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 빙의를 싫어함-78화 (78/212)
  • 제78화

    알렌은 세 권의 책을 가지고 있다.

    검은 책 - 빙의자

    하얀 책 - 회귀자

    회색 책 - 환생자

    회귀 직후부터 가지고 있던 세 권의 책은 읽지 못하는 회색 책을 제외하고는 분명히 유용했다.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지.’

    회색 책은 현재로서 아무런 내용도 알 수 없다.

    그 책이 누구와 관련돼 있는지에 대해서조차 불분명하다.

    ‘정황상 인간의 몸으로 전생한 하이젤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반응은? 없었다.

    회색 책은 알렌의 예상이 빗나갔다는 듯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별다른 방도가 생길 때까지 놔둘 수밖에 없었다.

    검은 책은 회귀 전의 율리우스의 시점에서 과거를 보여준다.

    현재 시점 그 이상의 미래를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으나, 그런 단점을 눌러버릴 정도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알렌은 고개를 돌려 남은 하나의 책을 응시했다.

    그러고는 인상을 찌푸리고 하얀 책에 대한 정보를 천천히 떠올렸다.

    하얀 책.

    하얀 책은 알렌의 시점에서 현재의 사건을 서술한다.

    원래는 불안전한 과거의 기억을 보안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을 제외한다면 이렇다 할 능력은 없었다. 정확히는, 없는 줄 알았다.

    ‘처음은 니케아 산에 있던 정령의 샘이었지.’

    율리우스가 얻을 보상을 취하던 중 갑자기 하얀 책이 미친 듯이 펄럭이며 글귀가 떠올랐다.

    『■■■■과(와) 이어진 책이 ■■을(를) 감지합니다! ■■■■이(가) ■■에 반응합니다! 』

    하얀 책에서는 이미 사라져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알렌은 저 문장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은 마녀의 숲에서 결계에 갇혔을 당시.’

    결계의 핵을 찾기 전까지 지루한 소모전을 벌일 뻔했을 때 글자가 떠올랐다.

    하얀 책이 핵을 찾게 도와준 덕분에 수월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과(와) 이어진 책이 조건을 확인합니다. ■■을(를) 인지하고 있습니다!  ■■와(과) 연관된 대상이 근처에 있습니다! ■■을(를) 막아내기를 원합니다!』

    『조건을 충족합니다. ■■■ ■■(가칭)이 현현합니다!』

    『?오른쪽으로 세 발자국. 뒤로 두 발자국. 8초 후에 400m 위로 충격파.』

    이것도 마찬가지로 지워졌기에 알렌의 기억 속에 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마지막은 하이젤과 식사를 하던 중 지진이 일어남과 동시에 나타났다.

    『■■■■과(와) 이어진 책이 ■■의 위험성을 감지합니다! ■■■■이(가) ■■에 반응합니다!』

    그리고 이 문장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하얀 책에 남아있다.

    ‘이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알렌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지진이 일어난 당시부터 알렌은 줄곧 저 가려진 단어의 뜻과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추측했다.

    이 책은 평범하지 않다. 알렌은 상상력의 지평을 넓혔다. 마법은 세상의 조화를 비트는 이물질이다.

    마법사의 상상은 현실에 있을 수 없는 것을 끌어내는 원동력이었다.

    알렌은 과거의 기억을 바탕으로 가장 그럴듯한 상상을 끄집어냈다. 이런 현상이 발생한 이유가 뭐지?

    ‘이 하얀 책을 비롯한 책의 능력을 준 누군가가 원하는 것이 있다.’

    그렇게 생각의 방향성이 잡히자, 뒤를 이어 잔가지처럼 마디마디 근거가 떠올랐다.

    하얀 책에서는 항상 ‘■■■■과(와) 이어진 책이….’ 라는 말이 서두에 붙는다.

    알렌은 저 ■■■■가 일종의 악마 혹은 그와 비슷한 힘이나 지식을 가진 무언가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회귀를 시켜준 당사자가 그냥 회귀 시켜줬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저 알림 자체가 일종의 지시가 아닐까 하는 가설이었다.

    ‘차라리 저런 식이 아닌 직접적인 지시를 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 생각되지만….’

    악마의 의중을 짐작할 수는 없다. 아니, 애초에 악마가 맞는지도 의문이었지만 그건 생각하지 않았다.

    악마의 도움이면 어떻고, 추락한 신의 긍휼이면 어떤가. 회귀는 이미 일어났고, 되돌릴 수 없다.

    그렇다면 이용할 뿐이다.

    회귀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 전까지.

    알렌은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하얀 책의 현상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당연하니까.

    그렇다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앞으로 다가올 위험에 대해 경고하려는 것. 아니, 대비하길 원한다는 것.’

    그리고 그 위험은 아마도…, 흑마법사 혹은 마족과 관련돼 있을 거란 것까지.

    서두를 지나 항상 문장의 중간에는 무언가를 감지했다는 말이 나온다.

    …■■의 위험성을 감지합니다!

    …■■을(를) 인지하고 있습니다!

    …■■을(를) 감지합니다!

    그를 제외하고도 결계의 핵을 찾았을 당시에는 이런 문장까지 덧붙여서 있었다.

    …■■와(과) 연관된 대상이 근처에 있습니다! ■■을(를) 막아내기를 원합니다!

    그 당시 ‘■■와(과) 연관된 대상’으로 생각되는 것은 마녀밖에 없었고, 그 마녀는 흑마법사 단체 에스테도르에 소속되어 있다.

    그 흑마법사들의 목표는 재앙을 일으키고 그 끝에….

    ‘마왕을 소환하려 하지.’

    그렇다면 ■■은 마왕으로 가정할 수 있다.

    그들이 무엇을 원하기에 마왕을 소환하려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그걸 이루려 한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 과격한 행동 탓에 항상 율리우스랑 부딪쳤으니.

    그렇게 생각하자 하얀 책이 알렌에게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하얀 책은 알렌이 마왕과 그의 세력을 무찌르기를 원한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애초에 각 문장마다 나오는 ‘■■’의 의미가 서로 다를 수도 있고, 지금 생각해낸 모든 추측도 가설의 일환일 수도 있다.

    ‘처음 정령의 샘에서 문장이 나타난 이유도 모르니까.’

    마녀의 숲에서도 그랬다.

    마왕과 관련된 마녀가 근처에 있다고 해서 하얀 책이 굳이 그를 도울 이유가 있는가?

    그랬다면 처음 에스테도르와 관련된 인물인 키메라 술사 사건 때 먼저 도움을 줘야 되지 않나?

    그 후에 신수의 숲에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는 것도 의심스럽다.

    분명히 신수는 흑마법사에 의해 타락했는데, 왜 아무런 현상이 없었지?

    혹시 율리우스와 관련되어 있나? 만약 회귀 전에 율리우스와 관련되어 있다면 이 모든 상황의 공통점은….

    ‘단서가 너무 부족하다.’

    끝없이 뻗쳐나가던 생각을 멈춰 세웠다. 여기까지였다.

    아무런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섣부른 판단은 생각을 편향되게 만들 뿐이다.

    그래서 이번의 실습이 중요했다.

    한 번 문장이 나타나면 곧바로 사라졌던 앞선 두 번과 다르게 이번에는 문장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었으니까.

    ‘만약 이번 던전 실습에서 마왕 혹은 흑마법사와 관련된 무언가를 발견해 낸다면….’

    조각조각 나누어진 단서의 틈을 메꿀 수 있을 것이다.

    * * *

    “윌리엄, 눈은 좀 붙이지 그래요…?”

    에리엘이 염려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던전으로 출발하는 아침, 윌리엄은 한숨도 자지 못했는지 충혈된 눈으로 유적 도감을 읽어 내렸다.

    “긴장이 되어 잠이 오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차라리 그럴 시간에 책이라도 읽을까 싶어….”

    고개를 돌리자 거뭇한 기미가 가득한 눈을 한 윌리엄이 보였다. 유적의 위험성에 대해 지겹게 들어 그 탓에 더 불안한 모양이었다.

    ‘가는데 며칠은 걸릴 테니, 그 안에 자면 되겠지.’

    최대한 실전과 같이하고자 용병들이 쓸법한 마차를 타는 상황이다. 지겨운 모래바람을 맞다 보면 알아서 눈을 붙이게 되겠지.

    “에반은 어때요? 에반도 윌리엄처럼 긴장돼요?”

    “나, 나는 하나도 긴장되지 않는군. 오, 오히려 기대될 정도다.”

    “…정말이요?”

    “그래!”

    알렌은 피식 웃었다. 보통의 유적이었으면 이렇게 긴장하지 않았을 텐데. 이들이 이렇게 변한 데에는 별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초대형 유적.

    보통 유적보다 몇 배는 커다란 규모를 가지고 있고, 그 이름에 걸맞은 흉흉한 괴담이 가득한 곳이었다.

    고대인의 망령이 떠돈다거나, 유적의 깊은 곳에 괴물이 잠들어있다거나, 잠시 눈을 돌린 사이에 옆에 있던 동료들이 사라진다거나.

    대부분은 용병들 사이에 돌아다니는 소문 혹은 유적의 함정이 입소문을 타 퍼진 미신에 불과했지만 실제로 믿는 이들도 많았다.

    “알렌은 어떠세요?”

    “저 말입니까.”

    “네. 다른 분들에 비해 알렌은 침착해 보여서요.”

    알렌은 무언가 비밀이 있나 눈을 반짝이는 그녀를 보며 말할 것도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어차피 실습은 실습. 정말로 위험하다면 아카데미에서 조치를 할 겁니다.”

    “…아.”

    “그리고 조금 있으면 선배도 합류할 텐데. 정 걱정스러우면 물어보면 될 테지요.”

    “정말 그럴까요?”

    모여드는 시선에 슬쩍 눈을 돌리니 안 그런 척 그를 힐끔거리는 에반과 윌리엄이 보였다. 알렌은 밤새워 뒤척였을 그들을 위해 레이첼에게 들었던 정보를 풀기 시작했다.

    “듣기론… 들어가기 직전에 유적에서 탈출할 수 있는 아티펙트를 지급한다고 들었습니다.”

    “오오…!”

    에반이 벌떡 일어서며 환호성을 질렀다. 주변에서 떨떠름한 시선으로 그를 보자 에반은 무안했는지 헛기침을 하며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크흠, 그따위 것이 없어도 괜찮긴 한데, 큼, 아카데미에서 학생을 위한다니…, 거부할 수는 없겠군.”

    거부할 수 없다는 말과 달리 그의 입꼬리가 위로 치솟았다. 윌리엄도 알렌의 말에 긴장감이 조금 풀렸는지 크게 하품을 했다.

    “하암…, 다행입니다…. 그런데 알렌은 어떻게 그런 정보를…?”

    “저야, 약혼자 덕분에.”

    “아.”

    알렌의 담백한 답에 윌리엄은 그제야 소문을 떠올렸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되었든 방법이 있다면 다행입니다…. 동아리에서는 선배들이 절대로 안 알려줬는데….”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언니도 알아서 하라고 은근히 비웃기나 하고.”

    “한 번 골탕먹어보라는 심보 아니겠나.”

    윌리엄의 침울한 말에 에리엘도 동감한다는 듯 맞장구쳤다. 에반의 말이 그럴듯했는지 윌리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면 선배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기분입니다.”

    “사람 사는 곳이니 다른 곳과 그리 다른 것도 없겠지.”

    에리엘은 서로 긴장감이 풀린 것을 보며 말했다. 그녀의 시선이 알렌을 향했다.

    “그런 의미에서는 저희 조에 알렌이 있는 게 행운이네요?”

    “…그건 동감이군.”

    “차석이기도 하시니…, 오히려 동료로써 저희가 짐이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에반이 무게를 잡으며 동의했고, 윌리엄은 괜히 긴장된다는 듯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냈다.

    “연습한 대로만 한다면 문제없지 않겠지요. 저야말로 차석이란 이름 탓에 부담되었을까 걱정이었습니다.”

    “에이, 알렌 님 덕분에 얼마나 도움을 받았는데요.”

    “맞습니다! 평민 출신이라고 업신거리지도 않으셨고…,”

    “크흠.”

    에반이 윌리엄의 말에 신경 쓰이는 것이 있는지 헛기침하자, 윌리엄이 급히 말을 정정했다.

    “아 그, 그렇다고 다른 분들이 그렇게 한다는 건 아닙니다.”

    “알고 있다면 됐다.”

    “후흣….”

    연신 사과하는 윌리엄의 모습에 에리엘이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런 그들의 모습은, 일개 평민과 귀족의 대화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그래, 괜찮다면 다행입니다. 이번 실습도 좋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도록 하지요.”

    그 자신마저도.

    ‘원래 이들과 이렇게까지 편하게 지낼 생각은 없었는데.’

    던전 실습을 계기로 몇 번 모이게 되다, 결국 사적인 질문까지 허용하게 될 정도로 관계가 변했다. 말도 처음 만났을 때와 다르게 편하게 바뀌었고.

    알렌은 다른 조원들과 달리 그들과의 인연에 완전한 진심이 담을 수 없다.

    그렇지만.

    ‘동료라….’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 * *

    2, 3학년 상급반, 고급반 학생 지원자 36명, 1학년 신입생 141명. 함께 가는 교수와 조교를 합쳐 15명. 마차를 이끌 낙타와 말, 왕도마뱀과 그를 이끌 마부, 짐꾼들까지 수백의 인원이 가득한 행렬.

    길게 늘어진 행렬의 끝에 율리우스가 서 있었다.

    노란색, 노란색으로 물든 초록색, 주황색이 섞인 노란색, 노란색, 노란색, 초록색….

    율리우스는 오랜만에 무지개 마안을 혹사시키며 눈을 부릅떴다.

    그러나 그가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는 없었다.

    ‘역시, 원작에 나올 정도의 재능 있는 조연은 없구나.’

    당연하다면 당연했지만, 그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쓸모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니. 노란색 재능은 따지자면 수재 정도는 된다. 처음 빙의했을 시점이라면 감지덕지한 마음으로 받아들였겠지.

    하지만….

    ‘차라리 소수 정예가 나아.’

    이쯤 되면 원작의 인물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에게는 기대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아카데미의 피해를 줄인다고 더 신경 쓸 필요도 없겠고.

    원작의 결말에서 맞이해야 할 적은 마왕이다. 적당한 재능 수십을 끌고 가느니 천재 몇 명이 더욱 효율이 높았다.

    ‘…그 개년만 없었어도 결말이 똥통에 처박히진 않았을 텐데.’

    당연히 원작대로 흘러가는 것은 막을 생각이지만, 미래가 어찌 될지 모르니 마왕을 상대할 전력은 미리미리 준비해둬야지.

    이렇게 전력을 모아두면 하이젤이 사실 필요가 없게 돼….

    “아니아니, 그건 아니지.”

    “뭐가 아닌데?”

    율리우스는 나쁜 생각을 하다 들킨 것처럼 화들짝 놀란 얼굴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

    “왜 이렇게 놀라, 무슨 나쁜 생각 했어? 예를 들어서…, 우리 동동이를 버린다거나?”

    갸호!? 갸호갸호!

    동동이가 놀랐는지 버둥거리며 그를 바라봤다. 율리우스는 장난스러운 얼굴의 아벨린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동동아, 나쁜 누나는 버려두고 나랑 놀자.”

    갸호- 갸호-

    율리우스는 그녀가 품에 안고 있던 털 뭉치를 획- 뺏어 자신의 품에 안았다. 복슬복슬한 털의 감촉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걸로 목도리만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괜히 불길한 기분을 느꼈는지 몸을 떠는 동동이를 쓰다듬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학생들이 배정된 조에 따라 마차로 몸을 구겨 넣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마테우스의 목소리에 정신 차렸다.

    “빨리 안타고 뭐합니까, 율리우스. 이제 당신이 들어갈 차례입니다.”

    “아, 미안.”

    율리우스는 얼른 마차에 들어서며 천천히 계획을 점검했다.

    ‘어떻게든 이번 실습에 많은 공적치를 얻어내야 해.’

    기한은 이번 1학년이 끝나기 전까지.

    어떤 이유에선지 몰라도 순환교의 습격이 이뤄지지 않았다.

    나비 효과 탓인지, 다른 이유에선지 몰라도 원작의 스토리가 바뀌었다. 그 탓에 순조롭게 공적치를 모을 예정이었던 계획이 망가져 버렸다.

    그렇다면 뭐, 어쩌겠나, 몸으로 때워야지.

    아카데미의 보고에서 얻을 물건은 가문의 것과는 달리 비범하게 보이는 물건이니, 다른 누구가 채가기 전에 하루 빨리 움직여야 했다.

    그러니까.

    ‘반드시 눈에 띄어야 한다.’

    적어도 이번 한 번에 공적치 수백, 아니 천 점 정도는 족히 얻을 정도로.

    반드시 학생회장보다 먼저 보고에 들어가야만 했다.

    어느 정도 희생이 동반되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1학년 중에 쓸만한 사람은 더 이상 없으니까.

    율리우스는 보고에서 얻을 물건에 대한 생각에 싱글벙글 웃었다.

    그 웃음에, 자신의 행동으로 인한 죄책감 따위는 단 한 톨도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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