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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98화 (98/212)

제98화

먼지구름이 빠른 속도로 가까워진다. 알렌은 감지력으로 일대를 훑어보고는 천천히 말했다.

“우선 저것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군.”

“…알겠어요.”

그녀도 마적 떼를 처리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는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일리아나는 여전히 알렌을 의심하는 눈길을 거두지 않은 채였다.

알렌은 그런 그녀에게 단 한 마디만 내뱉었다.

“내가 저들을 처리하는 사이, 몸이나 살펴보는 게 어떻나.”

“예?”

“평소와 뭔가 다른 것이 느껴지지 않나?”

그녀가 잠시 눈을 감는가 싶더니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잠깐, 공자님 설마…!”

“조금 있다 이야기하지.”

알렌은 대답을 요구하는 그녀의 부름을 뿌리치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당신, 너무 약아빠진 거 아니에요? 일부러 지금 알려 줬죠?」

‘그렇게 느껴졌나? 우연이겠지.’

「잘도 그렇겠네요.」

‘오해는 빨리 푸는 것이 더 좋지 않나.’ 단지, 화를 푸는 데는 다른 곳으로 감정을 돌리는 것이 가장 상책이었을 뿐이다.

알렌이 이렇게 베스틀라와 잡담을 할 여유가 있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그저, 상대가 눈에 차지 않기 때문이었다.

키메라 술사, 거인 실험체, 타락한 신수, 흑마법사, 고대의 괴수….

지금껏 상대했던 적들에 비하면, 마적들은 알렌이 이렇게 움직일 필요도 없는 상대였다.

알렌이 움직인 이유도 그저 잠시 일리아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함일 뿐.

알렌은 마적들이 적당히 가까워졌을 시점에 멈춰 섰다.

‘요람의 부름은 일리아나 역시 위험할 수 있으니….’

알렌은 눈을 감았다. 이번에 사용하는 마법은, 새로 시험할 마법이다.

노심에서 실타래가 풀려나오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사용하는 순수한 마법이다. 그런 감상을 느꼈다. 요즘에는 검을 사용했으니.

실타래는 고요히 알렌의 통제에 모여들었다.

‘괜찮은 느낌이 드는군.’

매번 새로운 악기를 배우고, 그 악기를 마법으로 재현하는 위해 알아야 하는 것이 많다.

악기를 대충 아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연주할 수 있는가, 얼마나 손에 익었는가, 눈을 감고도 그려 낼 수 있느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미 회귀 전에 지겹게도 했었던 일이고, 여러 번 했던 일인 만큼 어느 정도 요령도 있었다.

중요한 건 하나였다.

‘얼마나, 악기를 이해했는가.’

품에 안긴 실타래는 첼로와 비슷하나 두 배는 작고, 끝은 네모난 흙색의 악기로 엮였다.

마두금은 초원의 악기였다.

넓은 지평선의 끝없는 장대함과 그 안의 살아 숨 쉬는 섬세함을 담는 악기.

그렇기에 말의 말발굽처럼 휘몰아쳤다가도, 짧은 풀을 스치는 바람처럼 흘러가는 것도 있었다.

그를 이해한다면 진짜 연주가들 같은 완벽함은 없더라도, 박동치는 심장처럼 생명이 담겨진다. 살아 있게 되는 것이다.

“이름은…, 그래.”

그것들을 손끝에 담았다.

오케스트라(Ⅰ) 수업에서 처음 배웠던, 그 감각을 담아서.

“자유의 광기.”

두 개의 현이 울리며, 하나의 마법이 어느덧 맨눈으로 보일 정도로 다가온 이들에게 길게 뻗어 나갔다.

공기가 바람처럼 그들을 휩쓸며, 아무런 효과도 없는 것처럼 스쳐 지나갔다.

“마, 마법의 효과가 없다! 얼른 접근해! 얼른!”

“접근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얼른 가라고-!”

소리는 계속 그들을 스쳤다. 그들의 속도가 점차 빨라졌다. 달려오던 마적 중 한 명이 쓰러졌다.

낙마한 이는 목이 꺾여 죽었다. 아무도 그를 보지 않았다.

“조금 더! 조금 더 빠르게 가자아아!”

“금화, 내 금화를 찾아야 돼! 더, 더!”

“내가, 내가 1등이다!”

어느새 그들의 눈이 붉게 변해 있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타고 있던 말조차도 눈이 벌겋게 변해 콧김을 뿜었다.

마적들 모두 체력을 신경 쓰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달리던 중, 마지막에 있던 마적이 앞의 동료를 향해 검을 던졌다.

푸슉-

“비켜, 비키란 말이야! 내가 먼저 가야 해, 가야 한다고!”

한 명이 더 죽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다들 서로 먼저 앞을 가기 위해 칼을 휘둘렀다. 알렌은 뒷전이 된 상황이었다.

“이 미천한 놈들아! 비켜라! 내 금화가 저기에 있다!”

“노인네나 비키시오! 이 금화에 미친 노…크악!”

두 명이 죽었고, 세 명이 죽었다.

현을 튕길수록 그들의 행동은 더욱 과감해졌고, 거리낌이 없어졌다.

서로 동료의 등을 찌르며 엎으려 달려 나갔고, 낙마한 상태에서도 발목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알렌의 마법이 끝났을 때, 그의 앞까지 도달한 이는 한 명밖에 없었다.

“죽어라! 죽어! 이제 금화, 내 금화를 위해서 죽으란 말이다!”

마적단에게 명령을 내리던 노인.

노인치고 유난히 몸이 좋아 눈여겨보고 있던 남자는, 허벅지가 뚫린 채 악을 쓰며 그에게 기어 왔다.

‘늙어서 마적질까지 하다니, 이유가 있나?’

알렌은 그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노인이 무슨 사정이 있든, 어떤 이유가 있든 그를 습격하고 목숨을 노린 건 사실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알렌이 그를 죽이고 돌아가려던 순간, 그의 입에서 나올 리 없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사도의 자리는! 내 것이었단 말이다!”

“뭐?”

“이제 조금이면 됐었는데! 원래 계획대로라면…!”

알렌은 급히 노인의 앞에 꿇어앉아 멱살을 틀어 올렸다.

“뭐라고? 방금 뭐라고 했….”

그 순간 노인에게서 강대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알렌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노인의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가 환한 빛을 뿜어냈다.

“살려…”

쾅!

노인의 머리가 박살 나며 피와 살점이 쏟아져 내렸다.

노인은 제대로 된 문장 한 마디를 내뱉지 못하고 죽었다.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는 상황.

알렌이 급히 시체에서라도 정보를 건져 내기 위해 다가섰다. 그러나 한 걸음도 떼기 전, 알렌의 앞으로 공간이 물결쳤다.

팟-

시체의 앞에 나타난 건 노인이었다.

방금 죽은 노인과 다른 깡마른 몸의 노인에게서는 옅은 술향이 배여 있었다.

상황이 이상했다.

죽은 노인의 정체는 뭐지? 방금 나타난 노인은 누구고. 죽은 노인이 말하는 사도가 순환교의 사도인가?

‘사도의 자리가 예정되어 있었다?’

알렌의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갔다.

갑자기 나타난 마적과 그 마적에 있던, 원래 사도의 자리가 예정되었다 주장하는 노인. 그가 정보를 내뱉으려 하자 머리가 터지며, 다른 노인이 나타나기까지.

상황이 너무 공교로웠다.

알렌이 모르는 무언가가 이곳에 끼어들었다.

심지어 알렌이 이 사도의 자리에 올라서기 전부터.

그렇게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게 맞다고 확신할 수 있나?’

이들은 누구고, 원래 계획은 무엇을 말하는 건가.

알렌은 지나치게 깊어지려는 생각을 끊고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는 깡마른 노인이 죽은 노인을 보며 굳은 표정을 짓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노인의 고개를 돌렸다.

“넌 누구지?”

노인은 그 말에 정신을 차린 듯 입고 있던 단출한 정장의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우선, 의외의 사고에 놀라셨을 공자님께 사죄를 구하고 싶습니다.”

“누구냐고 물었다.”

알렌이 흔들림 없이 그를 바라보며 묻자, 그는 지체 없이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중부의 정보 길드, 프시케의 카이란 지부장 블레임이라고 합니다.”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설명할 수 있나?”

“예, 당연히 해 드려야지요.”

그는 알렌이 경계심을 품은 것과 다르게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죽은 노인을 가리켰다.

“우선, 이자는 저희 길드에서 탈출한 정보 창고입니다.”

“정보 창고…?”

인간이 아닌 물건을 칭하는 듯한 그의 어조는 방금과 같이 평탄하기 짝이 없었다.

“예. 정보 길드에 들어오는 정보는 막대합니다. 하지만 지부마다 들여놓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되지요. 그걸 해결하기 위한 방책이 바로 정보 창고입니다.”

알렌이 들어 보겠다는 듯 대답하지 않자, 그는 설명을 계속했다.

“정보를 물리적으로 전하고 옮길 수 있는 양이 한정되니, 그 정보를 한 사람에게 집약시켜 지부마다 정보를 갱신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이 자는 몇십 년째 저희가 키운 정보 창고의 하나이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가 날 습격한 것과 무슨 상관이지?”

그는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표정을 흐렸다.

“유통 기한이 다 된 것이지요.”

“……유통 기한이 다 됐다. 사람에게 칭할 말은 아닌 것 같군.”

“하지만, 그 말 밖에 이 일을 제대로 설명할 단어가 없으니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설명해 드리자면….”

죽은 노인, 코피스는 몇십 년간 정보 창고의 역할을 하며 대륙을 떠돌았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이 새로 지부가 설치된 카이란 지부다.

그러나 그는 오랜 시간에 걸친 머리의 혹사와 나이로 인한 노쇠로 미쳐 버렸다는 것이다.

“공자께서는 상상이 가십니까? 그 몇십 년간 도서관 하나가 통째로 들어갈 만한 정보를 머리에 품고 대륙을 떠돈다는 것을.”

“그럼 내가 들은 말은 뭐지? 원래 사도의 자리가 내 것이라고 하던데….”

“그것도 마찬가지지요.”

그가 마지막으로 외운 정보가 순환교의 새 사도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코피스가 알렌이 사도인 것을 알고 이곳으로 찾아올 수 있었다고.

“마지막에 머리가 터진 것은 정보를 스스로 발설하려 했기 때문이고…, 제가 이곳으로 이동된 것도 같은 맥락의 일입니다.”

원래는 스스로 머리가 터질 것을 알기에 정보를 발설하지 않지만, 미쳐 버렸기에 그것을 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은 정말, 그럴듯했다.

회귀를 했던 알렌이 아니었다면 진심으로 그의 말을 믿었을 정도로.

그 정도로 노인의 말에는 논리정연함과 진실이 섞여 있었다.

그렇기에 알렌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정보 창고라는 존재 자체는 사실이겠지. 그러나 그 외는 모두 거짓이다.’

암암리에 도는 정보 창고의 존재는 권력이 있는 이라면 소문 정도는 들어 보기 마련이다. 하지만 다른 이야기는 아니었다.

알렌은 곧 진짜 예언의 사도가 등장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황상 그 사도의 정체는 죽은 노인일 확률이 높았다.

그의 존재는 1회차의 상황과 더불어 그들이 무엇을 획책하려고 했는지 짐작하게 해 주었다.

‘순환교의 분열.’

다른 이유는 공간 이동의 존재.

아카데미에서나 고대의 유적 그리고 레이첼의 존재 때문에 공간 이동이 흔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아티펙트로서 공간 이동은 매우 희귀한 측에 속했다.

알렌도 10년간 공간 계통의 마법을 다루며 공간 이동을 깨우치지 못했는데, 그걸 일개 지부장이 사용한다?

아티펙트로?

‘말이 안 되지.’

프시케의 주인이라면 모를까, 일개 지부장 따위가 사용할 물건은 아니었다.

차라리 금제로 머리만 터지고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알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알렌이 죽은 노인, 코피스의 몸을 탐색하는 걸 막듯 나타난 블레임의 존재는 오히려 알렌의 추측을 더욱 뒷받침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를 붙잡고 싶었다.

심문하고, 저 사도의 존재가 뭐냐고 프시케의 진짜 정체는 무엇인지 묻고 싶었지만….

“그래서 내 앞에 막아선 이유가 뭐지? 내 전리품에 손대는 이유는 못 들은 것 같은데.”

알렌은 그러지 못했다.

그들의 저력을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순환교의 사도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미래를 알아야 한다.

알렌은 회귀자이기에 사도인 척 꾸며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저들은. 어떻게 사도의 자리에 노인을 앉혔지?

‘…프란시스카 양이 있었다면 상담해 볼 수 있었을 것을.’

알렌은 그녀가 예언에 대해 믿는다고 했던 것을 기억했다. 그렇다면 그 이유도 있을 터. 알렌은 과거에 그 이유를 묻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현실적인 문제로는 지금은 저 노인 하나만 있다지만, 알렌이 적대적인 모습을 보일 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나타날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체는 저희 길드의 비밀이 담겨 있기 때문에 회수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이것의 정당한 전리품은 공자님이기도 하니…, 대신 다른 걸 드리지요.”

알렌은 팔강 같이 대부분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무력을 갖추지 않았고, 적들의 저력을 봐서 자신보다 더 강한 강자를 데려올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럼 무엇을 줄 수 있지?”

그렇기에 알렌은 한 걸음 물러났다.

“원하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아니, 생각해 두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희 프시케의 어느 지부에서든 단 한 번, 어떤 정보 의뢰든 받아들이겠다고 약조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흠….”

알렌은 잠시 생각을 마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지.”

“그렇다면 저희는 이만…,”

“단.”

시체를 수습하려던 블레임이 멈칫했다. 알렌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지금 의뢰를 하겠다.”

“지금 말씀입니까…?”

“왜, 불가능하나?”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어느 지부든 받아들이겠다고 했으니. 그건 카이란 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노인은 알렌의 태도에 의아해하면서도 자신의 말에 따라 다시 자세를 바로 했다.

“지금부터 몇 개월 전, 서부 리브레 왕국에 있는 라인하르트 영지에서 수확제가 열렸을 때 도적들이 지하수로를 통해 습격해 왔다.”

알렌이 꺼낸 것은 그가 지금껏 알아볼 곳이 없어 심중에만 담아 뒀던 것이었다.

“아버지, 백작님은 도적 떼에게 의뢰한 범인을 몰락 귀족으로 공표한 후 처형하셨으나… 나는 그게 다가 아니란 것을 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간단하다.”

원래 정보 길드는 그 지역의 유지들과 유착 관계를 가지는 것이 아닌 이상 귀족 간의 다툼에 끼어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괜히 잘못 끼어들었다가는 비밀이 까발려진 귀족과 자신의 정보도 팔릴 수 있음을 깨달은 다른 권력자에 의해 밉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알렌이 침입자들의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 지금까지 알아낼 수 없었던 이유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그 몰락 귀족의 배후에 있던 진짜 흑막이 누군지 알고 싶다.”

뭐든지 들어주겠다고 했음에도 거절할 수 있을까?

“우리 영지에 침입했던 침입자와 그 침입자의 진정한 주인까지, 모두.”

알렌은 제법 곤란한 듯 안색이 어두워진 그를 보며 가느다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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