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화
“…아니, 아무 사이가 아니면 아니라고 말을 하지 그랬어요.”
레이첼은 조금 전의 행동이 부끄러운 듯 시선을 피했다.
“말할 기회도 없었지 않았나.”
알렌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되묻자, 그녀는 괜히 태연한 척 입을 열었다.
“누, 누가 와도 오해할 만한 상황이었잖아요?”
그녀는 자신이 말을 더듬은 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마나의 맹세도 했을 텐데.”
“…으, 그건 그렇긴 한데….”
알렌은 시선이 몰리기 시작하자 그녀를 데리고 급히 교실을 빠져나왔다.
‘목소리가 그리 크지는 않았으니, 들은 사람도 적겠지.’
치정 소문에 휩싸인 것만큼 피곤한 일은 없었다.
그녀는 알렌과 마리아가 자신이 상상한 것 같은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자 얼버무리는 중이었다.
“상대는 마리아 카리타스, 용사의 후예로 소문이 자자한데 그런 관계가 될 리 없잖나.”
“…그것도 그렇죠.”
알렌은 적당히 인적이 드문 곳으로 빠져나왔다 생각이 들 때쯤 걸음을 멈췄다.
그녀의 걸음도 덩달아 멈춰 섰다.
“날 믿지 못했나?”
“다, 당연히 믿었죠!”
“진심으로?”
“…네.”
「그런 것치고 표정이 심상치 않았지만요.」
알렌은 좌우로 빠르게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를 보며 내심 베스틀라의 말에 동의했다.
“그, 그 얘기는 그만하고…, 아! 2주 후에 던전 실습하는 거 알죠? 그거 저희랑 하는 거 알아요?”
그녀는 급히 생각났다는 듯 화제를 전환했다.
알렌은 그녀의 장단에 얌전히 넘어가 주었다.
“너희와?”
“네, 저번에 한 번 커다란 진동 느낀 적 있죠?’ 그때라면, 하얀 책이 반응했을 때인가.
“그래.”
“그 진동이 이번에 초대형 유적이 나타난 전조였다고 하더라구요.”
초대형 유적이라….
‘그게 하얀 책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책의 능력을 준 초월자와 관련되어 있나?
아니면, 검게 가려진 이름의 주인과?
우연이라고 보기엔 타이밍이 절묘했다.
어찌 되었든 한 번 살펴볼 필요는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접근하기에 좋은 기회였다.
“그래서 이번 던전 실습은 나눠서 진행할 필요도 없이, 신입생 전체가 함께 진행할 거예요.”
알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1학년을 인솔하는 역할로 2학년 일부가 맡게 되었고…, 그중 한 명이 저에요.”
“정석적이군.”
2학년은 1학년을 이끌 기회를 얻고, 1학년은 2학년에게서 앞선 실전 경험을 배운다.
“경험을 쌓기에도 좋고. 다만, 자칫 부상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인데….”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기본적인 방호 아티펙트나 구명에 관련된 장비는 지원하니까요.”
“그 정도면 괜찮겠지.”
경험을 쌓으려는 목적이니 너무 과한 준비는 필요 없다.
“그럼 그 기간 동안 따로 준비할 건 없나?”
“네, 당신은 영지에서 유적을 탐색한 경험이 있을 테니까…, 딱히 더 준비할 건 없어요.”
그녀는 완전히 화제를 바꾸는 데 성공하자 제법 안심한 눈치였다.
“아, 맞다. 알렌, 혹시 가문에서 후원하는 학생들은 만나봤어요?”
“후원 학생 제도?”
“네,”
알렌은 라인하르트 가문에서 학생들 몇 명을 후원한다는 사실은 알았으나 그것이 누구인지 몰랐다.
“아니…, 잘 모르겠군. 가주님께서 결정하신 사항이라.”
학생을 후원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영지로 끌어들이기 위함이지.’
아카데미에 입학한 학생들은 평민이라도 어지간한 재능은 다 있었으니, 그들이 아카데미를 졸업할 때까지 풍족한 생활을 보낼 수 있게 후원한다.
그럼 후원을 받은 평민들은 차후에 지원해주었던 가문의 영지로 가는 것이다.
“저는 만나봤거든요, 저랑 같은 동아리에 있던 선배인데 정말 괜찮은….”
그렇게 그녀는 며칠간 만나지 못했던 것을 다 풀겠다는 듯 여러 가지 이야기를 꺼냈다.
“아, 알렌 그러고 보니 그거 들었어요?”
그녀는 뭔가 은밀한 것을 말하려는 듯 주위를 획획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이번 신입생 중에, 짐승왕 가이온의 손자가 입학했데요.”
그녀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라는 듯 말했지만, 알렌은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이렇게 즐겁게 말하는 데 초칠 필요는 없겠지.’
그녀는 알렌이 무어라 생각하든지 빠르게 말을 쏟아내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겠는데…, 짐승왕의 손자라니까 당연히 수인이겠죠? 막, 옷을 입고있어도 몸이 우락부락하고.”
그녀는 알렌과의 대화를 나눈 것보다 소문 자체에 흥분한 것 같았다.
‘글쎄, 내가 알기에 그녀는 수인보다 인간에 더 가까울 텐데.’
인간과 겉으로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당연히 학기 초니까 일부러 실력을 감추는 것일 거예요. 제가 예상하기에는 아마 이번 던전 실습에서 두각을 드러낼 가능성이….”
알렌은 그녀의 예상에 쓴웃음을 지었다.
‘당연히 짐승왕의 손주라고 하니 전사일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아쉽게도 그녀는 전사가 아니다.
피가 옅어 수인만의 능력인 오러도 사용하기 힘들고, 그렇다고 마력에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흉폭한 성격도 아니며, 오히려 정반대라고 보는게 옳았다.
‘린벨이 잘해줘야 할 텐데.’
알렌은 잠시 본관과 떨어진 연구 지구 쪽을 쳐다봤다.
“알렌, 왜요? 거기에 뭐 있어요? 응?”
“아니, 짐승왕의 손자라고 해도 모두 전사라는 법은 없지 않나 싶어서. 의외로 특별 입학을 했을 수도 있지 않나?”
“그 괴물의 손주가요?”
레이첼은 입을 가리고 눈웃음 지었다.
“당신도 귀여운 구석이 있네요.”
그녀는 말도 안 된다는 어투로 단언했다.
“절대 그럴 리가 없어요. 다른 팔강이라면 모를까, 그 사건을 겪은 짐승왕이 자기 손주가 책상에 앉는 걸 허락한다구요? 절대 불가능해요.”
알렌은 그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자신도 회귀하지 않았다면 그녀와 같은 반응이었을 테니까.
“차라리 율리우스, 그놈처럼 보충반에서 실력을 숨기고 있다는 게 더 그럴듯할걸요?”
“…그런가.”
“네. 아, 그러고 보니, 갑자기 그 율리우스, 그 자식이 카트린느랑 같이 어울리는 이유가 뭔지 알아요?”
그녀는 알렌의 눈치를 보듯 슬쩍 표정을 확인하더니 말을 이었다.
“당신도 알다시피 율리우스와 카트린느가 어떻게 됐는지 알잖아요. …그렇게 차였으면서 뭐가 좋다고 다시 달라붙는지.”
레이첼의 표정에는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그런 그녀의 기분과는 별개로 알렌은 일이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느꼈다.
‘카트린느가 무사히 그에게 다가섰나.’
그녀를 받아들인 이유로 대장간 발 홀의 실질적인 주인이 그녀라고 밝힌 것이 클 터.
이 상태로 그녀가 그놈의 마음속 큰 부분을 차지하면 좋을 텐데….
‘상대들이 너무 쟁쟁하니, 그건 힘들려나.’
차라리 서로의 관계를 조율해주는 역할이 낫겠어.
“어떻게 생각해요? 혹시 아는 게 있어요?”
“…글쎄, 잘 모르겠는데.”
“으음, 그래요?”
한동안 카트린느가 걱정되는 듯 이야기를 늘어놓던 그녀는 남은 수업이 있다며 알렌과 헤어졌다.
‘린벨 쪽은 조만간 소식이 있겠고, 일라이자 황자와 관계도 정립했고…,’
마리아와 최소한의 친분을 만들었다.
다만 하이젤과는 몇 주 전 대화를 기점으로 별다른 만남이 없었으니 다른 조치를 할 필요가 있었다.
최근 율리우스랑 부쩍 가까워져 보이기도 했으니.
‘적어도 회색 책과의 관계성이나, 현재 그의 목적이 뭔지 풀어내야 한다.’
그는 겉보기보다 더욱 많은 비밀을 품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지금 생각해야 할 건….’
알렌은 그녀가 떠나고도 조금 더 자리에 머물다 기숙사로 돌아왔다.
“공자님, 미니마 부족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미니마? 알렉시오스에게서?”
“네.”
이넬리아는 알렌이 기숙사에 들어온 즉시, 그에게 한 장의 편지를 건네주었다.
“생각보다 늦게 연락했군.”
적어도 입학식이 끝난 후 바로 연락을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편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이제 약속을 지킬 때가 왔다.]
미사여구나 장황한 추임새 없이 필요한 내용만을 담은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편지 말고 따로 건네준 건 없던가?”
“유적의 위치는 가까울 시일 내로 다시 전해주겠다고 했습니다.”
“다른 건?”
“제가 따로 조사해본 바로는…, 그들이 향하는 방향이 먼젓번의 진동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예상 밖에…. 조금 더 조사한 후 정리해드리겠습니다.”
이번에도 초대형 유적이라….
‘우연인가?’
아직 확신하기에는 이르니 신경 써두는 것이 좋겠군.
혹시 모르지 않는가.
아카데미에서 실습할 던전의 예정지가 우연히 미나미 부족이 원하던 곳이 겹칠지.
검은 책에서도 이와 관련된 특별한 사건에 관해 서술하고 있지 않은 만큼 변수를 대비해둘 필요는 있었다.
“다른 소식은 더 없겠지? 혹시 경매장에서 구한 물건은….”
“없습니다.”
“아쉽군.”
알렌은 조급함을 가라앉혔다.
여기서 안달 내봤자 무언가 달라지는 건 없다.
중요한 건 실낱같은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은 것, 그것이면 충분했다.
“나는 다시 나가 볼 테니, 수고해주게.”
“네, 알겠습니다.”
“저번에 말했던 연금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시 고민해보고.”
이넬리아는 자신의 대답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이제 남은 일은, 그것밖에 없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아카데미는 내부 협력자의 도움으로 습격당한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탈출한 이단의 성녀.
신수 해룡을 몰래 데려갔으며, 지금은 보충반에서 몰래 신분을 숨기고 있는 여자.
그리고 아카데미를 습격한 습격자들에게 복수심에 무기를 공급했던 이들이 존재했다.
‘정확히는, 존재했었다.’
심지어 회귀 전의 삶에도 경험한 일이 아니었다.
‘회귀 전의 일도 아닌 검은 책에 쓰여있던 [원작]의 일이다. 하지만, 상관없지.’
신드리 남매.
그들이 아카데미를 습격한 이단, 순환교와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저번에 방문했을 때 확인했다.
그럼으로써 원작에 적혀있었다는 사실도 어느 정도 신빙성이 증명된 상태.
‘그들의 통해서 순환교와 접촉한다.’
그 후에 그들과 거래를, 아니 아주 약간 위험한 도박을 할 예정이다.
성녀는 율리우스의 여자 중 한 명이 될 예정이기에 율리우스는 그들과 계속 부딪칠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들을 이용할 수 있는 패가 될 수도 있다.’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공한다면.
알렌은 멀리 뻗어 나가는 상념을 끊었다.
아직 제대로 실현된 건 아무것도 없다.
괜히 설레발 치고 싶지 않았다.
걸음이 약간 빨라졌다.
오늘따라 공업 지구로 가는 길이 더 길어 보였다.
* * *
엘피스에 자리한 비밀스러운 장소.
새하얀 대리석으로 세워진 기둥과 화려하게 양각된 무늬는 절로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고풍스러웠다.
그런 장소에 흐르는 엄숙한 분위기는 장소를 더욱 무게감 있게 만들어, 작은 숨소리조차 조심스럽게 내뱉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천장에서 쏟아지는 햇빛이 모여드는 중심에, 마리아가 있었다.
미동도 없이 감은 두 눈은 고요했고, 하얀 얼굴과 그에 어울리는 순백의 백발이 가지런했다.
그녀가 정좌한 바닥에는 거대한 나무가 한 그루 그려져 있었다.
열 개의 원으로 이루어진 나무, 그 나무의 위로 뱀 한 마리가 휘감아 오르는 그림.
그녀는 그 뿌리에 해당하는 열 번째 원에 앉아있었다.
“후우-.”
순간, 그녀의 몸 위로 찬란한 황금빛이 반짝였다.
그녀가 앉아있던 원이 고르게 빛나며 다른 아홉 번째 원으로 뻗어 나갔다.
그렇게 뻗어나간 원은 여덟 번째 원, 일곱 번째를 거쳐 올라가기 시작했다.
황금빛 마력은 원을 거칠수록 백색이 섞이기 시작했고, 마침내 완전한 백색으로 변하려던 순간 빛의 형체가 흐트러졌다.
흔들리기 시작한 빛은, 멈출 새도 없이 출렁거리더니 순식간에 부서져 내렸다.
“집중이 흐트러졌습니다.”
나긋한 목소리가 침묵을 깨트렸다. 또각거리는 발소리, 경쾌한 걸음이 시선을 붙잡았다. 그녀의 눈앞으로 다가온 여인은 매우 아름다웠다.
“오늘만 문제가 아니라, 어제도, 그제도. 지난 한 달간 계속 흔들리네요.”
아나스타샤.
갈슈딘 아카데미의 이사장인 그녀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도 아나스타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수석의 자리를 빼앗긴 것 때문에 그렇습니까?”
아나스타샤는 한 걸음 다가왔다.
“아니면, 성검을 사용하지 못해서? 요즘 인공유적에 틀어박혀 있다고 들었어요.”
한 걸음 더.
“그것도 아니면…, 매일 밤 만나는 차석 때문일까요?”
마리아는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아무런 감정 변화 없이 아나스타샤를 바라보았고, 아나스타샤는 미소를 지으며 마주 봤다.
아나스타샤는 알았다.
저만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는데.
저 무표정 안에 무슨 감정이 담겨있는지.
어떤 것을 억누르고 있을지.
“한 그루의 나무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그래서는 안 돼요.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든, 껍데기를 깨기 위해서라도 말이에요.”
그녀의 미소가 진해지기 시작했다.
“‘용사의 후예’라는 칭호에 맞게 행동하려면, 강해져야 해요. 그 누구보다도. 지금의 자리에 머문다면…, 그건 힘들지 않을까요?”
“알고 있어.”
입을 다물고 있던 마리아가 입을 열었다. 그 말에 아나스타샤가 활짝 웃었다.
“알고 있으면 됐어요. 원래 계산대로 라면, ‘운명’에 따르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추락했다고 해도 신이다. 강제로 닫았던 하늘이 열린 순간부터 예언의 의미가 없어졌다고 해도, 운명은 있었다.
벌어질 일은 벌어지고, 이뤄질 일은 이뤄지는 게 운명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간신히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고 해도 언제 완전히 뒤틀릴지 몰라요.”
그러니 완전히 뒤집히기 전에, 흐름을 주도할 필요가 있었다.
“저를 위해서도…, 그리고 당신을 위해서도.”
그녀는 과거를 떠올렸다. 이 시대가 영원히 계속되리라 상상했던 시절. 커다란 궁전에서 만인의 경배를 받던 시기.
그러나 그 시대는 저버렸다.
철저하게 몰락했고, 역사에 파묻혔다.
“뭐, 그래도 원래 영웅의 곁에는 경쟁자가 있어야 더 빛나는 법이니.”
그녀는 고상하게 입을 가리며 작게 웃었다.
다시 깨어났을 때부터 세웠던 비원을 이륙하기 위해서는, 마리아가 더 성장해야 했다.
지금보다 더.
어떤 행동을 해도 용인될 만큼.
그렇기에 지금의 기회는 적절하다고 볼 수 있었다.
“이번 던전 실습에서 두각을 나타내세요.”
그녀는 발걸음을 획 돌려 마리아를 등졌다. 내뱉은 말에는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
“성검의 권역을 벗어날 수 없으니 확인은 못 했지만…, 아마 그곳에는 고대의 괴물 중 하나가 있을 거예요.”
또각또각-
“학생들이 상대하기에 버거울 테니, 어느 정도 피해를 입었을 때…, 나타나서 죽이세요.”
“…응.”
“이미 준비도 다 해놨으니 방해받을 일도 없을테고요.”
마리아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나스타샤는 그녀의 대답으로 걸음을 옮기다, 잊은 말이 있다는 듯 고개만 돌려 마리아를 보았다.
“그대는 ‘우리’의 희망이니까요.”
순간적으로 특정할 수 어려운 남녀노소 수십 개의 목소리가 겹쳐 공동을 울렸다. 그런 기괴한 목소리를 낸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자애로운 얼굴로 마리아를 바라봤다.
“그러니 잘 부탁해요.”
마리아는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또각거리는 구두 굽 소리만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