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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34화 (34/212)

제34화

-율리우스! 율리우스! 율리우스!

-와아아아아아!!!

-라인하르트 가문 만세!!

알렌이 지하수로를 빠져나왔을 때는 율리우스와 용병의 결투가 다 끝난 시점이었다.

거리에는 벌써 결투 소식이 파다하게 퍼졌는지 사람들은 연신 율리우스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상당히 볼 만한 볼거리였는지 다들 흥분한 기색.

「어후, 시끄러워라.」

베스틀라는 축제를 돌아보자고 말한 것과는 다르게 시끄러운 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인지 작게 투덜거렸다.

‘…정작 자신이 시끄럽다는 자각은 있을까.’

알렌은 평소에 그녀도 만만치 않다고 대꾸하려는 것을 참고, 곧바로 붙잡아 둔 도적들을 근처에 있던 병사에게 인계했다.

“죽지 않을 정도만 신경 써 주게.”

“옙! 알겠습니다!”

“수로에 놈들의 흔적이 있으니 모두 수거해 오도록 하고.”

“그런데 어디에 있는지는….”

“이 약도를 보고 찾아가면 될 걸세.”

“아! 알겠습니다!”

알렌은 지하수로를 빠져나오며 그려 둔 약도를 병사에게 건넸다. 병사는 경례를 마치고 곧장 상처에 신음하던 도적들을 끌고 갔다.

그들은 최소한의 치료를 받고 심문을 받게 되리라.

「당신, 이번 일 끝마치면 당분간은 시간 있다고 했죠?」

“아마… 그럴 거야. 그런데 왜?”

「흠흠, 아무것도 아니에요.」

“싱겁기는.”

알렌은 빠르게 저택으로 향했다.

율리우스, 놈이 낯짝을 환하게 빛내며 공로를 자랑할 테니 자신도 그에 걸맞은 공적을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 * *

며칠 후 사건의 전말이 모두 드러났다.

용병대장은 율리우스의 협박에 의해 광장의 단상 위에서 모든 진실을 실토했다.

그는 대중의 앞에서 굴욕감이 넘치는 얼굴로 자신이 비밀리에 받은 의뢰가 있음을 자백했다.

“그럼 그, 뭐야. 율리우스 도련님께 가족을 잃었다는 놈들은 뭐지?”

“그것도 거짓말이다.”

그가 데려온 피해자들은 악의적인 날조와 선동으로 데려왔다고, 실제로 율리우스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거기에 더해서 일부로 도시의 이목을 끈 사이 지하수로를 통해 도적 떼가 저택을 습격할 예정이었다고 털어놓자, 어마어마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거, 괜찮나?

-우리도 위험한 거 아냐?

영지민들도 혼란스러워하며, 갑작스러운 고백에 불안감이 싹트던 그때.

“알렌 공자님께서 도적 떼를 토벌하셨다!”

미리 불온한 분위기를 감지한 알렌이 직접 도적단을 토벌했다고 공표하자, 들끓던 소란이 일시에 가라앉으며 영지민들은 안도했다.

-역시 알렌 공자님…. 그분이라면 그럴 줄 알았지.

-두 공자님 모두 훌륭하시니, 백작님께서는 좋으시겠군.

-축제를 망치기 싫다는 마음으로 알렌 공자님 홀로 도적을 토벌하시다니….

그 사실에 억지로 진실을 고백하던 용병대장의 얼굴도 허탈하게 변했다.

계획했던 모든 일이 실패로 돌아가자 더 이상 빠져나갈 틈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리라.

허망한 얼굴을 한 그에게 마지막으로 사건의 주동자가 누군지 묻자 그는 아무런 저항 없이 의뢰를 내린 귀족의 이름을 내뱉었다.

가이엘은 용병대장이 대중 앞에서 진실을 토해 내기 무섭게 곧바로 병사와 함께 기사를 출격시켰다.

주동자는 허무하리만큼 쉽게 잡혀 왔다.

“놓, 놓아라! 내가 누구인지 알고 이러는 것이냐!”

그의 정체는 몇 해 전 몰락 귀족으로 강등된 이였다.

그는 보고에 있는 특별한 물건을 훔쳐 온다면 천문학적인 금액을 보상으로 받기로 약속받았다고 했다.

“너에게 그런 의뢰를 한 사람은 누구지?”

“그, 그건 얼굴은 보지 못했….”

가이엘은 그가 붙잡혀 오기 무섭게 그를 처형했다.

처형할 이유야 충분했다.

축제에 소란을 일으키고, 평판을 떨어트리기 위해 모략을 꾸몄다는 명분이었으니.

그리고 그는 왕국법으로 보호되는 귀족이 아닌 몰락 귀족.

백작령에서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배, 백작님. 실수하시는 겁니다. 저를 처형하신다면 후회하….”

-서걱

용병대장을 비롯한 용병들도 그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저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제발, 제발!”

“대, 대장. 이번 건만 터트리면 된다고 했잖아!”

애원과 절망 그리고 원망을 쏟아 내며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은 정의가 승리했다며, 가문을 칭송하며 축제를 즐겼으며.

생각이 있는 자들은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을 주위로 떠벌렸고.

깊게 생각하는 자들은 백작가의 보고를 습격한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에 입을 다물었다.

수확제는 다시 재개되었고, 이번 습격을 통해 백작가가 아직 건재함을 주위로 보여 줄 수 있게 되었다.

거리에는 연신 율리우스와 알렌의 이름이 울려 퍼졌고, 영지민과 여행자들은 즐겁게 축제를 즐겼다.

그리고 그 와중에.

끼익-

잊힌 자들이 있었다.

기름칠 되지 않은 경첩이 비명을 지르며 열린다.

간수는 문을 열었던 열쇠를 회수하고는 어둠 속을 바라보며 말했다.

“에라이, 멍청한 놈들, 그걸 속으면 어떡하나? 쯧쯧.”

“에혀, 그만해. 속인 놈들이 나쁜 거지.”

다른 간수가 그만하라고 말리자, 한참을 작게 구시렁거리던 그는 짜증 난 얼굴로 외쳤다.

“그것도 그렇긴 한데…. 쯧, 됐다. 얼른 나오기나 해!”

저벅저벅-

며칠 전까지만 해도 죽은 가족들의 복수를, 정당한 죗값을 받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자신은 계략에 속아 넘어간 멍청한 얼간이가 되었고, 기껏 저지른 행동은 어리석은 짓이라 손가락질 받았다.

결국엔 율리우스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

“그나마 율리우스 공자님께서 선처해 주셔서 다행이지. 다른 귀족이었으면 모두 사형이야, 알아?”

“그만해, 그만. 이놈들이 뭘 알겠나.”

“쯧.”

혀 차는 소리에 몸이 움츠러든다.

칼론은 작은 고개를 들어 같이 있던 어른들의 표정을 살폈다.

같은 아픔을 공유했으니 동지라고, 할 수 있을 거라고 하던 그들의 표정이 어둡게 물들어 있었다.

‘아칸 형이 분명히 잘 될 거라고 했는데….’

춥고 어두운 쇠창살 속에 있었지만 며칠 전까지만 해도 희망이 있다고 말해 주던 어른들이었다.

그런 어른들의 얼굴이 잘못이라도 한 듯 겁에 질려 있었다.

“빨리빨리 걸어!”

주춤대던 이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칼론은 그들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끼익-

앞장서던 간수가 육중한 문의 잠금쇠를 돌렸다.

쿵-

육중한 문을 열고 나니 신선한 공기와 따뜻한 햇볕이 그를 맞이했다.

“앞으로 거짓말하지 말고, 조용히 살도록 해. 괜히 이번처럼 나대지 말고. 어?”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이뤄진 게 없었다.

거리로 내몰린 그들은 해산시킬 필요도 없이 각자 뿔뿔이 흩어졌다. 칼론은 거리에 가득한 활력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다.

허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형에게 돌아가야지.”

힘없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그의 뒤로, 조용히 발걸음이 따라붙었다.

* * *

라인하르트 가문에는 여타의 다른 가문처럼 집사를 배양하는 가문을 대대로 가신으로 삼아 데리고 있다.

어릴 적부터 시킨 체계적인 교육.

세뇌하다시피 주입하는 충성심.

가문 대대로 쌓아 온 노하우.

가문에서 여러 업무를 맡는 집사는 이렇게 지속해서 만들어져 왔다.

그러나 간혹, 한 번씩 외부인을 집사로 채용하기도 했다.

총집사 가델.

그도 그렇게 외부에서 들어온 집사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수십 년을 가문에 바치면서 단 한 번의 문제도 일으킨 적이 없는 우수한 집사였다.

지금은 늙어 직접적으로 움직이기보다는 총집사의 직책을 맡아 한 발자국 물러난 위치에 있지만, 누구도 그를 무시하지 않았다.

심지어 외부에서 왔다고 무시하는 이보다 공경하는 인물이 더 많았다.

“히야넬, 몸가짐이 더 좋아진 것 같군요. 이제 신입 티는 벗어난 것 같습니다.”

“비든, 아프다던 형은 괜찮습니까? 제가 준 약초는 잘 사용했고요? 다행입니다.”

“티냐. 오늘따라 더 아름답군요. 카인과는 관계는 잘 되고 있나요?”

가델은 인자하게 웃으며 복도를 걷다 마주치는 모두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의 친절한 성격과 자애로운 성품은 저택의 하인들에게 있어 친조부나 마찬가지였다.

저택에서 그를 나쁘게 말하는 이가 한 명도 없을 정도였다.

그는 그렇게 천천히 걸어 어느 방으로 따듯하게 웃으며 걸어 들어갔고.

-철컥.

문이 닫힘과 동시에 그의 얼굴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무표정하게 변했다.

방에는 선객이 먼저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늦었네?”

허리까지 내려온 와인색 머리와 아름다운 미소. 나이를 먹었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충분한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녀의 질책에 가델은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엘리자 님. 알렌 공자님께서 그렇게 성장하셨을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알렌이? 흐음, 수련하러 돌아왔다더니 그렇게 컸다고?”

그가 늦게 들어왔을 때까지만 해도 차갑게 가라앉아 있던 그녀의 눈은 알렌의 이야기가 나오기 무섭게 살짝 풀어졌다.

“예, 한순간이나마 제 비전을 뚫고 저를 감지하는 데 성공했지요. 제가 아닌 다른 아이들이었다면 필히 들켰을 겁니다.”

알렌의 압도적인 성장에 한순간이나마 긴장이 풀어졌다. 그러나 그 찰나의 틈에 그를 발견할 거라고는 가델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옛날에 암왕 중 한 명이었던 그를 찾아냈다니.

“…그래?”

엘리자는 놀라운 얼굴을 하다가, 한 달 전에 만났던 그를 떠올리고는 입술을 삐죽였다.

“일주일에 네 번은 만나러 온다더니, 결국 찾아오지도 않고.”

“외람되오나, 엘리자 님.”

“응?”

“알렌 공자님의 갑작스러운 변화가 의심스럽습니다. 혹시 공자님도….”

“아니야.”

그녀는 곧바로 가델의 의견을 부정했다.

‘알렌이? 글쎄…. 처음에는 조금 의심했는데….’

엘리자는 알렌과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알렌은 율리우스 같은 경우가 아닐 거야.”

그걸 확인하고자 알렌을 불러들였고, 모든 걸 확인했다.

그의 버릇, 말투, 어조, 가치관, 성격까지. 그녀가 알던 것과 조금씩은 달랐으나, 그건 알렌이 확실했다.

그것도 확실하지 않아 린벨과 이넬리아를 가르친다는 핑계로 곁에 두며 많은 것을 알아낸 상태였다.

순진한 그녀들은 자신들이 알렌의 정보를 내뱉었다는 것도 모를 터.

설사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엄마가 자식 이야기 좀 듣는 게 어때서.’

그녀의 확답에 가델은 아무런 반론 없이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확고한 증거가 있었을 테니.

“알렌은 됐고, 율리우스 쪽은…?”

“율리우스 공자님은…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몇 달 전과 비교해서 모든 게 달라진 상태입니다.”

미묘한 발걸음의 변화, 음운의 높낮이, 무의식적인 버릇, 그의 취향까지.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단서일지 몰라도, 그와 같은 암살자들에게는 커다란 증거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확실히 단언할 수 있었다.

“율리우스 공자님은… 다른 사람입니다.”

가델의 높낮이 없는 보고에 엘리자는 눈을 감았다. 많은 감정이 소용돌이쳤으나, 그걸 내색하지 않았다. 아직은, 아직은 때가 아니야.

“그럼…, 율리우스, 아니 놈에게 이번에 수작을 부린 놈들은 찾았어?”

“…죄송합니다. 아이들을 총동원해서 뒤를 추적했으나, 명령을 내린 것으로 보이는 덜떨어진 귀족 하나밖에 찾을 수 없었습니다.”

“너희들이라도?”

“동조한 걸로 보이는 인물 몇을 찾아냈으나, 그들도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였습니다.”

“일을 꾸민 주동자는 찾아낼 수 없다고? 가델, 내게 네 가치를 낮추게 하지 말아 주렴.”

그 말에 가델은 더욱 깊게 고개를 숙였다.

“다행히 단서를 찾아 뒤늦게 추적에 나섰습니다만….”

“다만?”

“대사막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입가에 헛웃음이 나왔다.

“대사막이라, 대사막… 그렇다면 그들은.”

갈슈딘 아카데미와 관계된 자들이겠지.

엘리자는 왜 추적을 그만둔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카데미는 인류 기술의 총채가 담긴 곳.

심지어 상시 팔강 중 두 명이 상주하는 장소였으니 그가 멈춘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목숨이 아까운데 누가 그곳에 침입할 생각을 할 수 있겠나.

“그리고….”

“응?”

그녀가 그를 바라보자, 가델은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도적 떼의 실력이 제 예상을 상회했습니다. 아마, 습격이 그대로 진행되었다면….”

제 정체가 드러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가델은 자신의 예상을 과장 없이 고했다.

엘리자는 그가 멈춘 뒷말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행동을 이해했다. 이게 본래 그의 성격이었으니. 확신이 없으면 나서지 않는다.

그것이 암왕 가델의 본질적인 성격이자 그것이 그와 그녀의 약속이었다.

의아한 사실은 따로 있었다.

“네가 한 번에 처리하지 못할 만큼 강했다고?”

“아닙니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는 수십 명을 동시에 죽일 수 없었습니다.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이 엘리자 님께서 저와 하신 약속이었으니 말입니다.”

가델의 냉정한 말에도 엘리자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저런 조건 덕에 암왕 중 한 명을 수십 년간 보이지 않는 검으로 활용할 수 있었으니, 그의 말은 옳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이번에는 사건의 흑막을 추적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빠졌으니까.”

그게 아니었다면 알렌이 나설 필요도 없이 도적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모두 예상한 존재가 있다는 걸까….’

엘리자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아들도 변하고, 남편도 변했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누구도 모르게 자신의 주변을 이용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더 이상 가만히 있을 필요가 있을까.

“가델, 초대장을 보내.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야겠어.”

돈은 ‘새 아들’이 많이 벌어 뒀으니, 꾸미는 데 부족하지는 않겠지.

새엄마 역할을 해 줬으니 이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겠니?

“사교계라… 얼마 만이야.”

홀로 무언가를 할 수 없다면,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그녀가 손을 휘젓자, 가델은 조용히 방을 빠져나갔다.

혼자 남은 엘리자는 조용히 팔걸이를 쓸었다.

머릿속에는 여러 광경이 떠올랐다.

행복했던 일상, 안온한 하루, 반복되는 매일. 이제 그런 일상은 무너졌다.

‘…율리우스.’

이제부터 바쁘게 움직여야겠지.

사교계를 들락거리고, 사치를 보이며, 은밀히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러니 오늘은.

도시 전역에서 벌어지는 소란과 관계없이 그녀 주위는 고요하게 물들었다.

마치 폭풍이 몰아치기 전의 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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