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09화 (109/212)
  • 제109화

    신입생들이 실기 시험을 끝마치고 돌아왔다.

    먼저 탈락한 학생들은 남은 2주 동안 실기 시험이 끝마칠 때까지 있다 같이 돌아오게 되었다.

    율리우스는 그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점수를 기록했다.

    사람들을 이끌고 무인도 중앙에 있는 보스를 쓰러트렸고, 조교들이 여름날 땀을 흘리며 준비한 히든 피스 대부분을 수거하기도 했으니까.

    거기에 학생들과 전투를 벌이며 탈락시키고, 많은 몬스터까지 죽인 그는 이번 시험의 주역이었다.

    비록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아 필기시험이 아슬아슬했지만, 그 정도는 세 번째 학기 말 대련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계산도 섰다.

    알렌은 그들이 돌아오는 모습을 멀찍이 바라보고 있다가 기숙사로 돌아왔다.

    원래의 그였다면 돌아오는 율리우스를 기쁘게 맞아 주었을 것이다.

    그게 알렌이 세상에 만들어 둔 자신의 모습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생각해야 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모순, 생각, 계획. 그리고….’

    [네 선택이다. 네 마음대로 해라.]

    가이온의 마지막 말이 알렌의 행동에 제동을 걸었다.

    그는 방에 박혀 오랜만에 명상을 시작했다.

    용의 노심을 얻은 이후로 마력을 모을 필요가 없어졌고, 강대한 신체 덕분에 명상으로 잠을 줄일 필요도 없었기에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명상을 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는 그사이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아칸더스, 소네드, 율리우스, 심지어 레이첼까지.

    같은 기숙사에 지내는 이넬리아조차 알렌이 들어간 방의 문을 열 수 없었다.

    그렇게 알렌이 틀어박힌 사이, 예정대로 중간고사의 마지막 꽃이자 구경거리인 학기 말 대련이 다가왔다.

    학기 말 대련은 일주일 동안 진행된다.

    대련의 규칙은 간단했다.

    학생 한 명당 총 다섯 번의 대련을 시작한다.

    대련의 상대는 고급반, 상급반, 중급반, 하급반, 보충반 총 다섯 개로 나누어지는 만큼 한 반의 한 명씩 상대하게 된다.

    거기서 높은 반의 학생에게 승리를 한다면, 등수가 올라가고 자신보다 낮은 반 학생에게 패배한다면 등수가 내려간다.

    이러한 규칙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어떻게든 지지 않기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기껏 중급반 학생이 상급반 학생을 이겼는데 체력 관리를 못 해서 하급반에 패배하면 어쩌겠는가.

    잘하면 상급반에 올라갈 수 있겠지만, 아쉬운 결과로 중급반에 잔류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번 대결의 묘미는 얼마나 전략을 잘 짜고 체력 안배를 잘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학기 말 대련이 준비되면서 축제의 준비도 같이 준비되었다.

    학기 말 대련 자체가 아카데미에서 외부에 공개되는 몇 없는 행사인 만큼 외부인도 참가할 수 있게끔 축제를 열게 되었다.

    실기 시험이 지난 지 3일이 지났을 때쯤, 드디어 아카데미 본당에서 무작위로 대결 상대가 정해졌다.

    이사장이 공개적으로 마법을 발동했으며, 수천 명에 달하는 아카데미생 모두의 앞으로 대련 상대의 이름이 적힌 종이가 배달되었다.

    두려울 정도의 공간 제어 능력.

    알렌도 같은 공간 계통이라지만 그녀가 공간을 다루는 능력은 추종을 불허했다.

    ‘마치 선천적인 것 같은….’

    후천적으로 공간 계통의 마법 능력을 익혔다고는 상상조차 되지 않을 만큼 그녀의 마법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알렌은 대전 상대가 적힌 종이를 펼쳤다.

    A - 길레이 드림턴

    B - 보얀 카틀

    C - 루카

    D - 메힐 다즈

    누군가 일부러 조정했는가, 아니면 우연인가. 그의 눈이 한순간 마지막 보충반 학생의 이름에 닿았다.

    E - 율리우스 라인하르트

    알렌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어떤 선택을 할지 정했다. 알렌은 눈을 감았다. 결심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었다.

    * * *

    “자, 이번 신입생의 학기 말 대련을 시작합니다아아아아!!!”

    거대하게 나눠진 여러 경기장 곁에 수많은 관중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아!

    -빨리 시작해라아아!

    -드디어!

    대부분의 관중이 아카데미를 떠나라 환호성을 질렀다.

    일 학년의 대결은 첫날, 이 학년의 대결은 둘째 날, 삼학년의 대결은 셋째 날부터 시작되는 만큼 대련이 아닌 축제를 즐기는 사람도 많았지만, 관중석은 거의 만석에 가까웠다.

    “율리우스, 이제 힘을 숨기지 않을 생각입니까?”

    율리우스는 눈을 빛내며 다가오는 나타샤에게 답했다.

    “…숨긴 적도 없는데?”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무인도에서 그만한 실력을 보유해 놓고선, 보충반으로 들어갈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녀의 정상적인 물음에 율리우스는 잠시 생각했다.

    ‘…보충반의 기연을 얻으러 일부러 갔다고 하면 미친놈 취급당하겠지?’

    그렇다면 그녀의 착각에 어울려 주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맞아. 이제 숨길 이유가 없어졌거든.”

    “…혹시 그 이유가 당신 형님과의 후계 다툼 때문입니까?”

    율리우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장단에 맞춰 주는 거지만, 쓸데없는 오해를 불어넣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역시 그랬나.”

    그러나 그녀는 그런 율리우스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속삭였다.

    “당신은 자신의 편이 되어줄 이들을 모으고 있는 것이군요.”

    보충반 학생 주제에 선배를 이기거나, 신수를 부활시켜 이목을 집중시키거나, 유적 실습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하거나.

    “모두 알렌 공자와 같은 반에서 경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까.”

    “아니, 그게….”

    그렇게 되나?

    그녀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묘하게 설득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제 힘을 드러내는 이유는, 같은 반에 있더라도 세력에 밀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어서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뒤쪽을 눈짓했다.

    그곳에는 바이론, 벨제크, 마테우스를 비롯한 그가 모집한 조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디에서나 빛날 법한 재능을 가진 이들을 모으고 또….”

    그녀가 다른 곳을 눈짓하자, 율리우스도 그녀의 고개에 따라 시선을 돌렸다.

    여성들이 있는 곳에는 헬레나, 아이린, 아냐, 카트린느, 아벨린, 레이나.

    “그리고 저까지 일부러 여성들을 모으고 있잖습니까. 심지어 연정을 가진 게 뻔히 보이는 분도 보이는데 말입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녀의 눈은 율리우스가 반드시 그렇게 했으리라는 확고함이 여려 있었다.

    “원래는 조용히 관찰만 할 생각이었지만…,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그녀는 라인하르트 옆의 영지에 있기에 정보를 모두 구해 왔다면서 속삭였다.

    “당신은 어린 나이를 기점으로 망나니로 행동하더군요. 아마, 그때가 후계에 대한 첫 다툼이었을 겁니다. 그 후 당신은 망나니라는 악명을 통해 알렌 공자에게 안전을 보장받겠지요. 흔한 일입니다.”

    율리우스는 뒷걸음칠 치기 시작했다.

    뭐? 망나니인 척 연기를 해? 알렌 형님에게 안전을 보장받아?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자신이 아는 원작 속 알렌의 설정은 서클이 부서진 동생의 몸을 치료하기 위해 악마 계약자로 활동했었다.

    그러다 하이젤에게 당했지만, 그런 그의 우애를 율리우스가 의심할 이유는 없었다.

    “나, 나는 잠시….”

    [다음 선수! 보충반, 율리우스 라인하르트 학생 대기실로 오시기 바랍니다.]

    “이제 내 차례네, 그럼 나중에 이야기하자!”

    율리우스는 동아줄을 발견한 얼굴로 급히 경기장으로 이어진 대기실로 향했다.

    그가 사라질 때까지 미소짓고 있던 나타샤는 그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자 무표정하게 변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뒤로 다가온 레이나를 향해 물었다.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레이나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수긍하자, 나타샤는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있나요?”

    그녀의 기억에는 아직도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신수의 숲이 흑마법사들에게 점거되어 마경으로 변해 버렸을 때.

    그때 대수림에서 강자들을 보냈다면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돌아가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요귀 살바토르가 일부러 날뛰어 엘프 왕국이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신수의 숲을 정화하는 공을 세우게 하고, 이제는 그의 형과 일부러 갈등을 일으키게 만드는 게 소용이….”

    “그만.”

    레이나는 차가운 얼굴로 그녀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잘 기억하세요, 나타샤 제1 공주. 저희는 거래 관계입니다. 선을 지켜 주시길 바랄게요.”

    한동안 눈싸움이라도 하듯 서로를 응시하던 그녀들은, 나타샤가 한 발자국 물러남으로써 상황을 끝마쳤다.

    “……유의하겠습니다.”

    “자꾸 그런 식으로 알아보시려 든다면, 거래 상대를 바꾸면 될 일이에요. 저희와 거래를 원하시는 분들은 많으니까요.”

    그녀의 협박 비스무리한 말에 순간적으로 나타샤의 눈에 감정이 깃들었으나, 이내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어마마마나 팔강인 살바토르 마저 거래 상대로 받아들이는 이들이다.’

    그렇다면 자식은 아직 그 거래에 끼어들 자격이 되지 못했다.

    엘프 왕국의 다음 여왕인 제1 공주 일지라도.

    “다음부터 조심하겠습니다.”

    그녀가 리브레 왕국의 예절에 맞춰 고개를 숙였다. 레이나는 언제 냉혹한 표정을 보였냐는 듯 평소에 율리우스에게 보이던 미소를 지었다.

    “따지고 보면 저희는 같은 처지라 할 수 있으니, 오래 갈 수 있기를 바랄게요.”

    “저도 그러기를 바랄게요.”

    레이나는 대화가 끝나자 미리 차갑게 식혀 둔 수건을 들고 몇 분 되지도 않아 첫 경기를 끝마친 율리우스에게 향했다.

    “공자님!”

    “아, 레이나. 고마워.”

    “저는 공자님의 시녀잖아요.”

    나타샤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 고개를 저었다.

    자신도 최대한 연기를 한다지만, 레이나의 모습은 어느 쪽이 진짜인지 분간할 수조차 없었다.

    * * *

    알렌의 첫 번째 경기 상대는 A반의 길레이 드림턴이라는 학생이었다.

    거대한 도끼로 유명한 그의 가문은 처형자라는 이름이 대대손손 내려올 정도로 유명한 가문이었지만, 아쉽게도 그의 상대가 좋지 않았다.

    “아니, 내가 힘에서 밀….”

    쾅!

    자신감 있게 선조에게 물려받은 선천적인 힘과 비전으로 상대를 끝장내려던 길레이는, 자신보다 더 강한 완력의 알렌에게 저항할 새도 없이 날아갔다.

    [A반의 길레이 드림턴! 장외패!]

    -와아아아아!

    -저 학생이 팔강의 제자라고?

    -이 주 만에 저렇게 변했다는데?

    알렌은 상대에게 어떤 틈을 보여 줄 생각이 없었다.

    다음 상대인 B반 보얀 카틀도, C반 루카도, D반의 메힐 다즈도.

    알렌은 그들이 뭘 준비할 틈도 없이 단 한 방에 끝내 버렸다.

    원래 마법 강의를 들으며 보조적으로 검을 익힌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팔강의 제자가 된 후 육체적으로도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 보이자 술렁거리는 건 당연했다.

    -역시 팔강인가….

    -무슨 방법을 썼을까요?

    -짐승왕의 특별한 비전이겠지.

    그러나 그 모든 의심과 성장 속도 역시 팔강의 제자란 신분 하나로 쉽게 넘어갔다.

    다른 이들이 보는 팔강의 제자란, 그런 의미였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신기할 것이 없는 존재.

    이렇게 순식간에 네 번의 경기를 연승하며, 알렌은 마지막 상대와 대련하러 가는 통로에서 생각했다.

    원래의 알렌이라면, 며칠 전의 자신이라면 이곳에서 어떻게 했을까.

    막상막하의 실력을 보여 주다, 결국 안타깝게 패배했을 것이다.

    그것이 외부의 시선에 보여 주려던 알렌의 계획이었다.

    그 후 율리우스와 앙금이 없다는 걸 과시하며, 함께 경기장을 내려가고.

    비록 E반에는 졌다고 하지만, 네 번의 연승 그리고 팔강의 제자란 신분이 있으니 A반에서의 자리도 쉽게 따낼 수 있었다.

    [E반 율리우스 라인하르트의 상대는! 이건 운명의 장난인가요!]

    그래, 본래의 알렌이었다면.

    [A반 알렌 라인하르트! 서로의 실력이 비등하다 생각되는 가운데….]

    당연히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다.

    그게 옳으니까, 그게 최선의 방법이었으니까.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형제의 난! 시작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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