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 빙의를 싫어함-85화 (85/212)
  • 제85화

    “선배님은 공주라고 하셨으니 성에 구조에 잘 알고 있겠지요.”

    “그건…, 그렇지.”

    “성에 있을 때 필수적인 적인 구조물이 뭐가 있습니까?”

    “…뭐? 잠시 기다려봐.”

    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생각하던 그녀는 손가락을 접어가며 하나씩 세기 시작했다.

    “우선…, 아바마마, 아니 왕과 그 가족들이 머물 방과 손님들을 위한 객실과 응접실, 그리고 알현실을 비롯한 회의실과 연회를 위한 거대한 홀과 식당, 도서관도 필요하고 또, 보물을 보관하는 보고랑 그리고….”

    집무실, 병참 창고, 무기 보관실, 경비초소, 병사 숙소, 각종 정부 기관을 위한 기본 시설, 마구간, 연병장, 첨탑, 성벽, 욕탕, 주방, 만찬실, 왕족 전용 각종 편의 시설, 하인들 숙소, 생활공간, 전용 정원과 사냥터, 식량 창고, 간이 마탑….

    마테우스는 그녀의 입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구조물에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그만, 그만! 하나 있지 않습니까. 제일 필수적인 것 말입니다.”

    그의 말에 비엘리가 곰곰이 생각에 잠기자, 아벨린이 입을 열었다.

    “필수적인 거? 내가 성에서 산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대부분은 나온 것 같은데?”

    성이 아니라 그와 비슷한 곳이겠지.

    율리우스는 근질거리는 입을 다물었다. 아직 신뢰가 깊지 않기에 그녀의 과거에 대해서는 모른척해야 했다.

    “매일 하루 세 번은 들리는 장소 말입니다.”

    “세 번…?”

    다들 고개를 갸웃거리자 마테우스가 한숨을 내쉬며 정답을 말했다.

    “화장실 말입니다. 화장실.”

    “아, 맞아!”

    “그게 있었지.”

    다른 쪽으로 생각하느라 고려하지 못했다.

    마테우스의 말에 잊고 있었다는 듯 아벨린과 비엘리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뭐, 요즘은 미관을 망친다고 없애는 추세가 있는 모양입니다만…. 그런 예를 제외하면 반드시 있는 장소지요.”

    “그런데, 그게 왜?”

    “이곳을 돌아다니면서 화장실 같은 장소, 아니 객실이라도 하나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러고 보니….”

    무기고나 창고를 비롯한 많은 방을 파헤쳤지만, 그곳에 누군가 생활했던 흔적은 없었다.

    “함정이나 수호자가 있다고 해도 유적에 원래 있던 구역이 없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그렇지.”

    비엘리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본다면, 저희가 들어간 방이나 공동에 객실처럼 쓰일만한 곳이 있었습니까?”

    “아니….”

    “이걸 이제야 깨닫다니.”

    두 명 모두 이제야 그걸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누가 성의 복도가 창문 하나 없이 저런 칙칙한 회색빛으로 장식하겠습니까? 그러니 종교적 건축물로도 탈락입니다.”

    미관을 중시하는 종교적 건축물의 특징상 이곳은 성도, 신전도 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곳이 감옥이란 말도 이상하지 않나? 아니면 무언가 중요한 걸 보관하기 위해서라든지, 아니면 악마 같은 흉악범을 가두기 위해 지은 것일 수도 있지 않나.”

    전방을 경계하던 마력을 쓰지 못하는 전사, 벨제크가 묵직한 목소리로 처음 입을 떼자, 마테우스는 매끈한 턱을 쓰다듬었다.

    “흠… 흥미로운 견해입니다만…, 그 말은 단지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 이만한 크기의 건축물을 지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래.”

    “차라리 왕성의 지하에 보관해두면 될 걸 왜 다른 건물을 짓습니까? 그리고 흉악범은 그냥 죽이면 될 것을 이만한 장소를 지어가며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까? 굳이?”

    “그것도 그렇군.”

    “그러므로 감옥 혹은, 그 비슷한 건축물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정확한 역할을 모르니 말입니다.”

    “쓸데없는 질문이었다. 미안하군.”

    그가 여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사과하자, 마테우스는 어린아이 특유의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하지만 벨제크 씨의 의견도 괜찮았습니다. 혹시 모르잖습니까. 사실, 이 지하에는 고대의 망령이 갇혀 있고, 지금껏 기회만 노려왔을지, 하하하하.”

    “그렇다면 우리가 이 유적에 들어올 리도 없었겠지.”

    “그 말이 맞습니다.”

    무언가 감당치 못할 것이 있었다면 조사단에서 먼저 걸러냈을 것이다.

    “뭐, 우리가 모르는 어떤 용도가 있지 않겠습니까. 무려 고대 제국의 유적인데. 어디든 쓸모가 있었겠지요.”

    “그건 나중에 올 다른 학자들의 몫이지 않을까?”

    “예, 저희는 이대로 유물이나 얻고 점수만 잘 얻고 떠나면 됩니다. 자세한 건 그네들이 잘 찾지 않겠습니까?”

    “하핫, 맞아.”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곳으로 다가오는 익숙한 기척을 느껴졌기 때문이다.

    애리니가 붉은 적발이 살랑거리며 가벼운 몸놀림으로 다가왔다.

    “여기서 나오는 갈림길이 하나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가면 약간 위험한 함정이….”

    애리니의 설명을 들으며 움직이는 조원을 살피며 율리우스는 만족스러운 눈으로 마테우스를 쳐다봤다.

    ‘역시 앞으로 유적 탐험하는 데는 마테우스가 필수야.’

    건축과 설계를 업으로 삼는 가문의 차남 마테우스.

    가문의 시조가 평생을 거쳐 만들었다는 설계도를 위해 아카데미에 온 만큼, 유적을 탐험할 때는 필수 인력이었다.

    때문에 원작에서도 유적을 탐험할 때는 마테우스의 도움이 컸다.

    ‘설계도의 행방은 알고 있어. 그걸 미끼로 마테우스의 가문을 우리 영지로 끌어들인다면….’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아이디어를 통해 자동차나 비행기 같은 현대 물건들을 재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세한 원리는 모르지만 대충 말해준다면 알아서 잘 만들겠지.

    그게 공돌이의 역할 아니겠는가.

    이미 지하철이나 열차도 나오는 시대니 누가 물어보면 유적에서 설계도를 얻었다 둘러댈 수도 있으니 걱정은 없었다.

    ‘앞으로 얼마 안 남았다.’

    율리우스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퀘스트창을 열었다.

    [유적에 봉인된 고대의 괴물을 ‘직접’ 죽이고 재앙을 막아내십시오! 제한시간 : 4 : 17 : 34]

    [보상 : 진실의 파편(???)]

    오후가 넘어가고, 노을이 짙게 물든 저녁 시간도 떠나간 어스름한 시간의 일이었다.

    * * *

    일행은 빠른 속도로 가까운 함정을 향해 이동했다.

    3층의 서북쪽, 알렉시우스의 빠른 인도에 따라 도착한 그들은 함정을 발동시켰다.

    우우웅-

    도착하기 직전까지 긴가민가하던 그들은 공간이 울리며 주변 공간이 긴 타원형의 모형으로 물결치자 안심했다.

    “최대한 멀리 이동하면 좋겠는데….”

    에리엘의 바람 어린 말을 마지막으로 눈앞이 순간적으로 흐려졌다, 쿵!

    “에반!”

    “알겠다!”

    에반은 이동했다는 확신이 든 즉시 몸을 움직였다. 기척이 느껴진 곳으로 방패를 들자마자 묵직한 반탄력이 몸을 흔들었다.

    “하나!”

    그의 대답에 에리엘이 화살을 걸었다. 압도적인 화력으로 끝내기 위해 마력을 쏟아부었다. 녹색의 마력이 넘실거리며 바람을 휘감았다.

    “머리 숙여요, 에반!”

    후웅!

    에반이 급히 방패로 골렘의 몸통을 강하게 밀치며 몸을 옆으로 날렸다. 날카로운 화살이 회전하며 바람을 품고 골렘의 몸체에 꽂혔다.

    쾅!

    먼지가 흩어지고 골렘의 모습이 드러나자, 에반은 숙였던 몸을 일으켰다.

    “단번에 핵을 꿰뚫었나. 운이 좋….”

    “에반!”

    윌리엄이 크게 소리쳤다. 에반은 그의 외침에 망설임 하나 없이 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쾅-

    에반이 다급해진 얼굴로 확인하자, 골렘의 중추를 이루는 핵이 박살났음에도 골렘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핵이 두 개인 건가?”

    에반은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했다.

    그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가까운 거리에서 공격할 기회는 한 번. 소리를 듣고 주위에 있던 수호자들이 다가올 것이다.

    수월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번 일격으로 끝내야 했다.

    ‘그렇다면 어디를?’

    몸의 중앙에 핵이 있었으니, 심장을? 아니면 등의 중추에?

    “에반, 머리! 머리 중앙 아래를 노리십시오!”

    윌리엄은 에반의 고민을 알아챘다는 듯 곧바로 외쳤다. 에반은 윌리엄의 말을 신뢰했다.

    ‘윌리엄은 나보다 머리가 좋다.’

    옛날이라면 인정 대신 외면했을 사실이었다.

    그러나 족히 한 달 이상을 함께하며 그는 인정했다. 윌리엄은 평민이라고 무시할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알았다!”

    이제는 신뢰하는 자신의 동료였다.

    두 다리에서 푸른 마력이 용솟음치듯 올라오며 움직임을 가속했다.

    바로크식 비전(Baroque式 ?傳) - 랑아(WolfFang) 몸이 길쭉하게 늘어나며 송곳처럼 검을 올려쳤다. 푸르게 물든 검은 짐승의 송곳니처럼 거칠게 파고들며 퍼석하고 무언가를 파괴했다.

    손에 감촉을 느낀 에반은 바로 방패로 거칠게 골렘의 몸을 치는 힘을 반탄력 삼아 뒤로 물러났다.

    타닥-

    그는 긴장을 풀지 않고 골렘을 응시했지만, 골렘은 몸을 휘청이더니 곧바로 바닥에 쓰러졌다.

    한동안 더 지켜보고 나서야 그는 긴장을 풀었다.

    방패는 여전히 전방을 향한 채였다.

    “…진짜 끝났군.”

    “에반 괜찮으십니까!”

    윌리엄이 상태를 살피기 위해 다가서자 에반은 크게 웃으며 손을 들었다. 윌리엄은 그의 상태가 괜찮다는 걸 확인하자,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도 손을 들어 올렸다.

    짝-

    경쾌한 손뼉 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야…, 조금 살살치시지 그랬습니까.”

    “하하하! 남자가 뭘 이것 가지고 그러나! 잘했다!”

    “…동료니 이 정도는 당연한 일입니다.”

    상황이 정리되자 주변을 감지력으로 훑은 알렌은, 더 이상 위험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알렉시우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알렉시우스, 지금이 몇 층입니까.”

    “기다려주십시오, 지금 확인을….”

    지도를 살펴보던 그의 표정이 변하자, 윌리엄이 불안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무, 무슨 일이 있습니까? 혹시 잘못 이동했다면….”

    “7층.”

    “예?”

    “7층입니다….”

    일행은 그가 한 말의 의미를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의미를 서서히 이해했는지 환호를 내질렀다.

    “바, 방금 여기가 7층이라고…!”

    “알렌! 후배가 맞았어! 와! 나도 이런 거 처음이야.”

    “7층이라고…? 흠, 그래서 반탄력이….”

    “이거 꿈은 아니죠…?”

    그들은 그렇게 소리를 듣고 달려온 골렘의 무리를 몇 번이나 상대하고 나서야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그러나 목소리를 낮추더라도 기쁨만큼은 감출 수 없는지 눈이 밝게 빛났다.

    “이제 7층의 제일 깊은 곳에 있는 유적 수호자를 쓰러트리고 복귀에만 성공한다면…!”

    “1등은 따놓은 당상입니다. 이건 분명히 공적치도 상당히 얻게 될 테니 정말….”

    알렌은 조원들이 기쁨을 느끼도록 잠시 기다려주었다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입을 열었다.

    “더는 시간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저희처럼 정보를 모아서 이곳에 도달하는 학생이 있다면….”

    알렌이 의도적으로 말끝을 흐리자 그들은 급히 몸을 일으켰다.

    “어서 가요, 어서!”

    “여기서 따라 잡힐 수 없지.”

    “후배들, 가자아아앗!”

    7층을 가로지르는 건 쉽지 않았다.

    전보다 더욱 강력해진 수호자와 함정들.

    심지어 선발대가 먼저 진입하지도 않았기에 상대해야 할 적은 배로 많이 늘어났다.

    그러나, 발목을 잡힐 정도는 아니었다.

    알렌이 어느 정도 진심을 다했기 때문이다.

    한 손으로 수인을 맺었다. 실타래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안에 심상을 담을 필요는 없다. 빈틈만 만든다면 충분하다.

    ‘다중 변이의 창.’

    실타래를 도구 삼아 손가락을 움직였다. 섬세하게, 마치 악기를 연주하듯이. 너무 힘이 담기지 않도록, 오히려 조금 힘을 빼고서.

    댕-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댕댕댕-

    열두 개의 둥근 금속관으로 이루어진 튜블러 벨이 다채로운 종소리를 내며 점차 맑은 파동을 흩뿌렸다.

    점차 크기를 키워가던 골렘들은 몸의 부위가 산화되기 시작했고, 그 틈을 타 녹빛으로 물든 화살과 청색 마력을 휘감은 에반이 마무리 지었다.

    “몰려들기 전에 7층의 중심, 심부로!”

    “알렉시우스, 함정 처리 부탁하겠습니다!”

    일행은 정말 최선을 다했다.

    B반. C반. D반.

    1학년. 3학년.

    학생. 길잡이.

    그들은 그 무엇도 상관치 않고 나아갔다.

    “회복, 회복하겠습니다!”

    윌리엄은 마음의 짐, 달리 말해 벽이라고 할 만한 것을 넘어섰다.

    이제 그의 실력은 A반은 가뿐히 들어오고도 남을 것이다.

    “에반, 5초, 아니 3초만 발 묶어줘요! 큰 걸로 갈게요!”

    “크흡, 알았다!”

    에리엘과 에반은 이번에 엄청나게 성장했다.

    이들은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노력한다면, 다음 학기에 B반까지 올라오겠지.

    “에반, 앞에 발 조심! 에리엘 마력 조절하고 북서쪽 30° 간격으로 화살 쏴!”

    밀레드는 정말 최선을 다해 도와줬다.

    지나친 개입에 감점을 먹을 수도 있음에도.

    알렌이 처음부터 빈틈없도록 계획을 짰기에 할 일이 줄어들었으나, 그녀는 그 안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찾아냈다.

    “뒤에서 몰려오는 적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두 번째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십시오!”

    알렉시우스 역시 묵묵하게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알렌이 공략을 도와주기로 약속을 했지만, 알렉시우스는 약속을 이행하라 채근하지 않았다.

    알렌은 그 광경 속에 함께 속해있었다.

    비록 완전히 녹아들지는 못했더라도, 그 안에 함께하고 있었다.

    꽤 즐거웠다.

    실제 모험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은 일상을 벗어난 느낌마저 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한계에 맞닿았지만, 그래도 그 이상은 넘지 않은 난도 속에서 몇 시간에 걸쳐 7층의 심부를 향해 나아갔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아공간에 보관한 물약을 다 마시고, 윌리엄이 탈진하기 직전까지 회복을 퍼부었다.

    그렇게 해서 각자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마침내 중앙을 지키던 골렘까지 무찌를 수 있었다.

    “드디어 도착했…!”

    “이제 다시 돌아가기만 하면….”

    쿠구구궁-!

    지진이라도 난 듯 유적이 크게 뒤흔들리며, 지금을 기다린 것처럼 하얀 책이 허공에서 펄럭였다.

    『■■■■과(와) 이어진 책이 조건을 확인합니다. ■■을(를) 인지하고 있습니다!  ■■와(과) 연관된 대상이… 수정! 지식의 화신, 베드■■니르의 존재를 인지합니다!』

    『■■와(과) 연관된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타■했을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락한 ■■을(를) 말살하기를 원합니다!』

    『조건을 임시로 충족합니다. ■■의 ■■(가칭)이 현현합니다!』

    『?3초 안에 반경 300m 이탈. 불충족시 정신방벽 강화와 공간 이동 저항. 17분 18초 내로 유적 탈출 요망.』

    그와 동시에 거대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듯한 울음소리가.

    “아────────────”

    유배된 화신이 잠에서 깨어났다.

    * * *

    자크니르는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천천히 유적을 살폈다.

    “흐음… 도저히 이유를 모르겠는데.”

    그가 펼친 감지력은 234,375m, 대충 234㎞의 범위를 가진다.

    가히 작은 섬 하나를 통째로 살필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범위.

    머릿속에 들어오는 정보량이 압도적인 탓에 세세히 살피지는 않지만, 웬만한 존재는 그의 눈을 피할 수 없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

    우웅-

    가슴속의 여덟개의 고리가 서로 공명하며 언제라도 튀어나올 듯 준비했다.

    학생들이 쓰러졌던 부근을 중심으로 세세히 감지력을 집중시켰지만, 무언가를 발견하지 못했다.

    “새로운 함정이 있긴 한건가?”

    8 위계의 초기.

    대부분의 팔강의 실력이 8위계의 끝 혹은 9위계 정도에 닿아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모자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가 그가 약하다고 할 수 없었다.

    세계로 무대를 넓혀도 그의 실력은 여전히 두 손… 아니 네 손 안에는 들것이다.

    그런 그가 아무리 비밀이 많다고 한들 유적의 함정하나 파악하지 못한다고?

    “…이상한데, 유적에 비밀이 많다지만 이건 특히 그렇군.”

    자크니르는 이상을 느끼면서도 별다른 걱정은 들지 않았다.

    그야 그건 당연했다.

    자신은 팔강.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자이니까.

    누구에게 습격당할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닌, 그가 누구를 습격할지 걱정하게 하는 위치.

    “다음 차례가 델른 교수였나? 어찌 됐든, 슬슬 시간도 됐으니 약속대로 그를 불러서….”

    그렇기에 그의 긴장은 조금 느슨해져 있었고.

    “…대충 위계에 관해 이야기나….”

    “─정말, 기다렸어. 꼬맹아.”

    푸슉-

    습격에 대해 반응하는 것이 늦었다.

    “큽, 누구냐!”

    “어머, 조금 얕았네?”

    광구가 폭발하듯이 확산하며 광명의 벽을 만들어냈다.

    묘령의 여성은 여유롭게 광막을 피해 물러났다. 그녀는 자크니르를 찌른 칼날을 핥으며 야릇하게 웃었다.

    “이런 얼굴이니 누구인가 싶지? 나야 나, 너 때문에 말년을 똥통에 처박혔는데 말이야. 기억하니?”

    쿠구구구궁-

    뒤늦게 유적이 울리기 시작했다.

    자크니르가 여전히 얼굴을 굳힌 채로 경계하자 그녀의 미소가 점차 사라졌다.

    “벌써 잊었나 보네? 그래도 괜찮아. 이제 알 테니까. 고요한 비수, 음지의 왕, 발밑의 숨겨진 독사─.”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말이 이어질수록 자크니르의 표정이 점점 변했다.

    “비욘나. 너 때문에  모든 기반을 잃은 여자이자, 이제는 복수 밖에 안 남은 늙은 암사자란다. 어흥.”

    “…뭐?”

    시끄러운 진동이 들림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그의 귓가에 명확히 박혀 들었다.

    “거짓말 하지 마십시오! 분명히 그녀는 다 늙은 여자였…,”

    “너 때문에 노력했지?”

    그녀가 장난스럽게 웃었지만, 자크니르는 웃을 수 없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 나이에 한계를 넘었다는 것이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모종의 수단으로 젊음을 되찾았다는 말일 테니까.

    “이제 믿겠니? 의심하는 성향은 그대로구나. 그렇다면 이제 인사도 끝마쳤으니, 이제 그만-,”

    그녀의 몸이 홀연 듯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아니, 그림자가 물웅덩이처럼 고이기 시작했다.

    감지력이 그녀의 존재를 놓쳤다.

    “-죽어주겠니?”

    자크니르에게 패배한 전(前) 팔강.

    3년 전 전투에서 물러난 패자.

    그늘진 여왕 (Queen Of Dunscaith).

    그녀가 되돌아왔다.

    * * *

    미니마 부족과 아라흐니 부족의 주둔지.

    하늘이 검게 물들고 달이 푸르게 차오르는 가운데, 캠프와 조금은 떨어진 곳에 위치한 그들의 주둔지는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길잡이 일을 나갈 수 있는 대부분의 젊은 부족원과 특별한 ‘준비’를 위해 며칠 전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족원들.

    그들을 제외하고 주둔지 내에 자리하고 있는 사람은, 미니마 족장인 그를 제외하고서 거동이 불편한 몇 명밖에 없었다.

    아라흐니 부족장도 의식을 준비하기 위해 다른 곳에서 따로 대기하고 있었기에 넓은 천막에는 사람이 적었다.

    “…때문에 아마도 오늘 밤, 혹은 얼마 지나지 않은 새벽에 때가 될 것으로 파악됩니다.”

    “수고했다.”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이 방랑하는 별들께 영광이 되기를!”

    “그래, 이만 준비하러 가보거라.”

    젊은 부족원이 천막을 나서자, 부족장은 주름진 눈이 하늘을 향했다.

    그의 눈은 천막의 천장이 아닌 그 너머의 밤하늘을 바라보는 듯했다.

    “유성이 떨어진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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