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화
카트린느는 자신 앞에 자리한 여성을 바라봤다.
“언니 아직까지 연락이 없어요?”
“…응. 분명히 도시에 들어오면 연락한다고 했는데….”
호수 같은 하늘색 눈동자와 여러 종족과 인종으로 넘치는, 아카데미에서도 보기 드문 상아색 머리카락.
“먼저 시험장에 들어간 게 아닐까요?”
사람이 적은 카페 내에서 유독 그녀들의 미모는 눈에 띄었다. 카트린느도 자신의 외모에 자신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레이첼보다 낫다는 건 아니었다.
레이첼이 자연적인 미인이라면, 자신은 몇 개월간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얻은 것이었으니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공자님이 그런 부분에서 조금 무심한 부분이 있죠. 안 그래요?”
“아니 그건 좀….”
“설마 공자님께서 잊으셨을 리는 없잖아요?”
“아냐, 알렌이 그럴 리가….”
그럼 어쩌라는 거야. 카트린느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알렌이 도와준 건 고마웠다. 자신에게 새로운 기회와 함께 희망도 줬으니.
레이첼도 마찬가지. 자신이 아카데미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운 그녀에게는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카트린느, 정말 알렌이 도착하지 않은 건 아닐까? 아니면 무슨 문제라도 생겨서 연락을 못 하는 걸 수도….”
“아니, 언니. 그럴 리가 없잖아요.”
“설마 편지를 너무 보내서 정이 떨어진 건…!”
“언니 제발….”
이렇게 두 명의 사이에 끼어 있을 때는 너무 난감했다.
‘누구는 하고 싶어도 못 하는데.’
그녀를 흘겨보던 카트린느는 레이첼의 눈동자가 요동치는 모습에 한숨을 쉬었다.
그래, 언니가 무슨 죄야. 다 알렌 공자 탓이지.
자기 약혼자면 직접 챙길 것이지. 카트린느는 평소에 하던 것처럼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자, 언니. 조금 진정하고 다시 생각해 보는….”
그렇게 그녀를 말리려던 그때, 다른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는 건 어떨까요.”
“야, 이번에 신입생 수준 봤냐? 진짜 미쳤다니까?”
“마법 쪽? 아니면 무투 쪽?”
평소였다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 텐데.
레이첼의 신경이 그쪽으로 쏠리는 것이 보였다.
“양쪽 다 돌았다니까? 지금 2학년이랑 붙여도 이길걸?”
“그 정도라고? 이름은?”
“잠시만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도 아….”
카트린느는 본능적으로 불길함을 느꼈다.
‘제발, 제발 이 순간에 맞춰서 나올 리가 없잖아.’
그녀는 설마 하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았고.
“알? 아, 아니다. 하이젤, 그래 하이젤이었을걸?”
곧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언니 잠시 기다렸다가….”
“걔가 지금 수석 확정이고, 그 밑에 경쟁하고 있는 게 유명한 용사의 후예랑… 또 다른 한 명이 앨런? 알렌? 아마 그런 이름이었을 거야.”
쾅!
황색의 빛이 점멸했다.
“방금 뭐라고 했어요.”
“예, 예. 그, 선배님 제가 뭘….”
이야기하던 남학생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레이첼의 모습에 몸이 굳었다.
“알렌.”
“예?”
“방금 말한 신입생 이름이 알렌, 알렌 라인하르트 맞아요?”
“그, 그게….”
그녀가 싸늘한 얼굴로 다시 물었다.
“푸른 청발에 무표정한 얼굴,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남자가 맞냐고요. 후배님.”
남학생은 기억을 더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마, 맞는 것 같은데… 요?”
“고마워요.”
레이첼은 그 대답을 들은 즉시 시험장으로 전력을 다해 몸을 날렸다.
“아! 언니 어디 가요!”
“미안! 조금 이따 봐!”
“아니, 하, 아니….”
그럼 이 난리는 누가 정리하냐고….
레이첼의 텔레포트 여파로, 책상과 의자들이 어지럽혀진 내부를 보며 카트린느는 찌푸려지려는 눈살을 꾹꾹 피며, 한숨을 쉬었다.
‘진정하자, 진정해. 주름이라도 생기면 큰일이야.’
그녀는 아직도 기억했다.
알렌과 방에서 독대하던 날, 그가 마지막에 그녀에게 했던 말을.
[카트린느 공녀,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간단합니다.]
“그, 카트린느 공녀… 님이 맞습니까? 저희와 같은 1학년이신….”
“네, 맞아요.”
그녀가 없는 재능을 끌어모아 실력을 올리고, 이렇게 노력하게 만들었던 원인을.
[그 누구보다 아름다워지십시오.]
“곤란해 보이시는데…, 저희가 도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예, 힘쓰는 일 같은 건 저희가 하겠습니다.”
카트린느는 매번 거울에 연습하던 청아한 미소를 지으며 감사를 표했다.
[그 어떤 이가 보기에도 매력적일 만큼. 외적인 면뿐만 아닌, 내적인 면마저도.]
“어머, 곤란했는데 정말 감사해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희 탓도 반쯤 있는데, 괜찮습니다.”
그녀의 칭찬에 남학생들의 얼굴이 붉게 변해 빠르게 카페 내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덕분에 빠르게 정리할 수 있었네요.”
“그, 그런데 혹시 시간이….”
“벌써 갈 시간이 되었네요. 그런데 방금은 뭐라고 하셨는지…?”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그녀는 방긋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의 눈에 드십시오.]
“네-, 당신들도요.”
그녀도 움직였다.
알렌이 왔다면, 분명 ‘그’도 왔을 테니까.
[그의 여자 중 하나가 되어.]
* * *
나타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제7 시험장을 응시했다.
이곳의 시험에서 확인하는 것은 정신력.
환각 마법을 통해 본연의 정신력을 확인함과 동시에 그들의 그릇이 얼마나 ‘완성’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곳.
그 시험장의 한 곳에 그녀가 알던 남자가 앉아 있었다.
“928번 율리우스 라인하르트, 형과 다르게 그 정도밖에 하지 못하나! 같은 가문이 맞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생각했던 것과 다른 모습으로.
시험관의 외침에 율리우스는 자신감 가득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나 자신 있게 소리친 것 치고는 별다른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
식은땀이 뻘뻘 흘러내린다.
그의 정신을 시험하던 공격도 간신히 방어해 내며, 온몸을 옥죄는 결계를 건드릴 엄두조차 낼 수 없다.
그녀가 알던 그가 맞나 의심이 될 정도로 율리우스는 달라져 있었다.
율리우스의 강대했던 마력은 어디 갔는지 쥐꼬리만 한 양의 마력밖에 느껴지지 않았고, 흑마법사를 박살 냈던 기세도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이건…, 이상해요.’
신수의 몸을 좀먹던 흑마력을 정화해 내던 번개를 꺼내 든다면, 저깟 저급한 마법 따위 단 한 방에 박살 낼 수 있을 텐데.
마치 지금의 율리우스는 일부러 실력을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
‘어째서?’
모른다.
이미 같은 시험장에 있었던 알렌 공자는 가까스로 두 번째로 끝마치며, 그들만의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태.
그녀가 알던 그의 성격이라면 율리우스도 그 경쟁에 끼어들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곳에서 저런 연기를 하는 이유는.’
실력을 숨겨야 될 만한 이유가, 있다?
알렌의 태도 역시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그가 알던 이상적인 형의 모습을 하던 그였다면, 율리우스의 부진함에 당장이라도 달려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율리우스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자기 시험에 집중하느라 바빠 보였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여유롭던 그의 인상과는 맞지 않는 모습.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한다.
율리우스가 힘을 숨겨야 될 이유가 있다.
그것은 알렌도 알고 있으나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럴 만한 게 있던가요?’
충분한 무력과 권력을 지닌 저들을 저렇게 행동하게 만들 원인이?
퍼즐의 윤곽은 확인했으나, 그 사이의 공간이 뚫려 있어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나타샤는 그들의 행동 이면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문제는 그것을 그녀만 눈치챈 것이 아니라는 것.
“흠, 우리가 알던 그의 모습과 너무나 달라진 것 같은데….”
리브레 왕국의 제3 공주이자 율리우스와 만난 적이 있었던 헬레나는 미심쩍은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공주님의 뜻에 동의합니다.”
그녀의 물음에 아이린은 무엇을 담고 있는지 모를 눈으로 율리우스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헬레나라고 불러도 된데도? 너는 그가 없으니 너무 딱딱하구나.”
“…죄송합니다.”
“그의 형 또한, 그가 말해 준 성격과도 일치하지 않고….”
그녀는 율리우스가 아카데미로 향한다는 소식에 대리인을 통해 가문을 관리하기로 하고, 이곳으로 왔다.
“어찌 되었든 그에게 무언가 일이 생긴 것 같으니… 도와주러 가야 하겠구나.”
헬레나는 자신을 쳐다보던 엘프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쳤다.
“이미 경쟁자도 있는 것 같으니, 빠를수록 좋겠고.”
그녀는 낮게 웃으며 아이린에게 속삭였다.
“당연히 너도 가겠지?”
“예, 반드시.”
그 대답에 헬레나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그럼 가보자꾸나. 그도 이번 시험을 통과한 모양이니.”
끈적한 땀으로 범벅이 된 그의 곁으로 세 명의 여성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 * *
입학시험은 예상과 다르게 가까스로 차석을 차지했다.
경쟁이 생각보다 매우 치열했기 때문이다.
수석을 할 것이라고 이름이 자자하던 용사의 후예와 3대 가문 중 하나인 드라기아스 가문의 자제까지.
그도 마음대로 힘을 아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본래 감춰 둘 예정이었던 것보다 더욱 많은 패를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용의 노심은 감춰 두고 싶었는데.’
전투를 한다면 필연적으로 감춰 둘 수 없는 육체와는 다르게, 용의 노심은 당분간 공개할 생각이 없었다.
무한에 가까운 마력과 감지력이라니.
이론상 체내의 마력과 체외의 마력, 모두를 무한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매력적인가.
아직 자신의 정신과 신체가 과부하를 버티지 못하기에 오래 사용하지 못하지만, 순간적인 출력만큼은 6 위계 최상위 마법사 정도는 되리라 짐작했다.
그것도 알렌이 비교적 전투와 관련이 없는 계통이기에 이 정도에 그쳤지, 원소 속성에 발을 담갔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몰랐다.
‘…아직 용의 노심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들키지 않은 것 같다만.’
자신의 심장이 보통 서클 체계로 만들어진 고리와 다르다는 사실은 눈치챘을 터.
피부를 찌르는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낯빛이 어두운 음침한 분위기의 청년 한 명이 알렌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엘닉스 드라기아스
3대 가문 중 드라기아스 가문의 막내 공자.
그와 차석을 경쟁했던 경쟁자 중 한 명이자, 용사 후예의 뒤를 이어 4등으로 밀려난 남자.
그의 동공은 단 한 번의 떨림도 없이 알렌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아마 저렇게 하는 이유가 무얼지 짐작이 갔다.
「더러운 도마뱀의 냄새가 나요.」
‘용의 혈통.’
「그것도 잡종의 피가.」
정신을 집중하자 어렴풋이 그에게서 이끌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도 그런 같은 느낌을 받고 있기에 알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거겠지.
엘닉스 드라기아스, 아니 그뿐만 아니라 드라기아스 가문의 모든 이들은 용의 피를 이은 이들이 분명할 것이다.
‘3대 가문은 대몰락 이후에도 생존했다고 했지.’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용의 피를 이었다니.
자의인지 타의인지 모르겠으나 완전히 몸에 정착시켰다면 그 재난에서 살아남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거인의 몸으로 탈변한 알렌도 엄청난 변화를 겪었는데.
그의 시선을 무시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눈꽃처럼 티 없는 순백의 백발과 그에 어울리는 무표정한 외모.
검은 책에서도 가끔 언급된 주연 중 한 명이자, 자신이 진짜 용사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여자.
‘마리아 카리타스.’
그녀는 자신의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미세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알렌은 미래를 위해, 혹시 마왕을 견제할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해서 그녀와 친분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지금은 대화를 나누기에 별로 좋은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알렌은 그녀가 자신의 시선을 눈치채기 전, 제일 앞에 자리한 남자에게 시선을 향했다.
율리우스가 무수히 언급한 ‘원작’의 ‘주인공’이자, 초대 용사와 다투었다는 초대 마왕의 환생이며, 끝내는 미래에 홀로 나라를 무너뜨릴 힘을 가진 사내.
드디어 그를 만나게 되었다.
‘하이젤 카일루스.’
율리우스가 행동하는 원인이자, 알렌이 가진 마지막 회색 책의 주인으로 의심되는 자.
검은 머리에 검은 눈.
귀찮음이 가득한 얼굴에는 이 상황 자체에 대한 아무런 감흥이 없어 보였고, 입고 있는 옷에는 깔끔함이 돋보인다.
‘딱히 겉으로 보이는 마왕이라 부를 만한 특징은 없나?’
얼굴도 이목구비가 뚜렷한 편이나, 귀족들 기준으로 잘생겼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
검은 머리와 검은 눈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이 증거가 될 수는….
‘카일루스라는 가문이 존재했었나?’
어디서 들어 봤던 것 같은데. 자세한 조사가 필요해 보였다.
알렌이 그를 관찰한 지 한 호흡도 되지 않을 시점.
“…음?”
하이젤이 고개를 돌렸다.
정확히 알렌의 눈을 바라보며.
알렌은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감응력까지 동원해 은밀하게 관찰했는데.’
시선 한 번에 그를 잡아내다니.
알렌은 어쩌면, 자신이 최선을 다했어도 그에게서 수석의 자리를 빼앗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하이젤은 그의 속내를 눈치챘다는 듯 히죽 웃었다.
“내가 시선에 조금 민감해서 말이야.”
“…불쾌했다면 사과하겠습니다.”
“아니, 불쾌했다기보다는… 조금, 신기해서 그래.”
입학시험의 합격자들이 속속히 중앙 광장으로 몰려든다. 시험을 주관하던 시험관들이 그들을 줄 세웠고, 이제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통과 의례만이 남아 있었다.
“어떻게 살아있나 싶어서.”
“그게 무슨 말인지…?”
“그도 그럴 게, 꼭두각시 주제에 잘도 따르잖아?”
알렌은 순간적으로 당혹감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의 반응에 하이젤의 목소리에 의아함이 여렸다.
“자기 처지도 모른다고? 그 새끼들의 방식이 바뀌었나…?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그 새끼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잠깐!”
알렌이 급히 입을 여는 순간, 입학시험을 총괄하던 남자가 하이젤의 이름을 불렀다.
“1102번, 하이젤 카일루스! 아카데미의 전통이자, 통과 의례로써 성검의 주인이 될 수 있는지 확인하겠다! 앞으로 걸어 나가, 성검의 손잡이를 만지도록!”
“뭐, 이제 내 알 바는 아니니까.”
하이젤은 그렇게 말하며 붉은 카펫이 깔린 광장의 위를 천천히 걸었다.
“정 궁금하면 나중에 오던가, 안 와도 상관은 없고.”
가볍게 손을 흔드는 그의 모습은 일견 경박해 보이기도 했지만, 알렌은 그런 모습에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내가, 꼭두각시라고?’
무엇에?
아니면 누구의?
그냥 자신을 흔들기 위한 함정인가?
‘그럴 이유가 있나?’
아니면 저 말의 진의가 무엇인가.
자신이 주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던 알렌은, 그의 말에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와아아아!”
“미친, 성검이 반응한 거 봤냐? 이게 몇 년 만이지? 와….”
“17년 만이던가? 이번 신입생은 진짜….”
그러나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572번 알렌 라인하르트! 이제 네 차례다! 시간이 없으니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도록 하겠다!”
알렌은 붉게 변한 광장의 중앙, 투박한 바위의 위로 이 도시의 근간이자 기둥인 성검이 박혀 있었다.
이처럼 성검을 가까이할 기회가 언제 있을지 모른다.
‘다른 5대 신기를 이렇게 볼 기회가 다시는 없을지도 모르는데….’
알렌은 더 이상 입학시험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시선의 끝에는 하이젤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으며, 아카데미의 안으로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이럴 시간이 없다.’
성검을 가까이할 기회가 더 없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가 한 말의 의미를 아는 것이 더 중요했다.
알렌이 곧바로 성검의 손잡이를 잡자 성검의 검날이 빛을 뿜어내며 반짝였다.
“아니, 미친 쟤도 저런다고?”
“이번 신입생 수준, 진짜 가슴이 웅장해진다.”
“용사의 후예까지 성검 반응하면 연속 3번 아니냐?”
가슴 속에서 그가 가지고 있던 5대 신기중 하나인 구슬이 잘게 떨었다.
그는 광장을 빠져나왔다.
다른 사람들의 환호와 5대 신기의 반응, 시선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하이젤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몸을 돌린 그때.
“아.”
황색의 빛이 점멸하며, 하늘색 눈동자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알렌, 여기서 지금 뭐 해요.”
춘봄의 꽃바람에 옅은 뮤게 향기가 섞여 왔다.
“연락은 어디 가고, 여기서 뭐 하냐고요. 내가 묻고 있잖아.”
그리운 목소리와 함께.
“…레이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