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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79화 (79/212)

제79화

기나 긴 행렬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아카데미를 떠나 이동하는 동안 큰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다.

행렬을 습격하려는 몬스터들은 교수들의 손속에 눈 깜짝할 새 죽음을 맞이했다. 수많은 인원수 때문인지 아카데미의 이름값 때문인지는 몰라도 마적 떼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카데미를 떠난 첫날 밤 조원을 추가한 것 빼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

“안뇽안뇽. 다들 반가워.”

밀레드 프세우도스.

2황자를 처음 만났을 당시 봤던 학생회의 일원 중 하나이자 던전 실습 때 알렌의 조를 맡게 된 3학년 선배.

“나랑은 정식으로 처음 인사하지? 이번 실습 때 잘 부탁해.”

자홍색 머리의 느긋한 표정, 그리고 엄청난 친화력까지.

알렌은 고개를 돌려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는 조원들을 쳐다봤다.

“다들 아카데미의 역사에 대해서 알고 있어?”

갈슈딘 아카데미의 위치는 절묘한 구석이 있다.

비단 성검이 도시에 있다는 것이나, 유적의 유물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직접적인 것, 성검의 영역을 벗어나면 맞닿는 가혹한 환경에 있다.

사막의 환경은 혹독하다.

특히 초대형 마경 중 하나인 갈슈딘 대사막은 평범한 사막보다 더욱 악랄하다는 말이 어울렸다.

내리쬐는 따가운 한낮의 햇빛과 밤에 모래에 올라오는 서늘한 밤의 한기.

거기에 어디선가 나타나는 수많은 몬스터와 모래 속에 파묻힌 유적의 함정까지.

특정한 간격을 두고 불어오는 모래 폭풍은 덤이었다.

수십 도씩 차이나는 밤낮의 온도는 일반 병사는 버티기 힘들며, 그곳에서 활동하는 용병이라면 몇 골드를 호가하는 아티펙트를 반드시 구매한다.

그 정도로 대사막을 탐험하기 위해서는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그런 환경에 둘러싸인 엘피스는 천혜의 요새를 등에 업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멍청이는 있는 거 알지?”

과거, 아카데미를 공격하기 위한 움직임은 몇 번이나 있었다.

“유물을 독점하는 것에 불만을 품은 상인 연합도 있었고…, 자식이 받은 대우에 불만을 품은 귀족, 그리고 욕심에 눈이 돌아간 망국의 왕까지.”

그러나 공격이 성공하는 일은 없었다.

단 한 번도.

“내가 알기론, 아카데미 측에서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대응한 적도 없었을 걸?”

공식적인 성명문은커녕 병사를 모으는 움직임조차 없었지.

“그러면 아카데미를 공격하려던 적은 어떻게….”

이야기에 집중하던 에반의 물음에, 그의 앞에 있던 밀레드는 묘하게 웃었다.

“어떻게 됐을 것 같아?”

“엘피스가 공격받았단 이야기는 한 번 도 들은 적이 없으니….”

다 실패했다.

엘피스.

희망이라는 뜻에 걸맞게 욕망을 품고 불나방처럼 달려들던 이들은, 그 끝도 마찬가지로 불에 타 허무하게 스러졌다.

“지금의 아카데미는 그렇게 만들어진 거야.”

“대사막의 환경 자체가 천혜의 성벽이 되어 그들을 가로막은 거로군요…. 계급과 종족에 상관치 않고 섞일 수 있는 풍토가 만들어진 이유기도 하고 말이죠.”

제국도 침략할 수 없고, 어느 귀족이든 위세를 부릴 수 없다.

하지만 아카데미는 발굴한 유물을 통해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다.

어느 나라, 어느 종족에게든 휘둘리지 않는 아카데미의 특별한 지위의 반은 그런 지리적인 도움과 성검 덕분에 형성되었다고 봐도 옳았다.

“맞아, 너 똑똑하구나. 윌리엄 후배.”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일행에 자연스럽게 섞여든 그녀는 잘했다는 듯 윌리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그게 감사합니다!”

윌리엄은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혔다. 그의 옆에서 에리엘이 확신이 서지 않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럼…, 학생회장이 평민인 것도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라 진짜 실력이라는 건가요?”

“그것도 맞아! 회장은 진짜 괴물이거든? 너는 머리를 쓰다듬으면 기껏 꾸민 게 망가지니까…, 과자 줄까?”

밀레드는 에리엘이 사양하기도 전에 바삭한 쿠기를 입에 물렸다. 에리엘은 미묘한 표정으로 입에 들어간 과자를 오물거렸다.

“크흠, 저는….”

“아, 에반 후배도 과자 먹고 싶구나!”

“아니, 그게 아니라….”

에반은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그보다 빠른 속도로 과자가 획 날아들었다.

“맛있지?”

“…예.”

에반의 얼굴에 서린 희미한 만족감을 보면 싫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한순간에 에반을 조용하게 만든 밀레드는 유일하게 상황에 끼어들지 않고 있던 알렌에게 고개를 돌렸다.

“알렌 후배는 필요 없어?”

“저는 괜찮습니다.”

“부회장님한테 듣기로 도움 줬다면서. 후배는 내가 특별히 사과까지 깎아줄게.”

그녀는 아공간에서 사과를 꺼내며 사정을 안다는 듯 헤프게 웃었다. 알렌은 사양한다는 의미로 손을 저었다.

“정말 괜찮습니다. 그 대신에 몇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그녀는 아쉽다는 의미로 시무룩해지더니 사과를 다시 집어넣었다.

“싫으면 어쩔 수 없지…, 그래 물어봐! 설명해 줄 수 있는 건 다 설명해줄게!”

알렌은 단번에 다시 활기차게 변한 그녀의 성격에 종잡을 수 없단 생각을 품으며 심중에 담고 있던 의문을 물었다.

“그럼…, 밀레드 선배가 저희 조에 합류하는 게 정말 맞습니까?”

“맞아!”

“실습에 지원할 수 있는 건 2학년만 가능한 게 아니었습니까?”

그녀는 검지를 까딱이며 고개를 저었다.

“노노, 이번 초대형 유적의 난도를 고려해서 예외적으로 3학년도 지원할 수 있게 바뀌었어. 몰랐어?”

그녀가 다른 이들에게도 시선을 돌리자, 다들 들은 적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언니도 말해주지 않았어요.”

“동아리 선배들도 별말이 없었는데….”

“응? 그래? 학생회에서 분명히 이사장님께 결재를 요청 드렸는데, 음…,”

입술을 검지로 톡톡 두들기던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지원 신청서가 2학년 것밖에 없었구나. 난 또 내년 교류회 때문인 줄 알았는데.”

“교류회요?”

“아. 1학년은 아직 모르겠구나. 아카데미는 매년 마다 마탑과 교류회를 하거든.”

“…언니한테 들었던 것 같아요.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에리엘은 교류회 이야기로 빠져들려던 이야기를 되돌리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러면 지금 지원한 3학년 선배는 밀레드 님….”

“밀레드 언니라고 불러!”

“네, 밀레드 언니밖에 없나요?”

“그건 아니라도… 학생회에서 지원한 몇 명밖에 없을 거야.”

그녀의 답에 윌리엄은 다시 불안증이 도졌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그러면 위험한 게 아닌가요?”

“아마도….”

그녀는 마차의 창밖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절대로.”

“네!? 따로 학생회에 언질 받은 정보라도….”

“여자의 감이야~”

밀레드는 다시 헤픈 미소를 흘리며 답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윌리엄의 힘 빠진 목소리에도 그녀는 싱글벙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괜찮아! 괜찮아! 나도 초대형 유적에 들어간 건 처음이 아니거든! 그러니까 안심해도 돼!”

“…그것참 의지가 되네요.”

“그렇지?”

일행은 그녀의 쾌활함에 조여진 긴장이 풀렸다.

알렌은 그 모습에 눈을 가늘게 떴다.

다른 사람은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이었으나, 알렌은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행렬의 마차중 하나에 닿았다는 사실을.

알렌의 감응력은 전보다 세심하게 오감을 발달시켰다. 그렇기에 다른 이들에게 찰나의 시간에 불과할지라도 알렌에겐 시선에 닿는 곳을 확인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안전장치는 충분하겠군.’

일대를 뒤덮는 파동을 느낀 알렌은 아카데미에 왔을 당시부터 팽팽하던 조았던 긴장의 끈을 느슨하게 풀었다.

목적지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 * *

“어디 불편하신 곳은 없습니까?”

“괜찮습니다.”

“혹시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신다면….”

“먹을만하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따로 시키실 분부라면….”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이만 나가보십시오.”

자크니르는 황송한 얼굴로 마차를 빠져나가는 이들을 쳐다봤다.

저들 모두가 아카데미에서는 수십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교수 중 하나일 텐데, 자신의 앞에서는 대화라도 한 번 나눠볼 수 있지 않을까 난리였다.

“생각만큼 높은 자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말이야.”

자크니르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세계에서 단 여덟 개밖에 없는 자리.

듣기에는 엄청난 것처럼 보였지만, 그건 겉치레에 불과했다.

자크니르는 여덟 명을 제외하고도 수많은 강자가 세상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실력이 그들에 비해 한 수 뒤처진다는 것도.

팔강의 자리에 오른 것 역시 그의 상대였던 전(前) 팔강이 장기전에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년 단위의 전투를 벌였을 것이고, 먼저 뻗는 것도 그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얌전히 아카데미에 있을 생각도 아니었는데.”

자크니르는 흔들리는 마차에 몸을 맡기며 상념에 잠겨 들었다.

하늘의 방패.

최연소 팔강.

지금은 소실된 신성 마법의 유일한 계승자.

그리고.

“…망국의 후계자.”

이 신분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벌써 백 년도 전에 망한 나라의 후계자를 기억할 정도로 세상은 한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팔강이 된 지금에도 그의 다른 신분을 아는 이들은 적었다.

당연하긴 당연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바뀌다는데, 무려 백 년이다.

소년이었던 이들도 죽어 흙으로 돌아갈 정도의 시간.

그럼에도 잊혀지지 않고, 이어지는 것은 있었다. 그것이 쓸모없는 망념이라 할지라도.

자크니르는 어린 시절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반드시 복수를 해야 한다.’

‘누구에게 말입니까.’

‘당연히 그 망할 아카데미의 놈들에게.’

‘…왜?’

‘우리나라를, 왕가를 무너트렸지 않느냐?!’

정작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도 그 시절을 겪어본 적도 없었다.

겪어본 적도 없는 시절을 그리워하고, 손에 쥔 적이 없었던 나라가 무너졌다며 복수에 집착한다.

자크니르는 그러한 가르침을 받았고, 가문의 혼신의 지원과 본인의 재능과 운이 겹쳐 팔강에 올라갔다.

그 후에 아카데미의 초대를 받고 도시의 수호를 맡게 되면서….

‘가문과 연을 끊었다.’

견문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평생을 가문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던 그는, 아카데미에 와서야 그것이 무용함을 깨달았다.

그렇게 아카데미에서 몇 달을 어영부영 지내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다.

“에휴, 내 할 일이나 해야지.”

오랜만에 도시에서 나왔기 때문일까 상념이 많아졌다.

자크니르는 눈을 감고 천천히 감지력을 끌어올렸다.

학생들의 수준으로는 자신의 감지력을 눈치 채지 못할 터.

그중에서 몇 명은 그도 주의해야 할 정도의 실력이었지만….

‘아직 학생 수준이지.’

100m, 200m, 300m….

점점 범위를 넓혀 일대를 완전히 탐색한 그는 눈썹을 까딱였다.

“음?”

감지범위의 끝에, 무언가가 걸렸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착각인가…?”

* * *

마차의 행렬에서부터 몇 킬로미터는 떨어진 거리.

묘령의 여성이 웃음기 띤 얼굴로 자크니르가 자리하고 있을 마차를 응시했다.

“비욘나 님, 더 이상 접근하지 않으시는 게….”

그녀의 옆에 자리한 남자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녀의 눈치를 봤다.

“이 이상 가까워진다면, 그가 눈치 챌 수도 있습니다.”

그녀는 그의 말을 무시했다. 그녀의 태도에 남자는 조심스럽게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저희의 계획을 따르지 않으신다면, 비욘나님의 일도 차질이 생길… 켁.”

“알아, 아는데… 왜 이렇게 잔소리가 넘칠까?”

“죄, 죄송합….”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닥쳐.”

순간적으로 솟아오른 살기에 오줌을 찔끔 지린 그는 창백한 낯빛으로 뒤로 물러났다.

“이미 망한 놈들이 자존심만 저렇게 드세서는…, 쯧.”

그녀도 알았다.

지금 물러나야 한다는 것쯤은.

저들이 아카데미에 빼낸 정보에 따르면 초대형 유적이 곧 변화한다고 한다.

어디서 이런 정보를 알아냈는지 신기할 따름.

이미 다 망한 가문이라고 한들 가문의 저력을 동원하면 그 정도는 가능한가 싶었다.

“하지만…, 아깝네.”

3년간 쌓인 원한이다.

며칠만 참는다면 곧 원한을 해결할 수 있더라도, 그게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곧이니.”

얼마 남지 않았다.

유적에 관한 것은 밝혀진 부분보다 밝혀지지 않은 것이 훨씬 많다.

그러니 그 안에서 팔강이라도 위험한 ‘함정’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겠는가.

그녀는 저 멀리서 파도치는 무형의 파동을 피해 몸을 숨겼다. 곧 감지력이 일대를 휩쓸며 지나갔다.

유적까지 이틀 거리 남았을 적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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