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 빙의를 싫어함-61화 (61/212)

제61화

율리우스는 자신을 찾아왔다는 상인이 있다는 소식에 응접실로 향했다.

“공자님, 오늘 좋은 일이 있으신가요?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아, 레이나.”

율리우스는 언제나처럼 자신의 뒤를 따르는 그녀를 보며 웃었다.

“꽤나 좋은 물건들을 괜찮은 가격에 살 수 있을 것 같거든.”

“…그러신가요?”

“그래, 이게 다 내 명성 덕분이지. 역시 사람은 유명해지고 볼 일이라니까?”

레이나는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가 있었는지 생각했다.

‘당분간은 아무런 일이 없다고 했었지.’

아카데미로 가기 전까지는 율리우스를 수행하라는 명령밖에 없었다.

“축하드립니다.”

“좋은 게 있으면 너한테도 나눠 줄게.”

율리우스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응접실로 들어갔다.

철컥-

응접실에는 젊은 상인 한 명이 어리숙한 얼굴로 벌떡 일어섰다.

“아, 안녕하십니까! 만나 뵈어서 반갑습니다!”

그는 상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레이나는 상단주라고 하기에는 젊은 그의 모습에 의구심이 들었지만, 조용히 입을 다물고 율리우스의 뒤로 시립했다.

지금까지 율리우스를 속인 사람의 끝은 대부분 좋지 않았으니.

무언가를 속였다면 기다리면 될 일이다.

“그래, 만나서 반가워. 율리우스 라인하르트다.”

“예, 예. 알고 있습니다.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그의 아부가 기분이 좋았던 걸까, 율리우스는 바로 거래를 하기보다는 조금 더 대화를 나누었다.

“그래서…,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있었을 텐데 나와 거래를 하려는 이유가 뭐야?”

형도 있고, 아버지도 있다.

“크흠, 음음 그래? 뭐, 그렇다면야…. 그건 그렇고 물건 좀 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미친 듯이 폭소가 터져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상인은 그 말이 나오기 무섭게 미리 준비해 두었던 여러 가지 물건을 꺼내 들었다.

“예, 우선, 이 물건은 카렌의 햇살이라는 비약으로 몸의 마력을 정순하게 바꿔 주고….”

“오… 그렇다면….”

그렇게 율리우스는 상등품의 비약을 평균 시세보다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다.

거래를 끝마치자 율리우스는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앞으로도 이런 물건을 잘 구해 온다면…, 계속 신경 써 줄게.”

그리하여 율리우스는 상등품의 물건을 구할 수 있는 구입처를, 상인은 자신을 비호해 줄 든든한 후원자를 구하게 되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야말로 고맙지.”

율리우스가 물건을 챙기며 일어날 기미를 보이자, 젊은 상인이 공손하게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젊은 상인, 아니 카릭이 진하게 미소 지었다.

“그래. 나도 앞으로 잘 부탁해.”

율리우스도 활짝 웃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 * *

시간은 몰아치는 파도와도 같다.

처음 사건의 경과가 퍼져 나갈 때만 해도 사람들은 연이은 크나큰 흥미를 보였다.

사람을 납치하던 키메라 술사.

축제에 침입한 도적.

저주를 흩뿌리던 마녀.

그리고 이제는 신수의 숲에 침입한 흑마법사들까지.

아무리 사건이 흔하다고 한들, 이렇게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사건과 그걸 보란 듯이 해결하는 가문의 행보는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변화에 익숙해졌다.

엘프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주변 영지에서도 실질적인 교류를 청해 오기 시작했다.

알렌은 저택을 떠날 시기가 다가오자 신수의 숲에서 얻은 것들을 정리했다.

“흠…, 발견한 게 이것밖에 없었나?”

그의 앞에는 불에 그슬린 자국이 가득한 몇 장의 지도가 있었다.

“예. 공자님의 말씀대로 몇 곳을 더 둘러봤습니다만…, 이미 남은 은신처들은 모두 정리된 후였습니다.”

알렌은 거인을 처치한 직후 그녀에게 검은 책에 기록되었던 은신처 몇 곳을 살피라 명했다.

회귀 전과 같이 일이 진행되었더라면, 이 일의 배후와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을 테지만….

‘놈들이 그렇게 행동할 줄이야.’

나비 효과에 대해 주의한다고 생각했다.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바뀐 미래도 자신에게 유리하게끔 주도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알렌이 조금씩 바꿔 온 현재가 쌓여 그가 알던 미래를 바꾸었고, 끝내 흑마법사 모두가 스스로를 제물로 바쳐 신수의 능력을 폭주시킨다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그 때문에 흑마법사들이 자신들의 흔적을 모두 정리해 버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넬리아는 도움이 못 되었다고 생각하는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놈들의 행동이 예상을 벗어났으니 어쩔 수 없지.”

정보를 얻지 못한 건 뼈아팠지만, 어렴풋이 이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거인이 탈출한 곳에서도 쓸 만한 정보는 얻지 못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다시 말하지만 네 탓이-”

「뭐 하고 있어요! 이쯤에서 얼른 괜찮다고 쓰다듬어 줘요! 안아 주면 더 좋구요!」

베스틀라가 놀리는 투로 소리쳤다.

“-아니니 책임질 필요 없다.”

알렌은 머릿속에 울리는 베스틀라의 말을 무시했다.

「앗! 또 무시하기나 하고! 제 말 좀 믿어 보라니까요? 초초초 천재 미소녀인 제가 보증할게요!」

‘검이 미소녀는 무슨.’ 알렌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베스틀라를 쳐다봤다.

「뭐요! 제 말이 틀렸어요? 빨리 예쁘다고 해 줘요! 검날이 뽀얗단 말도 괜찮겠네요! 이렇게 예쁜 검을 봤어요?」

그녀는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이제는 알렌이 누구와 대화하고 있든 말을 걸어왔다.

그에 관한 이유를 물어도 말을 돌리고, 몇 번이나 반복되는 모습에 알렌은 그녀의 말을 반쯤 무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알겠습니다.”

그의 위로에도 이넬리아는 마음에 걸리는지 표정이 흐려졌다.

「봐요! 제 말 좀 믿어 보라니까요?」

알렌은 정신 사나운 소리에 눈가를 꾹꾹 눌렀다.

‘조만간 머릿속으로도 대화할 수 있는 아티펙트를 마련해야겠군.’

이러다 자신의 인내심이 먼저 바닥날 것 같았다.

알렌은 문득 그녀가 혼자 있는 것을 깨닫고, 화제를 바꿔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린벨은 지금 뭐 하고 있지?”

“아, 린벨은….”

이넬리아는 애매하게 웃는 얼굴로 답했다.

“…공자님께 디저트를 만들어 드릴 거라며 주방으로 향했습니다.”

“또?”

알렌은 질린 얼굴이 되었다.

“예, 불편하시면 그만두라고 말하겠습니다.”

“…아니 됐다. 맛이 없는 것도 아니니.”

린벨은 달라졌다.

정확히는 어디가 달라졌는지 콕 찝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가장 큰 변화를 꼽자면 간단했다.

똑똑-

“공자님 들어갈게요-”

더 이상 조급해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

그녀는 신수의 시련에서 무언가를 얻은 것이 확실한 듯 조급했던 과거와 천양지차였다.

‘시련에서 무슨 일이 있는 건 맞는 것 같은데….’

중요한 건, 그것에 관해서 그녀도 모른다는 것.

신수의 능력이 폭주했기 때문이다.

본래라면 각자 시련의 내용을 기억했을 것이다.

그러나 수백 명이 동시에 끌어들일 정도로 능력을 폭주시킨 능력의 대가일까, 시련을 통과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린벨도 그 여파는 피하지 못했다.

“공자님, 드셔 보세요.”

알렌이 그녀는 허락하자 집무실로 들어와 익숙한 손길로 책상 위로 차와 다과를 준비했다.

“그러지.”

가까이 다가온 그녀에게서 마음이 진정되는, 평안한 수목향 내가 났다.

‘이 냄새는…, 우디 쪽인가? 백단향이구나.’

“향수를 쓰기 시작했구나.”

“네! 엘리자 님이 추천해 주셔서요.”

“그렇구나…, 그렇다면 향기의 종류도 어머니께서 골라 준 것이냐?”

“아니요, 제가 직접 고른 향기에요.”

“향이 좋구나.”

그의 말에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답했다.

“다행이에요, 공자님.”

꿈결 속 당신이 좋아했던 냄새니까요.

알렌은 전과 달리 능숙하게 차를 끓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모종의 이유로 태도가 달라진 이유가 있는 건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그녀도 몇 가지를 제외한다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말을 흐렸기에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 숨기는 건 있어 보이지만….’

율리우스에 관련된 건 알지 못한 낌새였기에 그 정도는 넘어갈 수 있었다.

“공자님?”

그는 그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린벨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그를 직시하고 있었다.

알렌은 확실한 의미가 담긴 그 눈길을 이기지 못하고, 떨떠름한 얼굴로 쿠키를 하나 집었다.

“…오늘도 맛있군.”

자신의 입맛에 특별히 맞춘 것 같은 맛.

차도 마찬가지로 그의 취향에 딱 맞았다.

몇 년이나 자신을 보좌한 것 같은 모습에는 그런 감상밖에 들지 않았다.

이넬리아는 자신보다 요리를 잘하는 린벨에게 충격받은 것 같았지만.

“입맛에 맞으셔서 다행이에요.”

“저번에도 말했지만,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그녀는 그 말에 무언가를 떠올린 듯 살포시 웃더니, 단호하게 답했다.

“저는 공자님의 시녀니까요.”

“네가 그렇다면야…, 알아서 하거라.”

“네!”

알렌은 저런 그녀의 태도가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별다른 언질은 주지 않았다.

‘전의 모습보다는 낫지.’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알렌은 떠날 준비를 하는 와중에 아칸더스를 불러 몇 가지를 당부했다.

“반년 안으로 조직의 정비를 끝마치고, 아카데미로 올 수 있도록 해라.”

“아카데미라면, 갈슈딘 대사막에 있는 그곳 말씀이십니까?”

“그래.”

알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페른 남작의 행적을 정리한 서류를 넘겼다.

단, 그에게 율리우스를 돕는 세력이나, 그의 수상쩍은 모습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믿지 않을 테니.’

그와 같이 유능한 사람에게는 알려 주는 것 보다, 직접 알아내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아칸더스는 이렇게 쉽게 정보를 받을 수 있을지 몰랐는지 조금 의아한 눈을 했다.

‘…기껏해야 가벼운 정보나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몇 년은 신뢰를 쌓으며 단서나 조금씩 모으려고 했다.

그런데 벌써부터 정보를 통째로 넘길 줄이야.

“제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저를 그렇게 믿으십니까? 제가 만약 배신을 한다면….”

그가 아버지에 관한 모든 정보를 처음부터 내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더욱 그랬다.

알렌은 말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너를 믿는 것이 아니다. 네 간절함을 믿는 거지. 아버지를 찾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아칸더스는 복잡한 얼굴로 고개 숙였다.

“…감사합니다.”

소네드와 카릭에게도 몇 가지 당부와 함께 정기적으로 정보를 보내라 지시했다.

그렇게 크고 작은 일을 처리하며 알렌은 모든 준비를 끝마쳤고.

“위험한 일이 생기면, 돌아와도 괜찮단다.”

“명심하겠습니다.”

떠날 시간이 되었다.

“…무모한 일은 하지 말고.”

엘리자는 가이엘과 인사를 나누는 율리우스 쪽을 바라보며 알렌에게 말했다.

“네가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위험한 행동은 하지 말렴.”

“알겠습니다.”

충분히 주의하고, 계획을 세운 다음에 행동하겠습니다.

그의 얼굴에서 포기의 빛을 찾을 수 없었던 걸까,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너는 알아서 잘하겠지.”

알렌은 그녀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가거라. ‘동생’이 기다리지 않니?”

그녀의 목소리 뒤로 율리우스가 소리쳤다.

“알렌 형님! 어서 오십시오!”

겨울에 잠든 새싹이 솟아오르고 찬바람마저 봄의 싱그러운 생명이 머금은 계절이 되었다.

“알았으니 재촉하지 말거라.”

아카데미로 향할 시간이다.

* * *

『갈슈딘 아카데미에 입학해야 한다.

율리우스가 소설에 빙의했던 걸 깨닫고 나서부터 생각한 것이었다.』

펄럭-

『그 생각은 당연했다.

주인공의 성장을 보여 주는 초반을 조금 지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이 아카데미였으니까.』

『그에 따라 도착한 아카데미는 굉장했다.

현재 인류의 모든 지식을 총망라한 정수가 가득한 곳.

대사막에 빼곡히 자리한 유적에서 얻어지는 유물과 새로운 지식으로 넘쳐나는 장소였으니.』

펄럭-

『현대와도 비교될 만한 것들도 많이 있었고, 엘프와 드워프 그리고 수인과 인간이 섞여 특별한 분위기를 빚어냈다.』

『하긴, 당연했다.

이곳은 초대 용사를 이을 차세대 용사와 그를 보좌할 영웅들을 육성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니까.

시간이 지나 그 목적성이 흐려졌다고 한들, 각국의 재능 있는 자들이 몰려든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

탁-

알렌은 검은 책을 덮었다.

읽은 페이지 뒤로 문자열이 까맣게 흐려져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 글자씩 명료하게 변하게 되겠지만, 이미 필요한 정보는 충분히 획득했다.

‘갈슈딘 아카데미.’

알렌이 그에 대해 아는 건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그곳이 초대 용사가 사용하던 성검 위로 세워졌다는 것과 그 성검이 아직까지 주인을 찾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팔강 중 두 명이 순번에 따라 항시 상주한다는 것 정도.

그 이상의 정보는 워낙 가지각색의 소문이 많아 진위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동생을 찾을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

아카데미 생도들에게 개방되는 대도서관이나, 소문에는 없는 것이 없다는 경매장 같은 것들에 그는 희망을 품었다.

알렌이 머릿속에서 아카데미에서 해야 할 것들을 정리할 때, 베스틀라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재밌는 이야기 좀 해 줘요! 기왕이면 용을 무찌르는 이야기가 괜찮겠네요! 저도 심심할까 봐 말 걸어 주잖아요! 서로서로 도움이 되니 얼마나 좋아요?」

알렌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사색을 즐겨 줄 수 없겠나?”

갈슈딘 대사막.

그러니까 가문을 떠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건 이미 지겹도록 했거든요! 아니면 어떻게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해 주든가요!」

알렌 일행은 아카데미로 향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도시로 향하고 있었다.

라인하르트 가문은 대륙의 서쪽에 위치했기에 대륙 중앙에 위치한 대사막까지 도착하려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공자님, 진짜 검이랑 대화하고 있는 거예요?”

린벨은 몇 번이나 본 모습이었지만 보면 볼수록 신기했다.

이넬리아도 말은 안 했지만 신기한지 검이 혼자 공중을 떠다닐 때마다 긴 귀를 파닥거리며 훔쳐봤다.

「검이 말하는 거 처음 봐요? 너무 신기해하는 거 아냐?」

“지금은 뭐라고 말하고 있어요?”

「아아아! 너무 답답하다니까요! 당신, 빨리 방법 좀 찾아봐요!」

알렌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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