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화
얼마간의 시간 후 알렌 일행은 니케아 산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마차가 이동할 수 없기에 걸어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율리우스는 또 무슨 퀘스트라는 것을 하려나.’
알렌은 현재 2주일간 근신 처분을 받은 몸이었다.
정확히는 대련을 주관하던 수습 기사 판과 당사자인 알렌, 율리우스까지.
이유는 간단했다.
부주의한 실수와 돌발적인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마련된 주관 역할을 일개 수습 기사가 담당하였으며, 그 원인으로 큰 사고가 날 뻔했으니, 주관자이든 대련 당사자이든 누구도 백작의 화를 피해 갈 수 없었다.
아버지는 드물게 분노를 내비치며 각자에게 벌을 내렸다.
‘그게 정말 마음대로 대련을 벌였기 때문인지 빙의자인 율리우스가 죽을 뻔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말이지.’
그렇기에 알렌과 율리우스는 각 별채에서 2주간 근신을.
같이 휘말렸을 뿐인 판은 완전 무장 한 채로 야간 성벽 근무 500시간과 강도 높은 훈련을 받게 되었다.
알렌은 이 시간을 빌려 몰래 뒷산에서 율리우스가 얻었다는 영약을 가져가기 위해 저택을 나섰다.
움직였다는 걸 숨기기 위해 수련을 한다는 핑계로 별관의 출입을 막아 두었고, 추적을 피하기 위해 허름한 마차를 타고 샛길로 빙 돌아서 움직였다.
이제 그 결실을 맛볼 차례.
“여기서부터는 처음에 설명했던 대로 갈라지지.”
“알겠습니다. 공자님.”
“내가 준 지도 가지고 있지? 이넬리아와 린벨, 두 명은 남동쪽에서 시작해서 북서쪽까지. 할 수 있겠지?”
이넬리아와 린벨은 의욕 어린 얼굴로 힘차게 대답했다.
‘이제 진정됐나 보군.’
린벨은 평소에 알렌이 보았던 그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넵!”
엘 라운드 뒷산에 놈이 얻을 영약을 모조리 가져간다.
‘나중에 율리우스의 당황한 표정을 보고 싶은데….’
직접 보기는 무리겠지.
알렌은 그 사실에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며, 상상으로나마 만족감을 느꼈다.
“그럼, 6시간 후에 보는 걸로 하지.”
“공자님, 무운을 빕니다.”
“그래 이넬리아, 이곳에서 너에게 해를 끼칠만한 것은 없을 테지만…, 방심은 말도록.”
“걱정 마시길 바랍니다.”
“그래. 간다.”
알렌은 뒤통수에 따라붙은 두 쌍의 시선을 느끼며 몸을 날렸다.
산에 있을 영약을 모두 가져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모자랐다.
* * *
넓은 공동.
새하얀 대리석으로 타일이 깔려 있는 공동의 중앙, 작은 원탁에는 9명의 인영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로 족히 수백 명이 앉아도 부족함이 없을 수많은 좌석이 오페라의 관람석처럼 원탁을 둥글게 둘러싸고 있었다.
그러나 평소에는 대부분 비어 있을 좌석이, 지금은 무슨 일이라도 생긴 듯, 빈자리 하나 없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심지어 거대한 마탑의 마탑주, 작은 학파의 수장 등 영향력 있는 마법사들을 비롯해서 4위계 이상의, 중견 마법사라 불리기에 충분한 인물들이었다.
술렁술렁-
“자네, 왜 긴급 소집령이 왜 떨어졌는지 알고 있나?”
“글쎄…, 뭐 또 어디 원시 회랑이 열렸다는 게 아니겠나.”
“흠…, 그럴 듯한데? 근데 그랬다면 지금까지 소집령을 내린 이유를 감출 이유가 있겠나?”
“그것도 그렇군.”
대부분은 어떤 일로 강제 소집됐는지도 모르는 상태.
그들은 각기 친한 마법사끼리 안부를 물으며 각자 소집령을 내린 이유를 추측했다.
그 자리의 구석에서 프란시스카는 거대란 로브를 꾹 눌러쓴 채, 애써 지루함을 참아 내고 있었다.
‘이 자리에 오는 게 아니었는데.’
마탑 중 한 곳과 척을 졌다고 해도, 마법사라면 응당 의무에 따라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고집 탓에 강제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예언에서 들었던 사람을 찾았는데.’
어렸을 적부터 그것 하나만을 보고 살아왔다.
그 때문에 할아버지도 그녀의 청에 따라 라인하르트 가문의 전속 마법사가 되었고, 자신 역시 끊임없이 노력해 4위계의 마법사가 되었다.
그런 인고의 시간 끝에 드디어 예언의 주인공을 찾았는데.
‘왜 한 달째 이딴 곳에 붙잡혀서는.’
프란시스카의 분노 어린 눈이 원탁 가까이에 앉아 있는 청년에게 닿았다. 그녀는 더욱 로브를 깊게 눌러쓰며, 자신을 감추었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도 참기 힘들었으니까.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쾅!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셈이냐. 바르덴!”
불의 마탑주, 7명밖에 없는 마스터 중 한 명인 파르델은 원탁의 중앙에서 이 회의의 소집령을 내렸다고 할 수 있는 빛의 마탑주에게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그래, 바르덴. 이제 말해 줄 때가 되지 않았어? 설마 아무 이유 없이 부른 거라면 재미 없을 거야~”
“마, 맞아요. 여, 연구까지 다, 다 밀렸는, 는데. 어, 언제까지 기, 기다려야 돼요, 요?”
뒤를 이어 변화 학파의 스카이나와 연금 학파의 마르골이 입을 열었다.
그 뒤를 이어 기다리다 지친 마법사들이 따라 바르덴에게 불평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침묵할 생각이오! 바르덴!”
“긴급 소집령에는 마땅한 이유가 따라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바르덴 님.”
“초대 빛의 마탑주가 초대 용사와 인연이 있다고 해서 자신도 같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일세.”
“당신을 존중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마탑주.”
한동안 조용히 침묵하고 있던 바르덴은 충분히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하자 입을 열었다.
“예, 그 말이 맞습니다.”
그의 대답에 시끄러웠던 공동은 오히려 조용하게 변했다.
그들은 마법사.
익히던 학파를 떠나서 그들은 충분한 지식과 침착함을 가진 지식인이었다.
“긴급 소집령을 내리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으면 안 되지요.”
“그걸 알면서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나? 무려 한 달! 아니, 이제는 2주가 더 지나갔다. 그 시간을 낭비하게 만든 근거가 있어야 할 거야.”
파르델은 난폭한 성격답게 험악한 눈으로 바르덴을 노려봤다.
“예, 당연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유를 숨긴 채 긴급 소집령을 내릴 만한 이유가.”
그러나 바르덴은 파르델의 협박에도 눈 한 번 깜짝하지 않고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파르델은 콧김을 한 번 내쉬고는 입을 다물었다. 성격이 폭급하다고 해도 그는 마법사.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그는 바르덴의 말을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이유가 정말 ‘정당’할 때 이야기였지만.
“여러분은 다들 초대 빛의 마탑주가 어떤 분이신지 아시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런 이유를 말해 주지 않았음에도 긴급 소집령에 응한 이유가 무엇이던가.
“초대 용사에게 빛의 지식을 알려 준 여러 스승 중 한 명이자, 고대 제국의 멸망 직전 스스로의 목숨을 희생해 수많은 마법이 끊어지지 않게 만든 분이지요.”
모두 초대 빛의 마탑주를 겉으로나마 존중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현대 마법이 이토록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초대 빛의 마탑주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가 아닌 난폭한 성격으로 유명한 파르델이 긴급 소집령을 내렸다면 이 자리의 인원에 반이나 왔을까.
사분지 일의 인물이 왔다 해도 많이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유지에 따라 저희 학파는 빛을 다루며, 연구하고, 평생 빛이 무엇인지 탐구합니다. 그와 관련된 아티팩트도 많이 있지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의 말을 끊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저 말을 꺼내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어둠에 민감합니다. 정확히는, ‘마기’에 민감하지요.”
-쿵!
“설마….”
파르델은 저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를 보았다.
“예, 맞습니다.”
그들의 명석한 두뇌는 그가 말을 다 끝마치지 않았음에도 결론을 도출한 상태였다.
“저는 몇 달 전 대륙의 두 곳에서 마기를 감지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수많은 사람이 경악하는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
“……!!!”
바르덴은 그들의 반응을 예상했기에 놀라지 않았다. 그저 그들이 들은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못 박았다.
“초대 마왕이 토벌된 이후로 사라졌다는, 마기를 말입니다.”
소리 없는 경악이 공동을 뒤덮었다.
* * *
“다섯 그루의 오동나무의 중앙 아래에 묻힌 목갑…, 찾았다.”
알렌은 목갑 위로 자리한 흙을 털어 내며, 뚜껑을 열었다.
목갑 안에는 진한 푸른빛의 액체가 담긴 유리병이 부드러운 천에 감싸여 놓여 있었다.
“이 비약 효과가 뭐였지?”
-촤르르
알렌이 검은 책을 펼치자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가며 그가 읽었던 부분이 나타났다.
『──율리우스는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지도를 따라….』
“여기는 아니고.”
몇 페이지를 더 넘기자 알렌이 찾던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목갑 안에는 [푸른 유성우(A)]라는 비약이 담겨 있었다. 이 비약은 57년 전….』
비약에 대한 세세한 내용을 건너뛰자, 자신이 알고자 한 정보가 나왔다.
『──비약의 효과는 간단했다. 주변 공간의 마력을 복용자의 몸으로 흡수시키며, 마력 회로를 넓혀 주고 안정시켜주는 역할을…. 』
“…흠, 나한테는 별 효과가 없겠군.”
이미 거인의 신체로 탈바꿈한 알렌에게 마력 회로의 넓이나 마력의 양을 늘리는 건 별 쓸모가 없었다.
“차라리, 친화력이나 감응력을 상승시키는 종류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쓸모없다고 두고 갈 수도 없는 노릇.
자신이 필요 없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필요 없지는 않을 테니까.
“몇 개는 린벨과 이넬리아에게 넘기고, 나머지는 일단 보관하….”
알렌이 품에 목갑을 챙겨 넣으려던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찾았어요! 찾았다고요! 야호! 제가 뭐랬어요!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했잖아!」
하이톤의 잘난 체하는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고풍스러운 검 한 자루가 공중을 날아오고 있었다.
“베스틀라.”
「지도 따위는 읽을 줄 안다고 했잖아요! 왜 의심해요? 나 잘 찾는다니까? 빨리 사과해요! 얼른!」
알렌은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의심해서 미안하군.”
「엣헴! 다음부터 좀 더 주의해요! 누가 지도를 못 읽어요?」
베스틀라는 알렌의 사과에 기분이 좋은 듯 검날을 파르르 떨며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검 자루에는 영약의 위치가 그려진 지도가 끈에 매달려 나풀거렸다.
한참을 그의 주위를 맴돌던 그녀의 시선이 검은 책을 향했다.
「당신은 또 그 책을 봐요? 아무것도 없는 백지 아닌가? 뭔가 내용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글쎄. 잘 모르겠는데.”
「흐음…. 뭐 됐어요. 나 그렇게 집착하는 여자 아니니까 더 묻지는 않을게요. 고맙죠?」
“배려 참 고맙군.”
베스틀라는 책의 내용을 읽을 수 없었다.
정확히는, 모든 책의 내용이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는 백지로 보인다고 했다.
‘나는 내용을 읽을 수 있지만, 제목을 읽을 수 없다.’
하지만 그녀는 제목을 읽을 수 있으나 내용을 읽을 수 없다.
알렌은 이 사실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그녀가 검은 책과 일정 부분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게 정확히 어떤 부분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녀 자신도 모른다고 했으니 스스로 알아내는 수밖에 없겠지.
알렌은 목갑을 찾느라 파낸 구덩이를 자연스럽게 메우며 물었다.
“그래서 뭘 찾아 냈지? 월망초? 부서진 독수리 조각상? 그것도 아니면 동굴이라도 찾았나?”
알렌은 검은 책을 통해 율리우스가 회귀 전 이 시기에 얻었던 물건들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글로 설명되어 있었기에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다.
‘영약이 위치한 곳의 특징이 묘사되어 있었기에 다행이지.’
그 덕분에 가문에 보관되어 있던 지도와 결합시켜 위치를 추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수색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졌다는 것.
이넬리아와 린벨과 헤어진 것도 그러한 연유였다.
‘같이 몰려다니며 수거하기엔 시간이 모자라니.’
함께 돌아다니기에는 돌아봐야 할 곳이 너무 많았다.
이넬리아는 빠르게 이동할 수 있고, 사냥꾼으로 활동한 전적이 있으니 수월하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알렌은 그녀들과 헤어지자마자 참기 힘들었다는 듯 떽떽거리는 베스틀라와 함께 산을 뒤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그녀가 날 수 있었기에 공중에서 수색하기에도 용이했다.
그 와중에 알렌은 검은 책을 눈치 보지 않고 사용할 수 있었다.
그녀는 검은 책의 존재를 알고 있기에 허공을 응시하는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한들 넘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알렌의 물음에 그녀는 셋 다 아니라는 듯 검체를 흔들더니 입을 열었다.
「당신이 지도 위쪽에 엑스 표시한 곳 있잖아요.」
“…엑스 표시?”
지도에는 영약의 추정 위치에 맞춰서 수색 지역만 붉게 표시해 놨을 텐데?
“아니, 설마….”
내심 포기했던 곳이었다.
대부분의 장소가 특정할 수 있는 묘사가 있던 것과 다르게, 놈이 퀘스트 보상으로 공간 이동을 통해 이동한 장소.
그렇기에 이름과 함께 엑스자 표시만 해 뒀던 장소.
“정령의 샘을 찾았다고…?”
「네! 맞아요!」
“…제대로 위치조차 표시 안 되어 있었는데?”
「찾았다니까요? 어후, 역시 저밖에 없죠?」
“아까는 지도를 읽어 찾아냈다고 하지 않았나?”
「에? 어, 어쨌든 찾았으니 된 거 아니에요? 빨리 가기나 해요! 안 갈 거예요?」
알렌은 빠르게 안내하겠다는 둥, 어서 가자고 시끄럽게 소리치는 그녀를 빤히 쳐다보다 답했다.
“…그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정말 정령의 샘을 찾았다면.
“그럼 안내를 부탁하지.”
그녀의 작은 거짓말 정도는 넘어갈 용의가 있었다.
「놓치지 않게 잘 따라와요! 놓치면 두고 갈 거니까!」
알렌은 급히 날아가는 베스틀라의 뒤를 따라 산의 깊은 곳으로 향했다.
엘 라운드의 가까이에 위치한 니케아 산에는 별달리 위험한 것이 없기에 알렌의 발을 막을 수 있는 건 없었고, 둘은 순조롭게 안쪽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쫓아가는 중, 알렌은 문득 떠오르는 궁금증에 그녀에게 물었다.
“정령의 샘은 어떻게 발견했지? 솔직히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