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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91화 (91/212)
  • 제91화

    레이첼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여러 번 공간을 이동했다.

    그 행동으로 미루어 보아 알렌을 찾은 것도 이런 식으로 무식하게 전장을 이동하며 찾은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의 도움을 받고 도착한 곳은 미니마 부족의 주둔지였다.

    주둔지에는 수많은 학생이 신음을 흘리며 치료를 받고 있었다.

    ‘…흠, 안 보인다 싶었더니 후방에서 돕고 있었나.’

    생각보다 사상자의 수가 적을 수도 있겠군.

    아카데미에서 중상자가 발생하는 건 흔하다. 그러나 학생이 죽는 경우까지 가는 것은 드물었다.

    이유는 아카데미의 치료 시설이 뛰어났기 때문이기도 했고,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세계에서 재능이 뛰어난 자들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 학생들은 자신의 목숨을 지킬 수단을 각자 하나씩은 갖고 있었다.

    단지 지금 같은 상황이 예외일 뿐이지.

    “이쪽으로 따라오십시오.”

    “알렌, 조금 이따 봐요.”

    레이첼은 다른 할 일이 더 있는 듯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알렉시우스를 따라 도착한 곳은 주둔지의 중심에 있는, 주변의 것보다 한층 더 큰 천막이었다.

    “족장님! 알렌 공자님을 모셔 왔습니다.”

    “이쪽으로 모시거라.”

    족장의 허락에 천막으로 들어섰다.

    멈칫-

    한 발자국 천막에 발을 들여놓던 알렌은 천막 안의 광경에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천막의 중심, 둥근 금속 띠들이 허공의 제자리에서 돌아가며 뻥 뚫린 천막의 하늘에서부터 별빛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천막 안은 횃불 하나 없었는데도 밝았다.

    “천문 기구요. 몇 세대 전에, 수인과 드워프의 도움을 받아 만들었지.”

    “그렇습니까.”

    부족장은 그 천문 기구의 뒤에 있었다.

    그의 평온한 음색에 알렌은 천막 안에 완전히 몸을 들이밀었다. 알렉시우스도 그를 따라 들어왔다.

    “잘 오셨소.”

    “혹시 저 천문 기구가 지금 율리우스가 사용한 힘과 연관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나를 부른 이유도….”

    부족장은 부정을 표하지 않으며 물음에 대답하기에 앞서 고개를 숙였다.

    “먼저 기대를 품었을 알렌 공자께 사죄를 청해야 할 것 같소.”

    알렌이 그의 대답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아직 말을 다 끝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율리우스 공자와 같은 힘을 드리는 건 어렵게 됐소.”

    “이유가 무엇입니까.”

    알렌은 말도 안 된다느니, 아까 한 말과 다르다느니 그런 억지는 부리지 않았다. 그저, 이유를 물었다.

    “시간이 늦었기 때문이오.”

    알렉시우스는 그들이 대화하는 사이 잡다한 준비를 시작했다.

    “방랑하는 별들께서는 밤이든 낮이든 하늘에 자신을 드러내시지만, 아둔한 우리는 밤에만 그분의 은은한 빛을 볼 수 있을 뿐이오. 그리고 지금과 같은 별들이 쏟아지는 날은 그분과 매우 가까워지기에 별의 성흔도 새길 수 있을 만큼 엄청난 기회이….”

    알렌은 그의 말이 점차 길어지기 시작하자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한 마디로 아침이 다가와 율리우스만큼의 힘을 줄 수 없다는 말이 아닙니까.”

    밖에서는 아직도 전투를 하고 있다. 쓸데없는 소리로 시간을 낭비하기는 아까웠다.

    “…맞는 말이오.”

    그는 말을 다 끝내지 못해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내 준비를 끝마친 알렉시우스가 다가왔다.

    “그래서 저희가 줄 수 있는 건 이것입니다.”

    알렉시우스는 알렌에게 천문 기구라 소개했던 금속 띠의 아래를 가리켰다.

    “얼마 걸리지 않을 겁니다.”

    어느새 둥근 금속 띠들은 회전을 멈춘 상태였다. 그러나 기구가 멈춰 있음에도 기구의 한 가운데 모인 빛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날아와 정확하게 의식의 시간을 맞출 수 있었던, 율리우스 공자가 얻은 별의 성흔 만큼은 아니지만….”

    알렌이 그 천문 기구의 아래에 앉자, 모여 있던 빛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공자께 가장 필요한 것을 줄 수 있을 것이오. 알렌 공자와 같은 마법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의식이 천천히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럼 시작하겠소.”

    아침이 다가오는 여명의 때에, 별의 세례가 시작되었다.

    * * *

    「알렌 일어나요! 알렌! 일어나 보라니까요?」

    누군가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어후, 빨리 일어나요! 지금 잠잘 때가 아니라니까!」

    많이 들어 본 소리였다. 매사 시끄럽고, 불만도 많은. 마치, 베스틀라 같은… 아.

    「저 분명히 깨웠어요? 깨웠다니까요? 나중에 뭐라 하지 말….」

    “그만.”

    알렌은 허리춤에서 덜렁이는 손잡이를 강하게 부여잡았다.

    짧은 어지러움이 느껴졌지만, 어지러움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히려 전보다 정신이 더 맑게 변한 것 같았다.

    「와! 깨어났다! 의식이 끝나도 정신 못 차리길래 놀랐다니까? 저 나쁜 녀석들이 거짓말을 한….」

    베스틀라는 안도가 서린 목소리로 시끄럽게 쫑알거렸다. 여전히 활기가 넘쳐 났다.

    알렌은 우선 그녀의 다 듣지 않고 천막을 빠져나왔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았나.”

    근처에는 여전히 많은 학생이 부상에 신음하고 있었고, 하늘은 여전히 어두웠다.

    「그래서 제가 일부러 깨우기 위해 계속 말을 걸었다는 거….」

    알렌은 베드르폴니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며 베스틀라에게 물었다.

    “알았다. 알았으니…, 설명 좀 부탁하지. 무슨 일이 있었지?”

    알렌이 검게 의식이 흐려진 이후로 기억이 단절되어 있었다.

    「저 나쁜 녀석들이 말한 별의 세례라는 걸 받고 알렌이 정신을 잃었어요.」

    “그래서?”

    「네? 그게 끝인데요?」

    “뭐?”

    「알렌이 깨어나지 않으니 걱정한 거죠! 당신에게 위해를 가했으면 제가 가만히 있었겠어요?」

    “하….”

    알렌은 괜히 물었다는 생각에 발걸음에 속도를 높였다. 육체의 활력이 거칠게 대지를 밟으며 몸을 가속했다.

    「그래도 제가 알렌을 지켰으니까 무사한 거라고요!」

    알렌은 대답하지 않고, 감지력을 펼쳤다.

    십 미터, 이십 미터, 삼십 미터….

    넓은 전장의 정보가 홍수처럼 밀려 들어오는 가운데, 알렌은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두통이 없다?’

    [공자께 가장 필요한 것을 줄 수 있을 것이오. 알렌 공자와 같은 마법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부족장이 했던 말이 생각에 미치자 곧바로 감지력을 더 넓게 퍼트렸다.

    1㎞를 넘어서 2㎞, 한계에 가까웠던 3㎞를 넘어서도 두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본래는 코피까지 흘리며 심한 두통을 느꼈을 텐데.

    그렇게 뻗어 가던 감지력은 10㎞가 되어서야 전과 같은 두통이 느껴졌다.

    ‘한계가 넓어졌군.’

    전장까지 가며 실험해 보자 세밀하게 감지하는 것도 300m 내라면 두통이 없었다. 무리한다면 1㎞까지 범위를 넓히는 것도 가능했다.

    아마 실험해 보지 않아도 정신과 관련된 저항력도 훨씬 올랐으리라.

    확실히 부족장의 말대로였다.

    별의 세례는 율리우스만큼 특별한 능력을 주지는 않았으나, 마법사에게 제일 중요한 정신력을 영구적으로 상승시켰다.

    ‘감지력을 넓게 펼칠 수 있는 마법사는 적다.’

    위계가 오르며 감지력을 넓혔다고 해서, 그것을 한계까지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의 수는 적었다.

    범위 내에서 몰려오는 수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건 힘든 일이었고, 아직 정신력이 강하지 않는 어린 나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봤을 때 별의 가호는 알렌에게 장래적으로 훨씬 좋았다.

    감지 범위는 자신이 마법을 정확히 맞출 수 있는 마법사의 영역을 뜻하니까.

    ‘오히려 별의 성흔을 가진 율리우스보다 낫다.’

    알렌은 몸에 성흔을 박아 넣어 ‘신’이라는 초월자와 연결점이 생기는 것이 불안했다.

    그와 관련된 초월적인 능력은 검은 책과 하얀 책으로 족했다.

    통제할 수 없는 변수는 자기 자신마저 위험에 빠트릴 여지가 있으니까.

    그가 지금껏 책들로부터 도움만 받아 왔다고 한들 당연했다.

    알렌은 속도를 높였다.

    중간쯤 도달했을 때부터, 전투의 소음이 들리지 않았다.

    * * *

    콰르르릉-

    그렇게 멀리 있던 괴물이 시야에 들어왔을 때쯤, 천둥소리 사이로 율리우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새끼 아까부터 뭐라도 있는 것처럼 별 폼을 다 잡더니 없잖아?”

    알렌은 시야를 높여 괴물의 상태를 보고, 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까 기습만 아니었어도, 팍 씨….”

    베드르폴니르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던 전과 다르게 중상을 입은 듯 처참했다.

    양 날갯죽지는 구멍이 뚫려 있었고, 검은 피가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윤기가 흘렀던 검은 깃털은 숭숭 빠져 흉한 모습을 드러냈고, 곳곳에 그슬림이 가득했다.

    눈도 한쪽에 빛의 검이 박혀 재생을 막고 있었다.

    “…아까 얼마 안 걸렸다고 하지 않았나?”

    「네, 한 십분? 그 정도밖에 안 지났는데요….」

    ‘십 분이라 십 분….’ 그 정도 시간도 그녀에게는 한순간인가.

    알렌과 몇 달을 지냈음에도 그녀와는 아직 인식의 차이가 존재했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 한 영원히 사는 게 용과 거인이니 오죽할까.

    ‘그래서 천막에 부족장과 알렉시우스가 없었던 거였군.’

    베드르폴니르는 그런 부상을 입고 있음에도 바람으로 겨우 몸을 띄우고 있었다.

    “─────무지한 가축아. 아니, 이제는 문명을 이뤘으니 이게 더 낫겠군. 무지한 인간아. 너는 네가 뭘 하고 있는지 아느냐?”

    괴물의 눈동자에 무수한 것이 비쳤다 사라지며 흡수되었다.

    그렇기에 알았다. 알게 되었다. 저놈의 존재가 무엇을 뜻하는지. 뇌신의 가호를 받았다고?

    “─────네 존재 자체가 무엇을 반증하는지 아느냐? 때가 되어 간다는 것이다. 묵시의 때가. 그 말은 다시….”

    검고, 하얗다. 그를 지혜의 화신으로 만든 눈이 그 두 가지의 색을 보았다.

    그렇게 괴물이 분노에 물든 눈으로 말을 이으려 했을 때.

    알렌의 뒤에서.

    하얀 책이.

    스르륵-

    소리 없이 펼쳐졌다.

    『다른 학생들의 죽음에 미약한 감정의 동요를 느낌. 별의 세례를 끝마치고, 약간의 어지러움이 지나 정신력의 향상을 이룸. 후에 베스틀라에게 시간….』

    『■른 학■들의 죽■■ 미■한 ■정의 ■■■ 느낌. 별■ ■■를 끝■■고, ■■의 ■■러움■ 지■ ■■력■ ■상■ 이■. ■에 베스■■■■ 시■….』

    『■■ ■■■■ 죽■■ ■■■ ■■■ ■■■ ■■. ■■ ■■■ ■■■■, ■■■ 어■■■■ ■■ ■■■■ ■■■ ■■. ■■ ■■라■■ ■■….』

    그 순간 짧은 파공음이 들리며 괴물이 고개를 들었고.

    쾅-

    작은 운석이 괴물의 몸을 꿰뚫었다. 괴물의 눈에 경악의 감정이 떠올랐다. 베드르폴니르의 몸이 경련했고, 그 잠시의 틈을 놓치지 않은 마리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푸슉-

    하얀빛의 검이 몸통에 파고들기 무섭게, 율리우스가 초조한 표정으로 소리 질렀다.

    “다 비켜-!”

    꽈릉!

    낙뢰가 떨어졌다. 율리우스는 남은 여력은 생각하지 않고 수십 번이나 번개를 쏟아부었다. 괴물의 눈이 마지막으로 알렌을 향했다.

    그걸로 괴물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한 듯, 지상으로 추락했다.

    알렌은 뒤를 돌아봤지만, 괴물이 마지막으로 무엇을 본 건지 알 수 없었다. 혹시나 싶어 하얀 책을 살펴도 마찬가지였다.

    『괴물이 우연히 떨어진 운석 덕분에 죽였다는 사실에 허망함을 느낌. 그러나 더 이상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

    마리아는 괴물이 죽은 즉시 남은 몬스터를 처리하기 위해 날아갔다.

    율리우스는 눈을 질끈 감은 채 허공을 응시하다가, 입이 귀에 걸리나 싶더니 곧 괴성을 질렀다.

    “막타쳤다아아아아아아!”

    그는 한동안 몸을 방방 뛰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알렌은 그 모습에 허탈감을 집어삼키며 검을 집어넣었다.

    “…길었던 던전 실습도 이제 끝인가.”

    이번 실습에 알렌은 많은 걸 알았고, 괜찮은 수확도 거둘 수 있었다.

    이제 향상된 정신력의 한계를 정확히 알아보고, 하얀 책의 가설에 대해 다시 생각하며, 레이첼과도 할 일이 있을 테지만….

    “조원들을 찾아볼까.”

    알렌은 우선 다시 미니마 부족의 주둔지로 돌아가서 알렉시우스를 찾았다.

    조원들이 다쳤다면 그곳에서 치료를 받고 있을 것이고, 한동안 함께 지냈으니 지상에 있다면 그가 조원들의 위치를 알 것이다.

    그러나 알렌이 그를 만나고 들은 말은, 그들의 위치가 아니었다.

    “…못 만났다고?”

    “예, 다른 분들이 이곳에 왔었다면 저한테 찾아오시지 않은 듯합니다. 밀레드 님은 후방에 계시니 그분의 위치라도 드리겠습니다.”

    알렌은 대략적인 위치를 듣고 움직였다. 밀레드는 환자들이 자리한 천막 내에 누워 있었다.

    밀레드는 알렌의 얼굴을 보더니, 헤실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반겨 줬다.

    “알렌 후배!”

    그녀는 학생회 인원들과 같이 움직이다가 괴물이 습격했을 때 부상을 입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괴물이 죽었다는 알렌의 말에 환한 미소를 짓더니, 아공간에서 사과를 한가득 꺼내 주며 외쳤다.

    “후배, 잘했어! 엄청 잘했어! 자! 상으로 사과받아가!”

    “그런데….”

    알렌은 받은 사과를 챙겨 들며 물었다.

    “다른 조원들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응? 다른 애들? 후배랑 같이 있는 거 아니었어?”

    “…전투를 하다 보신 적이 없으십니까?”

    그녀는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것을 알았는지, 다급한 어조로 답했다.

    “어…, 내가, 내가 학생회 친구한테 물어서 찾아볼게! 다들 잘 있을 거야!”

    “…이만 쉬십시오.”

    알렌은 다급히 레이첼을 찾아갔다.

    ‘레이첼이라면 알 거다. 조원들에게 내 위치를 들었다고 하지 않았나.’

    그는 애써 만들어지는 상상을 뭉개며 그녀를 찾았다.

    그리고.

    “…네? 알렌 당신 조원이요? 밀레드 선배님이랑 길잡이 알렉시우스는 그쪽 주둔지에 있….”

    “그들 말고….”

    알렌의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들 말고, 다른 조원들이 없었나…?”

    “알렌, 잠시만요. 지금….”

    그녀는 알렌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는지 다가왔지만, 알렌은 고개를 저으며 물러났다.

    “조금 이따 보지. 얼마 안 걸릴 거다.”

    “알렌!”

    알렌의 발이 마지막으로 닿은 곳은 첨탑이었다.

    장난감처럼 쓰러진 네 개의 첨탑 중 한 곳. 그곳에서 알렌은 품에서 구슬 하나를 꺼내 들었다.

    용사의 5대 신기 중 하나.

    [천상의 눈]

    알렌은 미약한 희망을 부여잡으며 구슬을 사용했다.

    구슬이 순식간에 흡입력을 발하더니 정신을 빨아들였다. 눈을 떠 보니 아래에 자신의 몸이 보였다.

    ‘에반 바로크, 바로크 가문의 남자.’ 정보가 떠오르지 않았다.

    ‘에리엘 하일, 하일 가문의 여자.’

    정보가 떠오르지 않았다.

    ‘갈슈딘 아카데미의 재학생, 윌리엄.’

    정보가 떠오르지 않았다.

    구슬의 백색 부분이 잿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알렌은 멍한 얼굴로 서 있다 정신을 차렸다.

    아니, 아직 희망이 있었다.

    무려 용사의 신기(神器)였다.

    마왕을 무찌르기 위해 세상 모든 보물을 모아 만들었다는 다섯 가지의 보물.

    세상의 존재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지보에 속하는 보물이라 할 수 있었지만, 신기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있었다.

    그렇기에 천상의 눈에는 하나의 기능이 더 있었다.

    ‘원하는 과거를 보는 것.’

    정확히는 보고 싶어 하는 과거를 찾게 해 준다.

    과거라고 해도 사흘 전 이상으로 볼 수는 없으며, 그 장소와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제한이 있었지만 다른 조원들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만으로 찾고 넘쳤다.

    ‘몇 시간 전으로, 이곳 유적에 있던 조원들’

    백색의 구슬이 엄청난 속도로 잿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세상이 반대로 흐르기 시작했다.

    흑색의 괴물이 다시 유적으로 빨려 들어간다. 날아갔던 첨탑들이 제자리를 찾았고, 유적에서 흘러나오던 유적 수호자들이 다시 돌아갔다.

    알렌의 몸은 거부할 틈도 없이 자동으로 유적을 내려갔다.

    ‘역시, 유적에 있었나.’

    유적이었기에 신기의 힘이 통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천상의 눈은 범위가 넓은 대신 스스로를 숨기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숨을 수 있었으니.

    1층을 지나 2층, 3층, 4층….

    빠른 속도로 몸이 지하를 꿰뚫었고.

    5층을 넘어 6층에 다다랐을 때 몸이 멈추었다.

    ‘여기 갇혀 있었…,’

    알렌은 위치를 기억해 두고자 고개를 돌렸고, 구석진 갈림길의 앞에.

    “아.”

    두 구의 시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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