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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11화 (111/212)

제111화

알렌은 학기 말 대련이 끝나고 나서 기숙사로 돌아갔다.

따돌림 사건에서부터 가이온과의 밤낮 없는 수십 일간의 전투, 그리고 이번 학기 말 대련까지.

알렌은 중간고사가 끝날 때까지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은 하루를 잠으로 보낸 다음 날 아침, 알렌은 이넬리아와 함께 거리를 나섰다.

2학년 학생들은 오늘부터 학기 말 대련이 시작되지만, 첫날에 모든 일정을 끝마친 1학년들은 해당 사항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이 속한 부에 따라 노점을 차리기도 하며 축제에 떠들썩함을 더했다.

기숙사를 나선 뒤 본 거리는 시끌벅적했다.

“이넬리아, 오늘은 천천히 돌아다녀 볼 테니 안내를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이넬리아는 알렌의 명령에 따라 수 없이 거리를 돌아다녔기 때문에 엘피스의 지도를 꿰뚫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향하는 곳은 공업 지구였다.

도시에서 소비하는 여러 생필품을 비롯한 물건과 무기점들이 나열된 공업 지구는 이상했다.

“고양이 오르간!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고양이 오르간이 있습니다!”

“혼자서 춤을 추는 돌멩이 팝니다!

엘피스 도시 자체가 밖에서는 이름도 들어 볼 수 없는 신기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이넬리아, 고양이 오르간이 뭐지? 처음 듣는 악기인데.”

“…그, 미관상 좋지 않으니 보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알렌은 그녀가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이건 나를 위해 꾸며 주는 건가.’

그녀의 원래 종족은 감정을 느낄 수 없다고 하니.

알렌은 곧 그녀에게 공업 지구에 왜 이런 이상한 발명품들로 가득 찼는지 들을 수 있었다.

“일 년에 두 번 축제 때마다 벌어지는 전통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맑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원래는 공업 지구 제일의 예술인을 뽑자는 대회였는데, 도시가 커지고….”

이넬리아와의 대화는 유익했다.

본래 공업 지구에서는 실용성과 양산품만 추구하였으나 밖에서 왔던 장인이 비웃고 떠나자, 도시 안의 장인들이 자신들도 예술성 있는 물건들을 만들 수 있다며 대회를 개최한 것이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그녀와 공업 지구를 구경 다니다, 발할라의 홀에 들르기도 했다.

“신드리, 안에 있나?”

“누구…햑! 아, 알렌 님”

“신드리, 오랜만이군. 장사는 잘되나?”

“아, 알렌 님, 덕, 입니다!”

알렌은 오랜만에 만나는 그녀의 모습에 미소 지었다. 그녀는 여전히 작은 키에 망치를 잡지 않을 것 같은 덩치를 하고 있었다.

“혹시 축제 날인데, 특별히 하고 있는 것 있나?”

“아, 네. 네! 이, 있습니다!”

신드리는 그렇게 자신만만한 얼굴을 하더니, 발할라의 홀 안쪽에서 무언가를 꺼내 왔다.

“이, 이걸 아, 안에 보, 보물 있어요!”

그녀가 가져온 것은 그녀의 상체만 한 상자였다. 상자에는 팔 하나를 넣을 구멍이 있었는데 구멍 안쪽에서 수백, 수천 마리의 날갯소리가 들렸다.

“…저기 안에 있는 게 혹시….”

“벌, 입니다!”

그녀는 커다란 집게로 구멍 속에서 사람 주먹만 한 벌을 꺼내 왔다. 그러고는 웃으면서 규칙을 설명해 주었다.

“버, 벌에 안 거, 걸리고 손을 다 넣으면, 보, 보물 얻을 수 있어요!”

수백 마리의 벌을 피해 손을 무사히 집어넣으면 안에 있는 보물을 가지고 갈 수 있다고?

그건 그냥 자살행위가 아닌가?

신드리는 공업 지구에 지낸 사이에 이상한 전통에 물들어 있었다.

“이넬리… 아?”

알렌은 어느새 상자 앞으로 다가간 이넬리아를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알렌이 말릴 틈도 없이 손을 구멍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고 얼마나 있었을까.

손을 몇 번 휘젓던 그녀는 무언가를 찾은 듯 손을 꺼냈다.

그녀의 손에는 아무런 상처가 없었다.

“드, 드디어 첫 서, 성공자다!”

신드리는 이넬리아가 성공한 것이 기쁜지 발할라의 홀에서 다른 물건을 꺼내 오려는 것 같았다.

알렌은 그녀가 더 기괴한 걸 꺼내 오기 전에, 이넬리아를 챙겨 떠났다.

뒤에서 그들을 찾는 소리가 들렸으나 뒤돌아보지는 않았다.

그렇게 어느 정도 공업 지구를 빠져나왔을 때, 알렌이 입을 열었다.

“…뭘 찾았는지 알 수 있겠나?”

“팔찌입니다.”

그녀가 보여 준 것은 얇은 황금색 고리에 정밀하게 세공까지 한 팔찌였다.

“…신드리는 이런 것도 할 줄 알았나.”

“공자님께서 쓰시겠습니까?”

“아니… 나는 됐다.”

알렌은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몸에 무언가 장식하는 건 연회장 같은 곳이 아니면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거추장스럽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그러시다면, 채워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녀가 얇은 손목을 내밀었다.

알렌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팔찌를 채워 주었다.

하얀 살결 위로 반짝거리는 황금색 팔찌는 그녀에게 잘 어울렸다.

“잘 어울리는군.”

“……감사합니다.”

그녀가 수줍게 웃었다. 너무 가까이 붙은 탓인지, 그녀에게서 진한 라일락 향이 났다.

“그럼, 다른 곳으로도 가 보지.”

* * *

공업 지구를 빠져나와 향한 곳은 동쪽의 연구 지구였다.

지금쯤 시끌벅적할 상업 지구나 주거 지구가 아닌 연구 지구로 온 이유는 간단했다.

“이곳이라고 했나…? 일리아나가 축제 때 일한다는 곳이.”

일리아나는 같은 동아리 선배가 학기 말 대련을 할 동안만 맡아 달라고 해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를 따라다니던 린벨 역시 벗어날 새도 없이 같이 잡히게 되었고.

“이, 이쪽으로 오라…냥.”

그녀가 일한다는 노점상을 찾던 중, 알렌은 믿기지 않는 것을 보았다.

“…저건 일리아나가 맞나?”

“맞는 것 같습니다.”

짐승왕의 손녀로서, 품위와 예절을 지키던 그녀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하녀복을 입은 채 말끝 어미에 -냥을 붙이며 호객을 하고 있었다.

린벨은 바쁘게 요리를 내고 있었고.

일리아나가 요리를 전혀 못 하니, 그녀에게 사람이나 모으라고 시킨 모양이었다.

알렌은 인사라도 할까 생각하다가, 그녀의 자존심을 생각해 그냥 지나치기로 마음먹었다.

린벨쪽도 주문을 처리하느라 이야기할 시간이 없어 보였고.

그렇게 이넬리아가 괜찮다는 근처의 노점상에서 허기를 채우고, 연구 지구를 돌아봤다.

이름만 들어보면 공업 지구보다 더 한 게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았으나, 연구 지구는 공업 지구와 다르게 유적에서 나오는 물품들을 전시해 두고 있었다.

완벽에 가깝게 복원된 문자.

세계 식물원의 분점에서 구한 몇천 년 전의 해바라기 꽃.

스팀펑크의 십이각 열전도 시계.

고대의 마법 영상 기록 수정구의 풍경.

말 그대로 유적에서 발견한 것 중, 가져올 수 있는 것을 다 가져와 복원하거나 구경할 수 있게 전시해 놓았다고 할 수 있었다.

보통 유적의 물건은 가져오지 못하니까.

저렇게라도 복원에 성공했다는 건 엘피스의 기술이 밖의 다른 나라들보다 몇 배는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했다.

꽤나 흥미로운 것들이 많았기에 알렌과 이넬리아가 연구 지구를 빠져나왔을 무렵은 오후의 해가 반쯤은 지났을 때였다.

“저녁은 이르게 먹도록 하지. 주거 지구로 갈 생각인데…, 괜찮은 곳이 있나?”

“대부분의 귀족 손님이 높은 평가를 준 장소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커다란 대로를 걸어 도착할 서쪽의 주거 지구는 알렌이 영지에서 봤던 것과 같은 일반적인 축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기름을 머금은 남자가 불을 뿜어내고, 공 위에 올라간 사내가 칼로 저글링을 한다.

5m 될 법한 높이의 줄에 두 발로 서서 묘기를 펼친다.

두 손으로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인형사는 연극을 선보인다.

알렌이 어려서부터 영지에서 많이 보았던 묘기에서부터, 각 지역에서 몰려온 서커스단의 묘기를 구경하다 보니 식사를 시작하게 된 건 서쪽에서 옅은 달의 모습이 보일 적이었다.

“…이거, 미안하군.”

“아닙니다. 공자님의 색다른 면을 볼 수 있어서 저도 즐거웠습니다.”

그녀의 장담대로 린벨의 요리에 익숙해진 미각이 만족할 정도로 훌륭했다.

“다음에도 괜찮은 식당이 있다면 종종 같이 오도록 하지.”

“…네.”

이곳은 레이첼과 한 번 오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현재 그녀는 학기 말 대련을 끝마치고 푹 쉬고 있을 테니.

그렇게 식사를 끝마치고 나가려는데, 밖에서 소란스러움이 느껴졌다.

“와아아아!”

“저거 봐!”

“퍼레이드다!”

그들의 외침에 따라 고개를 돌리니, 대로의 한가운데가 비어 있고 그곳으로 거대한 도마뱀 한 마리가 느릿하게 뒤쪽의 마차들을 끌었다.

마차의 위로는 온갖 예인들이 자신들의 끼를 선보이고 있었다.

“…흠, 이러면 상업지구로 갈 수가 없는데.”

“공자님 괜찮으시다면… 저건, 어떻습니까.”

“음?”

알렌이 고개를 돌리자 보인 건, 첫날부터 강렬한 인상으로 그의 기억에 박혔던 기물.

철마, 기차였다.

알렌과 이넬리아는 대로가 막혀 있었던 관계로 가까이에 있던 역에 들어왔다.

알렌은 보통 대로를 걸어 다녔기에 처음이었으나, 이넬리아는 몇 번 사용한 적이 있는 듯 능숙하게 그를 도왔다.

“공자님, 이 토큰을 구매하시면 기차에 탈 수 있어요. 그리고 다 쓴 토큰은 내릴 때 반납해야 문이 열릴 거에요.”

“…영지에 하나 들여놓고 싶을 정도군.”

“아마, 드워프… 라면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그녀의 말에 알렌은 고개를 돌렸다. 기차역에서 일하고 있던 직원들은 대부분이 드워프들이었다.

햇빛 하나 째지 못하니 지하에서 일할 수 있는 직업을 고른 건가….

“신드리 남매가 얼른 더 성장했으면 좋겠어.”

“…아마 두 명이서는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가…, 아깝군.”

철마, 기차는 빠르게 이동해 남쪽의 상업 지구에 도착했다.

상업 지구에서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듯 거대한 야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알록달록한 불빛은 사람들이 잠드는 것을 막았고, 짙은 어둠도 대낮처럼 밝게 비췄다.

“정말 중요한 경매는… 축제 마지막 날에 열리니 오늘은 야시장 구경만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뜻대로 하게. 안내를 맡은 건 자네니.”

“그럼…, 야시장에 얽힌 이야기라도 해 드리겠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야시장을 구경했다.

특이하게도 야시장에 얽힌 이야기들은 이 장소 자체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였다.

이 자리를 점령하고 있는 노점상은 사실 어디의 감자를 팔던 농부였는데, 자신의 땅에서 고대 유물이 나와서 그걸 팔고 이곳으로 왔다던가.

그런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야시장 곳곳을 살폈다.

“이건….”

그렇게 걸음을 옮기던 중, 알렌의 발걸음이 멈췄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넬리아가 다가오자 알렌은 허리를 숙여 어느 점포의 회오리 문양이 새겨진 돌멩이들을 집었다.

“이건 얼마지?”

“그 회오리 돌은….”

상인은 알렌의 옷과 뒤에서 그를 기다리는 시녀를 보고 가격을 세 배 높였다.

“하나당 3 실버 주십시오.”

“3 실버?”

알렌은 흥정 하나 하지 않고 그곳에 있던 회오리 돌이라 부르는 것들을 사들였다.

그녀는 알렌의 쇼핑이 끝나고도 조용히 있다, 인적이 드물어질 때쯤 입을 열었다.

“공자님, 그 물건을 사신 이유가….”

“이 물건은 회오리 돌 따위가 아니야. 진짜 이름은 회류석. 바람 계통의 마법을 익힐 때 도움이 되지. 어머니의 방에서 본 적이 있어서 알아차렸네.”

“그렇다면 본래 가격은…?”

“못해도 아까 준 가격의 20배는 더 받아야 될 거다. 마법 수련을 증진시켜 주는 물건의 수요는 항상 넘쳐나니까.”

알렌은 소소한 이득에 즐거운 기분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방향을 잘못 나아간 탓일까, 야시장의 사람이 더 줄어들었다. 밝고, 알록달록하던 불빛들도 음침해졌고, 여기저기 로브를 쓴 사람들이 많아졌다.

알렌은 걸음을 멈췄다.

“이넬리아, 안내를 부탁해도 되겠나?”

“네, 이곳은 노예를 거래하는 곳이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

콰광!

이넬리아가 말하던 중 갑작스레 들려온 폭음에 그녀의 뒷말이 묻혔다. 알렌은 몸에 적당한 긴장감을 끌어 올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두 개의 인형이 어떤 거대한 자루를 서로 가지고자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어둠에 잘 보이지 않았으나, 알렌의 눈에 두 개의 인형 모두 낯이 익었다.

“하이젤, 마리아…?”

두 명은 알렌의 말소리는 듣지 못한 건지 결국 하이젤로 추정되는 이가 자루를 가로채는 데 성공해 도망쳤다.

마리아는 그게 분한지 가장 높은 층의 옥상에서 하이젤이 도망친 방향을 바라보다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원작인가….”

이제 곧 여름 방학이 되겠지.

알렌은 그 안에 검은 책과 하얀 책을 비롯한 가지고 있는 지식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돌아가자, 이넬리아. 구경은 다 했으니.”

그녀의 뒤를 따라 걸음을 돌렸다.

“다음에는 다른 이들이랑 함께 오면 될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알렌은 여름 방학 후에 있을 사건을 생각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축제의 둘째 밤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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