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6화
세상에는 수많은 이교(異?)가 존재한다.
신전이 몰락하고 고대 제국이 멸망한 후부터, 종교를 믿는 사람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줄어들었다는 말은 사라졌다는 말이 아니다.
일부의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하며, 삶의 방향을 정해 줄 절대자를 원한다.
누구는 그 절대자의 존재를 가까이는 아버지에서부터 촌장, 멀리 보자면 영주 혹은 황제에게 향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힘없는 약자들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초월자를 원했다.
설령, 그 신이 몰락했다는 걸 안다고 한들.
그렇기에 이교가 흥하는 것이다.
고단한 삶의 버팀목이 되어서, 단순히 이교도가 되어 얻는 이득 때문에, 아니면 그 신앙을 진실하게 믿는 것일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며, 그에 따른 사정이 있겠지.
그런 수많은 이교 중 ‘순환교’라는 종교가 있었다.
순환교의 교리는 간단하다.
세상은 태어나고 멸망하는 것을 반복하며 이를 순환이라 칭한다.
그들이 말하기를 대몰락 이후로 세상은 멸망했다고 한다.
현재의 세상은 새로운 세상이 태어나기 전의 시간대며, 새로운 세상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지금의 세상이 완전히 멸망해야 한다는 거다.
그러므로 멸망에 이바지하는 자들은 새로운 세상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다소 정신 나간 교리.
그들의 과격한 사상만 보면 곧바로 낙인찍혀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실제로도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단으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기도 하고.
그러나 그들은 몇 가지 쓸모 때문에 일부 영역에서는 용인되는 때도 있었다.
일례로 일부 분쟁지역에서는 그들의 활동을 묵인한다. 왜냐하면, 순환교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모든 것을 배척하기 때문이다.
사령술사, 네크로맨서, 악마 계약자, 악마, 마왕, 마족, 외신… 등등.
새롭게 태어난 세상에 이물질이 끼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다.
또 의외로 민간인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끼치는 경우도 드물었다.
순환교는 세상을 인위적인 멸망보다 자연스러운 멸망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열 명, 백 명의 민간인을 직접 죽이는 것 보다 하나의 권력자를 이간질하게 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는 이유였다.
그렇기에 그들이 있는 곳에서는 늘 분쟁이 끊이지 않았고, 그 교리에 심취한 종족들도 다양했다.
‘회귀 전에도 아카데미를 습격했다는 것만 아니었다면 멀쩡하게 존재했겠지.’
아카데미의 습격에 실패한 직후, 짐승왕이 직접 나서서 그들의 본단을 타격했고 그들은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끝에는 율리우스 곁에 있던 여자, 이단의 성녀 아벨린에게 흡수되어 그의 세력으로 전락했다.
알렌이 하는 행동도 아벨린이 한 행동과 별다를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사도는 무엇인가?
각 종교마다 사도의 역할은 다양하겠지만, 순환교에서 사도의 역할은 하나였다.
‘세상이 멸망한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증명하는 자.’
다시 말해, 미래에 세상이 망한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입증할 수 있는 존재.
알렌이 사도의 자리를 연기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회귀자라…, 이러니 진짜 예언의 사도가 된 것 같군.’
실제로 사도가 곧 등장했던가?
상관없었다. 알렌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이상 다른 이가 사도로 발탁될 일은 없으리라.
그렇게 생각의 정리를 끝마쳤을 시점,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예비 사도님. 도착했습니다.”
정신을 차리니 눈앞에 커다란 바위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아카데미에서 몇 시간 이동하면 도착하는 장소. 황량한 황톳빛 절벽은 오랜 시간 바람에 깎여 나간 듯 각진 모습을 보였다.
사막의 모래 위로 덩그러니 솟아난 바위는 사막의 이정표 역할을 하는 곳이리라.
“여기인가?”
“예. 예비 사도님.”
알렌은 가이온의 제자가 된 다음 날, 길게 끌 것도 없이 전번에 편지를 보냈던 학생회 서기 로렌을 통해 다른 순환교 사제와 만나 안내받을 수 있었다.
그들은 마치 알렌이 언제 올지 기다렸다는 듯 최대한 신속하게 이동했다.
그는 그렇게 행동하면서도 어떤 지령을 내려 받은 듯 사소한 질문이라도 절대 하지 않으며 시종일관 거리를 유지했다.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선지자 중 한 분께서 며칠 전부터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쿠르릉-
먼저 바위에 다가갔던 밀란이라는 이름의 사제가 바위 앞에서 무언가를 누르자 작은 진동과 함께 벽이 열리며 통로가 생겨났다.
‘순환교의 비밀 거점인가….’
알렌은 담담한 듯 놀란 모습 하나 보이지 않으며 당당히 걸음을 옮겼다.
그는 이곳에서 사도의 증명을 받을 예비 사도였다.
증명이 이런 모습과 상관없다 한들 어리숙한 얼굴을 보이는 것보다 나으리라.
그 생각을 증명하듯 그를 안내하던 밀란 사제는 변함없는 그의 태도에 그가 아직 증명하지 못했음에도 일말의 기대감이 싹트는 것을 느꼈다.
통로는 어두웠으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통로의 끝에는 거대한 대전도 없었고, 웅장한 벽화가 자리한 것도 아니었다.
소박한 방.
돌을 깎아 파내어 만든 작은 방 하나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심지어 나무 문을 달 여력도 없었는지 두꺼운 천으로 안과 밖의 경계를 나누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알렌이 두꺼운 천을 밀고 들어가자, 전형 상상하지도 못한 것이 그를 반겨줬다.
알렌은 걸음을 멈추고 급히 뒤를 뒤돌아봤다. 그러나 그가 들어왔던 두꺼운 천은 어느새 사라진 상태이었다.
틈새 하나 없는 완전한 암흑,
거친 석벽으로 이루어졌으리라 생각한 공간은 없었다.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긴 어디지?”
그곳에, 하품하는 심연이 그를 집어삼켰다.
* * *
순환의 제전은, 순환교 내부에 있는 비밀스러운 의식이었다.
상실?순환?현현.
상실하였기에 바라고.
순환하기에 기다리며.
끝내 현현할 것을 믿는다.
순환의 제전은 여러 제전 중에서 소제전으로 분류되는 작은 의식이었지만, 그 중요도는 대제전에 못지않았다.
무려 선지자 중 한 명이 주관해야 할 수 있는 의식이며, 참관할 수 있는 직급도 대사제 이상만 허용된다.
지금 알렌의 의식을 주관하고 참관하는 자도 다섯 손가락을 넘지 못했다.
의식의 주관자 세 번째 선지자 썩어 버린 뿌리가 입을 열었다.
“키헤, 헥! 사아도! 진행!”
고블린 특유의 초록 피부와 작달막한 키.
밖에서는 괴물로 사냥당할 만한 괴물이 고급스러운 법복을 입고 있는 것은 꽤나 우스꽝스러운 광경이었으나,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그를 비웃지 않았다.
그의 옆에서 세 번째 선지자를 보좌하기 위해 파견된 대주교가 입을 열었다.
“현재 사도의 증명을 위한 제전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묻고 계십니다.”
“거짓! 켁! 참! 키헤헥!”
“거짓일 경우 죽음으로 죄를 갚게 하며, 진실한 자격을 가졌을 때는 다른 형제님들에게도 알리시라고 하십니다.”
대주교는 눈 깜짝 안 하고 그의 말을 차분하게 번역했다. 그의 눈에 장식된 외눈 안경이 반짝였다.
세 번째 선지자, 썩어 버린 뿌리는 연신 그의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기이한 눈으로 잠시 바라보던 대사제가 의식의 진행 상황을 파악하며 답했다.
“현재…, 태초의 공허 속으로 들어간 예비 사도의 기본적인 증명은 끝난 상태입니다.”
“진짜입니까? 아니면 거짓입니까.”
“다행스럽게도 진짜입니다.”
그의 말에 그곳에 자리한 이들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현재는….”
“미래의 확정적인 멸망이 예정돼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세부적인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봐! 나! 카하학! 질문!”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대주교가 대사제에게 질문했다.
“혹시 제전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 조심스럽게 질문하고 계십니다.”
잠시 떨떠름한 얼굴로 대주교의 모습을 바라보던 그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젓고는 손을 장치를 발동시켰다.
바로 앞의 벽이 투명하게 변하며 알렌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온 천지가 검게 물든 가운데서도 평정을 잃지 않고 바닥에 앉아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에 참관하고 있던 이들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이제 제일 궁금해하시는 것부터 듣도록 하겠습니다.”
썩어 버린 뿌리가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검은 공간 안에서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멀리서 들리는 것 같기도, 귓가에서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얼핏 듣기에 여자 같기도, 남자 같기도, 아이 같기도 했고 늙수그레한 노인의 단말마 같기도 했다.
“시작을 위한 끝은 언제 일어나는가?”
알렌이 고요한 눈으로 천천히 답했다.
“늦어도 10년 안에 일어난다.”
다시 목소리가 물었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는가?”
“수많은 변수에 따라 내일일 수도, 일주일 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일어난다.”
그 대답에 참관하고 있던 대사제들은 믿음이 가는 걸 느꼈다.
오히려 정확한 날짜를 말했다면 믿지 못했을 것이다. 모호하지만, 확실한 실체가 있는 것 같은 그의 대답에 그들은 안심했다.
지금까지 했던 일이 헛되지 않다는 말이었으니까.
“누구에 의해 끝이 나는가?”
“마왕.”
그 말에 대사제는 숨을 들이켰다. 서로의 다툼이 아닌 외세의 침입으로 멸망한다고?
“그리고… 그때 하얗고, 검은 그리고 잿빛의 빛이 세상을 가득 채울 것이다.”
“하얗고, 검으며 또 잿빛이라….”
무언가에 대한 암시인가? 곁에 있던 대사제가 급히 대화를 받아 적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마지막으로 하나를 더 묻겠다. 그 멸망의 최대의 변수는 무엇인가.”
“최대의 변수는….”
알렌은 다소 끓어오르는 감정을 조정하며, 한 글자 또박또박 입에 담았다.
“세계의 침탈자이자 외계에서 온 악령 그리고 세상을 주무르는 악마.”
동생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이계인.
“빙의자.”
* * *
순환의 제전이 끝이 났다.
알렌은 마지막 질문을 끝으로 방을 나올 수 있었다. 어느 순간 다시 생긴 두꺼운 천을 밀자, 밖에서 밀란이 들어왔을 때와 다를 바 없는 자세로 서 있었다.
그는 알렌을 본 즉시 고개를 숙였다.
“사도님을 뵙습니다! 현재 선지자께서 사도님을 기다리고 계시니 곧바로 안내하겠습니다.”
알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렌이 들어갔던 방의 옆에는, 어느새 처음에 보지 못했던 하나의 방이 더 생겨나 있었다.
알렌은 두꺼운 천을 밀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도 밀란 사제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스윽-
방에 들어오고 고개를 돌리자, 이번에는 첫 번째 방과 같이 방이 암흑으로 물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거, 걱정. 케헥. 너!”
고개를 돌리자, 고블린 한 마리가 갈색의 고풍스러운 법복을 입은 채 소리를 질렀다.
알렌은 무례를 범하는 일 없이 고개를 숙였다.
“세 번째, 선지자 썩어 버린 뿌리를 뵙습니다.”
“크헤헤헤!”
“자신도 만나서 반갑다고 하십니다.”
“당신은….”
알렌이 고개를 들자, 외눈 안경을 낀 젊은 남자가 우아하게 허리를 숙였다.
“저는 선지자님을 보좌하게 된 대주교 하멜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저의 역할은 선지자님의 말을 전하는 데에 있기에 신경 쓰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알렌은 그의 칼 같은 태도에 고개를 끄덕였다.
“유의하겠습니다.”
세 번째 선지자 썩어 버린 뿌리는, 그들이 대화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입을 열었다.
“며, 멸망! 예지! 사도! 더! 보상! 대화! 크핫”
“선지자께서 혹시 아까 말한 예지에 대해 아는 것이 더 있냐고 물으십니다. 또, 원하시는 게 있느냐고 하시는군요.”
알렌은 잠시 계산해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그 이상 알지는 못합니다. 새로운 것이 떠오른다면 즉시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들도 그 이상을 알 거라는 의심은 없는 듯 금방 다른 질문으로 넘어갔다.
“사양! 나! 선! 크, 흣, 카하학! 순환!”
“보상은 사양하지 않고 말해도 된다고 하시며, 자신은 통이 크다고 합니다. 순환의 축복을 받은 것을 축하한다고 하십니다.”
알렌은 다소 기괴해 보일 수 있는 모습에 신경 쓰지 않았다.
저런 선지자의 모습은 미리 조사해서 알고 있었기에 놀라지 않았다. 다만, 보상이라면 역시….
“뿌리시여. 혹시 외세의 악에 의해 근본이 비틀린 이를 고쳐 줄 수 있으십니까?”
알렌이 순환교와 접촉하려 했던 원인이자 이유, 그게 눈앞에 있었다.
“케헥?”
“당연히 가능한데…, 그건 왜 물으시냐고 묻습니다.”
세 번째 선지자, 썩어 버린 뿌리.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고블린 중 유일하게 요정의 피를 일깨웠으며, 고블린이 먼 고대에 요정이었다가 타락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은 자였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썩어 버린 뿌리였다.
근본부터 비틀리고 타락했기에.
그렇기에 그는 모순적으로 비틀린 것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렇다면, 제 친우를 고쳐 주십시오. 그녀는 어려서 밤의 일족에게 물렸다가 간신히 치유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몸의 체질이 완전히 비틀렸습니다.”
무려 짐승왕의 피를 이었음에도 신체가 허약하고.
인간과 수인 모두의 피를 이었지만, 그 어떤 것에도 소질이 없다.
일리아나의 신체에는 그런 사정이 있었다.
“그런 그녀를 치료해 주십시오.”
“더!”
“그걸로 충분하냐고 하십니다.”
“예, 그걸로 충분합니다.”
알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발 물러섰다. 더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욕심을 부리는 건 좋지 않았다.
아직 자신의 자리를 확고하게 다진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자중할 필요가 있었다.
적어도 자신이 그들을 완전히 동화시키기 전까지는.
“내일! 캭! 문!”
“그렇다면 내일 이곳의 문 앞에서 보는 건 어떠냐고 하시는군요.”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대주교는 알렌과 대화를 하는 내내 사적인 감정을 단 하나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욕심을 부리지 않자, 눈꼬리에서 힘이 살짝 빠지며 흡족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얼른 이 소식을 전하고 싶군요.”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렌은 여전히 예의를 지키며 인사를 한 후에 통로를 빠져나왔다.
쿵-
바위의 문이 닫히며 자세히 보지 않으면 감쪽같아 보이는 광경이 보였다.
그렇게 도시로 돌아가는 시간 동안 알렌은 천천히 생각에 잠겼다.
그가 생각하는 건 첫 번째 방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개념을 강제하는 방이라….’
알렌은 방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을 속박하는 어떠한 힘을 느꼈다.
그 힘은 자신에게 해로운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으나 특정한 조건 내에서 자신을 강제하고 있었다.
그 영향력을 강하게 느낀 것은 거짓을 입에 담으려 할 때였다.
알렌이 질문의 답에 거짓을 말하려는 순간, 그 행동을 막으려고 강제하는 힘을 느꼈다.
그러나 알렌이 그때 느낀 감정은 당황함 따위가 아니었다.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알렌은 자신을 강제하는 힘을 완전히 벗어 낼 수는 없어도, 최대한 빗겨 낼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으나, 최대한 이용했다.
멸망이 10년 내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과장했고, 마왕이 세상을 멸망시키리라 꾸몄다.
하얗고 검은, 잿빛의 세상 역시 유적에서 나왔던 문장을 인용한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마지막 답변이자, 자신이 하는 일에 순환교를 끌어들일 미끼.
‘빙의자.’
그걸 뿌려 뒀으니 알렌이 하는 일에 당분간 그들은 신경 쓰지도 못할 것이다.
마왕을 막아야 할지 아니면 멸망을 방관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할 것이고, 알렌이 말했던 모호한 말에 대해서 해석하느라 바쁠 테니까.
순환교 안에서 사도의 자리가 특수하다고 한들, 위험이 없다고 할 수는 없으니 처음부터 신경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이 나았다.
‘이제 조금씩 증거를 뿌려 순환교에서 율리우스의 정체를 완전히 알려지는 그때….’
‘진짜’ 계획이 시작될 것이다.
끼익-
알렌은 낡은 등자를 조정하며 도시로 돌아갔다.
끼익- 끼익-
등자는 알렌이 도시로 돌아가는 내내 삐걱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