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 빙의를 싫어함-67화 (67/212)

제67화

율리우스는 공업 지구로 향하는 내성 문을 넘었다.

슬슬 괜찮은 무기를 갖출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지금 무기로는 안 돼.’

지금 쓰는 것도 왕도의 대장간에서 구한 괜찮은 검이었지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 무기로는 모자랐다.

원작에선 아카데미에서 많은 사고가 일어나기에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시끄럽게 울리는 망치질 사이로 드문드문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 입학시험 봤나? 카일루스 가문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만한 천재를 배출했으면 지금쯤 축제겠군.”

“나는 하이젤보다 알렌이 괜찮았어. 조금 여력을 남겨 둔 것 같다고 해야 되나?”

“그것치고는 차석도 아슬아슬 한 것 같았네만…, 역시 나는 마리아 님이 더욱 돋보이더군. 소문보다 더 아름다우신 분이야.”

“드라기아스 가문은 아쉽겠어. 막내라 해도 제 형만 못한 놈이 왔으니.”

장사꾼의 소리였다.

지나가던 용병의 대화였고, 하릴없는 도제의 시간 때우기였다.

어제로 끝난 입학시험의 열기가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길게 뻗어 나온 가로등이 땅거미를 몰아내며, 저 너머로 사라진 주홍빛 노을을 대신했다.

아깝다. 율리우스의 표정이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이런 씨, 기연만 아니었으면….’

보충 반에서만 얻을 수 있는 기연을 위해 마력을 흩트리는 약을 썼다.

자신이 좋은 성적을 거둬 주인공과 같은 반이 되면 원작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었기에 그렇게 행동했다.

그러나 그 선택이 지금 와서는 조금 아쉽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만약 잘못해서 원작이 어긋나면? 원작과 흐름이 달라진다면?

그럴 수 없다.

그렇게 해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원작의 기연들이 아까웠고, 원작대로 사건이 진행되는 것이 훨씬 편했다.

‘내가 움직이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처음부터 날뛰었다간 어떤 어긋남이 발생할지 모른다.

알렌 형님이 차석을 했다는 사실은 놀랐다. 하지만 자신이 전력을 다했다면, 그 자리는 자신의 것이 됐을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기에 자신의 담을 그렇게 크지 못했다.

율리우스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발걸음을 높였다.

오늘 그는 찾을 사람이 있었다.

원작에서 봤던 불쌍한 대장장이.

실력은 나이에 맞지 않게 월등하지만, 단 하나의 요소로 인해 제대로 꽃피지 못하고 있는 자.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빌런이 되어 버린 이들.

신드리 남매.

‘지금쯤 낡은 대장간을 팔아야 될지 고민하고 있을 시기겠지.’

나중에는 지금껏 겪은 차별과 차오른 울분으로 인해 아카데미를 테러하는 이교도의 일원이 된다.

오전부터 만나고 싶었으나 다른 이들의 방문 때문에 시간이 늦춰졌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빨리 수거해야지.

몇 개월 전에 영입할 수도 있었지만, 이곳까지 손을 뻗치기에 품이 너무 많이 들었기에 포기했다.

그 대신에 다른 작업을 했다.

‘적당히 힘겨운 기억은 있어야지.’

그들에게 너무 빠르게 손을 뻗는다면 그에게 의지하지 않을 수 있다.

율리우스는 그들이 자신에게 맹목적인 충성심을 가지기를 바랐다. 원래 고생해 봐야 소중한 것을 안다. 그렇기에 율리우스는 초창기에 사람을 보냈다.

악의적인 소문을 흘리기 위해.

‘어차피 망할 인생이라면 상관없잖아?’

그렇다면 조금 더 빨리 망한다고 해서 상관없으리라.

그 후 몇 달이 지나 결과를 알아보니 신드리 남매가 원작에 있던 것보다 더 처참한 실패를 경험했다 한다.

이제 그간의 노고를 보상받을 시간이다.

율리우스는 그들을 수집할 생각에 입가에 웃음이 그치질 않았다.

‘만약을 대비한 보험도 준비해 놨고.’

귀에 달린 귀걸이 감촉이 어색했다.

착용자에게 약간의 호감을 가지게 만들고, 끝내는 정신적 속박을 당하게 만드는 유물.

멀쩡한 이들에게는 쉽게 떨쳐 낼 수 있는 미미한 효과밖에 내지 못하지만….

힘든 삶 속에서 만난 온기에, 쉽게 현혹당할 것이다.

“또 방문해 주세요! 발홀(Valh?ll)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런데 대장간을 찾기가 어려웠다.

공업 지구의 구석, 연구 지구와 가까이 위치한 낡은 대장간이라고 했는데.

아무리 글귀로 위치를 읽었다 한들 몇 시간째 찾지 못하는 건 이상했다.

“대장간 이름이 뭐라고 했지? 발, 발….”

“발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래, 발홀!”

율리우스가 눈을 크게 뜨고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희 대장간의 무기는 엘피스 최고의 품질을 자랑합니다!”

그가 찾던 곳이라고 생각하지 못해 몇 번이나 지나쳤던 장소.

그곳에는 주변의 낡은 건물과 비교되지 않는 3층짜리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스름한 하늘임에도 북적거리는 인파와 지은 지 얼마 안 된 듯한 깨끗한 외면.

소녀 한 명이 입구에서 명랑하게 인사했다.

율리우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한 표정으로 내부로 들어섰다.

실내도 겉과 마찬가지로 깨끗했다.

1층에는 수많은 무기가 깔끔하게 분류되어 있었고, 2층에는 1층보다 더욱 좋은 품질의 무기가 벽면에 걸려 있었다.

“이건….”

검 한쪽을 유심히 살펴보던 그는 확신했다.

이건 그들이 만든 무기다.

손잡이 아래에 작게 새겨진 특유의 망치 문양이 있었다.

율리우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이게 왜….”

원작의 내용이 왜 달라졌지?

이렇게 된다면 그들을 거두려 했던 그의 계획이 어긋난다.

그는 가까이 있던 점원에게 다가섰다.

“이 대장간의 주인을 만나고 싶다.”

“예?”

“이곳의 주인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처음 그가 말했을 때까지만 해도 의아한 표정을 하던 점원은, 그가 내뱉은 말에 익숙한 일인 듯 한숨을 내쉬었다.

“손님, 죄송하지만 신드리 님께서는 현재 접견 요청을 받지 않으십니다.”

신드리. 그가 찾던 이름에 그의 마음이 더 급해졌다.

“나는 율리우스 라인하르트다! 여기 주인을 만나고 싶으니….”

“경비원, 손님이 나가신다고 합니다.”

점원이 외치자, 내부를 지키던 용병 2명이 율리우스의 팔을 잡았다.

“내가 누군지 아냐! 나는 라인하르트 가문의….”

“예예, 그러시겠지요. 저는 빌이라고 합니다.”

억세게 잡힌 팔이 아렸다.

점원의 귀찮은 듯한 표정에 마력을 끌어 올렸지만, 마력은 요지부동이었다. 아.

“이런 씹….”

약의 기운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카데미의 학생이다. 학생이라고! 이거 당장 풀고, 안내해!”

“하아.”

그의 얼굴이 붉게 변해 소리쳤다. 팔, 다리를 휘두르며 발광하는 그의 모습에 빌은 말없이 손을 저었다.

율리우스는 질질 끌려 나가면서까지 입을 멈추지 않았고.

“안녕히 가십시오.”

쿵-

그건 건물 밖으로 내쫓겨날 때까지 이어졌다.

“시발──!”

* * *

밤의 소리는 낮보다 더 크게 울린다. 방음을 신경 쓴 방임에도 아래층에서 들린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밖이 많이 시끄럽네요.”

“제, 제가 빠르게 말해 두겠습니다!!”

“됐어요. 몇 번이나 있었던 일인데.”

카트린느는 여상히 고개를 저었다. 대장간의 정비를 마치고 나서 몇 번이나 있었던 일이 있을 따름이다.

“자신이 어디 상단의 누구니, 귀족의 자식이니. 자신의 권세만 믿는 자일 게 뻔하잖아요?”

탁-

완전히 펼친 부채가 입가를 가린다.

“안 그래요? 알렌 공자?”

“그래, 그렇겠지.”

알렌은 묘한 웃음을 지었다. 밖에서 소리친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저러는 걸까.

『──율리우스는 자신을 경계하는 신드리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섰다. 아직 사람을 믿지 못하는 걸까. 낡은 대장간의 벽면에는 다양한 크기의 구멍이 뚫…』

알렌은 현재와 다른 미래를 그리고 있는 검은 책을 흘깃했다.

“분명 교양이 없고, 예의가 없는 사람이겠지. 지금 시간에 찾아온 것만 해도 알 수 있지 않나.”

“맞아요. 졸부의 아들이지 않을까요?”

“마, 맞습니다! 분명히 막, 막돼먹은 나쁜 녀석일 겁니다!!”

더듬거리는 목소리. 목소리의 주인은 작은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성량을 가지고 있었다.

알렌은 빛 한 점 들어오지 않게 막아 놓은 창문을 살피며 말했다.

“그보다 대장간은 잘되고 있나?”

“예,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놀랄 정도로요. 처음 공자가 이들을 도우라 했을 때만 해도 저의가 의심스러웠는데….”

카트린느가 부채를 다시 접었다.

완연히 드러난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감돌았다.

“지금은 공자님의 안목을 믿지 않을 수가 없네요.”

“도와주셔서 정말, 정말 가, 감사합니다!!”

말할 때마다 말을 더듬지 않을 수는 없는 걸까.

알렌은 카트린느의 옆에 앉은 그녀를 살폈다.

그의 가슴께에도 오지 않는 작은 키. 붉은 단발과 갈색빛의 피부.

작은 손은 굳은살로 가득 찼고, 눈동자는 그의 시선을 피하려는 듯 요동친다.

“고, 공자님이 아니었다면, 저희는 부, 분명히 죽었을 겁니다.”

그녀는 인간과 드워프의 사생아, 하프 드워프였다

양쪽에게 차별받는.

“말한 것은 나였어도 직접 움직인 건 카트린느 공녀다. 나보다는 그녀에게 감사를 표하게.”

“어머, 감사하여라.”

하프 드워프는 하프 엘프와는 다르다.

기본적으로 선하다고 알려진 엘프와 다르게 치졸하고 마음이 좁다는 드워프의 핏줄.

“무, 물론 카트린느 님에게도 펴, 평생을 갚지 모, 못할 은혜를 입었습니다. 하, 하지만 공자님이 아니었다면 바, 바뀌지 않았을 거, 겁니다!!”

손재주가 좋다는 장점이 있으나 작은 일에도 원한을 가지며, 그 탁월한 손재주로 만드는 것은 원한을 해결하기 위한 저주받은 무기다.

햇빛을 쬐지 못하고, 항상 어둡고 음침한 지하에서 사는 드워프는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종족이었다.

쉽게 말해서. 인간보다 믿을 수 없는 이들.

“그, 그러니 저희의 으, 은인이 맞습니다!!”

그런 이들이었기에 하프 드워프인 그녀는 인간에게도, 드워프에게도 속하지 못했다.

“햑!”

신드리는 자기가 소리치고도 놀랐는지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며 눈치를 살폈다.

“어때요. 괜찮죠?”

“…확실히 그렇군.”

전생에서 주워들었던 소문과는 확연히 달랐다.

율리우스에게 충성하며 노예처럼 수많은 무기를 공급했다는 내용과도 달랐다.

검은 책의 내용에는 원작의 신드리 남매도 이교도에 빠졌다고 했는데.

‘거둔 이를 맹목적으로 따를 만큼 몇 달간 겪은 일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건가?’

이른 시기에 거둔 게 옳은 선택이었군.

마지막에 카트린느와 독대했을 때, 알렌은 그녀에게 해야 할 일을 전하며 그녀의 행방을 부탁했다.

이교도의 전력을 세 배는 끌어 올렸다는, 그녀를 끌어들일 수 없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 분명 동생도 제 말에 도, 동의할 겁니다!”

“동생이라…. 크게 다쳤다는데, 지금은 괜찮나?”

“예, 예. 다, 다시는 못 거, 걷는 줄 알았는데…, 고, 공자님이 지원해 주, 주신 덕분에 살았습니다.”

그녀는 그때를 회상하는지, 안색이 어두웠다. 힘이 들어간 작은 팔뚝이 선명하게 굽이쳤다.

“다행이군.”

그녀와의 만남은 처음이었으나 카트린느와 편지를 통해 몇 번 연락했기에 완전히 초면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늘이 완전히 흑색으로 물들었을 무렵, 불현듯 침묵이 찾아왔다.

약속된 정적.

“그래서….”

그 침묵의 사이를 카트린느가 무심히 꿰뚫었다.

“슬슬 공자가 저희를 부른 진짜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왜, 다 큰 남녀가 함께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 그런가?”

그녀는 그 말에 살포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미인에게 수면은 필수라서 말이에요. 공자가 특별히 관리하라 했잖아요?”

잘 관리한 금발을 넘기는 손짓이 사뭇 우아하다.

“‘그’를 위해서.”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기는 하지. 알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저는 나가 있을까요?”

무언가를 느낀 걸까. 나가라고 말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비켜 줄 생각인지 신드리는 반쯤 몸을 일으켰다.

“그래 주면 고맙겠군.”

“네, 넵!”

“너에게도 부탁할 것이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겠나?”

“시, 시키신 게 무엇이든 하, 하겠습니다!!”

알렌은 고맙다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작은 신형이 순식간에 방을 빠져나갔다.

쿵-

알렌은 그녀를 보지 않고 입을 열었다.

“입학식이 끝나고, 다음 주부터 해야 할 일을 말해 주지.”

내일부터는 원래의 목적이었던 대도서관에 가서 영혼 추적에 대한 마법을 조사할 예정이다.

린벨과 이넬리아도 그에 관련된 정보를 구하느라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율리우스, 그의 마음을 얻어 내는 건 쉽지 않을 거다. 너도 느꼈지 않나. 그의 성격을, 그리고….”

“주위에 여자가 참 많더라구요.”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얼굴만은 출중해서인지 관심을 가지는 이가 많더군. 벌써 몇 명이지? 셋? 넷?”

“…….”

“견제도 많겠지. 게다가 네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한들, 한번 너를 내친 그가 다시 돌아보기 힘들 거다. 그는 다른 것을 먼저 보는 것 같으니.”

재능, 이라는.

불가사의한 능력으로 그는 사람의 가치를 판단한다.

“그러니 다른 쪽을 노려야 한다는 거다.”

“무엇을?”

“사람을 원한다면 사람을, 무기를 원한다면 무기를, 기회를 원한다면 기회를. 만약 그가 원하는 것이 설령….”

막혀 있는 커튼의 너머, 보이지 않는 하늘의 모습을 상상한다.

언제나와 같은 달이 뜨고, 언제나처럼 별이 돈다. 다음 날이 되면 날이 지고, 다시 해가 뜬다.

계속해서.

“사랑일지라도.”

알렌의 입술이 비틀렸다.

마음속에 날카로운 날을 갈았다.

“기준에 못 미치더라도 돌아볼 수 있게.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되도록.”

좋은 형님을 원한다면 형님이 되어 주겠다.

평범한 가족을 연기하고자 한다면 그에 어울려 주겠다.

그 대신.

“모든 것을 주고 신뢰를 얻도록 하라. 내가 그것을 도와주도록 하지.”

언젠가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반드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