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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82화 (82/212)

제82화

알렌의 조는 하루가 다르게 유적에 익숙해졌다.

하루 대부분을 소비해 1층을 통과했었던 둘째 날과 다르게 시간이 지날수록 기록이 단축되기 시작했다.

셋째 날 그들은 2층에 내려간 것에 그치지 않고 3할가량을 통과했고.

넷째 날에는 2층을 거의 가로지르는 것에 성공했다.

만약 윌리엄이 며칠 이어진 강행군에 탈진하지 않았더라면 3층까지 내려갔을지도 몰랐다.

넷째 날과 다섯째 날은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휴식을 취했다.

여섯째 날, 완전히 회복된 상태로 유적에 진입할 일행은 2층을 무난하게 통과해 3층까지 내려갔다.

3층에서는 리빙데드 뿐만이 아니라 골렘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행은 3층도 2층처럼 빠르게 돌파하려고 했으나 생각보다 강한 골렘과 은밀해진 함정 탓에 초반을 맴돌며 적응하는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일곱째 날에 3층에 완전히 적응하고 하루가 지난 여덟째 날, 실습한 날짜의 반이 지나서야 4층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하룻밤 만에 고된 여정을 끝마치고 돌아온 다음 날의 아침.

에리엘이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대로는 안 돼요.”

“무슨 말이지? 잘하고 있는 게 아니었나?”

에반이 의아한 얼굴로 대답하며 모닥불을 조정했다.

불 위로 고정된 냄비에서 고소한 냄새가 났다. 밋밋한 스프를 먹던 첫날과 다르게 에반은 나름 이 요리를 괜찮게 만들 만큼 익숙해졌다.

뭐, 그것도 상인에게서 구한 소금 덕분이었지만.

“절대 아니에요. 에반, 우리가 4층까지 내려오는데, 얼마나 걸렸죠?”

“…음, 쉬었던 날을 제외하면, 6일?”

“그래요! 6일! 4층까지 내려가는데 벌써 실습일의 반이나 소모했다고요!”

그녀의 열변에도 에반은 시큰둥한 얼굴이었다.

“그래도 7층까지 이제 3층밖에 남지 않았나. 남은 기간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내려갈수록 수준이 더 높아지잖아요! 남은 6일 동안 최선을 다한다 해도 제 예상에는 5층이 한계일거에요. 물리적으로 거리가 너무 멀어요.”

“그 정도로도 충분하지 않나?”

에리엘은 그의 태도가 답답한지 가슴을 두드렸다.

“아니, 소식 못 들었어요? 마리아가 속해있는 조가 벌써 2층까지 지도를 완성한 후에 3층에 진입했다잖아요!”

그녀의 모습은 전과 달라졌다.

최소한의 옅은 화장과 아카데미 교복 위의 단출한 가죽 장비.

아카데미에 입학했던 도도한 공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그곳에는 어떻게든 앞서나가기 위해 생각하는 궁수만이 존재했다.

“…뭐? 우리가 완전 공략을 포기했던 이유가 너무 어려워서 아니었나? 그런데 2층을 공략을 다 끝내고 3층까지 내려왔다고?”

“녜. 심지어 덜떨어졌다고 무시했던….”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다 알렌의 표정을 살핀 후 말을 이어나갔다.

“보충반으로 이루어진 조도 발견하는 방마다 수많은 유물이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적은 점수지만 유물의 수가 만만치 않다 보니 최소한 상위권은 갈 거라고 봐요.”

변한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에반은 그간 유적을 오가며 쓸데없는 예절이나 허세 그리고 오만함을 일부 내려놓았다.

“지금 앞서나가는 건 우리뿐만이 아니라는 소리예요.”

“…그럼 곤란한데.”

“그, 그럼 어떻게 하죠? 지금이라도 최단 돌파가 아니라 완전 공략으로 목표로 바꿔야 되는 게 아닌지….”

스프를 한 그릇 비운 윌리엄이 조심스럽게 말하자 에리엘이 그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건 너무 늦었어요. 지금부터 지도를 다 밝혀봐야 오래 걸릴 뿐이구요.”

“…그러면.”

“목표를 조금 수정해야겠죠.”

처음과 똑같이 변하지 않은 건 알렌 밖에 없었다.

“일단 생각해놓은 게 있긴 한데…, 알렌은 어때요? 먼저 생각해놓은 게 있으면 말해줘요.”

만약 그들의 행동 곳곳에 조금의 품위가 묻어나오지만 않았다면 영락없이 젊은 용병 혹은 모험가처럼 보일 모습이었다.

아니면, 평범한 동료나 겉보기 그대로의, 학생처럼 보일지도.

자신도 저들과 다를 것 없는….

“알렌?”

“아.”

에리엘의 의아한 시선에 알렌은 정신을 차렸다. 조원들의 곧은 시선이 알렌을 찔렀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혹시 아프다면 제가 치료를….”

“에리엘의 말대로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방책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은근한 기대감이 묻어나오는 시선에 알렌은 미리 생각해두었던 답변을 입에 담았다.

“방책이라 할 건 못됩니다. 그저, 어떻게든 쥐어 짜낸 대책에 불과하지요.”

“그래도 빨리 말해봐요.”

그래도 괜찮다는 조원들의 성화에 알렌은 짧게 답했다.

“행방불명 된 미신, 7층 수호자.”

“오!”

뭔가 짐작한 듯한 에반의 감탄사에 에리엘의 시선이 획 돌아가자, 에반은 겸연쩍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크흠, 그냥 감탄해볼 것뿐이네.”

“…에휴.”

에리엘의 한심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모르면 윌리엄처럼 그냥 조용히 있기나 해요, 에반!”

“…아, 알았다. 그런데 윌리엄은 언제나 조용하지 않나…?”

“반이라도 닮으라는 거에요.”

“제, 제가 그렇게 조용하지는 않….’

“명심하겠다.”

에반이 조용히 침몰하고 윌리엄마저 풀이 죽자, 알렌이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다.

“원래는 최대한 빠르게 7층에 도달하려는 계획이었지만…, 하루의 시간으로 어떻게 움직이든 물리적인 거리의 한계로 5층까지가 최선입니다.”

“하루의 시간이 문제라면, 강행군을 해서라도….”

“그럼, 하루 동안 쉬지 못한 상태로 5층보다 더 아래인 6층 지나칠 수 있겠습니까? 아니, 그렇게 통과하더라도 더욱 강할 거라 생각되는 최하층 수호자를 잡을 수 없겠지요.”

알렌의 논리정연한 설명에 에반은 답하지 못했다.

“그럴만한 체력도 되지 않고 말입니다.”

이번에는 윌리엄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물론, 적당히 점수에 만족한다면 상관없지만… 노릴 거면 1등을 노려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마, 맞습니다.”

에반과 윌리엄이 냉큼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본래는 7층까지 최단 돌파에 성공하기만 해도 1등을 노려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현재 다른 방법으로 저희와 격차를 좁히고 있으니 확실한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알렌이 말하는 다른 방법은 설마….”

에리엘은 알렌이 말했던 미신과 수호자의 뜻을 이해한 것인지 연신 미쳤다고 중얼거리다 결국 직접 물었다.

“알렌, 이런 말하기 싫은데…, 진짜 미쳤어요?”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거 아니라니까요?」

알렌은 키득거리는 베스틀라에게 조용히 하라는 듯 검신을 두드렸다.

“그래도….”

그녀는 첫 만남 때와는 생각할 수도 없는 얼굴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마음에 드네요. 엄청.”

윌리엄과 에반은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야기에 멀뚱한 표정으로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베스틀라만 혹은 마음에 든다는 소리에 웃음을 터트렸다.

* * *

초대형 유적에는, 아니 다른 유적에서도 많은 미신이 존재한다.

뒤를 돌아보니 뒤따라오던 동료가 사라졌다거나, 잠든 고대인의 망령이 돌아다닌다거나, 사실 유적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멸망을 대비하기 위한 준비라든가.

그 수많은 미신의 대부분은 증명할 수도 없는 거짓이지만…, 진짜도 가끔 존재하는 법이다.

뒤돌아봤더니 동료가 사라졌다는 이야기의 실체는 가까운 곳에 있다.

마법으로 이동시키거나, 커다란 식물이 통째로 삼키거나, 알 수 없는 기계가 한순간에 지워버리거나.

그만큼 자주 등장하는 함정이며, 유적의 종류가 달라도 이동 함정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함정 중 하나였다.

방법은 유적마다 달랐지만, 눈을 뗀 사이에 동료가 사라졌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그렇게 흔한 함정인 만큼, 이번 초대형 유적에서도 순식간에 동료가 사라지는 함정은 분명히 존재했다.

아직 알렌의 조는 겪어본 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이걸 이용해야 하지 않겠나.’

「…….」

‘다들 의욕이 넘치니.’ 현재 다른 조원들은 흩어진 상황이었다.

윌리엄은 친분이 있는 평민에게 향했고, 에반과 에리엘은 다른 귀족들에게 접근했다.

뒤늦게 도착한 알렉시우스와 밀레드도 다른 선배와 길잡이들에게 알아보겠다며 걸음을 옮겼다.

‘베스틀라.’

「…….」

‘…베스틀라?’

「아, 아, 네. 왜요?」

그녀는 이제야 알렌의 말을 들은 듯 멍청한 소리를 냈다.

‘무슨 일 있나? 요즘 말 수가 부쩍 없지 않나.’

「아뇨, 잠깐 다른 생각 좀 하고 있었어요. 미안해요.」

그녀는 알렌이 검을 사용하지 않은 것 때문인지, 유적에 들어간 이후 말수가 줄어들었다.

「아까 식사 때 이야기한 거 말하는 거죠?」

‘그래.’

「위험한 것만 빼면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것도 아티펙트 덕분에 안전하니 사실상 위험은 없다고 볼 수 있죠.」

‘그래. 여러 함정 중, 하층으로 이동시키는 함정을 이용한다면 층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 테니까.’ 그 후 7층의 유적 수호자를 잡는다면 다른 이들이 어떻게 하더라도 격차를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다.

「참 잘났어요. 아아. 얼른 검을 사용할 상황이 오면 좋겠다.」

베스틀라는 괜히 과장된 목소리로 툴툴거렸다.

‘아마…, 조만간 올지도 모르겠어.’

「진짜, 진짜죠?」

‘그래.’

「야호!」

알렌의 시선이 무슨 사건이 벌어진 듯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는 유적의 입구로 향했다.

“갑자기 무슨 일이래?”

“야, 지금 난리가 난 거 몰라? 탈출용 아티펙트라고 받은 거, 그거 작동을 하지 않는다는데?”

“뭐? 그게 진짜라고? 아니, 설마….”

들리는 이야기를 정리해보니 2층을 탐험하던 조가 돌아오던 중 1층에서 기절한 채 쓰러진 학생들을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탈출용 아티펙트는 소지자의 위험을 감지하면 강제로 학생을 탈출시킨다.

혼절이나 기절도 마찬가지.

의식이 없어진다면, 어떤 이유에서든 아티펙트가 발동되어야 했다.

그런데 쓰러진 학생 모두 탈출하지 못했다?

“현재 유적에 입장하지 않는 모든 학생에게 알립니다! 사고가 발생하여, 잠시 일정을 중단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알립….”

“아니, 교수님. 그게 무슨 말입….”

유적에 있는 무언가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소리다.

3층과 4층으로 내려가는 출입구에서는 2층과 다르게 검은 책이나 하얀 책과 같은 것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 같은 정보가 없어서 아쉬운 마음이었다.

그러던 차에 사건이 벌어지니 알렌으로서는 다행이었다.

‘…옛 신화시대를 조사해봐야 하나.’

알렌은 3층과 4층으로 내려오는 출입구에 쓰여있던 글을 떠올렸다.

Το ιερ? δ?ντρο δεν ?χει καν φυτρ?σει.

Ο Σο?ρι, που υποτ?θεται ?τι ?ταν στην κορυφ? στ?χτη?, ?χασε ?ναν φ?λο του.

Μ?νο ο γελοιοποιημ?νο? που κουβαλο?σε το πτ?μα κρ?φτηκε μ?νο? του σε ?να υπ?γειο.

μεγ?λο? βασιλι??, πατ?ρα? των σοφ?ν, Το Evil Thorns βρυχ?ται.

?χω κρ?ψει κρυφ? ?ναν πολ?τιμο θησαυρ?.

?ποιο? κι αν, θα αποκτ?σετε καλ?τερο? σ?ντροφο? για το υπ?λοιπο τη? ζω??.

신성한 나무는 채 싹도 틔우지 못하였고.

재의 꼭대기 자리에 예정되었던 수리는 친우를 잃었네.

시체 멘 조소하는 자만이 홀로 땅굴로 숨어들었도다.

위대한 왕, 현명한 자의 아버지, 악한 손이 소리를 지르매.

내가 소중한 보물 하나를 몰래 숨겨두었으니.

누구든 평생을 함께할 최고의 동반자를 얻으리라.

* * *

유적에 진입했던 선발대 그리고 학생들 모두 진입한 적 없는 7층의 지하.

유적의 최하층에 있는 홀.

아카데미의 조사대만이 초기에 확인하고 떠나간 장소.

그런 장소에 인형 하나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심부를 지키고 있는 동산만 한 골렘은 그를 인지하지도 못한 듯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가 하는 일은 간단했다.

탁- 탁- 탁-

“이건 지우고…, 이건 남겨두고.”

지워야 할 벽화와 문장들은 없애버리고, 남겨둬야 할 것만 남기는 것.

“혜성이 떨어지기 전에 끝내서 다행이구나.”

갈색 머리의 녹안.

배가 불쑥 나온 중년의 남자는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은 채 작업을 마무리했다.

“조금만 더 일찍 왔으면, 위층도 마무리 했을 텐데….”

그는 아쉽다는 듯 표정을 흐리더니, 품속에서 작은 거울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경건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고는 입을 열었다.

“카샤님, 작업을 모두 끝마쳤습니다.”

“수고했다.”

거울에서는 미려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는 잠시간 몸을 움찔거리더니,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아, 아닙니다. 모두 그분의 안배가 아니겠습니까!”

“그래, 너의 노고는 모두 보상받을 것이다….”

거울의 표면이 검게 변색되기 시작했다.

“페른.”

“아아….”

검게 변한 거울은 잠시간 하얀빛을 뿜어내더니, 순식간에 불어나 남자를 삼켰다.

웅웅-

골렘이 뒤늦게 그 자리를 확인했지만, 언제 사람이 있었냐는 듯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공간은 다시 침묵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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