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화
알렌의 검로가 베스틀라의 통제에 따라 거인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다시 검을 휘둘렀으나 그의 통제에 따르지 않는 검은 거인의 목을 베어 낼 수 없었다.
거듭된 그의 공격이 실패하자 병사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무슨 뜻이 있어서 그랬을 거라는 생각에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아직 거인의 무력이 뇌리에 남아 있기도 했고 말이다.
「잠시, 잠시만 죽이지 말아 봐요!」
그녀의 외침에 알렌은 검을 거두었다. 그러고는 검을 획 들어 눈앞으로 끌어당겼다.
“왜지?”
낮은 저음에는 미약한 짜증이 실려 있었다.
이 거인은 그가 직접 상대하고, 쓰러트린 적이었다. 아무리 그녀에게 검을 배웠다고 한들, 그녀가 알렌에게 이래라저래라할 권리는 없었다.
혹여 그녀가 이 거인과 관련이 있다고 해도, 이 괴물은 너무나 위험했다.
“네가 무어라고 한들, 놈을 살려 줄 생각은 없….”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잠시, 잠시면 되니까….」
알렌은 베스틀라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일이 끝나고 들려 줄 변명이 충분하기를 바라지.”
「그렇게 말 안 해도 말해 줄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래, 그래.”
「그 반응은 또 뭐예요! 에휴…. 왜 이런 남자를 따라왔는지… 진짜. 그것만 아니었으면…」
알렌은 그녀가 검임에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시선을 느꼈다.
“왜, 무슨 문제가 있나?”
「됐네요. 됐어. 어쨌든 검으로 심장 좀 천천히 찔러 봐요.」
“뭐?”
공격을 그렇게 막아 놓고서 다시 찌르라고?
알렌의 의구심 섞인 시선이 향하자, 그녀는 빨리 찌르기나 하라며 다그쳤다. 알렌은 그녀의 말대로 일단 행동했다.
알렌은 검 끝을 거인의 심장에 향하게 두고 천천히 앞으로 찔러 나갔다.
베스틀라의 검 날 위에 새겨진 문자들이 희미하게 발광했다.
만약, 거인이 조금이라도 반항하거나 발광한다면 그녀가 다시금 반대한다고 해도 죽일 것이다.
이미 충분한 기회는 줬다.
이미 이 전투에 상당한 시간을 지체하여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거인은 반항하지 않았다.
푹-
거친 피부를 뚫고 검이 박혀 들어감에도, 거인은 일말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거친 피부를 뚫고 검이 박혀 들어감에도 거인은 일말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마치 평안한 안식을 맞이하듯 보였다.
검날이 더욱 깊게 박힌다.
검날이 피부를 지나 근육과 뼈를 가르고 전진하며 더욱 깊이 박히기 시작했다.
알렌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러나 알렌의 긴장이 무색하게 일말의 저항도 없이 베스틀라는 심장을 꿰뚫었고.
거인은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알렌은 조금 전까지 날뛰던 괴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선 모습에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베스틀라, 그녀는 알겠지.’
그녀는 알렌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 끝났다는 듯 크게 외쳤다.
「이제 끝! 다 했으니 이제 그만 뽑아도 돼요.」
“뭘 한 거지?”
보고 있었음에도 어떤 방법으로 쓴 건지 알 수 없었다. 베스틀라는 애매하게 말끝을 흐리며 답했다.
「…어, 지금 설명하려면 너무 긴데, 나중에 말해 줘도 괜찮죠…?」
“…후, 대답을 들을 수 있다면.”
그의 한숨 섞인 대답에 베스틀라는 과장되게 소리치며 말을 돌렸다.
「그럼, 저기 수색이나 좀 해 봐요. 뭐가 있는 게 확실하다니까요?」
알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온몸에 가득한 자르고 꿰맨 자국이나 순간적으로 보인 거인의 모습은, 이 뒤의 건물에 무언가가 있음을 암시했다.
알렌이 뒤편의 건물로 몸을 움직이려던 그때, 뒤늦은 환호성이 들렸다.
“와아아아, 알렌 공자님!”
“정말 대단하셨습니다! 언제 그렇게 성장하셨는지…!”
“마치 기사단장님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알렌은 그들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는 듯 발걸음을 멈췄다.
다행히 날아간 기사들도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기사들 모두 마력을 다루며 철갑을 입었으니 쉽게 죽지 않겠지.
린벨과 이넬리아를 살펴보자, 그녀들도 별다른 상처가 없어 보였다.
하긴, 그것이 당연하기는 했다.
이넬리아에게는 최대한 무력을 드러내지 말라고 했지만, 근본적으로 그녀의 무력 자체는 뛰어났다. 린벨도 그의 뒤에서 그가 일부러 흘린 괴물들만 상대했으니 다칠 턱이 없었다.
그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던 선임 기사가 급히 그에게로 다가왔다.
“공자님, …설마 마검사셨습니까?”
그는 놀람과 경외가 섞인 눈으로 알렌을 보았다.
“그래, 비밀로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지금 알리게 되었군”
“아닙니다! 하나만 해도 쉽지 않으실 텐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원래 조금 더 숨길 생각이었는데.
‘어차피 아카데미에서 드러낼 수밖에 없으니, 사전 연습을 한 셈 쳐야겠군.’
이번에 자신의 전력이 어떤지에 알게 되었으니 다음에는 더욱 능숙하게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알렌은 적당히 그의 칭송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필립 경. 내가 저곳을 수색해 보고자 하는데….”
베스틀라의 말대로 저곳에 거인과 관련된 흔적이 있다는 것이 확실했으니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명령을 내리려던 순간.
펑! 퍼펑!
퍼버버벙!
하늘 위로 폭음이 터졌다.
알렌의 시선이 곧장 하늘로 향했다.
하늘 위로는 멀리서도 보일 법한 거대한 표식이 있었다.
“공자님, 이건….”
사전에 나타샤 공주가 나눠 준 신호탄이 터지기 시작했다.
‘그 말은….’
알렌은 낯빛을 굳혔다.
거인과 관련된 저 건물도 궁금했지만, 알렌은 신수의 숲에 온 목적을 잊지 않았다.
“곧바로 움직인다!”
알렌은 병사들에게 급히 명령을 내렸다.
기사들도 저 신호탄의 중요성을 아는지 급히 소리쳤다.
“어서 움직여! 빨리! 늦으면 안 된다!”
“중상자, 부상자는 일반 병사들과 함께 천천히 따라온다!”
알렌은 기사들이 움직이는 틈을 타 이넬리아에게 몇 가지 명령을 내렸다. 이넬리아는 은밀하게 거목의 그림자 사이로 자취를 감췄다.
“린벨, 너도 따라오겠느냐?”
“…네, 따라가고 싶어요.”
그녀는 망설이듯 이넬리아가 사라진 방향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할 텐데?”
“알고 있어요.”
“뒤의 병력과 같이 오는 게 더 안전할 거다.”
“…그래도 공자님과 함께 움직이고 싶어요.”
알렌은 더는 그녀에게 묻지 않았다. 이미 그녀는 결심한 얼굴이었다. 그건 이미 집착의 영역을 벗어나 있었다.
‘그래…. 말하자면 광기, 일까.’
아직 그 정도의 영역까지 나아가진 않은 것 같지만, 알렌이 보기에 그녀는 그 정도로 불안정했다.
알렌는 내심 복잡한 심경을 감추며 짧게 답했다.
“…그래, 놓치지 않게 조심하거라.”
빠르게 몸을 돌리자 미약한 대답이 뒤에서 들려왔다.
선임 기사가 미리 후퇴를 염두에 뒀기에 움직이는 건 금방이었다.
“부상을 입은 기사들은 병사들과 함께 움직이고, 나머지는 즉시 나를 따라온다!”
알렌은 기사들이 준비되는 즉시 폭음의 진원지를 향해 속도를 높였다.
‘…신수.’
반드시 신수의 시련을 받아야 한다.
분명히 율리우스도 저 소리를 들었겠지.
놈이 이런 기회를 마다할 리 없으니 놈도 곧장 저곳으로 갈 것이다.
이번 사건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알렌이 신호탄이 터진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하늘 위로 서너 개의 폭음이 더 들린 후였다.
상황은 혼란스러웠다.
콰광-!
흑마법사들은 남은 언데드를 모두 끌어모아 공격하며, 한편으로는 수많은 흑마법을 퍼붓고 있었다.
“조금만 더 버티세요! 지원이 곧 도착할 겁니다!”
“알겠, 크윽, 알겠습니다!”
“…하아, 실프! 최대한 막아 줘!”
공터의 중앙에는 엘프들이 힘겹게 흑마법사들의 공세를 막아 내고 있었다. 이미 상당수가 상처를 입고 있었고, 몇은 이미 죽었는지 바닥에 뉘어진 상태였다.
‘주위의 마력 흐름은…, 역시 결계로 숨겼나.’
끔찍한 비명에 고개를 돌리자 공터의 저 너머에 거대한 덩치의 신수가 제단 위에서 힘겨운 신음을 흘리며 발악하고 있었다.
그 주위로 수십의 흑마법사들이 기이한 수인을 맺으며 마법진을 유지하고 있었다.
신수의 머리 위로는 상당히 젊은 남자 한 명이 빙그레 웃으며 전장을 살피고 있었다.
‘…저놈이 주동자인가.’
알렌이 조금만 더 늦었다면 어찌 되었을지 모르는 상황, 그는 그 사실에 안도하며 크게 소리쳤다.
“전원-! 엘프들을 지원한다!”
“예! 알겠습니다!”
기사들은 철갑에 마력을 두르며, 거인에게 당한 울분을 풀겠다는 듯 거세게 땅을 박찼다.
그들의 돌진에 엘프들을 포위하던 언데드들이 순식간에 짓이겨졌고, 나타샤는 그들의 모습에 구원을 맞이한 듯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흑마법사들도 기사들의 등장에 잠시 멈칫했다.
알렌과 기사들은 그 틈을 파고들어 엘프들과 합류했다.
“알렌 공자!”
“제가 다소 늦은 건 아닌지 걱정되는군요.”
“그럴 리가요!”
나타샤는 꽤나 극적인 상황에서 나타난 그의 모습에 감동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몇 명은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알렌이 전장에 흩어진 엘프들을 힐끔거리자, 나타샤의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건, 예. 조금의 희생이 있었어요. 그러나 그건 공자가 신경 쓸 필요 없는 문제예요.”
그녀는 후회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그들과 함께 움직이는 건데, 그들의 도움 없이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 먼저 나섰다가 되려 큰 피해만 입은 상황이었다.
다른 엘프들도 그의 등장 한 번에 여태껏 쌓인 케케묵은 감정이 조금 희석될 만큼 깊은 인상을 받았다.
지원을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도 그들에 대한 기대감은 적었다.
그러나 이렇게 위험할 때 맞춰 도착한 모습에 호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우선 남은 흑마법사부터 해치우….”
알렌은 이곳으로 빠르게 쇄도하는 움직임에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검은 물체가 엄청난 속도로 이곳으로 돌진했다.
알렌이 움직이려던 찰나, 놈의 뒤로 하나의 인형이 더 튀어나왔다.
“이, 새끼야!”
푸른 청발에 사나운 눈빛.
진청색의 전격을 번뜩이며 소리치는 그는, 익히 알고 있는 남자였다.
“…율리우스 공자?”
율리우스 라인하르트.
나타샤가 눈을 깜빡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드디어 왔구나.’
율리우스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어떻든 욕지거리를 뱉으며 빠른 속도로 검은 물체의 뒤를 잡았다.
“습격을 했으면, 뒤지게, 맞아야지!”
뇌전이 폭발하듯 치솟으며 검은 물체를 강타했다.
뇌전에 직격한 검은 인형은 연기를 흩날리며 흑마법사들이 모여 있던 장소로 떨어져 내렸다.
쾅!
수인을 맺던 흑마법사 여럿이 육편으로 변하며, 순식간에 그에게로 시선이 모여들었다.
“…참, 화려한 등장이네요.”
많은 의미가 함축된 말이었다.
“그렇군요.”
알렌은 그녀의 말에 동의를 표하며 떨어진 검은 형체를 살폈다.
본래 어떤 차림새였는지 몰라도 입고 있던 흑갑은 박살이 나 있었고, 온몸에는 붉게 달아오른 화상 자국이 가득했다. 심지어 한쪽 팔은 어디 갔는지 사라진 상태.
만신창이로 변한 놈은 간신히 절뚝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후, 엑스트라조차 아닌 게 까불기는.”
율리우스는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상태에서 알 수 없을 말을 중얼거렸다.
그의 뒤로 뒤늦게 기사들을 이끈 기사단장이 도착했고, 저 멀리서 정예 병사들의 묵직한 발걸음이 울렸다.
율리우스는 흑기사를 바라보며 픽 웃다가 엘프 사이에 있던 알렌과 눈이 마주쳤다.
“알렌 형….”
“모두-!”
그가 반갑게 웃으며 입을 연 순간, 알렌이 크게 숨을 들이켰다.
“…님!”
“흑마법사를 해치워라-!”
율리우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여기에는 율리우스와 기사단장, 그리고 내가 있다-! 두려워할 필요 없다-!”
그의 외침에 상황을 파악한 율리우스는 알렌이 하려는 짓을 눈치채고 함성을 내질렀다.
“나를 따르라-!!”
그는 연이은 난입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흑마법사들 사이로 몸을 날렸다. 그의 뒤로 기사들이 소리치며 남은 언데드를 뭉개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흑마법사들을 모두 죽여라!”
“모두 쳐 죽여라!”
쿵쿵 내리찍는 발자국이 사방을 울렸고, 그들의 외침에 용기를 얻은 엘프들도 뒤에서 그들을 지원했다.
“저들을 도와라!”
“동족의 복수를 위하여!”
알렌도 다시 검을 뽑아 들고, 이 분위기에서 홀로 동떨어진 분위기를 풍기는 곳으로 달렸다.
그의 뒤로 그가 향하는 방향을 눈치챈 기사단장과 율리우스가 따라붙었다.
신수가 위치한 제단을 향해.
‘일이 커지기 전에 해결할 수 있으니 다행이구나.’
이번 일의 목적에는 신수의 능력을 빌리는 것도 있었지만, 이 정도의 전력을 미리 싹을 잘라 둘 수 있다는 이유도 한몫했다.
‘검은 책에서 나온 것보다 전력이 적기는 한데….’
변수는 언제나 있는 법이지.
알렌의 행동이 나비 효과가 되어 전생에 있던 것보다 수가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산맥에서 습격하지 않은 것이나, 책에서 봤던 전력보다 약했던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
‘가문과 일전을 치를 정도의 수준이라기에는 너무 부족하니.’
정황상 율리우스를 습격했던 적들의 수준을 감안하더라도, 적어도 반 배는 더 있어야 검은 책에 있던 전력과 비등할 듯 보였다.
알렌은 주동자로 보이는 놈을 끝내기 위해 속도를 높였다.
그러나 알렌은 다가갈수록 이상함을 느꼈다.
‘왜, 흑마법사들이 대비하지 않지?’
붉은 피로 점칠 된 마법진이 거세게 박동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수인을 맺던 흑마법사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신수 위에 있던 젊은 흑마법사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머릿속을 울리는 경종에 알렌은 감지력을 날렸다.
썩어가는 엘프의 시신, 흩뿌려진 고문의 잔해 그리고, 수북하게 쌓인 흑마법사의 시체.
“이런 미친 새끼가…!”
무슨 일을 벌이려는지 드디어 이해했다. 전력이 줄어들었던 이유가 스스로를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라고? 도대체 무엇을 위해?
“알렌 형님?”
알렌의 중얼거림에 신수의 위에 있던 놈이 칭찬이라는 듯 기쁘게 웃었다.
그리고.
짝-
커다란 박수 소리가 울렸고, 그와 동시에 전장에서 당혹스러운 외침이 들렸다.
“갑자기 이 새끼들이 왜 자살을…!”
“공자님, 이놈들 뭔가 수작을 부리는 것 같습니….”
흑마법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자신의 심장을 향해 단검을 박아 넣었다.
한 명도 아닌 모두가 자살을 선택하는 기괴한 모습에 전장이 멈췄다.
흑마법사들이 단체로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발밑의 마법진은 전장에 웅덩이진 피를 게걸스럽게 빨아들였다.
콰앙.
땅을 뒤흔드는 소리에 급히 고개를 돌렸다.
“어…, 어어! 저, 저게 갑자기 왜!”
“신수, 신수 님이…!”
신수가 젊은 흑마법사의 말에 따르듯 일어나고 있었다. 붉어진 눈에 이성은 찾아볼 수 없었고, 순백을 상징하던 흰 털이 검게 변색됐다.
베스틀라가 급하게 소리쳤다.
「당신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위험한 거 알죠?」
“나도 알아!”
쾅!
알렌은 무언가 일어나기 전에 전력으로 움직였다. 율리우스 앞에서 힘을 드러내든, 말든 지금은 이것이 더 중요했다.
신수가 일어난 직후부터 본능이 미친 듯이 경고하기 시작했다.
이다음에 일어날 일은 알렌으로도 감당하기 힘들다. 그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거친 풍압이 얼굴을 때리며 더 빠르게 가속했다.
카르넬은 가까워지는 그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렇게 조급하게 된 원인이 뭐였지? 어디서부터 어긋나 버렸나.
왜?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을 해 봤자 늦었지.’
그의 입술이 비틀렸다.
이미 일은 진행되었고, 준비한 의식도 마무리되기 직전이 되었다.
‘사실 이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으니.’
놈들의 당황한 모습을 보니 계획을 선회한 것도 괜찮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르넬은 느긋한 손길이 심장에 닿았다.
알렌은 미친 듯이 전력으로 그를 저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놈의 행동을 막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고.
“…하아.”
젊은 흑마법사의 손이 먼저 심장을 찌르는 것이 더 빨랐다.
-푹
그가 미소 지었다.
“부디 행복한 꿈을 꾸시길.”
흘러내린 피가 신수의 눈가를 적셨다.
“영원히.”
그와 동시에 빛이 폭사했다.
삐───────
알렌은 귓가에 맴도는 이명을 끝으로, 시야가 의식이 나락으로 떨어져 내렸다.
* * *
그리고 목소리가 들렸다.
“알렌 형?”
절대 들릴 리 없는.
들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형? 빨리 대답해 봐, 형.”
…진짜 동생의 목소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