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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46화 (46/212)

제46화

알렌은 협곡에서 3일 만에 마녀가 위치했던 숲 앞에 도착했다.

“도, 도착했습니다.”

마부는 마을 하나 들리지 않고, 쉴 새 없이 마차를 모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마차는 얼마나 험하게 달렸는지 프레임이 조금 휘어 있었고, 곳곳에 긁힌 자국이 가득했다.

“여기서는 혼자서 가지. 만약 하루를 기다려도 내가 나오지 않으면, 먼저 도시로 돌아가게.”

마부는 마녀가 여기 있다는 걸 직감한 듯, 겁먹은 얼굴로 멀찍이 있는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아, 알겠습니다.”

알렌은 그 모습을 보고 짧게 웃다가 자신의 앞에 자리 잡은 어둑한 숲을 바라봤다.

[숲의 이름이 따로 없다고 했나?]

[예, 약초나 버섯 같은 것도 없어서…, 그냥 주변 숲과 뭉뚱그려서 건너 숲이라고만….]

알렌은 마차에서 숲에 관해 몇 마디 물었던 것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앞으로 이 숲에 사람이 들어올 일은 없겠다고.

‘근처에 다른 숲이 없는 것도 아니니, 이곳에 사람이 더 오지는 않겠군.’

마녀란 이름만으로도 불길한 존재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그렇게 가만히 숲을 보고 있는 게 못마땅했던 걸까, 알렌의 허리춤에 있던 베스틀라가 꿍얼거렸다.

「당신, 시간 없다고 하지 않았어요? 빨리 안 가요?」

“아니, 잠시 확인할 게 있다.”

알렌은 눈을 가늘게 뜨며 숲의 안쪽을 노려봤다.

감지력이 뿜어져 나오며 숲의 안쪽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나 알렌은 숲 안에서 그 무엇도 느낄 수 없었다.

마치 마녀가 있다는 게 거짓말인 듯.

‘결계인가?’

마차에서 나온 직후부터 숲으로 감지력을 뻗었으나, 마녀가 무언가 대비를 한 듯 결계에 막혀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진짜 마녀와 전투를 벌이는 건 처음이군.’

전생에서부터 마녀와 전투를 벌인 적이 없었기에 조금 가슴이 뛰었다.

「왜요? 겁먹었어요? 아까는 ‘마녀야, 내가 간다!’며 폼이나 잡더니.」

“누가 그렇게 말했다고.”

알렌은 피식 웃고는 베스틀라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저 조금 감회가 새로웠다. 마녀를 쫓으며, 영지를 좀먹는 저주의 근원을 해치운다. 이런 짓은 전생의 율리우스나 하던 짓이었는데.

스스로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한 묘한 감상이 들었을 뿐이다.

알렌은 감지 범위를 자신의 주위로 극도로 좁히고 앞으로 나섰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에 오래 묵은 잎사귀들이 바스락거리며 부서졌다.

그렇게 한 발자국 내디딘 순간.

-저벅

「오.」

보이던 환경이 바뀌었다.

알렌은 당황하지 않았다.

시야가 뒤바뀌는 순간 실타래를 전 방위로 퍼트렸고, 자세를 낮추었다.

“…환영 인사는 없나, 뻔히 들어온 걸 알 텐데.”

「의외로 몰래 지켜보면서 준비하고 있을지 누가 알아요?」

“웃기는 소리.”

알렌은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발걸음을 옮겼다.

숲 안은 조용했다.

벌레 우는소리 하나 없이 정적에 잠긴 숲은 마치 정령의 샘에 들어갔을 때를 연상시켰다.

다만 숲에 생기가 있었던 그때와 다르게 이곳은 생기를 빼앗긴 듯 전체적으로 우중충했다.

음산한 바람과 메마른 길.

죽어 있는 숲에는 살아 있는 생물이란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마녀가 죽은 후에도 이 땅은 틀렸군.’

알렌은 마녀가 있을 거라 추정되는 숲의 중심으로 나아가며 입을 열었다.

“마녀에 대해 알고 있나?”

「음…, 글쎄요? 직접 안 봐서 모르겠는데요.」

“요사하고, 사이한 놈들이지. 사람을 홀리고, 지금처럼 저주를 흩뿌린다. 모르나?”

「그런 게 한둘이에요?」

“그것도 그렇군.”

알렌은 베스틀라와 대화를 나누면서 일부러 틈을 보이듯 행동했지만, 그를 습격하는 자는 없었다.

숲의 중반을 가로지를 때까지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자, 알렌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왜, 아무도 습격하지 않지?”

「…어, 글쎄요? 도망쳤나?」

괴물이나 언데드, 못해도 하수인들이 공격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알렌은 속도를 올렸다.

뭔가 이상했다.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다고? 이상하다. 이상해. 이제 와서 도망쳤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함정을 파둔다는 게….

「…원래 이렇게 숲이 넓었나?」

“뭐?”

순간 알렌이 걸음을 멈추고 섰다.

“뭐라고?”

「…어, 초 치려던 건 아니었는데. 기분 나빴어요?」

“아니, 그게 아니다. 전에 뭐라고 했지?”

「원래 이렇게 숲이 넓었나?」

“보기 좋게 낚였군.”

알렌은 입술을 깨물고 무언가를 깨달은 듯, 강하게 땅을 박찼다.

난폭한 걸음에 나무와 바위가 박살 나며, 흙먼지가 날린다. 베스틀라는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의아한 듯 소리쳤다.

「갑자기 뭐 해요! 누가 덮쳐오면 어쩔 건데!」

거인의 튼튼한 육체가 숲 전체를 부술 듯이 전진하며 얼마나 나아갔을까, 어느 순간 알렌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당신 뭐 하는 거예요! 마법사라는 건 이성적인 사람이 하는 거라며!」

“주위를 둘러봐라.”

「둘러보긴 뭘 둘러봐요! 어차피 다 박살 났을… 어라?」

한껏 잔소리를 퍼부으려던 베스틀라의 검체가 멈칫했다.

“본래 이 정도 속도면 벌써 숲을 빠져나가고도 남았겠지. 그런데 주변은 어떻지?”

주위는 아까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알렌이 난리를 피운 적이 없던 듯.

부서진 나무는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왔고, 박살 난 바위는 처음부터 그런 적이 없다는 듯 그대로 있었다.

「어? 어? 이럴 리가 없는데?」

그녀는 알렌의 손에서 벗어나 주위를 몇 번이나 살펴보더니 어리둥절한 어조로 말했다.

「…이건 환각? 아니, 환각은 아닌데.」

“정확히는 환상으로 구성한 결계지.”

알렌은 드물게도 인상을 찌푸렸다.

“결계를 통과했을 때부터 의심했어야 했는데, 방심했군.”

마녀가 있는 숲이라면 ‘당연히’ 이럴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에 그냥 넘기고 말았다.

정령의 샘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사실이 알렌이 숲의 모습을 의심하지 않는 것에 한몫했다.

‘차라리 결계를 부수고 들어오는 게 더 현명했을까.’

알렌은 냉정하게 사고했다.

「…그럼 어떻게 할 거예요? 결계를 깰 방법은 있어요?」

베스틀라는 제법 심각한 어조로 물었다. 알렌은 천천히 자신이 쓸 수 있는 수단을 확인했다.

‘결계의 역산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결계 계통에 대해서는 기초적인 것밖에 아는 것이 없으니, 해주는 처음부터 논외.

‘그렇다면 결계가 있는 공간을 통째로 부수는 수밖에 없나?’

숲의 초입에서 멀어졌으니 결계의 끝에 가서 부술 시기는 놓쳤다.

그렇다면?

‘틈을 만든다.’

결계와 공간 계통은 직간접적인 접점이 있다. 결계 계통의 마법사보단 효율이 좋지 않을지언정, 몸을 빼는 정도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계의 중심축을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니 이 방법이 제일 현실성 있었다.

알렌은 즉시 주변에 흩어 놨던 실타래를 끌어모아 작은 충격파를 무수히 뿌렸다.

충격파가 공간을 미세하게 뒤흔들며 결계의 틈을 찾기 시작했다.

‘이렇게 거대한 결계가 완벽할 수 없다.’

작은 취약점 하나만 찾아낸다면, 틈을 벌릴 수 있다.

알렌의 손길이 무언가를 더듬듯 분주하게 허공을 두드렸다. 결계의 축은 하나가 아니겠지. 작은 고정축을 하나 비튼다면….

“찾았다.”

알렌의 수인에 따라 노심에서 광대한 마나가 끝없이 꿀렁이며 무수한 실타래로 알렌의 주변을 채웠다.

무수하게 늘어난 실타래가 허공의 한 지점을 푹- 찌르더니 무언가 비틀리듯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무언가 강제로 열리는 듯한 감각.

소비되는 마력이 심상치 않았다.

‘…쯧, 결계에 대해서도 연구해 볼 걸 그랬나.’

-기기긱

그렇게 조금의 시간만 흐른다면,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 것 같던 때.

「빨리 저기 봐요!」

알렌의 집중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있던 베스틀라가 갑작스럽게 소리쳤다.

알렌의 시선이 베스틀라가 소리친 곳을 바라봤다.

-그아-아아-아아!

-게-에에에에에에!

-크르르르르르륵!

스켈레톤, 구울, 좀비, 듀라한, 벤시를 비롯한 언데드들.

저건 현실인가? 아니면 환상? 어찌 되었든 결계 안에서는 진짜나 다름없다.

알렌은 헛웃음을 흘리며 자세를 잡았다.

“베스틀라, 네 말이 맞았군.”

「…아하하, 그렇네요?」

알렌이 노려보자 베스틀라는 급히 입을 다물고 알렌의 손으로 날아와 안착했다.

“다음부터는 입을 함부로 놀리지 않도록 하지.”

「…네.」

알렌이 손을 휘두르자, 실타래가 엮이며 수십의 송곳들이 시체들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오늘 안에 끝마쳤으면 좋겠군.”

쾅!

검은 시체의 물결이 그들을 덮쳤다.

* * *

알렌의 검이 머리 없는 녹슨 갑옷을 내려찍었다. 콰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듀라한은 한낮 고철 더미로 변해 목부터 사타구니까지 절반으로 쪼개져 버렸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쪼개진 듀라한의 틈을 채우듯 썩은 피부가 흘러내리는 좀비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곧바로 주먹을 휘두르자, 머리가 폭발하며 허연 뇌수가 허공을 적셨다.

수가 얼마나 남았지?

“베스틀라!”

「잠시만요!」

알렌이 소리치며 베스틀라를 허공에 던지자 그녀는 빠르게 상대의 수를 확인했다.

「아직도 많아요! 수가 안 줄어드는 거 아니에요?」

알렌은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 저놈들은 실체가 아니라 환상인가?

‘아니, 나무나 바위가 원래대로 돌아온 것처럼 결계의 특성일 수도 있지.’

어느 쪽이든 알렌에게는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크르-륵!

흉측한 근육을 드러낸 구울은 톱날 같은 손톱을 반짝이며 머리로 떨어져 내렸다. 알렌이 허공을 치자, 거대한 충격파에 구울의 허리가 꺾였다.

낮아진 머리를 발로 내려찍자, 뿌득하고 끔찍한 감촉과 함께 머리가 함몰되었다.

수많은 언데드가 파도처럼 알렌에게 몰아쳤다. 베스틀라의 시선으로 내려다봤음에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수였다.

알렌은 자신의 육체를 확실하게 활용했다.

압도적인 신체 능력을 도구로 시체의 골통을 부쉈고, 짓쳐 드는 공격도 강철 같은 피부를 방패 삼아 막아 냈다.

알렌은 시체의 파도를 깨부수며 생각했다. 이대로 가면 끝이 없다고.

마녀가 놈들을 조종하기 시작했는지, 어느 순간 놈들은 교묘하게 진형을 짜기 시작하더니 알렌의 체력을 앗아가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체력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거인의 특성을 띠는 육체가 이딴 일에 무너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공격이 지속된다면 육체보다 정신이 먼저 지칠 가능성이 높았다.

“베스틀라! 거대화!”

「알았어요! 얍!」

알렌은 육중한 무게로 추락하는 그녀를 잡고, 몸을 틀었다. 근육이 끊어질 듯 비명을 지른다. 공기가 마찰음을 울리며 놈들의 머리 위로 그림자를 만들어 냈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검격은, 그 무게만으로 압도적인 폭력이 된다.

쾅!

알렌의 주위로 수십 미터의 공백이 생기며, 바닥에는 잘게 흩어진 육편이 짓이겨져 뒹굴었다.

‘이렇게 되더라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겠지.’

그러나 상관없었다.

이 틈을 노리기 위함이었으니.

곧바로 손을 놓고 수인을 맺는다.

언데드가 상대의 하수인이라면, 종속된 하수인이라면.

‘빼앗을 수 있다.’

[계약] [영역] [강제] [탈취]

심상 속에서 벼려 낸 4개의 개념이 섞이며 하나의 술식으로 화한다. 실타래가 수천 가닥으로 분열되며 바닥에 쓰러진 시체로 향했다.

시체의 살점이 꿈틀거리며 다시 뭉치기 시작했다.

알렌은 실타래가 그 살덩이 사이로 섞여 들어가는 것을 보며 만족했다는 듯 웃었다.

“강제 계약.”

심장의 노심이 미친 듯이 뛰자, 두 손을 인형을 조종하는 인형사처럼 섬세하게 움직였다.

“가라, 괴물들아.”

서로 미친 듯이 물어뜯어라.

어느새 완전히 되돌아온 언데드들이 반대로 돌아 몰려오는 시체의 파도에 맞서기 시작했다.

알렌은 감지력으로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보조해 주며 움직이느라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몰려들었다.

‘이런 편법으로는 얼마 버티지 못하는데….’

소환 계통에는 아는 게 없으니 직접 조종할 수밖에.

이미 죽은 언데드들이기에 요람의 부름도 통하지 않는다. 이렇게 시간을 벌 수 있을 때 탈출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알렌이 고민하던 때, 그의 곁에 떠다니던 베스틀라가 꺼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방법이 하나 있어요.」

두통을 참아 내며 고개를 돌리자, 그저 장식이라 생각했던 베스틀라의 검면 위에 새겨진 알 수 없는 문자들이 점멸하며 백열하기 시작했다.

“베스틀라, 이건 무슨….”

「일단 이걸 한 번 사용하면, 저는 언제 깨어날지 몰라요. 한 달이 될 수도 있고, 일 년이 될 수도 있죠.」

“특별한 능력은 없다고 하지 않았나?”

알렌은 두통을 느끼는 와중에도 어처구니가 없어 내뱉자, 베스틀라는 당황한 어조로 답했다.

「저, 저도 며칠 전에 깨달은 거거든요! 됐고, 빨리 선택이나 해 봐요!」

그녀의 능력으로 이곳을 탈출해야 되나,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나.

답은 금방 나왔다.

‘지금 그녀의 능력을 사용하기는 아쉽다.’

어떤 능력인지는 몰라도 한 번 사용하는데 저 정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면, 이곳보다 더욱 중요한 전장, 위험한 순간에 사용하는 게 훨씬 유용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어도 무슨 방법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상대가 먼저 나가떨어지지 않는 한, 준비된 결계를 빠져나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차라리 숲 전체를 폭격하듯이 공격해서 결계의 중심축을 부수는 건….’

알렌에게 조종되던 언데드들도 대부분 나가떨어지고, 시간은 그저 흘러간다.

「빨리 결정해요!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했잖아요!」

‘그래. 나가야지.’ 알렌이 감았던 눈을 뜨고, 결심을 굳힌 순간.

촤르르-

하얀 책이 갑작스럽게 펼쳐지며, 새하얀 백지에 글자가 쓰여지기 시작했다.

『■■■■과(와) 이어진 책이 조건을 확인합니다.  ■■을(를) 인지하고 있습니다!  ■■와(과) 연관된 대상이 근처에 있습니다! ■■을(를) 막아 내기를 원합니다!』

『조건을 충족합니다. ■■■ ■■(가칭)이 현현합니다!』

『?오른쪽으로 세 발자국. 뒤로 두 발자국. 8초 후에 400m 위로 충격파.』

“이건….”

새로운 변수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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