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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05화 (105/212)

제105화

알렌은 새벽녘부터 일찍 기숙사를 나섰다.

기숙사 주위에 조성된 화원에서는 어슴푸레한 시간에서만 맡을 수 있는 촉촉한 냄새가 났다.

가이온이 기다리는 훈련실은 아카데미를 가로지르는 북쪽의 입구를 지나 얼마 더 가야 나왔다.

엘피스에 높은 고층과 기상천외한 물건이 많은 만큼, 지하에 훈련실을 짓는 것쯤은 비교적 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만한 양의 오레이칼코스를 사용한 건 믿기지 않지만.’

오직 팔강을 위해.

연금술과 대장술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오레이칼토스 합금으로 벽과 천장 모두를 틀어막은 훈련실의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동쪽에 있는 기숙사에서 아카데미를 빠져나가는 북쪽의 큰 대로까지.

한참 아침 준비로 바쁠 서쪽의 주거 지역과 남쪽의 상업 지구와 다르게 활기참이 덜 했다.

많은 이들이 아침을 준비하는 가운데, 아카데미를 가로지르던 도중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퇴학으로 정신적 충격을 버티지 못했다고….”

“한 명은 그래도 살았는데, 두 명은 곧바로 목이 부러져….”

“쯧, 가해자라며. 그럼 잘 된 거 아니야?”

알렌은 어제 보던 광경이 떠올랐다.

여학생 한 명에게 쩔쩔매던 세 명의 남학생들.

알렌의 걸음은 어느새 저도 모르게, 인파를 파고들고 있었다. 왜인지는 몰랐다. 그저, 봐야 한다는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어느 정도 재능은 있을 텐데, 자살이… 앗, 누구야.”

“물러나시기 바랍니다. 잠시 후면 아카데미 측에서 정리할… 학생!”

사람들의 틈을 지나가고, 어떨 때는 강제로 파고들며, 접근을 막는 경비까지 비켜섰다.

그리해서 나온 인파의 끝에는, 두 구의 시체가 있었다.

구할 수 없는 것은 구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아.”

의미 모를 탄성이 새어 나왔다. 동공이 짙게 흔들렸다.

작은 몸집의 남학생과 커다란 체격의 남학생 두 명이 죽었다.

알렌은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은 선택받지 못했다.

그게 전부였다.

* * *

“오늘은 어제보다 집중력이 떨어지는데, 할 마음이 있나?”

“…죄송합니다.”

“네가 하고 싶다던 특훈이다. 내가 아니라. 다음에도 다른 데 정신을 파는 것이 걸린다면….”

가이온의 노란 동공이 날카롭게 변해 알렌을 내려다보았다.

“그때는 후회하지 마라.”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흥, 말로는 누가 못하냐. 어르신의 말을 괜히 헛듣지 말고.”

“예.”

알렌은 가이온이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는 것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 두 명의 죽음을 본 이후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어제 그들의 사정을 알게 되어서일까?

아니면, 그들을 영입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사실 그 어느 것도 명확히 할 수 없었다.

그저 조금…, 그래. 조금 어지러운 기분이었다. 분노나, 슬픔 그런 감정 같은 게 아니었다.

그저, 무언가 가슴속으로 쌓였다.

끼익-

쌓여 가는 기분이었다.

알렌은 한숨을 내쉬며 발걸음을 옮겼다. 발이 닿는 곳은 기숙사가 아닌, 어제 한 번 갔었던 장소였다.

“조심, 조심하고! 천천히 옮겨라!”

“내부 구조는… 고칠 것 없이 그대로 다듬기만 하면 돼!”

평소보다 훈련을 일찍 끝마친 덕분인지 인부들이 아직까지 작업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소네드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상단의 지부를 꾸몄다.

“소네드.”

“아, 공자님! 어쩐 일이십니까!”

“혹시 아칸더스가 위에 있나?”

“예, 있습니다. 부르시겠습니까?”

알렌은 고개를 저으며 계단을 향해 걸었다.

“아니, 나눌 이야기가 있어서 그러니 내가 올라가지.”

“…혹시, 저도 필요하다면….”

“개인적인 일이니 신경 쓸 필요 없네. 아, 저번에 말했던 장소로 물건을 계속 보내고 있겠지?”

“아, 예, 예. 확실히 신경 써서 확인했습니다.”

그늘진 여왕과의 약속은 지켜지고 있다.

알렌은 간단한 몇 가지를 더 점검하고, 최상층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가도 되겠나?”

“예, 들어오십시오.”

알렌은 들어간 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스스로도 왜 이곳에 왔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죽은 이들에 대한 동정심인가?

아니면 어제의 결정이 그들의 죽음을 만들었다 느낀 것에?

알렌은 복잡한 생각을 그만두고 입을 열었다.

“…후. 기다려 줘서 고맙군.”

“아닙니다. 여기에 오신 이유가 혹시….”

“그래.”

여러모로 그들을 주시하고 있던 아칸더스가 이미 한나절이나 지난 뒤의 소식을 모르지 않을 터.

“영입할 수, 없겠나?”

알렌의 물음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정말 되느냐고 묻는 것이 아닌, 일종의 한탄에 가까운 물음.

그러나 뜻밖에도 아칸더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공자님께서 만약에 물으실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들 중에서 율리우스 님의 눈에 걸리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인물은 분류해 놓았습니다.”

그가 건넨 것은 어제와는 다른 단 한 장의 종이였다.

“이건… 살아남은 한 명인가?”

“예, 이름은 노아. 평민 출신의 2학년입니다. 그리고….”

아칸더스는 한 장의 종이를 더 꺼냈다. 그곳에는 알렌의 눈에도 익숙한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포효하는 청사자.

“…라인하르트.”

“라인하르트 가문에서 후원하는 학생 중 한 명입니다.”

* * *

[정말 제가 가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이번에는 내가 가도록 하지.]

[후원하는 학생을 가문 사람이 보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나.]

[그건 그렇습니다만….]

알렌은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말하는 아칸더스를 뿌리치고 직접 걸음을 옮겼다.

비단, 남학생 두 명의 죽음으로 인한 것 때문이 아니라, 정말 한 번 더 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레이첼의 권유를 따르는 건데.’

학기 초, 그녀가 가문에서 후원하는 이들을 만나 보겠냐고 권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냥 넘겼었는데 이런 결과로 돌아올 줄이야.

‘그럼 얼굴이 익숙한 것도, 그 때문인가?’

아버지의 집무실에서 그에 관한 서류를 스치듯이 본 적이 있을지도 몰랐다.

알렌은 목적지에 도착하자 걸음을 멈췄다.

「여기가 맞아요…?」

베스틀라가 의심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 알렌도 눈앞의 건물이 진정 사람이 머물 수 있는 곳인지 의심스러웠다.

낡은 나무로 만들어진 벽은 곳곳에 진흙으로 덧칠을 해 두었고, 높이가 다른 건물과 비교해 낮은 오 층이었지만 그마저도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러나 아칸더스에게 받은 정보에 따르면 그는 기숙사에서 쫓겨난 이후 이곳에 머물고 있었다.

이제는 없는, 남은 두 남학생과 함께.

아침에 그 혼자 살아남은 후, 아카데미의 치료를 받고 다시 이곳에 보내졌다고 했다.

알렌은 나무 문을 밀며 안쪽을 살폈다. 안쪽에는 통나무로 보강을 해 두었는지 밖과 비교해 튼튼해 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이곳은 130년 된 전통의….”

“이곳에 노아라는 학생이 있나?”

알렌은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여관 주인의 말을 막고 질문을 던졌다. 그는 잠시 알렌의 복장을 살피더니 금방 사근사근해진 얼굴로 답했다.

“어유, 잘 찾아오셨습니다! 그 학생이라면 아침에 무슨 일이 있던지 친구들과 같이 나가더만, 오후에는 혼자 들어오더라고요.”

“몇 호에 머물고 있지?”

“그것이….”

그의 눈알에 데굴데굴 굴러갔다. 알렌은 그 모습에 다른 귀족들이 이곳에서 날뛰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곳의 주민들은 아카데미가 절대적으로 지킨다는 것 때문인지 겁이 없었다.

“쯧.”

알렌은 말씨름을 하기도 귀찮았기에 은화 두어 개를 던졌다. 여관 주인은 귀신같이 은화를 받아 내더니 함박웃음을 지었다.

“바로 위층인 201호에 머물고 있습니다.”

알렌은 말없이 계단을 올랐다.

저벅저벅-

사람이 그렇게 많이 머무는 곳은 아닌지 인기척이 없었다.

다 낡은 계단과 복도를 지나 도착한 201호실의 앞.

알렌은 문을 두드렸다.

-똑똑

알렌은 감지력을 은밀히 펼쳤다. 알렌의 뇌리로 201호실에 자리한 생명체의 모습이 그려졌다.

-똑똑

“들어가도 되겠나?”

그렇게 몇 번이나 두드렸을까. 이러다 낡은 문짝이 먼저 박살 나지 않을까 싶을 때, 목소리가 들렸다.

“……예, 마음대로 하십시오.”

-철컥

낡은 침대 하나와 서랍장, 그리고 작은 옷장이 자리한 방.

그 침대의 위로 어제 봤던 무뚝뚝한 인상의 남학생이 알렌을 바라보지도 않은 채 축 늘어져 있었다.

흡사 살아 있는 시체나 다름없는 모습.

“그래서, 뭐 하러 오셨습니까.”

“도움을 주고 싶어서.”

알렌의 말에 어이라도 없는지 그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들어온 사람 얼굴이나 보자는 기색으로 고개를 들었고.

“도와준다고요? 그게 무… 슨….”

눈이 크게 뜨였다.

알렌의 얼굴에 의문이 새겨졌다.

“무슨 문제가 있….”

“라인하르트? 이제 와서?”

그의 얼굴이 지옥의 마귀라도 되는 것처럼 일그러졌다.

그것이 알렌의 기억을 자극했다. 분명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흐릿하면서도 기억에 박힌 얼굴.

‘조금 더 늙고, 억세게 변한다면….’

그가 분노와 슬픔에 젖은 얼굴로 외쳤다.

“왜! 이제서야 온 겁니까! 내가 찾아갈 때는, 단 한 번도 보이지 않더니, 왜!”

피로 물들인 바닥, 해골이 쌓인 제단, 육편으로 장식된 오망성의 마법진. 피맺힌 절규와 반항.

“어째서…!”

그리고 죽음, 얼굴이 겹쳐진다.

“아.”

기억이 떠올랐다.

* * *

알렌이 악몽을 꾸지 않게 된 건 언제부터일까.

회귀한 직후, 그는 악몽을 안 꾸는 날이 없을 정도로 악몽은 일상에 가까웠다.

악마 소환의 제물로 바쳐진 이들.

율리우스라 다투느라 모친을 잃은 린벨.

자신이 진짜 율리우스인 척 다가오는 김우진.

그런 악몽을 더 이상 꾸지 않게 된 건, 키메라 술사의 토벌 이후부터였다.

그들의 희생은 1회차, 없어진 과거에 묻혔지만, 자신은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때부터 악몽은 꾸지 않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린벨은 알렌에게 다소 특별한 존재였다.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과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녀와 이넬리아는 죽지 않았고, 알렌의 시녀로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다.

율리우스 안의 김우진 역시 마찬가지다.

1회차를 통째로 바쳤음에도 대적할 수 없었던 존재. 반드시 죽이고 싶은 존재인 동시에 진짜 율리우스의 영혼과 접점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단서.

알렌이 행동을 하는 모든 근본적인 이유에 그가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이들은?

악마 소환을 위해 수십, 수백, 얼마나 많은 인간을 바쳤는지 기억도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들의 희생을 기억한다고 해서, 현생의 자신이 무언가 해 줄 수 없었으니까.

그러니, 지금 같은 상황은 알렌은 전혀 상정하지 않았다.

“왜, 왜 이제야 온 겁니까! 이미 다 끝났는데! 왜!”

그는 알렌의 얼굴을 알고 있는 것처럼 발작했다.

알렌은 동요하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억지로 평점심을 유지했다. 그러나 떨리는 목소리를 가리지 못했다.

“…무슨 말이지?”

“당신네 라인하르트가 만나 주지 않았으니까! 얼굴조차 보여 주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그의 정신이 온전해 보이지는 않았다. 눈물과 억울함, 분노와 같은 여러 감정이 섞였다.

“그게 무슨 말이냐.”

“공자에게 있어 우리는 무엇입니까?”

“거래다.”

알렌은 짧게 답했다. 그에게 있어 후원은 주고받는 거래 관계에 가까웠으니까.

“저는, 저희에게는 희망이었습니다! 많고 많은 평민 중 저를 선택했다는 희망! 그렇게 투자를 하실 거라면, 더 해 주실 수는 없었습니까?”

그는 모든 책임을 그에게 돌리듯 분노를 터트렸다.

그래, 그 모습은 마치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듯 억울함을 보였다.

“저희가 그년한테 고통받을 때, 도움을 요청하러 몇 번이나 가신 줄 아십니까?”

전혀 몰랐다. 애초에 알렌은 후원이라는 것을 레이첼에게 처음 들었다.

“항상 그 빌어먹을 어린 시녀한테 막혔단 말입니다!”

어린 시녀라…, 린벨? 본래라면 믿을 필요도 없는 말이었지만, 린벨의 진지한 모습을 본 그는 섣불리 단정 지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 오셨습니다. 마크도, 루이도 다 죽었는데….”

그는 그러고서 혐오 어린 눈으로 물었다.

“결국, 당신도… 율리우스랑 다를 게 무엇입니까?”

알렌의 입이 닫혔다.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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