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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12화 (112/212)

제112화

일주일 동안 이어진 축제가 끝났다.

4학년까지 행해졌던 모든 학기 말 대련을 마쳤고, 남은 사흘간의 축제를 끝으로 시끌벅적했던 아카데미의 생활은 막을 내렸다.

한바탕 방학에 대한 기대가 부풀어 오르며, 아카데미에 돌던 소문이나 관심 모두 그쪽을 향하게 되었다.

아카데미는 한 달간 고요에 빠지게 되겠지.

반쪽만 모습을 드러낸 달이 지상을 드리우는 가운데, 알렌은 다시 상업 지구로 되돌아왔다.

그가 향하는 목적지는 상단의 지부로 쓸 건물이었다.

외부의 작업은 다 끝났는지 지부의 모습은 며칠 전과 다르게 제법 그럴듯한 태가 났다.

이제 내부의 작업만 마친다면 곧바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알렌은 전과는 달리 제법 여유로운 걸음으로 아칸더스가 자리한 최상층으로 향했다.

아칸더스는 자신이 며칠 전에 시킨 일을 처리하기 위함인지 늦은 시간임에도 문틈 사이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똑똑-

“들어가도 되겠나.”

“예, 들어오십시오.”

알렌은 전보다 늘어 있는 서류를 보며 미소 지었다.

“바빠 보이는군, 아칸더스.”

아칸더스는 알렌의 태연한 지적에 바삐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헛웃음을 지었다.

“모두 공자님께서 내리신 명 탓이지 않습니까.”

“그런가?”

“기반도 없이 갑작스럽게 일을 처리하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흠,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하군.”

아칸더스의 불평에도 알렌은 느긋한 태도를 버리지 않았다. 그 모습에 아칸더스는 진지한 얼굴로 변해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이십니까.”

“무엇을?”

“기존 방침을 정한 지 열흘이 채 지나기 전에 새로 바꾸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상황이 달라지면 방침이 바뀔 수도 있지 않나.”

알렌이 교묘하게 대답을 회피하는 모습에 결국 아칸더스는 직설적으로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경우가 다르지 않습니까, 공자님. 거기다 본래 포섭하지 않기로 했던 이들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데리고 오라는…!”

“그래서.”

알렌은 자칫 나른하게 보일 정도로 방만한 모습으로 말을 잘랐다.

“못 하겠나?”

그의 서늘한 미소에 아칸더스가 입을 다물었다.

“아칸더스. 아칸더스 페른. 페른 남작령의 후계자이자 내 첫 번째 가신아.”

알렌이 그의 앞까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다가올수록 늘어지는 그림자가 마치 거인처럼 그를 압박했다.

“다시 한번 묻지. 정말 못 하겠나? 페른 남작을 찾기 위한 네 능력이 그것밖에 안 되나?”

아칸더스는 그의 도발에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럼 하면 되지 않나.”

알렌의 말은 억지에 가까웠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불확실한 자들은 포기하기로 해 놓고선, 갑작스럽게 그런 이들까지 모두 영입을 진행하라니.

“앞으로 한둘이 아닌 수백, 수천 명의 행적을 조작하는 일입니다. 들킬 가능성도 있고, 인위적인 움직임에 눈치챌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겠지.”

알렌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당연한 걸 말하는 듯한 태도, 그런 알렌의 모습에 아칸더스는 큰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갑작스럽지 않습니까.”

알렌은 깔끔하게 동의했다.

지금의 명령은 자칫하면 위험성을 키울 수 있었다. 천천히 계획을 세우면, 전과 같이 행동하면 더 안전하게 준비할 수 있겠지.

그러나.

“언제까지?”

언제까지 상황에 맞춰서 행동해야 하나. 율리우스의 대응에 따라서, 그의 행동을 경계하면서.

“언제까지 내가 참으면서 기다려야 하지?”

“진짜 율리우스 님의 실마리를 찾으실 때까지만 기다리신다면….”

아칸더스는 말을 하다가 그 시기가 언제 올지 알 수 없다는 생각에 입을 닫았다.

그저 눈가를 꾹 누르더니, 한층 예리해진 눈동자로 되물었을 뿐이었다.

“방침을 다시 바꾸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그래.”

“그것으로 인해 위험성이 더 커진다고 해도 말입니까.”

“그래. 그래도 해야 한다.”

알렌의 확고한 답에 아칸더스도 결심을 세웠다.

“알겠습니다. 주군이 따르라 하면 따라야지요. 하아.”

그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끝내는 알렌의 뜻에 동의했다. 내심 그도 같은 생각을 하고는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이런 식으로 방어적인 계획은 철저한 준비가 가능하다. 하지만 시기를 맞추지 못한다면?

만약 일이 잘못되어 빠른 시일 내로 일이 벌어진다면, 김우진의 빠른 성장에 그를 죽여야 할 때를 놓치고 만다면.

그때 후회해서는 늦다.

“일을 저지를 때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결국, 벌어질 일은 벌어지게 된다. 다소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해야 할 때는 해야 했다.

물론 본심의 불편함도 한몫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계획을 겨우 짜 놨는데…, 다시 짜려면 이번 주에 제대로 잠을 자기에는 글렀군요. 참 좋은 주군을 둔 것 같습니다.”

알렌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아칸더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의 어깨에 힘이 더 빠졌다.

「당신 같은 악덕 주군 밑에 있는 부하는 살기 힘들 것 같다니까요? 제가 검이라서 정말 다행이지, 뭐예요.」

베스틀라가 날카롭게 찔렀지만, 유감스럽게도 알렌에게는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

‘가신의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 주는 게 주인의 의무지.’

「참 잘났어요! 아, 맞다. 당신, 그거 안 물어봐요? 여기 오면 물을 줄 알았는데.」

알렌은 그게 무엇인지 되묻지 않았다. 마침 그도 묻고 싶었던 참이었으니.

“아칸더스. 그는 어떻게 됐지?”

“그? 아, 노아. 예. 처음에는 당황스러워하던 눈치였지만, 머리는 나쁘지 않은지 상황을 받아들이곤 곧장 떠났습니다.”

여학생한테 협박당하던 세 명의 남학생.

그중 두 명이 죽고, 남은 한 명도 친구들의 죽음에 버티지 못하고 자살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 그렇게 알려져 있었다.

“그렇군. 상황을 정리하느라 고생했다.”

“그가 최근 자살 소동까지 벌였기에 상황을 꾸미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뒤처리는 어땠지?”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알렌은 아칸더스에게 따로 시켜 그를 빼돌려 둔 상태였다.

그를 빼내기 위해 사용한 건 화재.

노아가 거주하던 건물이 엘피스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낡았기에 여관 통째로 불태우고 자살로 꾸몄다.

그곳에 머물고 있던 사람도 노아를 제외하면 여관 주인밖에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관 주인은 어떻게 했지?”

“그의 앞에서 일부러 여관을 하나 짓고도 남을 정도의 돈을 ‘우연히’ 떨어트렸습니다. 물론 그는 몰래 돈을 주워 도시를 떠났습니다.”

그 말을 하던 아칸더스의 모습은 냉소로 가득했다.

“그래, 그 정도라면 그도 억울하지는 않겠지.”

그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알렌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본래였다면 그가 안전하게 사막을 떠날 때까지 살펴보는 것 정도는 했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애초에 돈을 그냥 들고 도망간 것에서부터 악인이라고 치기에는 약해 보여서, 할 도리는 다한 것이다.

그런 이를 끝까지 책임질 의무는 없었다.

“노아, 그 친구는 우선 영지에서 교육했다가 아카데미 학생들을 영입하는 데 쓰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알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벽면의 거치대에서 와인을 하나 집어 들었다.

“그럼, 한잔할 텐가?”

“오늘은 일을 해야 합니다만….”

“설마 혼자 둘 생각은 아니라 믿지.”

알렌은 잔을 두 잔 꺼내 자리로 가져왔다. 아칸더스는 결국 알렌의 앞자리에 앉았다.

“하…. 딱 한 잔, 한 잔만 하겠습니다.”

알렌은 마음대로 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무슨 말이 좋을까… 그래, 이게 좋겠군.”

보랏빛 액체가 투명한 유리잔에 채워지며 영롱한 빛을 반짝였다.

“여관 주인의 무사함을 기원하여, 건배.”

“건배.”

쨍-

늦은 밤이 조금씩 지나갔다.

* * *

다음 날, 아카데미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아칸더스는 결국 숙취에 못 이겨 앓아누웠으며, 아침에 열렸던 방학식은 삼십 분도 되지 않아 짧게 끝났다.

“형님, 진짜 같이 안 가시겠습니까?”

“남아서 마법에 대해 더 탐구하고 싶구나.”

“…뭐, 그러시다면야.”

율리우스는 알렌에게 몇 번 더 권유하지 않고 물러났다.

일주일 전이였다면 그래도 가족이었기에 영약이나 나눠 줄까 떠올렸겠지만, 지금의 그는 알렌의 성장세를 경계했다.

다행히 A반의 승급에는 문제없었지만, 그때 마지막에 그의 앞에서 얼었던 치욕은 잊기 힘들었다.

‘조금 있으면 중반인데, 혼자 챙기기도 모자라지.’

그렇기 때문에 고민하다 혼자 행동하기로 한 것이 아니었나.

이번 방학에는 레이나만 데리고 다니면서 원작에서 초반에 하이젤이 챙겼던 기연들을 모두 챙겨 올 생각이었다.

다른 주·조연들에게도 슬쩍 도움이 될 만한 장소를 말해 줬으니 알아서 성장해 올 것이다.

‘그리고 하이젤은….’

초반에 자신이 성장하고자, 또 괜한 곳에 신경 쓰게 하지 않기 위해서 원작보다 빠르게 게이트와 마족의 존재를 알렸다.

빠질 수 없는 실습이나 시험 빼고는 어디론가 나도는 것 같았으니 목적은 성공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제 슬슬 하이젤도 원작 주인공이니 준비할 필요가 있는데….

‘하이젤이 이제 더 필요할까?’

율리우스는 문뜩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처음 목적은 하이젤을 방패 삼아 꿀이나 빨면서 망한 결말을 고치려는 게 아니었나.

적어도 ‘해피 엔딩’을 위해서는 하이젤이 필요하다.

율리우스는 괜히 이곳으로 생각이 더 뻗어 나가는 걸 막으며 발을 뗐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한 달 후에 보도록 하지요.”

“그래, 어머니께 안부 전해 주고.”

율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빠른 걸음으로 그에게서 멀어졌다.

마치 그가 불편한 것처럼.

알렌은 그런 율리우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발걸음을 돌렸다.

아직 레이첼과 일리아나의 배웅이 남아 있었다.

* * *

“가델, 어떻게 생각해?”

덜컹-

달리는 마차 안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느다란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말발굽 소리에 묻힐 것 같았지만, 마부석의 노인은 담담하게 답했다.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소식 들었잖아. 그늘진 여왕.”

그녀의 말에 마부석에 앉은 집사장 가델의 얼굴색이 어두워졌지만, 곧 침착한 상태로 변했다.

“저와는 이제 관계없는 일입니다. 그녀가 있든 없든, 평소와 달라질 일은 없을 겁니다.”

“그냥 그대로 사라졌으면 좋았잖아?”

“처음부터 믿지도 않았습니다.”

가델의 어조에는 확신과 함께 은은한 두려움이 여려 있었다.

그늘진 여왕.

인간을 초월한 그 괴물에게서 도망친 것만으로도 그는 안심할 수 없어 엘리자의 밑으로 숨어들었다. 이제 수십 년이 흘렀음에도 그는 여전히 두려움을 떨쳐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예, 단지 이 평온한 생활이 계속되길 바랄 뿐입니다.”

그 말에는 가델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조금 늦지 않았을까? 알렌의 개인 상단에 예비 집사 한 명 같이 따라갔잖니? 혹시라도 우연히 마주쳐 정체가 들킨다면 곤란하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는 엘리자의 물음에는 짓궂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아니면, 다시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도망치려고?”

다그닥 다그닥-

말들은 마부의 속마음도 모른 채 힘차게 내달렸다.

가델은 한숨을 쉬었다. 그녀가 저렇게 말하는 진의를 그가 모를 리 없었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 마음의 정리를 다 끝낸 후 입을 열었다.

“도와주십시오.”

“정확히 말해야 내가 오해하지 않잖니.”

“그늘진 여왕에게서 보호해 주십시오. 루피너스 가문이라면 가능하지 않습니까.”

“내가 왜? 난 너를 공개적으로 쓰지 않는다는 약속을 철저히 지켰는데?”

끝까지 직접 이야기를 꺼내게 할 속셈이란 말인가. 가델은 분명히 그녀가 장난스러운 미소도 함께 짓고 있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조건을 바꾸겠습니다. 어떤 조건이라도 받아들일 테니, 제발 이 늙은이를 도와주십시오.”

마침내 그가 항복을 선언하자, 엘리자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생각했던 조건을 내밀었다.

“요즘 알렌이 열심히 움직이는 것 같던데, 아직 어려서 그런지 너무 서두르지 뭐니? 가델, 네가 조금 도와주렴.”

“그건, 라인하르트 영지 내로 한정해서 말입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그도 알렌이 무엇을 꾸미는지 정확히는 몰랐다. 그러나 라인하르트 영지는 변화가 크지 않은 곳, 그런 곳에서는 작은 움직임이라도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특히, 암중에서 영지를 관리하는 그녀의 눈에서라면.

“흔적만 숨겨 주고 직접 나서지는 않아도 된단다. 그게 네가 원하는 거지?”

“…예.”

가델은 제 생각이 다 들통났음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만약 그녀가 당장에 자신도 모르는 약점을 쥐고 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었다.

그녀는 그런 여자였으니까.

“좋아, 그럼 속도를 올리자. 나의 사랑하는 새 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니까.”

“알겠습니다, 이랴!”

말들이 속도를 높였다.

밝은 햇살이 비치는 길의 저편, 라인하르트 영지의 주도인 엘 라운드가 보였다.

그녀가 사교계에 복귀할 겸 떠났던 짧은 외유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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