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 빙의를 싫어함-83화 (83/212)

제83화

학생들이 시끄러운 가운데 교수들은 한곳에 모여들었다.

갈슈딘 아카데미의 기재들을 가르친다고 할 수 있는 교수들답게 그들은 냉정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십니까.”

“아티펙트는 이미 출발하기 전에 모두 점검이 끝났습니다.”

“사전 탐사 또한 조사대에서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확인이 끝났잖습니까.”

그들도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유적에 아무리 아직 발견하지 못한 비밀이 많다지만, 벌써 수백 년이다.

아카데미에서는 수백 년간 대사막의 유적을 탐색했고, 기록했으며, 문서로 남겼다.

그렇기에 순조롭게 진행되어야 할 실습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뭐, 일반 유적도 아닌 초대형 유적이니 의외의 일이 발생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긴 한데….”

이대로 지지부진한 이야기를 할 수만은 없기에 그들은 이야기를 돌렸다.

“우선 쓰러진 학생들은 어떻습니까?”

“조금 전에 깨어나서 확인했지만, 당시의 기억이 모호하다는 걸 제외한다면 문제없습니다.”

“학생들의 영상 기록구는 확인하셨습니까?”

“그건 제가 먼저 확인했습니다만….”

다른 이들의 물음에 기록 장치를 보관하던 교수는 침음성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저히 알 수 없었습니다. 저를 비롯한 교수 몇이 직접 현장을 조사했기에 확실합니다.”

“예? 그게 무슨….”

그는 말하는 것보다 보는 게 낫다는 듯 아티펙트를 작동시켰다.

그러자 네모난 화면이 공중에 떠오르며 당시의 현장을 상영했다.

“보시다시피, 이번 학생들은 비교적 안전한 1층에서 유물을 얻으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흠, 1층이라.”

학생들은 아카데미의 인공유적에서 미리 연습했던 대로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를 보십시오.”

그가 말하기 무섭게 화면이 갑작스럽게 검게 변하더니 털썩하고 쓰러지는 소리만 울렸다.

비명, 저항, 위협.

그 어떤 징조도 없이 학생들이 쓰러졌다.

그 기이한 광경에 창술을 가르치는 교수, 밀튼이 인상을 썼다.

“독은 아닌 것 같은데…. 정신계 함정이 유력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학생들에게 특유의 저항 반응이 없지 않소. 다이악스의 교차 검증에서 인간은 정신을 건드리는 그 모든 것에 대해 저항을 가진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았소?”

“맞는 말이지요, 그렇다고 저 영상에서처럼 한순간에 저항을 없애려면 압도적인 실력 차가 존재해야 할 텐데….”

그는 그 말까지 하고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존재를 조사대에서 발견하지 못했을까요?”

만약 그런 존재가 있다면 일주일이 넘게 생도들이 유적을 휘젓게 놔둘 이유는 뭐란 말인가.

조사대가 유적의 심층부까지 들어올 때도, 선발대가 수색할 때도 조용히 있다가, 학생들이 일주일 동안 유적을 뒤지고 나서야 나선다?

“웃기는 소리지. 차라리 새로운 종류의 함정이 발견되었다는 게 더 그럴듯하겠소.”

“으음…, 하긴, 그쪽은 이사장님이 직속으로 주관하시는데 그런 실수를 할 이유가 없지.”

“정신이 아닌 영혼 쪽이라고 해도 마찬가지. 영혼 쪽이라 해 봐야 강령술 계통일 텐데, 가만히 기절시켜 둔다는 건 또 무슨 소리요? 그 미치광이들이.”

교수들은 별 표정 변화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 정도 사고쯤은 일 년에 몇 번이나 마주치는 종류의 것이었다.

어느 세력에서 테러를 저지르거나, 유적에서 고대의 괴물이 튀어나오거나, 갑자기 잘 작동되던 아티펙트가 멈추거나.

돌발적인 상황은 그들에게 있어 이제 일상의 한 부분에 녹아들어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별 동요 없이 이야기하기보다는 다른 부분을 꼬집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었다지만…, 한 사람도 제대로 대처를 못 했으니 이건 감점 요인이군.”

“누군가 반응이라도 했다면 그래도 감안하겠는데, 쯧. 요즘 학생들은 너무 물러졌군. 나 때는 안 그랬는데 말이야.”

“맞아요, 맞아. 내가 괜히 이러는 게 아니라니까? 이게 실전이면 어찌할 거야, 어? 적어도 주위 동료들을 위해 신호탄을 쏠 시간은 벌어야 하지 않겠소?”

한 교수가 말한 것에 이어 다른 교수들도 요즘 학생은 경계심이 낮아졌다느니, 재능만 믿고 나태해졌다느니 이야기를 나눴다.

그 광경에 자크니르는 공감이 가면서도 공감이 가지 않았다.

‘저 나이 때 대처를 잘하는 아이들이 어디 있다고 참….’

한편으로는 몇천 명의 경쟁을 뚫고 들어온 갈슈딘 아카데미의 학생이라면 당연히 이 정도 고난은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언젠가 마왕 같은 적이 나타날 때를 대비해 용사의 동료로 키우기 위함이 목적인데. 이겨 내는 건 불가능하더라도 일말의 저항 정도는 해야 했다.

설령, 그 저항이 발악에 불가할지라도.

짝짝-

“어쨌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요. 이미 이야기가 퍼져 학생들이 불안해하는 모양입니다.”

“아니, 위험한 건 다들 알고 온 게 아니오? 실전이 소풍도 아니고, 이 정도 사고는 예상하지 않았겠소?”

“그게…, 이미 실습을 포기하겠다는 조도 몇 나온지라….”

교수들은 벌써 그럴 줄 몰랐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아니 그게 무슨….”

“또 아티펙트에 문제가 있으니 항의하겠다고 합니다. 그 의견에 동조하는 학생들의 수가 꽤 많습니다.”

“아니, 하….”

실전이 장난인가. 나들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한다고?

“시간이 흘렀군, 흘렀어….”

“에잉, 쯧. 삼십 년 전만 해도 포기하는 놈이 병신 취급당하는 게 당연했건만….”

교수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던전 실습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유적의 수준이 높아서 학생들이 꽁무니를 뺐다?

“벌써부터 무슨 소리를 들을지 두려워지는군.”

“몇백 년간 커다란 일이 벌어진 적이 몇 없다지만 참….”

“절대 그럴 수 없소, 절대로! 아카데미의 위신 때문이 아니더라도 여기서 그만두는 게 말이나 되오?”

실제 전투는 그만두고 싶다고 그만둘 수 있는 게 아니며, 벗어나고 싶다고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걸 알려 주기 위한 실전이오, 실습이었다.

“어쨌든 실습은 강행되어야겠지요. 하지만, 이대로 강행한다면 많은 학생이 지레 겁먹고 포기할 텐데….”

어떻게 해야 학생들의 의욕을 고취시키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독려할 수 있을까.

평생 교수 일을 하면서 해 본 적도 없고, 해 볼 거라고 생각지도 않은 사태에 그들의 표정이 어두워질 무렵, 회의를 조용히 지켜보던 자크니르가 입을 열었다.

“제가 유적에 진입하겠습니다.”

“아니, 자크니르 님 그게 무슨…?”

처음 입을 열었던 환영 계통 교수, 클라이크의 질문에 자크니르는 별것 아니라는 얼굴로 답했다.

“제가 유적에 직접 들어가 지켜보겠다고 학생들에게 알리십시오.”

“아!”

그들은 그 한마디만으로 자크니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했다.

“저들의 불안감을 실체가 없습니다. 가감 없이 말하자면, 미신과 다를 게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안심할 수 있는, 기댈 거리가 있다면….”

“유적에 들어가겠군요….”

“해결된 것이 그 무엇도 없음에도.”

팔강이 직접 유적으로 들어가 안전을 지키겠다고 하면 누가 못 믿겠는가.

“실제로 저런 일이 다시 한번 생긴다면 보호해 줄 수도 있으니, 거짓도 아니지 않습니까?”

교수들은 그럴듯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들은 일단 동의하지 않고 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유적에 출입하는 날짜는 6일, 아니 오늘이 지난다면 5일밖에 남지 않는다.

그 5일 동안 자크니르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유적에 있어야 한다. 딱 봐도 고생길이 험한데 누가 직접 해 달라 말할 수 있겠는가.

이 일은 원래 교수들이 해결해야 될 일이다.

그걸 만약을 대비해 따라온 팔강이 맡게 된다면….

그러나 그들은 일단 나쁠 것 없었기에, 용기를 낸 교수 한 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자크니르 님께 무척 감사한 일입니다. 학생들을 위해 직접 움직이는 그 열정에 감사를….”

“음?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자크니르는 입에 그윽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하, 저 혼자 학생들을 위해 봉사할 수 없잖습니까.”

“그 말은….”

“다 같이 가시지요. 다 같이.”

그 말에 교수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 고행을 예상했는지 이 자리에 최고령에 해당하는 수류 계통 교수, 말베른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하, 하지만 저는 올해로 육순이 넘은 나이고, 이제 손자까지 볼 차례입니다만….”

“그렇다면 저 혼자 저 어둡고, 위험한 유적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입니까?”

그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자, 말베른은 급하게 말을 정정했다.

“아, 아닙니다. 제 말뜻은 노인이라고 놔두고 가시면 섭섭하다는 뜻이었습니다. 하, 하….”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의 속에서는 욕지거리가 차올랐다.

팔강에게 위험한 것이 도대체 어디 있다는 말인가!

“하하하, 제가 착각했습니다. 아직 나이가 어려 사회 경험이 적어서 그런 거니 다 이해해 주시지요.”

“다,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노익장의 힘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다른 교수들도 모두 학생들을 위해 함께하시겠지요?”

그가 웃는 얼굴로 묻자 모두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 울적했다.

“가겠소. 가야지요. 어흠, 학생들을 위한 일인데.”

“크흠, 오랜만에 유적에 들어가니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하하하…, 이 나이에 학생들과 함께하려니 젊어진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그들의 대답에 자크니르가 만족했는지 힘차게 대답했다.

“다들 동의하니 기분이 좋습니다. 아참, 이렇게 가시는데 이야깃거리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들 6위계나 7위계에서 막혀 있는 것 같은데….”

자크니르의 말에 교수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다 늙은 중년 남자들의 시선이 그렇게 좋지 않았지만, 자크니르는 감내했다.

이렇게 끌고 가 봤자 감정밖에 더 상할 테니 당근도 쥐여 줘야 했다.

“어두운 곳에 있으면 심심할 테니 돌아가면서 위계를 주제로 토론이나 해 보는 게 어떻습니까.”

“저, 저야 찬성입니다!”

“아이참, 제가 어두운 곳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아합니다!”

“어흠…, 늙어서 그런지 요즘은 어둡고 적막한 곳이 좋더군요.”

자크니르는 아이처럼 떠들어대는 그들을 바라보며 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회의가 성황리에 종료되었다.

* * *

“윌리엄, 들었어요?”

“…다들 그 얘기만 하고 있더군요.”

“이렇게 시끄러운데 누가 모르겠나.”

“그럼 어떻게 할래요…?”

에리엘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입을 주위를 살폈다.

주위에는 아침에 있었던 일에 관해 이야기하느라 시끄러웠다.

“어떻게 하기는 어떻게 해, 여기서 포기할 수야 없지.”

“그래도…, 아티펙트가 작동을 하지 않는다는데….”

“나는 자크니르 님을 믿네, 무려 최연소 팔강이 아닌가? 그리고 교수님들도 새로운 함정의 한 종류라고 공표했지 않나.”

“그건 그런데요….”

“교수님들도 만약을 대비해 유적 곳곳에서 대기하고 계신다는데 걱정할 게 무엇이 있나.”

에리엘은 여전히 인상을 펴지 못한 채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속으로 열심히 새로운 함정과 그로 인한 위험 그리고 그로 얻을 보상을 열심히 저울질해 보고 있겠지.

알렌은 그들을 바라보며 유적에 있는 게 무엇일지 생각하고 있었다.

‘마왕의 수하일까? 아니면 흑마법사? 그것도 아니면 고대의 마수?’

하늘의 노을은 이미 저물어 주황빛 한 뼘도 보이지 않았고, 검은 밤 자락 사이로 반짝거리는 별들만이 고요하게 그들을 비추고 있었다.

모두 생각에 잠겨 분위기가 가라앉자, 윌리엄이 용기를 내서 입을 열었다.

“그, 다, 다들 너무 걱정하지 말고 별이라도 보는 게 어떻습니까. 제 친구 중 한 명이 중부 출신인데, 이 지역에 몇십 년에 한 번씩 유성우가 떨어진다고….”

“…….”

“그, 그 별들이 어찌나 많던지 그 모습이 별의 바다 같다고 하더군요…, 그, 제가 따로 조사해 봤는데 82년 주기로 혜성 하나가 지나가는데 이게 바로 유성우의 원, 인이… 되는데… 곧 시기가 된다고….”

윌리엄은 거기까지가 한계였는지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다, 완전히 입을 다물었다.

“…….”

정적으로 변한 분위기.

시끌벅적한 주위와 유리된 것 같은 적막함에 알렌이라도 입을 열어야 하나 고민할 때쯤, 웃음소리가 들렸다.

“푸흐… 뭐예요, 윌리엄. 지금 분위기 바꿔 보려고 한 거예요? 저 때문에?”

“그, 그게 아니라,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그게 그거 아니에요? 윌리엄도 참, 저한테 반했어요? 에반도 아니고서야 그렇게 노골적으로….”

“케엑, 자, 잠깐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러나!”

윌리엄은 당황하고, 에리얼은 은근슬쩍 눈웃음쳤다. 에반은 그 나름대로 사레가 들려 콜록거렸다.

“후, 그래도 덕분에 기분이 나아졌네요. 고마워요. 그리고 유적은….”

에리엘은 곰곰이 생각하는가 싶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언제는 리스크를 안 졌다고…. 한 번 해 봐요. 적어도 시도는 해 봐야 나중에 후회는 하지 않을 거 아니에요?”

“음, 맞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자크니르 님과 대화도 나눠 봤으면 좋겠다만….”

“만나면 해 보죠, 뭐. 우리가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세 명이 웃음을 터트리며 대화를 나눌 때, 베스틀라가 갑작스럽게 불쑥 물었다.

「알렌, 당신이 이번 실습 기간 동안 고생한 걸 저들이 알까요?」

‘뭐?’ 알렌의 시선이 세 명의 학생들에게 향했다.

그 나이대의 청춘을 즐기며, 그에 걸맞은 고민과 향상심을 갖춘 존재들.

「당신이 몇 주 동안 최대한 맞춰 주고, 정보도 구해 줄 정도로 노력한 게 의미가 있냐고요.」

‘글쎄, 모르지 않을까.’

「그런데 왜 그렇게 열심히 어울려요? 대충 호감만 살 생각이라면서. 당신답지 않아서 조금 놀랐다니까요?」

베스틀라의 물음에 알렌은 조금 고민했다.

‘그건….’

「그새 정이라도 든 거예요?」

알렌은 샛노랗게 타오르는 모닥불에 나뭇가지를 쑤시며 조금 늦게 답을 내었다.

‘아니 그건 아니야. 그저… 조금 장단을 맞춰 줬을 뿐이지.’

에리엘은 시간을 확인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에는 처음에 앉았을 때와 다르게 고민 하나 없이 맑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