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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90화 (90/212)

제90화

활짝 펼친 날개가 괴물의 크기를 더욱 키웠다.

날카롭게 구부러진 부리가 지상을 향했고, 허공에 짤막하게 멈춘 몸의 근육이 꿈틀거렸다.

백색 폭풍이 들이닥쳤다.

“도망….”

쾅!

도망가려던 학생의 상체가 붕 떠올랐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지 못하던 학생은 바닥에 쓰러진 자신의 하반신을 보았다.

“으아아…!”

콰과과광!

소리를 다 지를 새도 없이 괴물의 뒤에 따라온 돌개바람에 온몸이 찢겨나갔다.

근처의 학생들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직격을 피했다고는 하지만 몰아치는 칼바람에 신체 한 곳이 덜렁거렸고, 겨우 막은 이들도 그 한 번만으로 고대 유물이 망가졌다.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것을 알아챈 학생들의 안색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나, 나는 도망갈 거야. 시발, 갈 거라고!”

“가문으로 간다! 카밀! 따라와! 가자!”

“시바, 아카데미 오는 게 아니었는데. 그냥 내정관이나 하는….”

남은 유적 수호자를 처리하던 이들도, 멀리서 달려오던 몬스터를 막아내던 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채 떠나기도 전에 다시, 그림자가 쏘아졌다.

그리고, 바람이 멎었다.

쾅!

“사, 살려줘!”

“교수님, 교수님은 어딨어!”

“자크니르 님-! 제발, 제발.”

그걸 기점으로 학생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괴물을 상대해보겠다는 의지는 없었다. 저걸 보고도 상대하겠다고?

“후배님들! 조금만 버티면 됩니다! 조금 있으면 아카데미에서 이상을 알아채고…!”

현장을 지휘하던 3학년 선배가 이탈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압도적인 공포에 사로잡힌 학생들에게 남은 건 생존본능밖에 없었다.

“닥치세요! 선배나 남으십시오!”

“희망을 가진다면 이겨낼…!”

쾅!

“꺄아아아악-!”

3학년 선배의 몸뚱이가 고깃덩이가 되어 날아갔다.

거대한 크기의 괴물이 바람의 도움까지 받아 공중에서 내려치는 공격은, 일개 학생이 받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학생들을 모아두었던 구심점이 사라지니 제각각 살기 위해 도망쳤다.

“도, 도와주십시오! 다리가 안 움직입니다!”

“제발, 포션 좀 나눠주세요! 사례할게요, 제발.”

그 사이로 도와달라는 목소리가 들렸고, 여기저기서 유물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든 알렌이 놈을 가로막고자 움직였지만, 괴물은 그를 피해 다니며 남은 학생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알렌이 거인의 힘을 숨기지 않아도, 어떤 마법을 퍼부어도 놈은 알렌을 무시했다.

알렌의 튼튼한 몸을 베드르폴니르는 짧은 시간 내에 뚫을 수 없고, 알렌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매의 기동력을 따라잡을 수 없다.

그 혼란의 사이에서 괴물을 노리는 시도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괴물이 공격한 이들을 먼저 처리하기 시작하자 그마저도 사라졌다.

율리우스는 기절한 상태였기에 도울 수 없었다.

피와 혼란, 비명과 죽음.

그런 혼란스러운 전장에서 백발의 여인이 천천히 움직였다.

[이번 던전 실습에서 두각을 나타내세요.]

마리아 카리타스, 그녀는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로 괴물을 응시했다.

[성검의 권역을 벗어날 수 없으니 확인은 못 했지만…, 아마 그곳에는 고대의 괴물 중 하나가 있을 거예요.]

그림자 같은 검은 몸에 두른 백색의 바람.

한 번 시야에서 사라질 때면 비명이 울렸고, 흩날리는 바람 사이로 피 냄새가 났다.

[학생들이 상대하기에 버거울 테니, 어느 정도 피해를 입었을 때… 나타나서 죽이세요.]

그녀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옅은 파문을 애써 무시하며 마력을 일으켰다.

지금은 사라진 신성력을 닮은 빛깔의 마력이 그녀의 명치로 모여들었다.

눈을 감자, 그곳에는 문이 있었다.

인간과 무언가를 나누는 문이.

그녀는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거부감을 억누르며 문을 열어젖혔다.

스위치를 누르든 정신이 전환된다.

생명의 나무 (The Tree of Sephiroth)

뱀의 길 (Way of the Serpent)

열 번째 세피라 : 말쿠트 (Tenth Sephirah : Malkhut) 옅은 감정이 완전히 무감각하게 변한다. 한계를 가로막는 벽이 사라진다. 인간에서 벗어난 무언가에 올라선다.

몸에서 후광이 피어나며 검은 어둠을 몰아내었다.

인간이 아닌 몸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그만한 지성이 필요하다.

여덟 번째 세피라 : 호드 (Eighth Sephirah : Hod) 그런 머리 위로 무결하고, 무정하며, 완벽한 정신이 자리 잡았다.

검은 동공에 불필요한 감정이 사라졌다.

하얀 백광의 마력이 타오르며 등 뒤로 한 쌍의 날개가 펼쳐졌다.

그녀가 걸음을 옮겼다.

사박-

피와 엉킨 모래를 밟던 걸음의 뒤로.

조용히.

에메랄드 색의 장미가 필어올랐다.

일곱 번째 세피라 : 네차흐 (Seventh Sephirah : Netzach) 그녀의 주위로 소란스러움이 진정되며 정신이 맑아졌다.

“도, 도와… 아.”

“살려, 살려… 아니, 잠시만….”

공황에 빠졌던 이들이 제정신을 차린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이들에 이성이 깃들었다. 패닉상태의 감정이 잦아들며 냉정함을 되찾았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가슴 위로 육각성이 빛났다.

여섯 번째 세피라 : 티페레트 (Sixth Sephirah : Tipheret)

“포, 포션좀… 어? 회, 회복 되….”

“사, 살았다아….”

후광에 닿은 학생들의 상처가 서서히 회복되었다.

사박-

전장의 이목이 집중된다.

그녀의 뒤로 많은 학생이 질서정연하게 물러났다. 맑아진 이성은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고, 급한 부상자들을 후방으로 옮겼다.

마침내, 고대의 괴물도 그녀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괴물의 잠시 놀란듯한 감정이 느껴졌다.

“─────너는 뭐지?”

마리아는 괴물의 말을 무시하고, 놈을 죽일 방법을 탐색했다.

첫 번째 세피라 : 케테르 (First Sephirah : Kether) 빛으로 된 왕관이 머리에 씌워지며 세상이 톱니바퀴로 이루어진 기계처럼 시야의 모든 것을 ‘이해’하게 해준다.

“─────정체가 뭐지? 그 기묘한 힘은 흠….”

무게, 길이, 시야각, 반응 속도, 근력, 속도, 바람의 세기….

시시각각 바뀌는 정보의 모든 것이 그녀의 머리로 흘러들었다. 완전하게 변한 지성은 이 모든 것을 감당했다.

아홉 번째 세피라 : 예소드 (Ninth Sephirah : Yesod) 그 모든 정보를 바탕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한다.

“─────수 만 년 동안 보았던 그 무엇과도 비교하기 힘들군. 내 ‘눈’에도 잘 보이지 않고 말이지.”

지금까지 움직인 행동을 바탕으로 한 예측, 한 걸음 더 나아가 모의 근육과 힘의 총량으로 인한 움직임의 예지.

다섯 번째 세피라 : 게부라 (Fifth Sephirah : Geburah) 정보의 이해와 예측을 바탕으로 한 극한의 전투 보조.

힘이 강해지며, 반응 속도가 빨라진다. 전투와 관련된 움직임과 본능이 극대화되었다.

무감정한 눈에 명확한 목적이 새겨지며 오른손에 빛의 검이 나타났다.

“─────새 지배자인가? 기이하고, 기이하구나. 육체는 그대로인데 영혼의 격만 올리다니.”

괴물에 대한 이해.

움직임의 예측.

전투의 보조.

그리고 수십 개의 선택지 중 올바른 정답만을 고르게 만드는 판단력.

세 번째 세피라 : 비나 (Third Sephirah : Binah) 뇌리로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바탕으로 적절한 판단을 끝마쳤다.

“─────너를 태어나게 한 자는 누구지? 아니 누가 만들….”

“계산 완료.”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열 개의 빛으로 된 검이 그녀를 맴돌기 시작했다. 동공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움직임을 정보를 받아들였다.

그녀가 무감정하게 내뱉었다.

“7182합 후 개체 소멸이 가능하다고 판단.”

빛으로 이루어진 날개가 하늘을 날았다. 고대의 괴물이 흥미로운 얼굴로 웃음을 터트렸다.

“─────재밌는 능력이군. 아니, 본래의 것보다 열화된 건가? 추측해보자면 천…”

“추락한 화신 ‘베드르폴니르’에 대한 사살 시작.”

빛으로 이루어진 검이 창공을 뻗어 나갔다.

그와 동시에 괴물이 거대한 날개를 드리우며 천공을 갈랐다.

백색의 천사와 흑색의 괴물이 전투를 시작했다.

* * *

알렌은 차가운 얼굴로 마리아와 베드르폴니르가 부딪치는 모습을 지켜봤다.

콰앙!

베드르폴니르는 몸이 길게 늘어질 정도로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공격했다. 마리아는 그 모든 공격을 한 박자, 아니 몇 박자 더 빠르게 움직이며 조금의 틈도 허용하지 않았다.

상대에 비해 훨씬 작은 몸을 움직이며 모든 공격을 회피하는 그녀에게 화가 났는지 수백, 수천 개의 칼바람이 날아왔다.

그녀는 바람의 사이를 누비고, 때론 힘으로 뚫어가며 모든 공격을 회피했다.

아니, 회피의 사이에 빛의 검을 던지며 공격도 동시에 이어나가고 있었다.

감당할 수 없는 속도에 대항하는 완벽한 예측.

마리아의 눈에는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의외나 예측 외의 상황에 대한 당황은 없었다.

모든 그녀의 계산 안에서 이루어졌다.

알렌은 그녀가 전투하는 사이 다른 이들의 피해가 줄어들자, 조용히 마력을 모으며 몸을 낮췄다.

「당신 어떻게 할 거예요? 저는 다음을 노리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알렌은 고개를 저었다.

‘틈을 보였을 때, 곧바로 끼어든다.’

알렌도 맞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전투하면서 저 속도에 대한 대처 방법을 생각해뒀다.

늘어난 의식에 감응력이 끼어들었다. 증폭된 오감은 육체에 동화되며 세상을 응시했고, 그 모든 것이 감지력에 깊숙이 박혔다.

느려진 시야 사이로 생각이 이어졌다.

‘원래는 마리아처럼 움직임을 예측하려 했지만….’

알렌은 그녀의 전투를 보며 그것이 곧 무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상대보다 먼저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수, 알렌은 전투에서 몇 수 앞을 본다는 건 가능했다. 그러나 그녀처럼 수십 수를 내다보는 건 불가능했다.

정확히는 비슷하게 따라 할 수는 있어도, 알렌의 뇌가 버틸 수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포기한다?’

그럴 수 없다.

도망칠 수 있을지 의문이고, 아직 진짜 율리우스에 대한 단서를 찾지 못했다.

알렌은 저 고대의 괴물에 대한 사실을 모았다.

웬만한 공격은 무시하는 깃털.

자신조차 반응하지 못할 속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바람.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성을 깨달았다는 것이 제일 암울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저 괴물이 도망칠만한 상대인가?

‘계획을 모두 내버릴 정도로?’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괴물은 알렌에게 고난을 선물할 수 있을지언정 절망케 하는 상대는 아니었다.

1회차의 놈이, 율리우스가 죽인 괴물은 무수히 많았다.

고대의 괴물, 베드르폴니르 따위 그렇게 죽어간 많은 적보다 못하면 못했지 절대 낫다고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생각과 동시에 결론이 나왔다.

부족한 공격력의 부재.

알렌의 마법 계통은 기형적으로 공격 마법에 대한 가짓수가 적었다. 1회차에 율리우스를 구하기 위해 힘썼기 때문이다.

레이첼이 쓰는 공간 이동이나 공간을 자체를 건드리는 것과 같은 마법도 알렌은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마력의 실을 엮어 물체를 만들거나, 공간 자체를 건드리는 방식으로 메꿔왔지만, 이제는 부족했다.

마법의 형상이 악기인 것도 알렌의 장점을 최대한 극대화하기 위해 연구한 형태였다.

‘마법을 지금 더 변형할 수는 없다.’

아쉬웠다. 불안정하지만 시간 마법을 생명체에게 사용할 수 있었더라면 큰 도움이 됐을 텐데.

그러나 지금은 할 수 없는 일.

알렌은 아카데미에 돌아가면 마법의 공격성을 더 높일 방법을 찾아보기로 하고, 베스틀라를 강하게 쥐었다.

할 일은 간단하다.

‘마법이 안 된다면….’

검으로 할 수밖에.

이번에 새로 배운 세 번째 비의.

요툰스베르드 삼계 료스솔.

이게 통한다는 사실은 아까 드러났으니 지상에서 끊임없이 노린다면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빈틈을 만든다면 마리아가 그걸 놓치지 않을 테니.

용노심에서 웅웅 울리며 마력을 쥐어짜려던 순간, 커다란 웃음소리랑 함께 한동안 사라졌던 목소리가 들렸다.

“시바아알!! 다 비켜라! 형 파워업 했다. 부릉부릉 형님 들어간다!”

꽈르릉-

알렌이 놀란 얼굴로 하늘을 보자, 율리우스가 별빛으로 빛나는 거미를 타고 하늘을 날고 있었다.

등에는 거미 모양 문신이 별자리 모양으로 반짝였고, 율리우스는 뭐가 좋은지 함박웃음으로 번개를 내리꽂았다.

「아니 저게 뭐예요.」

알렌이 하고 싶은 말이었다.

공격을 맞고 날아간 후에 안 보이나 싶었더니, 갑작스럽게 새로운 힘까지 얻어서 나타난다고?

‘역시 율리우스인가….’

놈다운 행보였고, 놈에게 일어날 만한 일이었다.

알렌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렌이 보았던 율리우스의 생애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위기의 상황에 힘을 얻고, 절체절명에 처하면 누군가 도와주고, 발걸음이 닿는 곳에서는 사건과 함께 보상을 얻는다.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었기에 놀랐을 뿐이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저렇게 된다면, 일이 더 쉬워진다.’

알렌이 틈을 만들어준다면, 나머지는 두 명이 해결할 것이다.

방향을 정한 알렌이 다시 마력을 사용하려던 순간, 누군가 그를 불렀다.

“알렌 공자님.”

본래는 무시했을 부름이었다.

그러나 그다음 사람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알렌, 당신 여기서 뭐해요.”

“…레이첼?”

뒤에서는 레이첼이 지친 기색으로 알렉시우스와 함께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레이첼, 왜 여기에….”

“당신이 먼저 위험한 전투를 하는데, 나만 가만히 있으라구요?”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뭔데요! 갑작스럽게 돌격이나 하고! 지금 나한테 그런 말 할 처지에요?”

레이첼이 화난 얼굴로 한 걸음 앞으로 나서자, 알렌이 난감한 얼굴로 물러섰다.

“당신, 지금….”

레이첼이 나서려던 때, 시기 좋게 알렉시우스가 끼어들었다.

“자자, 이 다음 건 전투 후에 하십시오. 제가 자리도 마련해드리겠습니다.”

그의 행동에 레이첼은 지금의 상황을 떠올린 듯 입을 꾹 닫았다. 그러나 알렌을 쳐다보는 눈길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나중에 고생하겠네요? 흐흥.」

베스틀라가 즐거운 어조로 웃었다.

레이첼이 물러나자, 알렉시우스가 맑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공자님, 족장님께서 부르십니다.”

“저것과 관련이 있는 건가?”

알렌이 저 하늘에서 제집처럼 날뛰는 율리우스를 가리키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공자님에게도 좋은 일일 겁니다.”

레이첼이 알렌의 손을 아프게 잡았다. 알렌의 표정에 변화가 없자, 자신이 더 아픈지 곧장 힘을 뺐다.

알렌의 노려보는 눈매가 더욱 사나워졌다.

“얼른 가시지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밤 자락의 끝이 옅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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