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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42화 (42/212)

제42화

아칸더스는 미친놈 보는 듯한 시선으로 알렌을 쳐다봤다.

“율리우스를… 죽인다?”

“그래.”

그에게도 마찬가지로 빙의니, 회귀니 쓸데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아직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데, 자세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그의 목적은 율리우스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고, 자신의 목적은 그를 자신의 아래로 들이는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신뢰가 쌓이고 나도 해도 늦지 않다.

“그래.”

알렌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하, 나 원 참, 내가 미친 줄 알았는데, 정작 진짜는 따로 있었군.”

“듣기로 아버지의 행방을 찾는다고 하는데….”

알렌이 들으라는 듯 말꼬리를 흐렸다.

“내가 그랬나?”

아칸더스는 겉으로는 헛웃음을 흘리고 있지만, 속으로는 어떤 것이 진실인지 분별하느라 상당히 복잡했다.

이넬리아도 말은 하지 않았으나 혼란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이넬리아는 저택에 돌아가서 설명하면 되겠지.’

어차피 한 번쯤 부를 생각이었으니.

“그래서, 어떻게 할 거지?”

“무엇을.”

“뭐기는, 뻔하지 않나.”

알렌의 물음에 헛웃음을 흘리던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무표정하게 뒤바뀌었다.

이넬리아는 그런 이질적인 변화가 싫은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래. 참 재밌는 이야기야. 형이 동생을 죽이려 한다?”

아칸더스는 알렌의 말을 완전히 믿지 않았다.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자신을 영입하기 위해 직접 온다?

아칸더스는 자신의 가치를 잘 알았다.

잘 쳐줘야 율리우스의 세력을 물어뜯는 사냥개의 역할 정도로 사용할 수 있을까.

‘차라리 율리우스와 권력 투쟁을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는 말이 더 현실감 있겠군.’

최근 율리우스의 모습에 위기감을 느낀 알렌이 그를 견제하기 위해 그에게 원한을 가진 이들을 끌어모은다.

이것이 그가 생각하기에 더욱 그럴듯한 이유였다.

누가 들을지도 모르는데 대놓고 율리우스의 죽음을 언급하는 것보다는.

이것은 미래의 모습을 기억하는 알렌과 현재의 자신의 가치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그와의 괴리감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이런 금방 들통날 개소리를 한 이유가 뭐지?’

그걸 직접적으로 이야기할 이유가 있나? 속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진짜 죽이려 한다고?

‘어느 이유든.’

상관없었다.

‘네가 나를 이용하기를 원한다면, 나도 너를 이용해 주마.’

이것이 설령 함정이라고 해도.

율리우스를 죽이려 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 거지 같은 생활을 벗어나 제대로 지원받을 수 있다면.

그리고….

‘사라진 아버지의 행방을 알 수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그렇기에 그는 냉소를 지으며 가볍게 대답했다. 어차피 결과는 둘 중 하나다.

내가 죽거나.

“그래, 밑으로 들어가지.”

놈이 죽거나.

그를 위해서라면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진 목숨 따위, 얼마든지 걸 수 있었다.

“좋은 선택이다. 아칸더스. 자세한 건 엘 라운드에서 이야기하지.”

“기한은?”

“이번 달 안으로 도시 안으로 들어오면 된다.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당연히. 그런데 혹시….”

아칸더스는 이 말을 해도 되는지 고민하는 얼굴로 머뭇거렸다.

“인제 와서 망설일 만한 게 있나?”

“…다른 사람들도 있다. 그놈들도 율리우스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으니 방해는 되지 않을….”

“그래, 모두 데려오도록. 아버지에 관련된 정보도 그때 주도록 하지.”

알렌은 시답지 않은 일을 묻는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답했으나, 아칸더스가 느끼는 감정은 조금 달랐다.

‘…적어도 한 번 쓰고 버려지지는 않겠군.’

그가 몰락 귀족으로서 명분으로 사용 가능한 자신만이 아닌, 다른 이들을 모두 챙긴다는 사실은 이 일을 꽤 길게 보고 있다는 것을 뜻했으니까.

“…고맙군.”

“천만에. 이제 내 수하가 되었으니, 어느 정도 신경 써 줘야지.”

이제 용건은 끝났나? 아.

알렌은 문득 아까 그가 했던 이야기를 떠올리고 입을 열었다.

“아까 네가 그랬지. 네가 율리우스와 비교하면 촛불만도 못하다고.”

그래, 그로서는 율리우스가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

전생의 그는 아버지가 죽고 가주의 직위를 물려받았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없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러니 그가 자신을 그렇게 빗대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빛이 너무 밝을 필요는 없다.”

몸을 일으켰다.

어두운 내부의 문틈으로 햇살이 비쳐 들어왔다. 실내를 좀먹은 그림자에 파묻힌 아칸더스의 초록색 눈이 빛났다.

“너무나 밝은 빛은 어둠과 다를 바가 없으니.”

마치 촛불처럼.

“어두운 방 안을 밝히는 건, 촛불만으로 충분하다. 그 이상은 과할 뿐이지.”

아칸더스는 멍한 표정으로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개소리는.”

뒤에서 뒤늦게 그의 대답이 들려왔다.

그래, 그렇겠지.

“글쎄…, 좋을 대로 생각하도록.”

알렌은 기껍다는 듯 웃으며 답했다.

이날, 알렌은 유능한 인재와 그의 기반이 될 사람들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 * *

엘 라운드로 돌아오는 길은 평탄했다.

도적이나 괴물 그 어느 것도 그들의 앞길을 방해하지 않았고, 알렌은 일주일 만에 자신의 보금자리로 되돌아왔다.

그렇게 하루가 지난 다음 날.

알렌은 습관이 된 아침 수련과 명상을 끝마치고, 개인 서재로 향했다.

비밀스럽게 대화를 나누기에는 서재만큼 조용한 곳이 드물었으니까.

알렌은 아카데미에서 도착한 레이첼과 카트린느의 편지의 답장을 마무리하고, 아카데미로 편지를 발송했다.

“카트린느는 시킨 일을 꽤 잘해 주는 모양이고…, 레이첼은 변함없구나.”

알렌은 감정이 듬뿍 담겨 있던 편지를 떠올리고는, 눈앞에 어지러이 펼쳐진 마법 수식을 살폈다.

“…흠. 마법도 더 발전시켜야 하는데.”

자신의 위치를 위계로 따지면 5위계쯤에 해당했다.

마력은 용의 노심으로 변한 심장에서 끝없이 생산된다. 마력은 부족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마력을 이용할 마법적 지식이 부족했다.

마법의 위력은 마력의 양을 늘림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너무 비효율적이지.”

마법사는 현상에 간섭하고, 현실을 뒤틀기 위해 자신이 전공으로 하는 마법 계통의 지식을 축적하고 연구한다.

그렇게 이해한 지식을 바탕으로 마법사는 마법을 사용한다.

그렇게 사용한 마법은 효율적이며, 군더더기가 없어야 했다.

다시 말해, 마력을 더해 마법의 위력을 늘리는 행위 자체가 마법사로서 미성숙한 행위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영지 근방에서 지식을 구하기는 요원하지.”

그건 전생에 10년 동안 마법과 관련된 서적을 구했던 알렌이기에 더 잘 알았다.

이곳에서는 지금 그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지식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수준을 더 높이기 위해서는….

‘아카데미.’

그곳으로 가야 한다.

알렌은 생각을 끝마치고 눈을 감았다.

히벨에서 린벨과 이넬리아를 거두었을 때, 그의 영감을 자극하는 일이 있었다.

‘그 이후로 딱히 진전은 없었지만….’

그때의 감각을 떠올리며 명상은 꾸준히 반복하고 있었다.

한 번에 성과를 얻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

그렇게 얼마나 명상에 잠겨 있었을까.

-똑똑

무의식과 의식의 사이. 몽롱했던 꿈결 같은 감각을 떨쳐 내니 이넬리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공자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벌써 시간이 됐나.

알렌은 오후의 시간대로 넘어가는 시곗바늘을 확인하고 곧바로 입실을 허락했다.

“그래.”

-철컥

이넬리아는 왠지 긴장한 얼굴로 쭈뼛대며 서재로 걸어 들어왔다.

‘이번에 처음으로 들어오는 것도 아닐 텐데?’

무슨 질책을 들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래, 이야기할 것도 있고…, 일단 앉지.”

알렌이 먼저 서재에 마련된 소파에 앉자, 그녀가 맞은편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공자님 부, 부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힐끔-

그녀는 알렌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 보지 못한 채 눈동자를 자꾸 옆으로 돌렸다.

긴장과 굳은 결심으로 뒤섞인 자색 눈동자. 요정 인자가 섞인 아름다운 외모.

씻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물기가 남아 있는 흑발은 촉촉했고, 향수라도 뿌렸는지 옅은 라일락 향기가 코끝을 감돌았다.

“이넬리아.”

알렌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네, 네!”

그가 입을 열자 이넬리아는 올 것이 왔다는 듯 옷자락을 꽉 잡았다.

‘저번에도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녀가 본 알렌 공자는 이성적인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만약, 만약에 아니라면?

‘사실 지금까지 안심을 시키기 위한….’

“…별다른 의문 없이 나를 따라 줘서 고맙다.”

그러나 그녀의 생각대로 알렌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표정이 이상하군.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나?”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알렌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품에서 고풍스러운 물결 무늬가 조각된 상자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게 아닌데….’

그녀는 얼떨떨한 얼굴로 그의 선물을 받아들였다.

“가, 감사합니다. 공자님….”

그녀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하자, 알렌은 궁금한 듯 물었다.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나?”

“아, 아닙니다. 갑작스러워서….”

알렌은 고개를 저었다.

“시녀와 어울리지 않는 많은 일을 군말 없이 받아들이고, 지금껏 열심히 나를 보좌했지 않느냐?”

누군가의 뒤를 쫓거나.

뒷산에 묻힌 영약을 수거해 오거나.

사람 한 명을 콕 집어 조사해 오거나.

궁금증을 표할 법도 한데 아무 말 없이 따른 그녀에게 알렌은 보상을 해 주고 싶은 마음에 그녀를 부른 것이다.

‘그와 더불어 키메라 술사와 율리우스에 관한 이야기도 할 겸.’

“안에 들어 있는 건 저번에 얻은 정령옥이다. 이넬리아 너는 요정 키메라…, 라고 했으니 그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지.”

그녀는 정령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게 키메라이기 때문에 발생한 부작용인지, 아니면 아직 계약하지 못 한 건지 알 수 없으나, 그녀에게 정령옥은 어떤 방향에서든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일이 있어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못했으니, 이야기할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아.”

여러 감정이 담긴 한숨을 토해 낸 그녀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럼… 우선 키메라 술사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

알렌은 자신의 행동에 감동한 것처럼 보이는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번에 키메라 술사를 쓰러트리고 얻은 돌검….”

그녀는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 모두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키메라 술사가 한 달에 한 번씩 어딘가로 외출을 했다든지, 재료는 그때 같이 가지고 왔다는지.

그가 외출한 날이면 음침한 기운이 산맥에 감돌았다는 것까지.

“키메라 술사와 관련된 뒷배는 역시 그쪽인가? 짐작은 했는데….”

알렌이 무언가 떠올린 듯 깊은 생각에 빠지자, 이넬리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알렌 님, 질문은 이게 끝인가요?”

“아, 그래.”

알렌은 그녀의 질문에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답했다.

“율리우스에 대해 궁금한가 보지? 미리 말해 줬어야 했는데…, 미안하군.”

“네, 네.”

그녀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으나,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율리우스는 현재 ‘악마’에게 몸을 빼앗긴 상태다.”

이넬리아에게는 말해 둘 필요가 있었다.

아직 신뢰가 쌓이지 않은 아칸더스와 달리 어느 정도 신뢰가 쌓였고, 또 그의 곁에 있다 보면 무언가 알 수밖에 없을 테니.

‘이상한 추측을 하게 놔두느니, 직접 말해 두는 게 나을 테지.’

그렇게 된다면 나중에 아칸더스의 조사를 시킨 것과 같이 이상한 명령을 내리더라도 그녀가 알아서 넘어갈 확률이 높았다.

“악마… 말씀이십니까?”

“그래. 악마, 아주 끔찍한 악마에게 씐 상태지.”

남의 몸을 빼앗고도 아무런 죄책감을 못 느끼는 그런 악마에게.

감지력을 펼친다.

근처 수십 미터 내의 정보가 뇌리로 밀려들어 왔다.

‘듣는 사람은 없군. 하지만 만약을 위해서.’

그들의 주위로 투명한 실타래가 방 안을 둘러싸며 외부와 차단시켰다.

“그에 관해 설명을 하자면….”

이넬리아는 알렌의 조심스러운 태도에 긴장했다. 그의 태도를 봐도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알렌은 그녀가 이해할 수 있을 법한 범위 안에서 각색해서 이야기했다.

율리우스가 악마에게 몸을 빼앗겼다고.

놈에게 씐 악마를 물리쳐 동생을 구하고 싶다고.

아칸더스를 영입한 이유 역시 놈에게 대항할 세력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너에게 했던 명령들도, 모두 그를 위한 준비의 일환이었다. 이제 이해가 되었나?”

“아….”

그녀는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놈은 세계를 위하는 척 행동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으니 겉으로 보이는 것에 속지 않게 조심하도록.”

마지막으로 당부까지 끝마치자, 율리우스에 관한 이야기도 마무리됐다.

“궁금한 게 더 있나? 없다면 이제 식사나 하도록 하지.”

알렌이 정말 자리에서 일어날 것처럼 보이자, 그녀는 망설이다 급히 입을 열었다.

“그, 그럼 이게 끝인가요? 이야기를 나누고…, 제게 이 물건을 주시고….”

“그래.”

“정말로…?”

그녀가 왜 그리 묻는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알렌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문제가 있나?”

“…아닙니다.”

“그럼 식당으로 가지. 시간도 됐으니….”

“…알겠습니다.”

그렇게 알렌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공자님, 린벨이에요. 들어가도 될까요?”

알렌은 반쯤 들었던 허리를 다시 제자리에 되돌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 들어오도록.”

그녀는 방 안에서 알렌과 함께 있는 이넬리아를 바라보며 몸을 멈칫했다.

“아…”

.

“린벨? 그래서 무슨 일이지?”

그러다 알렌과 눈을 마주치고 정신을 차린 듯 입을 열었다.

“아, 그, 공자님께 손님이 오셨어요.”

“손님?”

“네, 카릭 상단주라는 사람이 공자님을 찾으신다고….”

벌써, 그 상단과 접촉하는 데 성공했나?

알렌은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을 느끼며 답했다.

“바로 만나 보지.”

회귀한 직후부터 어렴풋이 구상했던 계획을 실행할 시간이다.

알렌은 앞으로의 일을 떠올리며 빠른 속도로 문을 나섰다. 그렇기에 그는 보지 못했다.

“…….”

그녀의 표정이 어둡게 물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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