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 빙의를 싫어함-50화 (50/212)

제50화

라인하르트 가문.

리브레 왕국 서부 지역에 있는 가문이며, 수십 대를 이어져 내려와 나름대로 큰 영향을 미치는 명문가라고 할 수 있‘었’다.

‘과거에는.’

지금은 아니다.

가문은 3대 전부터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했다.

영지로 향하는 상인의 수가 줄어들었고, 주변 귀족들과 교류가 뜸해졌다. 시종과 시녀로 지원하는 귀족이 거의 사라졌으며, 저택에 머무르던 식객이 어느 순간 없어졌다.

라인하르트 가문은 현재, 정치적으로 고립되어 있었다.

‘말라 죽어 간다는 말이 정확하겠지.’

비약적으로 말해서 이대로 몇 대를 더 내려간다면, 내부에서부터 무너져 내려 이름밖에 남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악재가 겹친 것에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3대 전 가문에서 시행한 실험과 관계되어 있었다.

‘신목을 이용하기 위한 실험.’

신목은 특별한 나무다.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주위 식물을 건강하게 생육시키며, 괴물들이 침입하지 못하는 일종의 안전지대를 형성한다.

엘프들은 신목과 소통해 주위에 있는 숲을 가꾸며 엄청난 양의 식량을 생산해 냈고, 그것을 바탕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라인하르트 영지는 미켈란트 산맥을 이웃 삼아 대수림과 가까이에 있었기에 그 모습을 모두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어리석은 선택을 했지.’

엘프들만 신목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은 거짓말이 아닐까.

자신들도 신목을 이용하면 저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모두 신목을 독점하기 위한 속임수가 아닐까.

수십 대를 걸쳐 쌓아 온 의문과 욕망은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섰고, 계획을 세운 즉시 제일 가까이에 있는 신목을 훔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신목을 타락시키려고 했다.

자신도 있었을 것이다.

수백 년에 걸쳐서 엘프를 관찰해 왔고, 또 비밀리에 연구한 결과가 있었으니 충분하다고 생각했겠지.

실험에 성공한다면 엘프들의 식량에 많은 의존을 하는 당금의 현상을 타파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눈앞에 성공이 들어오는데 그까짓 세간의 비난이 문제일까.

실제로도 라인하르트 가문은 신목을 조종하는 것에 성공했다면, 단숨에 엄청난 부와 권력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엘프들의 항의나 위협도 마찬가지.

실험이 성공했다면 그 이득을 공유할 리브레 왕국에서 직접 막아 줄 것이 뻔했으니까.

엘프들도 인간들과 종족의 명운을 걸고 전쟁을 하지는 못할 테니 선조들의 예측은 꽤나 정확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 실험에 ‘성공’했다면.’

실험은 실패했다.

이러한 욕심에서 시작된 연구가 무사히 성공할 리가 있나.

같이 연구에 참여했던 마법사와 가주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실험 도중 사고로 몰살당했고, 신목은 후에 도착한 엘프들에 의해 회수당했다.

신목의 강탈과 실험을 계획한 주동자들이 모두 죽었기에, 엘프들은 굳이 인간들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보복을 결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미 왕도를 비롯한 주위 귀족들은 가문에게서 등을 돌린 후였다.

그 이후로 가문의 가세가 점차 기울기 시작했다.

분명히 이것만이 아닌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숨기고 있으니.’

그것도 언젠가 밝혀낼 수 있겠지.

하지만 이 사건이 몰락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가문에서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은 어찌 보면 꽤 당연하다고 볼 수 있었다.

“문제의 엘프는 ‘지원 요청’만을 남긴 채 기절한 상태다. 상태가 위급하니 의식을 회복하려면 못해도 일주일은 필요하겠지.”

다른 가문이었으면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받아들일 만한 일은 아니었을 텐데.

“너희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느냐.”

라인하르트 가문이었기에.

엘프가 도착했다는 소식 하나만으로 긴급히 자리를 옮길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 되었다.

가이엘의 진중한 눈빛이 알렌과 율리우스를 향했다.

현재 알렌은 저택의 회의실로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그들의 주위로는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는 기사단장이 눈을 감고 있었고, 총집사 가델이 고개를 숙인 채 자리를 지켰다.

다른 가신들을 소집하기는 상황이 급박했기에 적은 인원으로 회의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알렌은 유심히 가이엘의 표정을 살폈다.

‘미리 알고 있던 상황은 아니라는 건가.’

아버지의 방금 전 반응과 지금의 태도로 봤을 때 이번 일은 그도 모르고 있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아버지 근처의 놈들도 모든 걸 아는 것은 아니라는 건가?’

아니, 아버지에게만 입을 다물었을 수도 있겠지. 중요한 정보는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가치를 발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이런 사태를 가지고 미리 협조를 구하지 않았다고?’

미리 말을 맞춰 뒀다면 더 상황을 쉽게 풀어 나갈 텐데?

알렌은 그들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했기에 그들이 얼마나 거대한지, 어느 정도의 세력을 가졌는지 알 수 없어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그렇더라도.

‘내가 상황을 이끌어 나가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몇 달 전, 검은 책에서 읽었던 신수의 능력을 읽었을 때부터 계획한 일이다.

저들에 대한 정보를 현재 알 수 없다고 해서, 미리 세워 둔 계획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다.

알렌은 멍하니 허공을 아니, 퀘스트를 읽고 있는 율리우스보다 한발 앞서 입을 열었다.

“아버지, 우선 저희는 저들이 말하는 지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릅니다.”

‘전에는 율리우스의 강력한 주장으로 일이 진행됐지만….’ 이번에는 ‘알렌 라인하르트’가 먼저 발의하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지리라.

가이엘의 시선이 알렌을 향했다.

“그것이 어쨌다는 것이냐.”

“그렇기에.”

알렌은 뇌리로 그가 움직일 결심을 하게 만들던, 그가 계획을 세우게 했던 몇 줄의 문장을 떠올렸다.

『──어린 신수의 숲에는 소원을 들어주는 신수가 살고 있다.』

『──원하는 바람을 이뤄 주는, 찾아온 자에게 기회를 주는 신수가.』

『──그에 합당한 시련과 함께.』

‘율리우스 놈이 히든 보스라고 칭하던 신수를.’ 그 신수의 능력이 필요했다.

“이 지원 요청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기에 알렌은 이 일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었다.

동생의 행방을 찾아낼 수 있다는 희망과 더불어 단서조차 없는 그의 종적을 추적할 수 있다.

그것과 더해.

“이번 사건은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율리우스 놈이 했던 일을 가로채 놈이 영향력을 넓히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회귀 전에 율리우스는 뭐라 했었지?’

그들을 먼저 도우면 엘프들이 은혜를 갚을 거라고 했던가?

결국, 놈이 하던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그는 웃음이 나왔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알렌의 확신 어린 답에 가이엘은 즉각적인 답을 내놓기보다는 알렌의 의중을 되물었다.

“엘프가 지원을 요청한 장소는 영지의 끝, 영토에 포함되어 있다기보다는 중립 지대에 가깝다.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받아들인다고?”

“예.”

가이엘은 이상하다는 얼굴로 알렌을 응시했다. 원래 이런 허황된 말을 하는 성격이 아니었을 텐데?

알렌은 그의 반응에 쓰게 웃었다.

‘예전이었다면.’

회귀하지도 않고, 율리우스도 몸을 빼앗기지 않았을 시절의 그라면, 이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생각할 필요도 없이 거절했겠지.

이미 엘프와의 관계는 틀어졌으니, 쓸데없는 지원을 하기보다는 조용히 상황을 주시하는 것을 택했을 것이다.

그것이 신중하고, 또 합리적인 선택이니까.

하지만.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지원을 하는 겁니다.”

지금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라.”

기사단장은 어떤 말이든 따르겠다는 듯 침묵을 지켰고, 가델의 주름진 눈가 사이로 날카로운 시선이 알렌에게 향했다.

“이 말은 반대로 말하자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데도 엘프들을 지원한다는 말이 되지요.”

“그런 말장난이 의미가 있느냐?”

가이엘의 말이 맞았다.

그저 말장난, 어떻게 포장하든 이 일에 내포된 위험성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안다면, 어떤 위험이 존재하는지 알고 있다면….

‘승산이 확실한 도박이 된다.’

알렌은 가이엘의 말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의미가 있습니다.”

“어떤 것이?”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 관계를 완전히 되돌릴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엘프들이 저희를 다시 보기에는 충분한 일이 될 겁니다.”

엘프들도 그들이 가문의 선조와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기에 불분명한 요청에도 위협을 감안하고 지원한 결정에 호감을 품은 엘프도 생겨날 것이다.

그럴듯하고, 몽상에 젖은 이야기다.

그야말로 현실을 모르기에 할 수 있는 소리.

저 엘프의 신원조차 확실히 알 수 있나? 만약 지원을 했더라도 그 개인의 지원 요청이라면? 막상 지원을 갔는데 문전박대를 당하면 어쩌려고?

‘그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또, 불확실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래를 안다면.

그곳에서 진짜 동생의 행방을 알아낼 희망이 존재한다면.

‘나는.’

망설일 이유 따위는 없다.

알렌은 가이엘의 시선을 당당하게 마주 봤다.

“이번 일이 파급은 상당히 클 겁니다. 무려, 저희 가문을 혐오한다고 할 수 있는 엘프가 직접 지원을 요청했으니 말입니다.”

지원 요청까지 할 정도로 상황이 급박하든, 대수림에서 병력을 끌어오는 데 시간이 걸리든.

그들이 현재 사이가 최악에 가까운 라인하르트 가문이라도 도움이 필요하다는 뜻이었으니.

그런데 가문에서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들의 위험에 나선다?

“이번 일은 엘프들에게 관계의 회복을 알리는 단초이자, 그들과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가이엘은 말없이 알렌의 주장을 경청했다.

“아무런 정보도 없는데 무작정 병력을 지원한다. 이건 분명히 어리석은 선택입니다.”

적인 강한지, 수는 몇 명인지, 무슨 상황인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 어느 것도 알지 못하는데, 무엇을 믿고 병력을 지원하나.

하지만, 가이엘은 영 신통치 않다는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엘프와의 관계를 개선할 ‘여지’만을 얻기 위해서, 멋모를 위험에 발을 들일만 한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느냐?”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가델도 기사단장도 알렌의 주장을 다소 꿈에 젖은, 허황된 생각을 하고 있다고 보았다.

“특히, 저희와 엘프와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약화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알렌은 잠시 말을 끊었다.

‘이 뒤에 근거를 뒷받침할 사실이 없다면, 억지를 써서 출정한 놈과 다를 바가 없겠지.’

하지만.

“만약, 어느 정도 상황이 어떤지 알 수 있다면 어쩌겠습니까.”

알렌은 율리우스처럼 억지로 일을 밀어붙일 만큼 허술하지 않았다.

“적이 누군지 안다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할 수 있다면.”

알렌은 넋을 놓은 율리우스의 표정을 음미하며 시원하게 웃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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