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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77화 (77/212)

제77화

“수고하셨습니다!”

“알렌 공자님, 역시 수석이라는 말은 헛되지 않았네요.”

“저, 정말 엄청났습니다!!”

알렌은 겸손한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저도 여러분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럼 저는 할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조원들은 아쉬운 얼굴이 되었지만, 던전에서 직접 확인한 그의 실력에 차마 붙잡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다음 기회에 뵙겠습니다.”

“알렌과 함께할 시음회를 기대할게요.”

“회복 술식이 궁금하다면 저, 저를 찾아주세요!”

“다음에 보도록 하지요.”

알렌은 조원들과 충분히 멀어졌다는 생각이 들자 참았던 한숨을 내쉬었다.

“…가진 재능에 비해 실력은 미숙하군.”

정확하게 말하자면, 활용을 하지 못한다고 봐야겠지.

기회만 되면 말도 없이 활을 쏘는 에리엘.

자신의 실력에 과신하여 연신 돌격하는 에반.

한 번 회복 술식을 사용하면 헥헥되는 윌리엄.

그 모든 걸 통제하면서 무사히 공략을 마친 알렌의 정신은 지쳐있었다.

「그럼 앞에서 말하지, 어떻게 참았데요?」

‘그럴 수 없으니 그렇지 않나.’ 알렌은 쓴웃음 지었다.

각자의 실력은 나쁘지 않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경험이 부족하다는 말이 옳겠지.

윌리엄을 제외하고는 귀족이니 평소 많은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당연히 그에 따른 경험도 쌓았을 테고.

다만, 항상 남들이 자신에게 맞춰준 것이 움직임에 베여버렸다. 그 덕에 서로가 행동에 제약이 되어버렸다.

별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저들이랑 같이 던전 실습을 돌게 되는 만큼 신경 쓸 필요는 있었다.

알렌은 빠른 걸음으로 인공 유적이 위치한 아카데미의 지하를 벗어났다. 하늘을 바라보니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이제 어디 갈 거예요? 검술이라도 연습하러 갈래요?」

‘그것도 좋겠지만…, 요즘 너무 마법에 신경 쓰지 못했어.’ 마법을 정리하고 수련하기 위해서는 따로 훈련장에 가는 게 옳지만, 먼저 들를 곳이 있었다.

「여긴 또 왜요?」

‘혹시 모르잖나.’ 그가 도착한 곳은 도서관이었다.

아카데미 내부에 따로 위치한 도서관은 12층 높이의 거대한 건물이었다. 알렌은 지체 없이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내부로 들어가자 둥근 안경을 쓴 사서가 작게 고개를 숙였다.

알렌은 인사를 받으며 처음 왔던 때와 달리 익숙한 얼굴로 도서관을 둘러봤다.

공간을 가득 채운 책장과 그 안에 가득 들어찬 서적들.

인문학, 자연학, 정령학, 공학, 마법학을 비롯한 학문들과 그 밑으로 세부적으로 나누어 진열된 책장.

층층이 쌓인 책들은 유적에서 발굴해 복원한 지식이자, 지금까지 밟아온 아카데미 역사를 나타냈다.

도서관에는 고요한 분위기와 어울리는 오래된 종이의 향기가 물씬 풍겨왔다.

마법 서적을 비롯한 여러 이론서와 깊숙한 곳에는 공적치를 사용해 마도서까지 빌릴 수 있는 장소.

‘동생’을 찾을 수 있는 마법 혹은 그에 준하는 실마리라도 있으리라 생각하는 곳이었다.

알렌은 곧장 마법과 관련된 서적이 가득한 7층으로 이동했다. 각 계통에 따라 분류된 수많은 책. 알렌은 주위를 둘러보다 책을 정리하는 익숙한 얼굴의 사서를 발견하곤 다가섰다.

“새로 들어온 책이 없습니까?”

“예? 아, 알렌 님이시군요.”

그의 물음에 뒤를 들어본 남자 사서는 곤란한 얼굴로 웃으며 답했다.

“찾으시는 책이 혹시 이번에도….”

“예, 저번에 말했던 영혼이나 추적에 관련된 서적이 혹시 들어왔습니까?”

알렌의 대답에 사서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영혼 계통은 희귀하고 특히 연구가 덜 되었기도 해서…, 드문드문 들어온 책 중에 그와 관련된 책은 없었습니다.”

알렌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지자, 사서는 미안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정말 그에 관련된 책을 찾으신다면…, 경매에서 구하거나 다음 분기에 들어올 책을 기다리는 것이 빠를 겁니다. 아시다시피 도서관의 책들은 사본에 불과하니까요.”

“…그렇습니까.”

“아, 물론 공적치를 이용해서 그와 관련된 마도서를 찾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그는 목소리가 클까 봐 주변의 학생들 눈치를 보더니 작게 줄여 답했다.

“아시다시피 마도서를 열람하는데 1,000점이 필요하니…, 지금은 힘들 겁니다.”

공적치 1,000점.

아카데미의 보고에서 물건을 교환하거나 팔강과 개인 교습하는 것만큼 허황된 목표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쉽게 달성할 수 있는 점수도 아니었다.

“그렇군요….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만약 책이 들어온다면 즉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알렌이 그의 배려에 고개를 살짝 숙이자, 사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사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책 정리를 이어나갔다. 대화가 끝나자마자 베스틀라가 냉큼 입을 열었다.

「그냥 기다리지. 어제도 왔었잖아요.」

‘오늘 책이 들어왔을 수도 있지.’

「그렇게 쉽게 발견된 책이었으면 진작 찾았겠죠. 애초에 악마가 몸을 빼앗은 거면 지옥에 있는 거 아니에요?」

‘지옥이 어디 있는지 알곤 있고?’ 베스틀라에게는 악마에게 몸을 빼앗겨 원래 영혼은 사라졌다고 말해놨다. 사실 악마가 아니라 다른 차원의 인간이라는 것만 제외한다면 별 다를 게 없기도 했다.

「…그래도 이런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지는 않잖아요.」

‘그러게 말이다.’ 알렌은 쓴웃음을 지었을 지으며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입학한 후 몇 번이나 도서관에 왔었다. 이곳에 있는 지식은 여타 다른 곳보다는 확률이 높았으니까.

그렇기에 며칠을 밤을 새워가며 영혼, 공간, 추적과 같은 관련된 키워드에 따라 조사했는데….

‘별다른 소득이 없었지.’

정확히는 마법에는 소득이 있었다.

공간, 영혼, 계약에 관한 몰랐던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고, 린벨 모녀를 구했을 때부터 조금씩 연구하던 새로운 계통 마법에 대한 토대를 세웠다.

그러나 영혼을 추적하는 마법 따위는 없었다.

아니 그와 관련된 이론도 찾기 힘들었다.

영혼 계통이 사령 마법과 연관된 만큼 적은 수의 서적밖에 없었고, 그렇다고 금서로 지정된 흑마법사의 지식을 달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

조급해한다고 해결 될 일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답답했다.

차라리 놈의 몸에 율리우스의 영혼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율리우스의 몸 안에 동생의 영혼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것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놈을 껍데기에서 끄집어냈을 텐데.

그렇게 상념을 이어나가던 때, 베스틀라의 평상시와 다른 조심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알렌, 그 이런 말하기 미안한데… 만약, 정말 만약에요.」

그녀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 머뭇거리는 모습.

알렌이 고개를 내려 베스틀라를 보자, 그녀의 검신이 살짝 떨렸다.

「그…, 영혼이 어디로 사라진 게 아닌 거라면요?」

그녀는 알렌이 말을 하지 않자 용기를 얻었는지 멈추지 않고 입을 열었다.

「당신도 알다시피 내가 조금 오래 살았잖아요,」

몇 만 년 전이면 조금이 아닌데.

「…그런데 그때도 악마가 몸을 빼앗으면 영혼을 삼키면 삼켰지, 어디론가 따로 빼돌리는 일은 거의 없었어요.」

“…….”

「그리고… 그렇게 빼돌리는 영혼도 그 시대에 영웅이라 불리는 엄청 특별한 존재였는데, 알렌의 동생은 그….」

귀족이라고 해도, 평범한 인간 중 한 명인 것뿐이잖아요. 베스틀라는 그의 침묵에 급히 변명을 덧붙였다.

「…당신의 동생이 뛰어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그… 영웅이라 불릴만한 재능은 적고, 또 악마들도 눈이 까다롭기도 하고 해서 이미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는…, 무조건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적어도 마음의 준비는 해야….」

“아니.”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

알렌은 눈치를 보며 주저리주저리 이어나가는 말을 잘라내었다.

“어딘가에 있을 거다. 분명히.”

그의 단호한 음성에 베스틀라는 어딘가 복잡한 감정을 담아 답했다.

「…네, 그래요. 분명히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동생은 살아있다.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면 회귀 직전 들었던 동생의 목소리는 뭔가.

아니면 신수의 시련에 들었던 아련한 기시감의 정체는?

회귀 전에 있었던 영혼이 후에 없는 건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다, 있다고 생각했다.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알렌의 발밑에서 뒤따르던 그림자가 넓은 그늘에 먹히듯 사라졌다.

언제나 발밑을 맴돌고 있음에도.

알렌은 괜히 발걸음을 빨리했다. 던전 실습을 할 때 차질이 있어서는 안 됐다.

* * *

아카데미 서쪽의 숨겨진 유적.

몇 번이나 탐사에 실패해, 갓 용병을 시작한 얼뜨기도 오지 않을 장소는 현재 비릿한 피 냄새로 가득했다.

황톳빛의 바닥은 먼지와 피가 뒤엉겨 지저분하게 변했고, 시체 사이사이엔 부서진 벽이 조각이 있어 장내를 어지럽혔다.

그 난장판의 한복판에 하이젤이 작게 중얼거렸다.

“걔는 어떻게 이런 정보를 알고 있었을까.”

“어떻게 대계를 알고서…, 켁.”

“유난은.”

깔끔하게 목을 베어 생존자를 마무리한 그는 핏물을 털어냈다.

주위에는 시체가 가득했다.

얼굴에 기이한 검은 문신을 한 흑마법사와 고목 같은 주름을 보이는 마녀들.

그들 말고도 흑마법사와 손이라도 잡았는지 무장한 용병들이 빛을 잃은 눈으로 바닥에 널브러져있었다.

하나의 도시를 전복시킬만한 전력은, 그전에 얼마나 악명을 떨쳤든 간에 모두 머리와 몸이 분리되어 바닥을 붉게 칠했다.

그 주위로 마법이 발동되기 직전의 제단이 애처로운 빛을 발하며 피를 조금씩 흡수하기 시작했다.

“마기가 전혀 새어 나오지 않으니까…, 내가 눈치 못 챌 만 했어. 그런데 율리우스는 어떻게 알아낸 거지?”

하이젤은 감흥 없는 얼굴로 검을 내리쳤다. 그와 어울리지 않는 백색의 마력은 한 층의 검기를 이루어 제단으로 떨어졌다.

쾅!

순식간에 제단이 조각 나며 발동되려던 마법진이 천천히 그 빛을 잃어갔다.

“이런 게 수십 곳에 생겨난다고? 이미 몇 활성화됐고?”

하이젤은 헛웃음이 나왔다.

마계와 연결된 게이트.

율리우스와 대화할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깊게 연관될 생각은 없었다.

이미 생(生) 한 번을 꼭두각시로써 져버렸는데, 그 새끼들이랑 다시 연결될 생각은 없었으니까.

더 이상의 열정을 불태우기에는 자신은 이미 지쳐 메말라 버렸다.

이번 생은 적당히 살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아카데미에 온 이유도 용사의 후예가 있다는 작은 궁금증을 풀기 위한 여흥,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랬는데, 그랬었는데.

쿵-

하이젤은 제단이 자리한 방을 넘어 다른 밀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이딴 감성팔이는 좋아하지 않는데 말이지.”

어두운 실내로 밖의 빛이 흘러들었다.

뒤에서 흘러나온 빛으로 인한 역광 때문일까 눈가에 짙은 그림자가 졌다.

“진짜 가지가지 하네.”

도발인가? 아니면 그냥 우연?

그곳에는 마족들이 실험대에 묶여 깔끔하게 해체되어 있었다. 흑마법사와 마족들 모두 마냥 협력하는 관계인 것은 아닌 모양.

하이젤은 눈에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이런 현장을 본 것은 처음이 아니었으니까.

저벅저벅-

걸음 사이로 바싹 마른 혈흔이 부서져 내렸다.

“만약 여기 보낸 것도 그 새끼들의 의도라면 그냥 무시하는 게 옳은데….”

괜히 끼어들었다가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는 없다. 죽기 전까지 얼마나 고생했는가. 끝까지 이용만 당했다.

그걸 이번 생에도 반복할 필요가 있나?

유유자적한 삶을 살려고 했다.

전생에 들었던 보물이나 찾아보고, 신기한 소문이면 찾아가기도 하면서.

그러다 질리면 바다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겠지.

“알렌을 칼 같이 밀어냈으면서, 망설이는 꼴이라니. 참.”

하이젤은 떠오르는 상념을 멈추고 빙글 몸을 돌렸다.

멈칫-

하이젤은 바닥을 한참 굴러다니던 머리와 눈이 마주쳤다.

죽은지 시간이 꽤 지났는지 혹은 흑마법사 때문인지는 몰라도 머리의 주인은 많은 고난을 겪은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남은 머리마저도 온전치 않았다.

말라비틀어지고, 수많은 자상이 가득한 모습.

하이젤은 멈췄던 걸음을 옮겨 머리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음….”

잠시 눈을 감으니 여러 장면이 떠올랐다. 별 것 없는 기억들. 마왕일 적의 모습들. 전쟁을 하고, 용사랑 다투고.

하이젤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아, 또 왜 걔가 생각나서는.”

괜히 심통 난 기분에 삐딱하게 턱을 괴고 있다 툭 내뱉었다.

“얼굴 예쁘네.”

하이젤은 그렇게 말하고는 히죽 웃었다.

지금은 죽어서 그렇지, 생전에는 눈길을 줄 만한 미녀였을 것이다.

“골격도 나쁘지 않고. 살아있었으면 인기 많았겠다.”

그의 말이 의외였던 걸까 이미 죽었을 머리가 어이없는 눈으로 보는 것 같았다.

하이젤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이제 가야지.”

이번에는 멈추지 않고 출구로 향했다.

다시 돌아본 실내는 몸을 스치는 옅은 불빛으로 머리의 모습을 분간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이곳을 감추던 결계는 이미 없어졌다. 주먹을 높이 들었다. 마기는 사용하지 않는다.

‘이건 진짜 사용하기 싫었는데….’

어쩔 수 없지. 마기를 사용하지 않고 건물을 부수기에는 이만한 것이 없었다. 주먹을 들어올리자, 유적 위로 거대한 무채색의 주먹이 떠올랐다.

“이런 어두운 장소에서 미녀는 빛이 바래는 법이니. 미녀는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 가치가 있지 않겠어?”

애초에 그가 살아있을 적 알던 이들도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관계없는 이들이겠지만…, 죽었는데 무슨 상관인가.

“만약 다시 태어나면 재밌게 살아. 나처럼 뻘짓하지는 말고. 그럼….”

하이젤은 잠시 말을 멈췄다. 몇 번 입을 오물거리던 그는, 이내 무슨 상관이냐는 듯 픽 웃었다.

“안녕.”

주먹을 내렸다.

형태 변형 - 신의 징벌Flagellum Del

하늘의 천벌이 떨어져 내렸다. 유성처럼 거대한 주먹이 유적을 강타했다.

잠시 버티던 유적은 몇 초가 되지 않아 박살 나며 모래 구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모래바람이 그의 얼굴을 쓸었다. 하이젤은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다 율리우스가 줬던 정보를 떠올렸다.

“…조금 있다가 가까운 곳에 하나 더 나타난댔지.”

그때가 던전 실습이 있는 날이었던가.

실습은 참가하지 못할 것 같았다.

할 일이 생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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