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화
“저는 먼저 들어갈게요. 오늘 불침번 초번은 알렌이죠? 내일 봐요.”
“나도 이만 일어나 보지. 이동 함정이 있는 곳은 대충 유추했으니, 내일이 기대되는군.”
에반도 오만한 표정과 어울리지 않는 느슨한 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천막 안으로 사라졌다.
‘나답지 않아서 놀랍다니.’
알렌은 어이가 없기도 하고, 베스틀라 안에서 자신이 어떤 이미지인지 짐작도 가 쓴웃음을 지었다.
알렌은 알았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결국, 어떤 변명을 대든 자신은 저들과 진심으로 어울릴 수 없다.
자신은 동생을 위해 그 어떤 것이든 할 것이고, 그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율리우스를 찾을 방법을 찾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인데, 다른 곳에 빠지면 뭐가 되겠는가.
즐기면 안 되었고, 진심이 되어서도 안 되었다.
“알렌.”
“…….”
“알렌?”
“…아, 아. 생각에 잠겨 못 들었습니다. 뭐라고 했습니까?”
윌리엄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알렌을 향해 조심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 고민이 있으신가요? 얼굴에 수심이 깊어 보이길래….”
알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동 함정을 이용할 수 있을지, 이용한다면 다시 돌아오는 게 가능할지 생각 중이었습니다.”
알렌의 대답에 윌리엄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냐는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내일 생각하셔도 될 일 아닙니까.”
“제가 조장인데 미리 생각해 둬야지요.”
알렌이 작게 웃으며 답하자, 윌리엄은 못 말리겠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그것도 알렌, 아니 조장님답군요.”
“그런데, 불침번은 저 혼자인데 이제 들어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저, 저도 생각할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야.”
자연스러운 침묵이 둘 사이를 감돌았다. 모닥불은 자신을 봐 달라는 듯 화려하게 타오르며 생의 마지막을 끊임없이 불태웠다.
타닥- 탁-
“그거 아십니까?”
윌리엄의 눈은 모닥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저는 처음에 모든 귀족이 괴물인 줄 알았습니다. 푸른 피가 흐르고, 가족에게도 무자비한 냉혈한에, 이득을 위해서라면 변이라도 먹는답니다.”
처음에 자신을 낮춘 것도, 중간중간에 이들의 행동에 복잡한 심경이 들었던 것도 다 그 때문이었다.
“틀린 것도 아니지요.”
실제로 그런 귀족들이 많았다.
귀족임에도, 상인처럼, 이리떼처럼 구는 놈들.
알렌의 머릿속에도 한 명이 떠올랐다.
가문과 권력을 위해서라면, 제 아들이라도 버렸던 이가.
“하지만 맞다고 할 수도 없습, 아니, 없었습니다.”
윌리엄이 고개를 저었다.
그 편견이 깨지는 건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고작해야 몇 주 전, 아카데미에 왔을 때는 모든 것이 두려웠다. 고아로 자라 계급의 밑바닥을 전전할 뻔했던 게 윌리엄이다.
만약, 그 재능을 알아본 근처 마법사 한 명이 아니었다면 살아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에반은 겉으로는 오만하지만 속은 여린 사람입니다. 자신 때문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항상 완벽함을 연기하려고 합니다.”
그게 지나쳐 오만함으로 비쳐 보일 뿐이다.
처음에는 말하는 것도 떨렸지만, 지금은 그의 오만한 모습에도 아무런 부담도 느끼지 않았다.
“에리엘은 자존심이 높지만, 장난을 무척 좋아하십니다. 그거 아십니까? 일부러 저와 에반님의 반응을 보기 위해 오해할 만한 말을 하시는 것을.”
귀족의 공녀라니. 실수로 눈이라도 마주친다면 뺨이라도 맞을까 얼마나 움츠렸는가.
그녀가 자신의 태도를 이용해 계속 장난을 치며 다가왔기에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알렌님은… 공정했습니다. 차석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덕에 처음에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모두 정말… 좋은 분입니다. 제가 어울리기 주저할 만큼.”
말더듬이에 평민이라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던 학생은, 이곳에 없었다.
그의 진지한 말에 알렌은 고개를 깊이 숙여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뭡니까?”
“그냥, 그냥 말하고 싶었습니다. 감사도 드리고 싶었고요.”
윌리엄은 그렇게, 흐릿하게 웃었다.
“다른 분들의 평가만 말하면 조금 그러니 저도 말하자면… 저는 여동생을 찾고 있습니다. 제가 고아라고 말씀드렸던가요?”
“…아니요,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옛날 노예로 팔려 나갔던 여동생을 찾고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무작정 아카데미로 왔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조금 헤맸습니다만….”
그는 자신의 아카데미 생활을 떠올린 듯 미소짓더니, 이내 확신이 찬 눈으로 답했다.
“지금은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름 하나 밖에 생각이 안 나고, 저랑 같은 구불거리는 흑발이라는 것밖에 기억이 안 나지만요.”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모습은 희망과 결단에 차 있었다.
알렌은 그 모습에 다소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한쪽에서는 그가 이 이야기를 퍼트려 봤자 별 영향력이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저도…, 찾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린벨과 이넬리아, 베스틀라 그리고 카트린느만 아는 비밀. 레이첼에게도 아직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입에서 새어 나왔다.
“누구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윌리엄의 물음에 알렌은 침묵했다. 자신의 태도가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던 걸까. 윌리엄은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젠가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반드시라….”
알렌은 그의 말을 곱씹으며 작게 웃었다. 그 웃음에, 평소와 같은 근심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습니까?”
“예!”
알렌은 자신의 사정도 모르면서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모습이 우스웠지만…, 정말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쓰, 쓸데없이 말이 길어졌습니다! 저, 저는 인제 그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윌리엄의 귓가를 보니 붉게 물들어 부끄러움을 겨우 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고개만 뒤로 돌렸다.
“앞으로도…, 이런 생활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알렌도 너무 혼자만 힘쓰지 마십시오.”
그가, 아까와는 달리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저희도 동료지 않습니까. 물론… 저희가 미덥지 않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좋은 의견이라도 나올지 누가 알겠습니까.”
“…….”
그리고는 재빨리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다시 걸음을 옮겼다.
“내일 아침에 보겠습니다.”
알렌은 그가 떠나가는 가운데, 그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
‘너무 풀어진 건가? 아니면….’
「…괜찮아요?」
모닥불의 빛은 고개 숙인 얼굴까지는 닿지 못했다. 베스틀라의 물음에도 알렌은 답하지 않았다.
그 어떤 말도.
* * *
[팔강 중 한 명인 자크니르가 사고를 방지하고자 유적에 들어간다.]
사고가 일어난 지 몇 시간이 지나 공표된 소식에 교수들의 예상대로 굉장한 호응이 뒤따랐다.
-자크니르 님이 오셨다고!?
-언제? 어떻게? 아니, 그보다 유적에 들어간다는 거 진짜야?
-우리 조는 들어간다. 내일, 그리고 그분과 꼭 만날 거야.
처음에 불안한 마음에 유적에 들어가길 주저하던 학생들도 대번에 마음을 바꿨을 정도. 그 정도로 팔강이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커다랬다.
공식적인 여덟 명의 강자 중 하나.
그가 왜 이곳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그의 존재 하나만으로 든든했으니까.
다만, 그 의욕이 너무 앞선 나머지 무작정 유적으로 들어갔다가 탈락해버리고 마는 웃지 못한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교수들은 그 소식에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뭐 어쩔 수 있을까.
돌아간다면 다음 학기에 정신 훈련을 하나 더 추가해야겠다고 마음먹을 뿐.
“알렉시우스, 여기가 맞습니까?”
“예, 이곳이 맞을 겁니다.”
알렌 일행은 아침에 다른 학생이 몰려들 것을 예상해 조금 일찍 유적으로 진입했다.
몇 번이고 내려온 나선형 계단을 거쳐 눈에 익은 회색빛 통로를 지나 안쪽으로. 그러나 오늘은 최대한 빠르게 내려가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틀리면 어쩌죠?”
“흠… 솔직히 이쯤 되면 다른 학생들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닐까 싶다만….”
알렌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들을 다독였다.
“탈락할 때의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들은 어제 하루 동안 탈락자들을 중심으로 공간 이동 함정이 어디에 있는지 정보를 모았다.
실제로 윌리엄을 비롯해 에반, 에리엘 그리고 밀레드와 알렉시우스까지 다양한 정보를 모아왔지만….
쿠구궁-
알렉시우스가 함정을 발동시키자 바닥이 열렸다가 순식간에 닫혔다.
“…이번에도 꽝입니다.”
벌써 다섯 번째다.
아쉽게도 이른 아침부터 대낮이 될 때까지 열심히 수색했음에도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눈앞에 있는 함정만 하더라도 그저 단순한 함정일 뿐 공간 이동의 함정은 아니었다.
“애들아 걱정하지 마! 오늘이 못 찾더라도 괜찮아. 내가 다른 얘들한테 더 자세히 알아볼 테니까. 그러니….”
“안됩니다.”
알렌이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잘랐다.
밀레드는 기분이 나쁠 만한데도 오히려 알렌이 그렇게 한 이유가 궁금하다는 듯 의문을 물었다.
“왜?”
“어제 저희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목적을 눈치채는 사람이 존재할 겁니다.”
“하지만 눈치 채더라도 이미 우리가 먼저 알아낼 다음일 텐데 괜찮지 않아?”
알렌은 고개를 저었다.
“이제는 정보를 얻기 쉽지 않을 겁니다. 어제 저희가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우연찮게도 사고의 덕이 컸지요.”
그게 아니었다면 앞으로의 경쟁자가 될 텐데 쉽게 정보를 알려줄 리가 없었다.
사고로 인해 유적의 입장이 금지되고 불안감이 조성되었기에 그나마 쉽게 정보를 얻게 된 것이다.
“공간 이동 함정을 수소문 하는 것을 알았을 테니, 저희 조가 최단 돌파를 목표로 움직인다고 다들 파악했을 겁니다.”
먼저 함정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었다.
사람들은 1등, 최초에만 시선을 둘 뿐이니까. 2등이 얼마나 노력을 했든, 어떤 과정을 거쳤든 다른 이들에게는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어쩌면, 그 정보를 인질로 다른 걸 요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령, 고대 유물이나 돈 같은 것들이 있겠지요.”
“화,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윌리엄은 알렌의 말에 공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부끄러운 말을 한 기억은 쉽사리 가시지 않는지 눈이 마주치자 목덜미가 붉게 변했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무작정 모든 장소를 확인하려 든다면 시간이 엄청 소모할 텐데…, 어쩌려고 그러나.”
“알렌의 말을 토대로 생각한다면…, 지금쯤 공간 이동 함정을 팔려는 자들도 밖에 있을 텐데.”
에반은 쉽게 해결되리라 생각했던 일의 진행이 막히자 난감한 얼굴이었다.
그렇게 일행은 세 곳을 더 이동했다.
다음 함정은 바람 칼날이 스쳐 지나갔고, 두 번째는 강력한 인력이 뻗어왔다.
마지막 세 번째까지 화염이 넘실거리며 공기를 굴절시켰다.
점점 의욕을 잃어가는 일행을 보며 알렌은 앞으로 나섰다.
‘여기서는 내가 도움을 줘야겠군.’
본래 조원들이 찾을 수 있게 관여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생각을 바꿨다.
앞으로 어떤 괴물이 이 유적에서 튀어나올지 모른다. 차라리 빨리 목표를 끝마치고 내보내는 게 더 옳은 선택일 수 있었다.
“알렉시우스, 지도를 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당연히 드릴 수 있습니다만….”
알렉시우스는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순순히 그에게 지도를 넘겼다.
일주일간 유적을 돌아다니며 지도는 하얀 선이 가득했다. 알렌은 조원들이 얻은 정보 중 가능성이 없다 생각한 건 전부 배제하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여기, 이 부분은 완전히 제외하겠습니다.”
“에? 아, 알렌? 갑자기 왜요…?”
그의 행동에 놀란 에리엘의 질문에 알렌은 조원들 모두 납득할 수 있게 간단히 설명했다.
“공간이 이동될 때는 그 전조로 공간이 물결치며 단절됩니다. 방금 제외한 곳들은 설명을 들었을 때, 공간 이동의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알렌 만약의 가능성이라도….”
“설령 그곳에 공간 이동 함정이 있더라도, 확실한 곳부터 먼저 간 후에 확인해도 늦지 않습니다.”
알렌이 묘한 박력으로 말을 잇자,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북서쪽의 네 곳과 동남쪽의 두 곳도 마찬가지. 공간 이동 시 느꼈던 묘한 어지러움은 이동했을 시의 멀미가 아니라 환영에 저항하는 무의식의 반응이지요.”
알렌의 손가락이 지도를 따라 움직였다. 조원들의 시선도 그 손가락을 따라갔다.
“동서의 한 곳과 남쪽의 두 곳은 공간이 물결치며 이동했다고 했기에 얼핏 보면 공간 이동 같아 보이나, 사실 공간 자체를 압축시키는 함정입니다.”
“…그 이유는 뭐지?”
“공간 이동했을 때 물결의 파동이 벽처럼 밀려왔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공간 이동할 때의 파동은 아래위로 쭉 뻗어진 타원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렇군….”
“질문 더 있습니까?”
알렌의 막힘없는 대답에 질문한 에반은 괜히 자신이 잘못한 건가 싶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없네….”
“그렇다면 설명을 계속하겠습니다.”
알렌은 그 뒤로도 십 여 곳을 각자 다른 이유로 함정을 제외했다.
“이 장소는 제단이라고 했지요. 제단으로 공간을 이동시켰다는 말은, 유적 내의 이동보다 다른 차원의 존재에게 의식을 치….”
“정방형의 마법진과 방 네 면을 장식한 거울. 그건 공간 이동이라기보다 거울의 이면 세계로 봉인하기 위한 술식….”
“세 개의 입방형 상자와 중앙의 검이라…, 무척 희귀하고 어려운 술식이지요. 가까이 다가가면 입방형의 상자로 이동되는 고위….”
그들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에 틈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누구의 이론이니, 어디서 검증된 논문인지 그런 어려운 설명을 제외하고도 알렌의 설명은 마법사가 아닌 이들도 알아듣기 쉽고 조리 있었다.
“…알렌도 역시 마법사가 맞았네요.”
에반도 열정적인 어조로 설명을 하는 알렌을 보며 동의했다.
“필요할 때만 마법을 쓰면서 낭비하지 않기에, 역시 차석쯤 되면 다른가 싶었다.”
“마, 마법사가 마법에 미치지 않으면 마법사가 아니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윌리엄이 유명한 속담을 중얼거리며 내심 알렌도 사람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이해했다고 생각하는데…, 더 질문할 사람 있습니까?”
그렇게 무수한 이유로 제외된 곳을 제외하고, 단 두 곳의 장소만 남아있었다.
“없어요….”
“크흠, 어서 가지 않고 뭐하나. 늦으면 안 되지.”
“알렌 후배가 공간 계통에 조예가 있는 건 알았는데, 이 정도 일 줄은….”
알렌은 그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낮게 속삭였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초대형 유적 탐험, 던전 실습을 끝낼 시간이 다가왔다.
* * *
율리우스의 조는 며칠 동안 큰 성과를 얻고 다시 유적을 내려왔다.
“잠시 휴식하도록 하시죠, 저는 잠시 길을 살피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해.”
율리우스가 허락하자, 애리니가 잠시 정찰하고 오겠다며 골목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조원들은 각자 잠시간의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모두 앉아있는 가운데, 어중간한 키의 소년 혼자만 왕성한 호기심을 채우겠다는 듯 주변을 살폈다.
“음…, 이 유적의 구조나 양식을 살펴보면 이곳은 성이나 종교적 건축물은 아니겠군요.”
가늘고 허스키한 목소리.
마테우스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여유롭게 결론을 내렸다.
“…성이 아니라고?”
아벨린의 의아한 목소리에 마테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관찰한 바로는 예, 성이 아닙니다.”
“왜? 첨탑도 네 개나 있고 구조도 얼추 맞는 것 같은데?”
“알다시피, 유적은 멸망한 고대 제국의 유산입니다.”
대륙 전체를 지배했다던,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워냈다는 고대 제국의 유산.
뚜벅뚜벅-
“그렇기 때문에 고대 제국은 여러 방면에서 엄청난 발전을 이뤘지요.”
마법, 정령, 기계, 무술 같은 것에서부터 대륙의 식량을 책임질 수 있게 만든 기술까지.
“유적에는 갖가지 유물과 함께 그런 잃어버렸던 기술도 잠들어 있습니다.”
“누가 그걸 몰라? 뻔한 말 하지 말고 본론을 말해.”
아벨린의 코웃음 소리에 마테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래서 유적의 형식도 다양하게 나뉘고요. 그런데 여기는…, 건축의 목적을 모르겠습니다.”
“뭐?”
“건축물에는 여러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거주, 학업, 훈련… 심지어 보관까지. 그건 유적에도 마찬가지고 말이죠.”
마법이 주로 발견되는 건 누군가의 연구실이나 지금은 없어진 학파의 본탑이며, 엘프들이 기를 쓰고 찾아내는 유적은 식물을 주로 연구했다는 세계식물원의 분원이다.
“그런데 여기는 그 무엇도 아니다?”
“음…, 예. 저는 그….”
율리우스의 물음에 마테우스는 생각하는 듯 잠시 어린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게 대답하려는 찰나, 누군가 불쑥 끼어들었다.
“잠시, 끼어들어서 미안한데, 그렇다면 이곳은 무슨 역할을 한다는 거지?”
율리우스랑은 다른 특징적인 진한 바다 빛 머리카락, 남쪽의 끝에 있는 작은 해양 왕국의 공주 비엘리 카자나프였다.
그와 동시에 조에 합류한 2학년 선배이기도 했고.
“그건… 제 생각에는 아마 감옥? 아니, 그것보다는 무언가를 봉인하기 위한…, 그 비슷한 장소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감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