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04화 (104/212)

제104화

“오늘은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내일도 알아서 오고.”

“늦지 않겠습니다.”

가이온은 알렌의 인사에 알아서 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렌은 지붕을 밟고 시야에서 사라지는 그를 바라보다가 걸음을 돌렸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나.”

「뭘요.」

베스틀라의 뚱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알렌은 훈련 내내 빈틈을 찾아보겠다는 듯 소리치던 그녀를 떠올리고는 쓴웃음 지었다.

“가르침에 부족함이 있어 보이나?”

줄어든 생도들에 조용해진 아카데미는 평소보다 횅해 보였다. 훈련장에서 열의를 다지는 기합도 평소보다 작게 들렸고, 지나다니는 학생들의 빈 공간이 느껴졌다.

「…솔직히, 그렇지는 않아요. 네. 저랑 방향성은 다르지만…, 확실히 거창한 이름값은 하네요.」

그녀는 거기까지 솔직하게 말하고는 더 칭찬하기 싫다는 듯 우물거리다…, 끝내 말을 끝마쳤다.

“가르치는 것에 익숙해 보이기도 했고.”

「확실히 그건 의외긴 했어요. 노친네 성격답지 않게 섬세하더라고요.」

“너보다도?”

「그건 제가 더 낫거든요!」

농담인데 뭘 그렇게 열을 내나. 알렌이 사과를 했음에도 그녀는 자신이 더 낫다느니, 그래도 어떻게 첫 스승을 비교할 수 있냐며 소리 질렀다.

알렌은 그녀의 잔소리를 배경음 삼아 걸음을 옮겼다.

저녁이 되자 학생들의 숫자가 줄어든 게 퍽 체감이 되었다.

무인도로 떠난 신입생도 신입생이었지만, 다른 학년들도 차례에 따라 시험을 치기 때문이었다.

그 탓에 평소보다 사람이 줄어든 거리는 알렌에게 꽤나 낯선 감상을 선물했다.

그렇게 기숙사로 돌아가던 도중, 누군가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주제도 모르고 나한테….

평소 같았으면 무시했을 텐데.

사람이 적어서일까, 아니면 이 시간에 시험 준비가 아니라 다른 일을 하는 것에 대한 궁금증일까.

알렌은 기숙사로 향하던 걸음을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돌렸다.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뭐라고 소리치는지 명확히 들렸다.

-…원이 없어졌다고 나한테 대들어?

-…레기 같은 새끼들

-…꼴좋다! 지금 그렇게 있는 게 어울려!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뭐라고 소리치는지 명확히 들렸다.

그렇게 알렌이 소리의 진원지로 보이는 장소에 도달했을 때, 보인 것은 의외의 광경이었다.

“네가 먼저 우리를 건드렸잖아. 그래 놓고 뭐? 피해자?”

“우리도, 우리도 네가 먼저 이상한 소문을 내지 않았으면 넘어갔을 거라고!”

“제발…, 퇴학당하고 너무 힘들다. 지금까지 선동했던 것들 다 넘어가 줄 테니까 퇴학만은….”

온몸에 붕대를 감싼 세 명의 남학생이 여학생 하나를 상대로 말싸움하고 있었다.

그러나 알렌이 의외라고 생각한 점은, 밀리고 있는 것은 여학생이 아닌 남학생들이라는 점이었다.

“제발 퇴학만은? 지랄하지 마! 후원이 끊기자 득달같이 물려 했던 주제에.”

“그건 네가 먼저 자크니르 님의 가문에서 후원받는 사실을 이용해서 선동했잖아!”

그녀의 말에 격분했는지, 덩치가 큰 남학생이 소리쳤다.

“선동? 하.”

그러나 여학생의 반응은 간단했다.

짝-

여학생보다 두 배는 클 법한 남학생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래, 내 영향력을 높이고자 선동했지. 그래서, 뭐?”

짝-

남학생의 고개가 다시 반대쪽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어쩔 거냐고.”

남학생은 분노했는지 몸을 부르르 떨렸다. 그러나 그녀가 한 번 노려보자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대신 곁에 있던 작은 키의 남학생이 떨리는 어조로 답했다.

“…그래도 퇴학은 심하잖아. 우리가, 도대체 뭘 했다고….”

“너희가 뭘 해? 나한테 강제로 요구했잖아.”

“우리는 그저 네가 한 짓의 사과를 요구…!”

그녀는 비웃는 표정을 지으며 며칠 전에 일어난 사건을 언급했다.

“정말 그럴까? 여학생 하나를 따돌린 가해범 씨.”

“그건 네가 소문낸 거잖아!”

“이미 그렇게 아카데미에 퍼졌으면 그게 진실이지. 안 그래?”

알렌은 저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나서야 며칠 전, 아칸더스와 소네드가 이곳에 올라왔을 적 벌어진 사건을 떠올렸다.

‘율리우스가 또 무슨 저질렀나 싶었는데….’

직접 확인해 보니 가해자가 완전히 뒤바뀌었지 않은가.

여학생을 따돌렸다는 주동범들은 으슥한 장소에서 주먹 하나 못 드는 순둥이들뿐이었고, 그들에게 피해자라고 공표 받은 여학생이야말로 오히려 저들을 괴롭힌 것처럼 보였다.

‘율리우스한테 퇴학당하고, 원한도 있어 보이니….’

스콜에 끌어들일 만한 인재로군. 알렌은 사건이 며칠이 지났음에도 아칸더스가 접근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에 의아했다.

우선 알렌은 상황에 직접 끼어들지 말지 추이를 지켜봤다.

“그러게, 내가 후원이 끊어졌을 때 그냥 있지, 왜 건드렸어?”

“그냥 사과 한마디, 그 한마디를 들으려고 한 게 죄야?”

“죄는 아니지, 그런데….”

그녀는 유일하게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노려보던 남학생의 멱살을 틀어쥐며 배시시 웃었다.

“그 상황에 마침 율리우스 님이 나타나셨잖아?”

알렌은 여학생이 멱살을 튼 남학생에 자꾸 눈이 가는 걸 느꼈다.

‘…왜 이렇게 익숙하지?’

그러나 아무리 쳐다봐도 떠오르는 얼굴이 없었다. 나중에 다시 생각해 봐야겠군.

“우리도 다 생각이 있어. 네가 퇴학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네가 한 짓들 다 폭로할 거야.”

“너희가? 푸후….”

알렌은 슬슬 끼어들 준비를 했다. 상황은 충분히 알았다. 이제 그들을 아칸더스에게 맡긴다.

그렇게 알렌이 나서려던 순간.

“율리우스 님이 직접 이 상황을 신경 쓴다 했거든?”

멈칫-

알렌의 발걸음이 멈칫했다. 율리우스가 직접 이들을 신경 쓴다고? 그럼 만약 저들을 여기서 데리고 갔다가 그들의 행색이 달라지거나 사라진다면….

‘꼬리가 밟힐 수도 있다.’

알렌은 결국 움직이지 못했다.

그녀는 어이가 없는지 비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희가 폭로? 하. 너희들은 이제 이곳에서 발붙일 수도 없을 거야.”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왜! 우리는 같은 도시에서 왔잖아….”

그녀는 그들의 절절한 물음에 딱히 깊이 생각하지 않고 내뱉었다.

“그냥.”

“뭐?”

“그냥 그랬다고.”

그녀는 발끝으로 땅을 툭툭 치며, 그들을 응시했다. 그녀를 바라보는 남학생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평민이라고 무시당하니까, 나도 뭐라도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운이 좋게 후원자가 자크니르 님의 가문이니 이용하지 않을 수 없잖아?”

“…그럼 우리는, 왜 건든 건데. 그런 이유라면 우리일 필요는 없지 않았어…?”

홀로 조용히 있던 남학생이 입을 열자, 그녀는 한심한 것을 바라보듯 그들을 내려 봤다.

“가까우니까 이 정도는 용서해 주지 않겠어?”

알렌은 거기까지만 듣고 몸을 돌렸다.

지금 당장, 저런 이들이 얼마나 있는지 더 알아야 했다.

* * *

알렌은 급히 아칸더스를 찾았다.

아칸더스가 자리한 장소는 상업 지구에 있는 건물이었다.

아직 내부를 다 꾸미지 못한 듯 건축 자재들이 어지러이 널브러져 있었고,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인부들은 다 퇴근한 모양이었다.

그는 최상층의 방문을 벌컥 열었다.

“아칸더스.”

“알렌 공자님, 갑자기 무슨 일로…?”

“늦은 시간에 찾아와서 미안하군.”

알렌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거친 발걸음과 살짝 굳은 표정은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암시했다.

“확인할 게 있어서 그랬네. 혹시 내가 전에 명령했던 것을 기억하나?”

“예, 당연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율리우스 공자에게 피해를 입은 이들을 포섭하고, 다른 지역까지 이송하는 것 아닙니까?”

아칸더스는 알렌의 갑작스러운 물음에도 막힘없이 대답했다. 알렌은 그의 차분한 말투에 흔들리던 감정을 가라앉혔다.

“…후, 그래. 그렇다면 이번에 아카데미의 남학생 세 명이 퇴학당한 건에 대해서도 알겠군.”

“예, 스콜에 끌어들일 수도 있는 인재였으니 철저히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왜….”

자신은 그에게 탓하려고 온 것이 아니었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함이었지.

“혹시, 영입되었나? 아니면 이미 진행 중인 사안인가.”

“그들은 스콜에 영입하지 않을 계획입니다. 이미 결정까지 내려져 접근도 그만뒀습니다.”

“왜, 그들에게 아직 접근하지 않았지? 그들에게 스콜에 투신할 동기가 충분할 텐데?”

“그게….”

아칸더스는 한숨을 내쉬며 뒤에 있던 서류 봉투를 꺼내 들었다.

수십 장이나 되는 종이는 내용이 적힌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손에 닿으면 잉크가 묻어나올 것 같았다.

“이걸 봐주십시오, 공자님.”

“…여기 있는 인물들은 뭐지?”

“스콜에 투신할 동기는 충분하나, 끝내 제외한 인물들의 목록입니다.”

알렌은 종이를 넘겼다.

사륵-

“루이, 마크, 노아….”

알렌이 봤던 남학생들의 이름을 제외하고도 수십 명이나 되는 인물의 간단한 인적 사항이 적혀 있었다.

“…이들이 왜 제외된 거지?”

아칸더스는 그 말에 자칫 냉정하게 느껴질 만큼 차갑게 답했다.

“그게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효율적이다?”

“예, 이분들은 포섭하자면 할 수 있지만… 그들을 포섭함으로써 얻을 이득보다 위험성이 더 큽니다.”

알렌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당장 자신만 해도, 율리우스가 직접 신경 쓰고 있다는 말에 결국 움직이지 못했다.

그런 그가 아칸더스에게 뭐라 말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한두 명이라면 모를까, 이들을 모두 데려온다면 율리우스 님께 확정적으로 이곳의 존재를 들킬 겁니다. 꼬리가 붙잡히는 건 물론이고요.”

그는 그것을 시험하듯, 걱정하는 얼굴로 물었다.

“그렇게 되더라도 이들을 데려오시겠습니까?”

알렌은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지.”

“모두를 구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도와주는 것도, 지키는 것도.

사람이 있어야 가능했다.

복수를 위해서 율리우스의 행동을 일정 부분 방관함으로써 복수자들을 모으는 게 자신의 목적이었다.

아칸더스는 자신의 목적에 충실한 것뿐이었다.

그러니 알렌이 그를 뭐라고 할 수 있나?

‘아니지.’

남겨진 자들은 안타깝지만, 알렉이 보기에도 그의 행동은 매우 적절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심적인 무언가가 가슴에 쌓여 가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찜찜했다.

구할 수 없는 것을 구하지 않는다.

정말로?

끼익-

* * *

무인도 서바이벌 에피소드는 율리우스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에피소드 중 하나였다.

수많은 사람의 시점으로 나뉘는 분량과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조연의 과거 설정.

그 모든 게 뒤섞여 주인공, 하이젤의 시점은 요만큼 밖에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접 소설 속에 빙의하게 된 이후, 이번 에피소드만큼 꿀인 곳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식량! 식량 내놔!”

“꺼져, 나도 이거 아껴 먹는 중이라고! 첫날인데 네 건 어디 있는데!”

“당연히, 아직 안 먹었지!”

고개를 내려서 보니 첫날임에도 식량의 심각성을 아는지 곧바로 전투를 벌이는 학생들이 보였다.

“쯧쯧, 품위 없게 뭐 하는 짓인지. 우리는 저러지 말자, 레이나.”

“그러고 싶지만…, 공자님 저희가 가진 식량이 더 있나요?”

레이나의 불안한 물음에 율리우스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없지만… 곧 생길 거야.”

율리우스는 웃으면서 뒤를 돌아봤다.

그들이 있는 곳은 무인도 중앙에 있는 거대한 산의 동굴이었다. 그는 운 좋게 근처에 같이 무작위로 이동된 레이나를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와 합류하고, 율리우스는 곧바로 히든 피스 중 한 곳에 자리 잡는 데 성공했다 일명 곰의 쉼터.

무인도 곳곳에 있는 이런 히든 피스들은 쓸 만한 아티펙트뿐만 아니라 식량, 의류와 같은 여러 가지를 제공했다.

“하루 한 끼는 먹을 수 있을 것 같거든.”

그 이상은 조금 발품을 팔아야 얻을 수 있었다.

쉼터 하나를 찾았다고 해서 무한정 머무른다면 생존과 난전이라는 주제에 맞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율리우스에게는 무인도 에피소드에서 봤던 수많은 히든 피스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

여러 명의 주연의 시점으로 전개된 사건과 히든 피스.

율리우스는 그 모든 곳의 정보를 알고 있었기에 날로 먹는 것에 가까웠다.

“그럼 어떻게 하실래요, 공자님? 저 밑의 학생들을 기습할까요? 아니면….”

레이나는 율리우스의 도움으로 주황색 재능까지 끌어올려졌다. 그 덕분에 지금 실력은 B반에 확정적으로 들어갈 정도.

그런 그녀의 자신감은 맘에 들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마, 오늘은.”

“네?”

레이나가 의아한 얼굴로 율리우스를 돌아봤지만, 그는 말해 줄 수 없었다.

지금 모습을 아카데미에서 지켜볼 수도 있는데, 무턱대고 첫날에 상대를 탈락시키면 협동심 점수가 깎인다고 어찌 말해 주겠는가.

그래서 율리우스는 다르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체력을 빼는 것보다 하루 푹 쉬고 지친 다른 학생들을 공격하는 게 더 낫잖아.”

“아….”

그녀는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은 그만두고, 저는 식사를 준비하겠습니다.”

“응, 부탁해.”

율리우스는 느긋하게 휴가를 즐기듯 천천히 행동할 것이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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