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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73화 (73/212)

제73화

해질녘의 거리에는 낮에는 찾아볼 수 없는 활기가 있었다. 학생들은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최대한 남은 감정을 털어냈고, 하루의 연구를 끝마친 마법사들이 로브를 여몄다.

그들의 뒤로 조수가 퀭한 얼굴을 한 채 발걸음을 질질 끌었다.

알렌은 이제 익숙해지는 풍경을 배경 삼아 걸음을 옮겼다.

깔끔한 회색 타일의 바닥 위로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알렌은 몸을 숨기듯 그림자의 숲을 지나쳤다.

마리아에게 향하는 길에는 많은 이야기가 들렸다.

“아, 진짜 정령학 기초 수강하는데 엘프 이 정신 나간….”

“너도 봤지? 물 계통 마법 교수 얼굴이 개구리같이 생겼….”

“보충반에 있던 신입생이 중급반에 있던 학생을 이겼다네?”

어느 교수가 짜증나는지, 누가 개구리같이 생겼는지.

누가 대련을 했고, 승자는 누구인지까지.

“그러고 보니, 오늘 중급 유적 기록 2위 갱신된 거 알고 있냐?”

“어? 진짜? 누구?”

“걔, 유명한 애 있잖아. 용사의 후예라고.”

“아… 그 기록 깨려고 미친 듯이 유적 들어간다는…?”

오늘 있었던 이야기에서 부터 요즘 한창 유명한 유적의 이야기까지, 가지각색의 이야기들이 낮게 불어오는 바람 사이를 옮겨 다녔다.

그러던 중 익숙한 이름이 들렸다.

-…리우스라는.

감응력으로 귀를 집중하자 온갖 소음 사이로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어왔다.

“율리우스라고 했나요? 그 남자 너무 손속이 심하지 않나요?”

고상하고, 예의를 차리는 듯한 어투.

귀족 출신의 재학생 중 한 명임이 틀림없었다.

“맞아요. 귀족으로서 도전에 응하는 건 옳은 일이에요.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대련이란 명목에 걸맞게 손속을 조절해야 했을 텐데요.”

“그도 불쌍하게 됐죠. 황자 저하의 도움인지 무사히 회복된 것 같지만…, 역시 품위는 없….”

피식-

알렌은 감응력을 끄고 느려진 발걸음을 재촉했다.

‘역시 불만이 없을 리가 없지.’

어떤 일을 하던 불만을 가지는 것이 인간이다.

율리우스와 벤자민의 대련은 율리우스의 이름을 확실하게 알렸지만, 평판은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영지에서 했던 것처럼 소문을 흘리는 건 불가능하겠지.’

그런 어설픈 움직임은 보일 수 없다.

알렌은 그에 대해 신경을 접어두고, 몇 주간 만났던 마리아에 대해 떠올렸다.

무뚝뚝한 표정에 감정 표현이 희박한, 아니 결여된 여자.

용사의 후예라 불리지만, 실제 후손인지 확인할 수 없다.

확인 할 수 없지만, 성검이 반응한 것으로 봐서는 실제일 가능성이 높았다.

성검이 알렌에게 반응한 이유가 외적인 이유, 용사의 신기로 인해 반응했다면 그녀는 다른 무언가일 가능성이 컸다.

그것이 혈통과 관련된 것일지는 알렌도 확실치 않았다.

회귀 전, 성검의 주인은 그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용사의 5대 신기, 성검의 주인은,’

전대 마왕이자 ‘원작’의 주인공이라는 남자.

하이젤이었다.

* * *

좁아지는 길목과 머리 위를 뒤덮는 담벼락의 그림자. 순식간에 멀어지는 소음은 다른 세계로 들어온 기분을 들게 한다.

살갗을 쓸어내리는 햇빛 사이로 알렌이 이리저리 골목길을 꺾어 지나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느릿한 걸음을 옮겼을 즈음,

삭막한 풍경과 어울리는 고저 없이 딱딱한 목소리가 인사를 건네왔다.

“안녕.”

고개를 돌리자 처음 만났던 골목길 위로 그녀가 있었다.

…구석에서 앉아 고양이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최대한 경계심을 풀기 위해 구석에 최대한 몸을 구겨놓은 모습은 안쓰러울 정도였다.

알렌이 그 모습을 무어라 말하기 어려운 심정으로 바라보다, 겨우 한 마디를 내뱉었다.

“…고양이를 그렇게나 좋아하는 이유가 따로 있나?”

그녀를 경계하고 있던 고양이는 알렌이 다가오자 곧바로 품으로 달려들었다. 팔 위로 전보다 무거워진 무게감이 느껴졌다.

애옹-

“…아니, 없어.”

반응이 조금 느렸군.

‘개인 사정인가?’

그녀와 지속적인 만남을 가진지도 벌써 열 번이 넘어섰다.

알렌은 몇 번이나 만났어도 그녀와 거리감이 줄었다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한 번도 자신의 이야기를 한 적이 없으니.’

그녀의 행동이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 알렌이 모를 리가 없었다.

일부러 거리를 두려고 한다.

그것이 몇 주간 그녀를 만나며 내린 결론이었다.

그 행동이 무의식적인지 의식적인지는 몰라도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그녀와 그 이상 가까워지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깨달았다.

“뭐, 그렇다면야.”

그녀는 평소처럼 알렌이 고양이를 품 안에 가둬두자, 마리아가 언제 일어섰는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스윽- 슥-

“이제 이 녀석도 많이 익숙해졌군.”

“응.”

“벌써 만난 지 한 달이나 지났고.”

고양이는 이제 귀찮은 듯 몸을 돌릴 뿐, 격렬한 반응은 하지 않았다.

처음과 비교한다면 장족의 발전.

그녀는 그 행동이 기쁜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바로 사라지긴 했지만.

“이제 초저녁인데도 덥군. 하긴, 사막 한가운데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조금 담담한 듯, 더위에 짜증이 난 것처럼.

“익숙하지는 않군.”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알렌을 쳐다봤다.

“우리 영지는 리브레 왕국의 서쪽에 있다. 서쪽 대륙의 서쪽 끝. 사시사철 푸른 미켈란트 산맥과 맞닿아 있고, 그 근처에는 엘프 대수림이 있지.”

마리아의 순백으로 가득한 눈이 약간의 흥미가 담겼다.

“가을이 되면 노랗게 물든 평야가 지평선을 가득 채우고, 알록달록한 단풍들이 뒷산을 물들이지. 추수제가 어떤지는 아나?”

농부들이 흥겹게 부르는 유행가가 박자를 타고 도시를 가득 채우고, 때를 맞춰 찾아온 상인이 흥정하며 자리다툼을 벌인다.

“겨울은 어떻고. 하얗게 센 눈자락을 바라보며 즐기는 운치가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지.”

그녀가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알렌의 말에 깊이 집중해 있었다.

알렌은 이야기를 이어가다 적당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할 때쯤 말을 끊었다.

알렌은 심중에 담겨 있던 의문을 꺼내기 시작했다.

“근데 너는 꽤나 괜찮아 보이는데…, 더위는 익숙한가?”

이넬리아는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었다.

고향, 가족 관계, 살아온 환경과 성격, 심지어 용사의 후예라 불리게 된 계기까지.

마치 그녀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용사의 후예라는 칭호와 함께 나타났다.

“…….”

그녀는 아무 말 없었다.

알렌이 그녀의 침묵에 의아함이 들 때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더위는 익숙해.”

“그러면 너는 남부나 중부에서 왔겠군.”

“알 필요 있어?”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렇지는 않지.”

“알렌, 너는 귀족이라고 했어.”

평소보다 조금 굳은 표정과 평소보다 박자가 빠른 말투.

알렌은 평소와 조금 다른 듯한 그녀의 분위기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

“귀족은 사생활에 특히 민감하게 군다고 들었어.”

“그래, 네 말이 옳다.”

“나도 마찬가지야.”

마리아는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 그렇기에 알렌은 더욱 잘못 찔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의외로 눈치가 있다는 사실도.

곰의 행태를 하는 여우나 마찬가지.

‘…자기 이야기를 숨기는 것을 알았지만, 이 정도 사소한 일로도 민감하게 반응할 줄이야.’

거기에 무언가 있다는 건가.

알렌은 실수를 인정했다.

“…실례했군. 사과하지.”

“괜찮아.”

“…고맙군. 사과의 의미로 내가 가끔 들리는 곳으로 안내하지. 그곳의 차향이 제법이다.”

알렌이 자연스럽게 다음 약속을 잡자 그녀는 겉으로는 의심 어린 기색 없이 받아들였다.

“응.”

알렌은 눈을 깜빡이며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온 마리아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흠….”

“응?”

“오늘 무슨 일 있었나?”

그녀의 동공이 빠르기 수축되었다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니?”

그녀의 부정에 알렌은 평소보다 유달리 예민해 보였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퍼즐의 조각을 맞추기 시작했다.

기록 갱신, 도전, 2위, 달라진 태도 그리고 인공 유적.

“혹시 인공 유적의 일로…?”

“아.”

정답이구나.

그녀의 손에 순간적으로 힘이 들어갔다.

하아악-

고양이가 급히 몸을 버둥거렸다.

그녀는 곧바로 잘못을 깨닫고 힘을 풀었지만, 털이 몇 가닥이나 빠진 고양이는 금세 모퉁이를 돌아 사라져버렸다.

“아….”

“이런, 오늘은 더는 힘들겠군.”

“너 때문이야.”

마리아가 눈을 가늘게 뜨자 알렌이 점잖게 뒤로 물러섰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알렌의 밉살스러운 태도에 마리아는 그를 지긋이 바라봤다.

“그런데 정말 무슨 일인지 말해줄 생각 있나?”

“…몰라.”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만으로 모자란 지 몸을 획 돌려 걸음을 옮겼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나 갈게.”

알렌은 깔끔하게 물러섰다.

‘강제로 선을 넘어봤자 지금의 관계만 망가질 뿐이지.’

그녀가 찰나의 시간 머뭇거렸던 것 하나만으로 알렌은 만족했다.

그녀에게 틈이 있다는 것을 뜻했으니까.

‘방금은 너무 조급하게 움직였다.’

결국, 느긋하게 기회를 노리는 수밖에 없다.

알렌은 화났다는 걸 표현하는 듯 크게 걷는 그녀의 뒷모습에 대고 말했다.

“참고로 기숙사는 반대쪽 길이다.”

마리아의 몸이 우뚝 멈췄다.

그녀의 귓불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기숙사 쪽으로 몸을 돌렸다.

“…고마워.”

대답은 작게 들려왔다.

“별말씀을.”

* * *

그렇게 신입생들이 아카데미 생활에 적응했을 무렵, 드디어 그날이 다가왔다.

학생 스스로 과목을 선택할 시간.

신입생들은 지금까지 보충반과 일반반, 단 두 개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러나 한 달의 평가가 끝나자 포괄적으로 구분된 반에서 보충반, 하급반, 중급반, 상급반, 고급반으로 세밀하게 나눠졌다.

알렌은 당연히 고급반으로 배정되었다.

그 안에서 다시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직접 선택해서 수강하겠지.

같이 묶어놓았음에도 같은 과목을 수강하지 않는다.

단지 같은 반에 있다는, 수준이 동등하다는 우월감을 부여할 뿐.

무한한 경쟁.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끝임 없이 스스로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지금은 아직 어색한 모양이지만, 곧 깨닫겠지.’

신입생들은 각자 친해진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수업 들을 거야?”

“너는? 나는 정규 기사 수업을 받은 적이 있어서, 아마 근접 무기 심화 들을 것 같은데.”

“다른 건? 네 가문에서 뭐 들으라 한 거 없었어? 아, 평민이라 그런 거 없냐?”

“아니 있는데?”

“어?”

“기초 정령학 들어야 돼. 아버지가 얼마 전에 새 부인으로 노예 엘프를 사들였거든.”

“…엘프를 노예로?”

다만, 그 모습은 종족과 신분이 파벌이 갈렸던 처음과 다르게 조금은 자유분방해져 있었다.

알렌은 그 모습에 조금의 감탄마저 흘렸다.

‘확실히 교묘한 수법이긴 하군.’

첫 주에 실력을 확인한다는 핑계로 상급생과 대련을 하며 동질감과 협동심을 심고, 부회장을 비롯한 고귀한 혈통의 이들이 지속적으로 사상을 동조시킨다.

그 외 짐작만 하는 몇 가지 수단이 더 첨가되자, 학생들이 서로 무시하지 않고 어울릴 수 있을 정도의 사이로 변하는 건 금방이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이곳에 입학한 이들 대부분이 재능이 있는 기재라는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나 알렌은 신분차이와 종족간 차별에 미세할지라도 조금의 틈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융화될 것 같지 않은 이들은 초기에 정리했으니, 이상할 것도 없나.’

알렌은 생각과 함께 과목 선택을 끝냈다.

앞으로 1년 동안 수강할 과목인 만큼, 미리 조사를 해놨었다.

그렇게 해서 고르고 고른 8개의 과목.

공간의 이해?상

영혼 다변론

소환수 계약과 조련

기초 다중차원학

천연결계의 정석

오케스트라(Ⅰ)

던전 실습훈련 - 1

몬스터 생태학 - 1

필수 과목으로 선정된 던전 실습 훈련과 몬스터 생태학까지 합쳐져 8개 과목이 되었다.

최대 10 과목까지 신청할 수 있었지만, 알렌은 따로 검을 훈련할 시간까지 고려해야 했다.

‘검술은 베스틀라에게 배우면 되니.’

당초, 이곳에 왔던 목적대로 마법의 향상을 목표로만 해도 충분하리라.

마력의 양은 전생과 비교할 수도 없지만, 마법의 수준은 정체된 상태였다.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 상황은 빠르게 타파할 필요가 있었다.

“과목에 관해서는 미리 고지한대로 작성 후에, 그대로 찢으면 신청이 완료됩니다.”

교탁에 선 교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교실 여기저기서 종이가 반으로 찢기는 소리가 들렸다.

반으로 찢긴 종이는 푸른빛으로 점멸하더니 서서히 공기 중으로 녹아들었다.

‘저건 도대체 어느 정도 수준의 마법일까.’

공간, 분류, 추적, 소멸…

안에 내제된 개념의 가짓수만 해도 7위계 마법사가 부리는 마법의 수준과 비교해 떨어지지 않는다.

알렌은 은근히 드러난 아카데미의 저력에 감탄을 흘리며 종이를 찢었다.

치익-

종이가 허공에서 잘게 변해 녹아들었다.

“그리고 공적치에 대해 설명하자면…, 이 도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화폐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있는 깊은 지식을 탐독하거나.

엘피스 거리에 있는 상가를 이용할 수도 있고, 아카데미의 보고에 보관된 물건을 대여하거나 교환할 수도 있다.

“공적치는 많은 활동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나눠준 소식지 뒷면에 있으니 찾아보시면 될 겁니다.”

유적을 탐사하거나, 새로운 논문을 제출하거나, 사람을 구하거나, 일정한 수의 몬스터를 처치하거나.

“이렇게 모은 공적치는 여러 곳에 사용 가능합니다. 이것도 뒷면에 있으니 읽어보세요.”

알렌은 살짝 시선을 돌렸다.

하이젤은 관심이 없는지 하품을 했고, 마리아는 언제나처럼 무표정했다.

“심지어 아카데미에 상주한 가이온 님이나 자크니르 님에게 일일 교습을 받을 수도 있으니 열심히 활동하시길 바랍니다.”

그 말이 끝나자 무섭게 학생들이 놀라운 얼굴로 수군거렸다.

“와, 미친 팔강과의 개인 교습?”

“…이건 제대로 해봐야겠는데.”

“흠, 가문의 병사들을 써야 하나? 아니면 용병이라도….”

“빌하임! 당장 자세히 알아보세요. 이번 기회에 팔강의 눈에 띌….”

급히 옆에 같이 입학했던 가신과 대화하는 이, 둘도 없는 기회라는 듯 눈을 빛내는 자, 어떤 게 이득인지 셈하는 사람까지.

교실이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다.

평민들도 자신의 색다른 미래를 꿈꾸는 듯 상기된 얼굴로 떠들었다.

알렌은 그들과 다르게 교수의 말에 휩쓸리지 않았다.

공적치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개인 교습 한 번에 10,000점이라니.’

하급 몬스터 기준 0.5점.

유적 탐사의 수준에 따라 10-100점.

인명구조 한 명당 5점. - 단, 신분에 따라 별도의 공적치 추가.

아카데미의 보고에 물건을 교환하는 것도 3,000점이 들어가는데, 팔강과 일일 교습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해야 할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평생 공적치만 쌓을 수 없고, 아카데미의 수업도 따라가야 하니….’

따져보면 거의 불가능한 것이나 다름없다.

다른 학생 몇 명도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

“자자, 그만. 그럼 이대로 수업을 끝마치겠… 아 그래. 이걸 잊고 있었군요.”

교실의 소란을 잠재운 교수는 손가락을 튕겼다.

탁-

그러나 각자 학생들의 앞으로 한 장의 종이가 나타났다.

“거기 읽어보면 아시다시피, 시간표에 따라 2주 후에 1학년 전체가 던전 실습을 나갈 예정입니다.”

던전 실습에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한동안 기억을 뒤져보던 그는, 별다른 것이 떠오르지 않자 신경을 끊었다.

‘그것보다는 다른 일에 신경 써야지.’

얼마 후에 벌어질 사건.

“1학년끼리 조를 짜서 진행할 예정이며 2학년 선배가 한 명씩 배정되어 인솔하게 될 겁니다. 예외적으로 공적치도 얻을 수 있으니 사전에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는 침입자에 의해 습격당한다.

‘내 주변과도 관련 있는 일이니, 신경 써야겠지.’

부하의 일이라면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이미 회귀 전에 일어났던 일, 더욱 특별하게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그럼 수업을 끝마치겠습니다.”

교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종소리가 울리며 수업이 끝났다.

알렌은 몸을 일으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날 사건인 만큼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그렇게 교실을 나서려던 찰나,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알렌, 나 왔어요.”

그가 목소리의 주인에게 고개를 돌리기 전, 그의 부르는 또 하나의 목소리가 있었다.

“알렌.”

딱딱하고, 고저 없이 그를 부르는 목소리.

“나 당분간 밤에 못 만날 것 같아.”

“불렀는데 왜 대답 안해… 어?”

마리아의 목소리에 걸어오던 레이첼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잠깐 일이 생겼어.”

마리아의 표정은 변화 없었다.

“그러니까 며칠 후에 다시 만나.”

“…다시?”

“장소도 바꿔서. 뒷골목은 이제 지겨워.”

“뒷골목? 지겹?”

묘하게 특정한 단어를 레이첼이 따라 말했다.

“잠깐….”

알렌은 직감적으로 그녀가 잘못 이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갈게.”

그러나 마리아는 알렌이 말을 정정하기도 전, 자신의 할 말만을 끝낸 체 그대로 교실 밖을 나섰다.

“아….”

알렌은 탄식했다.

그 모습을 우두커니 지켜보던 레이첼은 곧장 달려와 멱살을 잡아 끌어당겼다.

알렌은 얌전히 그녀의 손길에 끌렸다.

“알렌, 당장 설명해요. 당장.”

“…내가 다 설명하지, 잠깐….”

「인기 많아서 좋겠네요? 바람둥이!」

‘그 입 좀 다물면 좋겠군.’

「검한테 입이 어딨어요? 그러게 저한테 평소에 잘 좀 하지 그랬어요?」

재밌는 구경거리인 양 베스틀라만이 신나게 소리쳤다.

알렌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고 싶은 걸 참으며 고개를 내렸다.

레이첼의 호수 같은 푸른 눈동자로 투명하게 자신을 비췄다.

“사실대로 말해요, 무슨 관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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