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 빙의를 싫어함-64화 (64/212)

제64화

도시의 성문은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아카데미 제복을 입은 학생들과 유적의 공략을 끝마친 용병들, 그리고 전리품을 매입하려는 상인들과 호객 행위를 하는 어린아이들까지.

모래 폭풍을 피한다며 몸을 사리던 주변 도시와는 정반대의 모습.

그것은 그만큼 그들이 도시를, 성검을 믿는다는 믿음의 방증이기도 했다.

“저희는 이만 가겠습니다.”

알렌이 고개를 돌리자 며칠간 같이 지내며 익숙해진 이들이 벌써부터 몸을 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벌써 떠나는 건가? 도시에 같이 들어가는 게 어떤가. 그 동안 많은 노고에 사례라도 하고 싶은데….”

“저희는 의뢰의 내용에 최선을 다한 것뿐입니다.”

알렌이 몇 번이 권했으나 알렉시우스는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이미 카이란에서 물품을 보충했기 때문에 도시에 들어갈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라도 받아 주게.”

알렌은 손을 뻗어 이넬리아에게 미리 준비해 놓으라고 했던 작은 주머니를 그에게 주었다.

“이건….”

“내 성의일세. 이것까지 거절하지 않을 거라고 믿지.”

묵직하게 들어찬 금화의 무게에 알렉시우스는 곤란한 얼굴을 했으나, 알렌의 강권에 결국 받아들였다.

“부족을 대표해 감사드립니다.”

“아니 나야말로 너무 헐값에 부려 먹은 게 아닌가 싶었네.”

앞으로 얼마나 이곳에 머물지 모르겠지만, 아카데미에 다닐 동안은 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언제 도움을 구할 일이 있을지 모르니.’

그들은 그렇게 알렌 일행을 도시까지 데려다준 후, 바람에 휩쓸리듯 순식간에 떠나 버렸다.

「떠났네요.」

“그래, 떠났군.”

고개를 돌렸다.

“알렌 형님, 저곳에 귀족들 전용의 문이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다시 쉴 새 없이 달릴 차례다.

* * *

검문은 가문의 문양이 찍힌 인증서를 보여 주자 손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도시의 이름은 엘피스(?λπ??),

고대 제국어로 뜻은 희망.

현재 그 이름의 유래에 맞게 도시의 분위기는 활발했다.

「오…, 이 정도면 기술이 그렇게 밀리지 않을지도…?」

“……와아.”

“공자님, 철, 철갑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넬리아와 린벨의 입이 벌어진다.

율리우스도 놀란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이건 놀라운데…, 저건 기차인가? 아니 지하철?”

도시의 내부는 별천지나 다름없었다.

거대한 도시의 내부를 달리는 철마와 흔히 보지 못하는 고층 건물이 흔하게 자리했다. 그것과 더불어 온갖 유적에서 발견한 다양한 물건들이 섞여 바깥과 전혀 다른 세상이나 마찬가지였다.

‘과연 인류 기술의 정수가 담겨 있다고 말할 만하군.’

풍문으로만 들었던 것부터 상상도 해 보지 못한 것까지.

온갖 것들이 섞여 기묘한 조화를 만들어 냈다.

이곳, 엘피스가 아니면 어디서라도 보지 못할 것들이 거리에 가득했다.

‘그나마 비견될 만한 곳을 꼽자면 마탑들이 모인 자유도시 페르타일까.’

그곳도 이곳과 다른 방향으로 발전을 이뤘으니 실상 비교하는 건 의미 없었다.

도시는 내성과 외성으로 나뉘듯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알렌이 들어온 서쪽은 주요 여관들이 밀집된 주거 지구.

밀집된 주거 지구에 타지에서 온 용병들과 모험가로 인해 시끄러운 활기가 넘쳐났다.

알렌은 안내 책자에서 눈을 돌려 활짝 열린 내성 문의 안쪽을 보았다.

수많은 학생과 백색의 화려한 건물들.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장소이자 이 도시를 건설한 목적이자 팔강 두 명이 상시 상주하는 곳.

“저기가 갈슈딘 아카데미군.”

안내 책자는 입학시험을 신청한 후에 받았다.

다행히 입학시험까지 나흘의 시간이 남았기에 아슬아슬하게 신청을 끝낼 수 있었다.

입학시험의 신청도 간단했다.

내성의 성문 근처에 자리한 입학처에 간단한 정보를 기재하고 금화 다섯 개를 내면 끝.

‘아카데미의 목적은 새로운 용사와 그를 도울 영웅의 육성에 있었으니.’

재능이 있다면 누구든지, 30살 아래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금화 다섯은 그 기준이었다.

재능이 있는 평민이라면 금화 다섯 정도는 모으고자 한다면 모으지 못할 돈은 아니었으니까.

“린벨, 잃어버리지 않도록 잘 간수하거라.”

그리고 그 말은, 반대로 말하자면 재능만 있다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네, 알았어요. 그런데 정말 제가 입학을 해도 될까요?”

알렌은 그녀에게 임시로 발급된 증명서를 건네주며 당부했다.

“그래. 재능을 썩히기에는, 네 재능이 너무 아깝지 않느냐.”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공자님을 시중드는 시간이….”

알렌은 고개를 저었다.

“원칙상 아카데미의 내부에 외부인은 들어갈 수 없다.”

귀족 학생을 시중드는 시종이나 시녀라고 해도 기숙사를 벗어날 수 없다.

“네가 아카데미 내부까지 따라오기 위해서는 어차피 입학해야 된다는 말이다.”

“아!”

흔히 귀족들이 쓰는 꼼수 중 하나였다.

평생을 받들어지는 삶을 살았는데 갑작스럽게 혼자 행동하는 게 쉬울 리가 없지 않은가.

그것을 제외하더라도 아카데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재능 있는 기사 한 명을 같이 입학시키는 등 아카데미에서 제법 흔하게 벌어지는 일 중 하나였다.

알렌도 카트린느와 레이첼의 편지를 통해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덕에 린벨을 아카데미에 입학시킬 생각을 하게 되었지.

“이넬리아는…, 나이 때문에 불가능하지만 너는 올해 열여섯이 되었으니 입학할 수 있지 않느냐.”

그의 말에 린벨의 눈이 미묘하게 변해 이넬리아를 보았다.

그녀의 눈빛에 이넬리아가 욱한 얼굴로 물었다.

“왜 그러니 린벨? 할 말이라도 있니? 응?”

“아무것도 아니야.”

린벨은 아무것도 아니라 했지만, 이넬리아는 그녀의 입가에 순간적으로 미소가 어리는 모습을 분명히 봤다.

“…린벨.”

알렌은 정기적으로 일어나는 투닥거림에 곧바로 손을 뻗었다.

“그만, 이넬리아 너는 따로 할 일이 있으니 신경 쓰지 말도록. 린벨 너도 마찬가지다. 네가 입학하는 이유도 아카데미에서 시킬 일이 있기 때문이니. 그러니 일부러 시비 걸지 말거라.”

그의 말에 이넬리아는 입술을 삐죽였고, 린벨은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알겠습니다. 공자님.”

알렌은 신수의 숲 이후 반대로 바뀐 듯한 그녀들의 모습에 머리가 아파 왔다.

「쌤통이에요. 당신.」

키득거리는 베스틀라의 목소리를 무시한 그는, 율리우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최선을 다해 보필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열심히 할게요!”

당장이라도 무릎 꿇을 것 같은 모습의 바이론과 순수하게 눈을 빛내는 아냐.

레이나는 언제나처럼 율리우스의 그림자처럼 그의 뒤에 자리했다.

“그래, 너희들이 내 첫 수하라서 이렇게 해 주는 거야. 알고 있지?”

“옙! 감사합니다!”

“네!”

율리우스는 기뻐하는 그들의 모습에 방긋 미소 지었다.

“레이나 너도 마찬가지야.”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려요, 공자님.”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이는 레이나를 바라보는 율리우스의 얼굴은 흡족해 보였다.

‘첫 수하라….’

자각이 없는 모양이군.

알렌은 저택에서 기다리고 있는, 떠나는 율리우스를 보며 울적한 눈을 하던 어떤 수습 기사를 떠올렸다.

“마음 같아서는 카밀라도 지금 데려오고 싶었는데…. 그럼 인원이 너무 많아져서 너무 눈에 띄니까, 다음 학기에 데려와야지.”

“와! 카밀라 언니도 오는 거예요?”

“그래.”

계획은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열매는 무르익기 시작했다.

“걔도 이제 내 수하인데 챙겨줘야지.”

그 누구도 모르게.

* * *

나흘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알렌은 나흘간 여관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입학시험에 떨어질 거라고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선의 상태로 준비해 둘 필요성은 있었다.

율리우스도 그 점에는 동감했는지 온전히 몸 상태를 최상으로 되돌리는 것에 집중했다.

알렌은 잡생각을 멈추고, 새벽빛을 발하는 엘피스의 거리를 둘러봤다.

세상에 그림자를 드리우던 어둠이 가로등의 불빛에 부서져 내렸다. 눈을 가로막던 어둠이 물러나니 새벽녘의 거리도 낮과 다름없었다.

도시는 일 년에 두 번밖에 볼 수 없는 입학시험에 기대감으로 들끓었다.

외부인이 아카데미에 들어갈 수 있는 몇 없는 날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야, 이번 입학시험에 누가 수석으로 입학할 것 같냐?”

“당연히 용사의 후예겠지. 용사의 후예가 아니면 또 누가 있겠어?”

“대수림의 1공주나 3대 가문 중 드라기아스 쪽에도 한 명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도 그 용사의 혈통인데? 믿기는 힘들긴 한데 만약 사실이면?”

“그럼 당연히 걔가 수석이겠지?”

아카데미 학생들은 누가 입학시험 때 수석이 될지 이야기했고, 아침부터 북적거리는 인파는 조금 있으면 볼 수 있을 볼거리에 기대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용사의 후예라.’

그 누가 알고 있을까.

3대 가문이든, 엘프 왕족의 공주든 심지어 용사의 후예도 아닌 제3자가 수석 입학을 차지할 것이라는 사실을.

‘아직 검은 책에서 나오지 않은 내용이지만….’

그 정도는 율리우스의 독백을 통해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입학시험의 의의가 실력이 아닌 잠재력을 뜻하는 것이라고 한들, 그 가치마저 퇴색되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보다 미래의 잠재력을 더욱 크게 쳐주기도 하니까.

‘그래도 너무 과한 관심은 독이지.’

알렌은 실력을 무작정 숨길 생각은 없었다.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서 어느 정도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

바라는 위치는 차석 입학.

수석에게 가려지면서도 이득을 취하기에 충분한 위치.

차석도 충분히 많은 관심을 받는다고 할 수 있겠으나, 미래의 위협을 대비하기 위해서 이 정도의 이름값은 필요했다.

율리우스라는 변수가 있었지만, 그것도 상관없었다.

『──율리우스는 최대한 실력을 감추기로 했다.

기왕이면 입학시험의 최저점으로 통과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으로.』

놈이 바라는 것이 자신과 다르다.

『──하위 10%의 성적으로 입학한다면, 보충 반에 들어갈 수 있다.

율리우스는 그곳에서만 얻을 수 있는 기연과 후반에 각성하는 조연이 모두 필요했다.』

‘그놈의 기연이 뭔지….’ 실력이 아닌 운으로 얻은 실력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놈은 보란 듯이 시스템과 세계의 가호를 통해 정점을 찍었으니, 알렌은 그 사실이 우스웠다.

결국, 노력이 가지는 가치는 의미가 없어질 뿐이니.

고개를 흔들었다.

쓸데없는 것으로 괜한 심력을 소모할 필요는 없었다.

쿠구궁-

아카데미로 향하는 내성의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자! 아카데미 입학시험 예정자 중 1번부터 500번은 모두 제1 시험장으로 오시길 바랍니다!”

“입학시험을 구경하실 분들께서는 시험선 바깥으로 물러나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립니다. 입학시험을 구경하실….”

“임시로 발급된 증명서를 잃어버리셨을 경우, 30분 내로 입학처에서 다시 발급받으시길 바랍니다.”

“증명서에 적힌 숫자는 금일 새벽을 기준으로 무작위로 바뀌었으니 착각하지 않게 주의해 주십시오!”

알렌은 증명서에 적힌 숫자를 확인했다.

[572]

어제와는 자릿수가 달라진 숫자.

분명 1483이라 적혀 있던 숫자가 다른 숫자로 바뀌어 있었다.

‘부정을 저지를 것을 염려한 건가….’ 의외로 이런 곳에서는 철저하군.

린벨은 숫자를 확인하더니 곧바로 알렌에게 다가왔다.

“공자님.”

“너는 몇 번이지?”

“133번이에요.”

“어쩔 수 없지. 입학시험을 끝마치고 이곳에 다시 모이는 것으로 하자꾸나.”

“네…, 알겠습니다.”

혼자 보내기를 망설이는 이넬리아를 린벨과 함께 보낸 후에 고개를 돌리니 율리우스가 혼자 기다리고 있었다.

“너는 몇 번이냐.”

“저는 928번입니다. 형님은?”

“572번. 너는 나랑 같은 시험장으로 가겠군.”

율리우스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서로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결과라….

‘보충 반을 노리는 주제에 무슨.’

알렌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구나.”

“예.”

그들은 501번부터 1,000번이 시험을 치는 제2 시험장으로 향했다.

제2 시험장은 수천 개의 수정구가 촘촘한 간격으로 땅에 박혀 있는 곳이었다.

그 근처로 수백 명의 아카데미 학생과 주민들이 시험선 밖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곳은 마력에 대한 재능을 판별하는 장소다! 한 명씩 앞으로 나오거라! 우선 501번!”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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