

그럼 인간은?

“인간은 변하는 존재다. 아니, 그건 모든 지성체가 그렇지.”

알렌의 눈이 깊게 침잠된다.

용의 노심이 스스로 실타래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뱃고동 소리가 낮게 울렸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지. 하지만 적어도 쇠와 같이 평생을 변하지 않는다. 작은 것에도 영향을 받으며, 스스로 변하려고 노력하기도 하지.”

농가에 태어난 이가 병사가 될 수도 있고, 한낱 어부의 아들이 마법사가 되기도 한다.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몰락해가는 백작가의 장남이, 원래였다면 순조롭게 백작이 되어 살았을 이가, 지금은 무엇을 하는가.

“변하지 않는다, 스스로 변한다.”

시간 계통 마법에 대해 처음으로 영감이 떠올랐던 때는 린벨과 이넬리아의 운명을 바꿨던 때였다.

처음 마법을 계통 마법의 하나로 정립했을 때가 율리우스와 벤자민의 대련 사건이 끝난 후였다.

이것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운명이, 바뀌었다?”

이런 결론으로는 모자랐다.

조금 더.

눈을 감았다. 과거의 바다로 깊이 들어간다. 어두운 저 심해로.

그다음으로 무언가 바뀌었다 느꼈을 때가 언제였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조금 더, 조금 더.

던전 실습 때 조원들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았던 시점이었다.

순환교의 사도의 자리를 받았을 때였다.

아칸더스에게 포섭할 수 있는 모두 포섭하라 이를 때였다.

기억이 이어진다.

실타래가 이어졌다.

얼기설기 얽히며 이어 간다.

“시간 계통? 아니, 틀렸다.”

시간은 처음부터 존재한다고 믿지도 않았잖나.

그러면서 시간?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것이 잘 되리라 생각한 것도 우습지.

세 가지의 마법 계통이 하나로 엮어진다.

실타래가 공간을 꿰뚫었다.

영혼으로 엮은 실타래가 이어진다.

하나의 인연은 일종의 계약이다.

무수한 실타래가 그의 몸에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중에는 굵은 것도 있었고, 짧은 것도 있었다. 붉은 실도 있었고, 이미 끊어진 것도 있었다. 시작은 있었으나 끝은 없는 것도 있었고, 아주, 아주 가느다란 실이 멀리 이어져 있는 것도 있었다.

실타래는 잠깐 사이에 완전히 사라졌다.

방 안을 가득 채우던 실타래는, 어느새 단 한 가닥만이 남아 알렌의 곁에서 너울거렸다.

알렌의 눈을 떴다.

“…그래, 완전히 착각하고 있었군. 시간? 아니. 그따위 같잖은 이름을 사용하다니.”

지금 이 자리에.

마법의 시대가 열린 이후로 누구도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새로운 마법 계통이 열렸다.

“운명(運命) 마법, 여기까지 너무 돌아서 왔군.”

운명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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