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 빙의를 싫어함-71화 (71/212)
  • 제71화

    마리아는 알렌과 인사를 마치고 곧바로 고개를 내렸다.

    알렌은 안중에도 없는 모습.

    그 모습에 알렌이 의아한 눈초리로 그녀를 보았다.

    ‘여기 있는 이유가 뭐지?’

    그냥 산책인가? 아니면 다른 목적?

    시선이 향하는 방향을 살펴보니, 그곳에는 골목에서 튀어나온 고양이가 있었다.

    설마….

    알렌은 말없이 손을 내렸다.

    애옹-

    고양이는 알렌의 접근에 경계심 없이 달라붙었다.

    신수에게서 감응력을 개화하고 얻은 소소한 변화 중 하나였다.

    마리아의 눈이 잠시나마 부러운 듯 알렌의 곁에 달라붙은 고양이를 향했다.

    그 모습에 알렌이 입을 열었다.

    “…만져보시겠습니까?”

    “……응.”

    어째 초면에서부터 말이 짧군.

    엘닉스의 추종자에서부터 하이젤, 벤자민 그리고 마리아까지.

    ‘분명 예절 교육은 받았을 터인데….’

    알렌은 어느덧 가까이 느껴진 그녀의 기척에 상념을 멈췄다.

    그녀의 눈은 줄곧 고양이를 향해있었다. 그녀가 고양이에게 가까워진 순간, 고양이가 털을 곤두세우며 송곳니를 드러냈다.

    하악-

    “…아.”

    그녀의 손이 허공을 맴돌았다.

    마리아는 안타까운 얼굴로 알렌과 고양이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런 애처로운 모습에 알렌은 고양이를 진정시키며 생각했다.

    ‘동물을 좋아하나? 그런데…,’

    일방적으로 배척받는 군.

    선천적으로 동물과 맞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데, 그녀가 그런 경우 중 하나로 보였다.

    ‘이런 사실은 몰랐는데.’

    그녀와 자연스럽게 친분을 만들 기회임을 직감했다.

    알렌은 두 손으로 고양이를 들어 올렸다.

    그의 품에 안긴 고양이가 진정한 듯 얌전히 머리를 파묻었다. 작게 박동하는 생명체에 알렌의 손의 위치를 잠시 조정했다.

    “이러면 괜찮을 겁니다.”

    그의 행동을 예상하지 못한 걸까.

    그녀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

    그녀가 멈칫하며, 고민하는 듯 보이자 알렌이 슬며시 읊조렸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텐데….”

    그 말에 그녀가 결심한 듯, 결연한 눈빛을 했다.

    “고마워.”

    그녀의 손이 천천히 다가왔다. 이전보다 느릿하지만, 망설임 없는 손길이었다.

    애옹애옹-

    그녀가 다가오자 하악질을 해대던 놈은, 알렌이 쓰다듬자 겨우 진정했다.

    마리아는 그 모습에 용기를 얻었는지 허공에 돌던 손을 내렸다.

    스륵-

    스르륵-

    조심스럽게 몇 번이고 쓰다듬었을까.

    “이제 그만.”

    “아….”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을까 우려한 알렌이 고양이를 내려놓자 그녀는 아쉬운 탄식을 흘렸다.

    고양이는 순식간에 바닥을 박차 담벼락을 뛰어넘어 사라졌다.

    그 모습에 알렌이 별일 아닌 듯 지나가듯이 말했다.

    “다음에도 기회가 있을 테니 그렇게 아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음에도?”

    “예, 원하신다면.”

    알렌이 어깨를 작게 으쓱이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답했다.

    “…그럼 내일도.”

    “예?”

    “내일도 도와줘.”

    일이 이렇게 잘 풀리다니…. 멍하던 그녀의 눈동자에 확고한 감정이 실렸다.

    ‘…검은 책에도 이런 내용이 있었…?, 아니.’

    알렌은 불현듯 검은 책 자체에만 의존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처음 책의 능력을 알아냈을 때만 해도, 이 능력을 내려준 존재에 대한 경각심을 곤두세웠는데.

    정신을 차리니 자신의 기억, 경험보다 책의 내용을 더 중요시하는 그가 있었다.

    ‘…요즘 너무 지나치게 의존하기는 했군.’

    새로운 장소, 겪어보지 못한 경험에 자연스럽게 책에 의지하게 되었다.

    처음 악마를 의심하던 자세는 뒷전이 되고 말았다.

    “…싫어?”

    대답이 늦는 이유가 부탁의 거절이라 생각하는 걸까.

    알렌은 눈치채기 어려울 만큼 표정이 흐려진 그녀를 보며, 온전히 자신만의 판단으로 생각을 가다듬었다.

    “아니요, 얼마든지 도와드리지요.”

    “정말?”

    천천히.

    하이젤을 견제할만한 패로 그녀를 끌어들이는 수밖에 없다.

    그가 현재 아무런 짓을 벌이지 않았다고 하나, 회귀 전에 그는 율리우스의 동료로서 함께 행동했다.

    “예, 저도 용사의 후예라 불리는 당신에게 관심이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마왕’ 이었던 하이젤을 견제하기에 ‘용사의 후예’라는 칭호는 부족함이 없었으니.

    ‘물론 하이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렸다.’

    아직 시간은 남아있다.

    책의 능력을 내려준 자의 정체에 고민해볼 시간도.

    그녀와 친분을 쌓기 위한 시간도.

    하이젤을 살펴볼 시간도.

    “마리아.”

    “네?”

    “마리아라고 불러.”

    그러니.

    “…예, 마리아 님.”

    “말도 놔.”

    “…그래, 마리아.”

    “응.”

    지금은 잠시 그녀와의 대화에 집중해도 괜찮겠지.

    마리아는 고양이가 사라진 방향을 살펴보더니, 몸을 획 돌렸다. 용건만을 말하고 돌아서는 모습에 알렌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그럼 내일 같은 시간에…, 본관 앞에서 보도록 하지.”

    “응.”

    알렌은 그녀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소문에 떠돌던 그녀의 최후를 회상했다.

    용사의 후예를 자칭하는 순수하고 가련하며 불쌍한 여자.

    “아.”

    그녀는 5년 후에 목숨을 잃는다.

    “왜 그러지?”

    “이름.”

    “내 이름 말인가?”

    “응.”

    사인은 의살(縊殺).

    경동맥 압박으로 인한 산소차단으로 뇌조직의 괴사.

    “알렌 라인하르트. 서부에 위치한 리브레 왕국 라인하르트 가문의 적자다.”

    “마리아 카리타스.”

    “앞으로 잘 부탁하지.”

    “잘 부탁해.”

    즉, 자살이었다.

    * * *

    일라이자 하뷔에론.

    알드니아 제국, 여러 소국과 왕국이 난립한 대륙 서쪽과 다르게 대륙 동쪽의 반을 통일한 제국의 2황자.

    하지만 그의 인생은 기구하기 짝이 없다.

    사실 황태자는 혈통 부분에서 정통성이 부족했다.

    황후의 아래에서 태어난 것이 일라이자였고, 그의 형님은 황제가 황태자일 적 실수로 태어난 아이였다.

    만약 황태자의 능력이 부족했다면, 혹 그의 외척이 감히 야망을 품었다면.

    그것도 아니라 제국의 풍습이 실력 지상주의를 표방하지 않았다면.

    일라이자는 황태자의 자리를 노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혈통이란 것은, 생각보다 많은 걸림돌이 되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황제는 그러지 않았다.

    사생아라도 능력을 입증했기에 황태자의 지위를 보장해주었고, 제국의 신하들조차 그 결정을 반대하지 않았다.

    제국을 세운 초대 황제가 내세웠던 가치관은 신분의 따른 제약에 관대했기 때문이었고, 황비들의 사이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는 납득했다.

    황제의 말에 복종했고, 뒤로 일을 꾸미지도 않았다.

    황태자와 사이도 좋았기에 그가 세력을 일으킬 위험이 있음에도 아카데미에 오는 것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만약 아무런 사건이 없었다면 그는 유유히 제국으로 돌아와 제법 넓은 지역의 성주가 되어 잘 먹고 잘 살았겠지.

    ‘율리우스 놈만 아니었다면.’

    알렌이 진정으로 놈을 증오하게 된 계기.

    그 처음이 일라이자 황자와 관련되어 있었다.

    한 때는, 놈을 이해하려고 했었다.

    ‘놈이 진정으로 동생의 몸을 빼앗으려고 한 것은 아닐 테니까.’

    어쩌면 우연일지도 모른다.

    그의 잘못은 없지 않을까.

    그 사건만 아니었다면 알렌은 어쩌면 복수를 포기했을 것이다.

    복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적당히 타협했을지도 모르지.

    아버지처럼.

    그를 제외한 다른 이들처럼.

    그러나 사건의 전말을 깨달은 후 알렌은 귀족으로서, 한 명의 사람으로서 처음으로 진한 역겨움을 느꼈다.

    5개월 후, 새 학기가 시작될 즈음 한 학생이 아카데미에 입학한다.

    마하 하뷔에론.

    황제의 막내딸이자, 천고의 재능을 가진 여자.

    그녀는 그곳에서 운명을 만났다고 소문에서는 말한다.

    ‘세간에서는 그녀가 첫눈에 반했다고 하지만….’

    혹 모르지 않는가.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율리우스가 먼저 접근했을지.

    율리우스의 능력을 알게 된 알렌은 그들의 만남을 다른 시각에서 추측해 볼 수 있었다.

    어찌 되었든 내막을 알 수 없는 이 만남은,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그때는 알 수 없었던.

    1년이 지났을 때, 황태자가 급사했다.

    정체불명의 저주였다.

    다시 1년이 지났을 때, 황태자의 자리를 노리던 3황자가 원정을 나갔다 사망했다.

    갑작스레 나타난 몬스터의 습격이었다.

    두 명의 죽음을 조사하던 일라이자는, 갑작스레 군사를 일으켜 마하 황녀를 습격했다 도리어 패퇴했다.

    그리고 자살했다.

    누구도 그가 군사를 일으킨 이유를 몰랐다.

    그러나 다음 황제의 경쟁 후보로 유력한 그녀에게 불안감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어디선가 퍼져나갔고, 이윽고 걷잡을 새도 없이 대륙 전체에 진실인 양 알려졌다.

    짧은 시간에 3명의 자식을 잃은 늙은 황제는 이때를 기점으로 건강이 크게 쇠약해졌다.

    다른 황족들은 족족 사망하는 형제들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껴 한 발을 뺐고, 그 사이에 그녀는 다른 형제를 제치고 황태녀의 자리를 차지했다.

    알렌이 이 사건의 전말을 깨닫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언제나처럼 놈의 약점을 파헤치던 중, ‘우연히’ 놈의 아공간을 탐색할 기회가 있었다.

    평소에 알렌의 실력으로는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어떤 틈이라도 생긴 것인지, 알렌이 접근할 수 있었다.

    ‘지금이라면 그런 틈이 있었다는 사실에 의심을 해봤겠지만….’

    그때의 알렌은 조급함에 사로잡혀 두 눈이 가려졌다.

    그곳에서.

    알렌은 그곳에서 하나의 일지를 발견했다.

    [/////// 일지]

    이름이 지워진 일지에는 우연처럼 보였던 모든 사건의 자초지종이 적혀있었다.

    황태자의 죽음부터 일라이자의 내란까지.

    글의 시점으로 짐작해 봤을 때, 일지의 주인은 제 2황자 일라이자가 분명했고, 그런 일지는 사건의 배후로 율리우스를 가리키고 있었다.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군.’ 알렌은 분노했다.

    놈은, 율리우스는 귀족의 의무를 저버렸다.

    이득을 위해서 황족 암살과 내란의 배후가 되어 수많은 사상자를 만들었다.

    이득을 위해 그 무엇도 거리낌 없이 저지른다.

    심지어 놈이 선조끼리 했던 ‘맹약’을 깨버린 순간 알렌은 깨달았다.

    자신과 놈이 양립할 수 없음을.

    동시에 놈을 이해하려던 생각이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붕어한 황제의 장례식에서 황비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위로를 전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알렌은 놈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놈은 쓰레기였다.

    동생의 명예를 더럽히고.

    귀족의 의무를 내던지는, 그런 쓰레기.

    지금 되짚어 생각해본다면 그 행동에 [시스템] 혹은 [퀘스트]의 영향도 적잖이 있을 것이라고 보지만….

    ‘상관없지. 그걸 행하는 건 놈의 의지일 테니.’

    갑작스럽게 일지가 사라지지만 않았어도 뭔가를 해봤을 텐데.

    잠깐 눈을 뗀 사이 사라진 일지의 행방은 지금 생각해도 뼈아팠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알렌은 벤자민과 율리우스의 대련을 막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일라이자는 율리우스와 적대관계를 형성할 테니까.

    벤자민의 희생이 없다면 일라이자는 온화한 성격답게 율리우스를 쉽게 용서할 테니.

    알렌은 그가 필요했다.

    그의 세력이. 그의 이름이. 그의 위치가. 그의 협력이.

    그와 연결된 황태자의 협력과 장차 율리우스 주위로 끌어모을 세력을 상대할 힘이 필요했다.

    그 탓에 벤자민이 불구가 되었다고 해도.

    알렌은 미래를 위해, 동생을 위해서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몇 번이고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 대신.’

    그 책임을 져야지.

    피할 생각도 없고, 외면하지도 않겠다.

    오롯이 또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알렌은 고개를 들었다. 뜨거운 사막의 바람이 도시 전역을 뒤덮은 결계를 거쳐 봄바람으로 변해 그를 스쳤다.

    자신이 머무는 4층의 창가에서는 성검이 박혀있는 광장의 정경이 눈에 들어온다.

    비록 엘피스의 전경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으나 만족했다.

    “공자님, 공자님께서 각 연금술사에게 의뢰했던 물건을 모두 수거했습니다.”

    이제는 익숙해진 라일락 향기가 물씬 풍겨왔다.

    지금은 사라진 요정을 떠오르게 만드는 청량한 목소리와 요정 수십의 능력을 담은 특별한 존재.

    “수고 많았다. 이넬리아.”

    알렌이 고개를 돌리자, 이넬리아가 정갈한 몸짓으로 허리를 숙였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것들을 어디에 쓰실지….”

    그녀의 품에는 여러 가지 물건이 있었다.

    붉은 꾀꼬리의 꽁지깃.

    세이렌의 눈물.

    죽은 사형수의 메아리와 낮에 피는 나팔꽃의 꽃술.

    알렌이 마녀에게서 얻었던 생명석까지.

    그를 비롯한 수십 가지의 재료가 작은 주머니에서 쏟아져 나왔다.

    마치 마술과도 같은 광경.

    알렌은 서적에서만 읽던 여러 요정의 능력에, 놀랐던 처음과 다르게 꽤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그 능력들은 언제 봐도 신기하군.”

    “…그런 것처럼 보이지는 않으시지만요.”

    그녀의 아쉬움이 목소리에 드러났던 걸까, 알렌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아공간 포켓에 재료를 담았다.

    “여러 번 봤는데 매번 놀랄 수야 있겠나.”

    공간 계통의 마법사로서 마법이 아닌 수단으로 공간을 이용하는 게 신기했을 뿐이다.

    “이제 준비가 된 것 같으니…, 슬슬 만나러 가보도록 하지.”

    한 명이 아닌 수십의 연금술사에게 따로 의뢰한다고 시간이 꽤 걸렸다.

    ‘휘하에 연금술사가 있었으면 시간을 배는 단축했을 것을.’

    보안을 위해서라도 연금술사를 자신의 밑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다.

    그것도 아니면….

    알렌은 잠시 이넬리아를 보았다.

    키메라이긴 하지만 요정왕의 피를 이었고, 손재주도 뛰어난 편이다.

    ‘예로부터 요정이 만들었다는 물건은 효과가 좋았지.’

    알렌은 나중에 그녀에게 이것에 대해 논의하도록 생각하며 이넬리아의 곁을 지나쳤다.

    그의 뒤를 따라 이넬리아가 조심스레 물었다.

    “누구를 만나시겠습니까.”

    “당연히 한 명밖에 없지 않나.”

    알렌은 자신을 목 놓아 기다리고 있을 이를 떠올렸다.

    ‘일라이자 2황자.’

    그를 만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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