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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33화 (33/212)

제33화

고대 제국은 얼마나 발전된 문명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걸 말하기 위해서는 하룻밤 동안 이야기해도 모자르나,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었다.

[인류의 모든 도시는 고대 제국의 잔재 위에 세워졌다.]

이 문장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직접적인 사실을 나타내기도 했다. 대부분의 도시는 제국의 잔재 위로 재건되었다.

당연했다.

현재보다 발전된 기술로 건설된 시설들은 많은 이득을 안겨 주었으니.

수도관과 하수 정화 시설에서부터,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포장도로와 튼튼한 성벽, 그리고 다리까지.

조금 보수하기만 해도 충분히 이용 가능한, 아니 새로 만드는 것보다 훨씬 유용한데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가문에서 직접 다스리는 도시, 엘 라운드도 마찬가지였다.

엘 라운드의 지하에는 지하수로가 있다.

광활한 넓이의 지하수로는 앞으로 몇백 년 동안 도시를 확장해도 무리 없을 정도의 포용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누군가 작정하고 숨으면, 웬만해서는 찾기 힘들 정도로.

그렇기에 안심했을 것이다.

“습격이다! 습격…, 커억.”

자신들은 안전하다고.

누구도 모르게 은밀히 숨어들었다고.

“두목, 두목! 빨리 어떻게 좀…. 아악!”

“사, 살려 줘. 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 했….”

퍽!

습격은 분명히 성공할 것이라고.

“뭐 하는 놈… 켁.”

확실히 그랬을 것이다.

“정신 차리라고! 어차피 놈은 한 명….”

“두목! 빨리 저놈을 해치우십…!”

알렌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퍼석!

검면으로 머리를 후려치자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며 뇌수를 흩뿌렸다. 알렌의 접근조차 알아채지 못한 도적은 그렇게 삶을 마감했다.

얼굴을 적시는 핏물 덕분일까, 옆의 도적은 급히 방패를 들어 올릴 수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푸슉!

알렌의 검은 놈의 방패를 부드럽게 통과해 머리를 꿰뚫었다. 도적은 단말마조차 내뱉지 못한 채 고꾸라졌다.

“으아아아아!

알렌이 검을 회수하는 틈을 타 기습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알렌은 방패에 검을 꿰뚫린 그 상태로 팔을 크게 휘둘렀다.

-우드득

몸이 빙그르 돌아가며 화살보다 빠른 속도로 검이 원을 그렸다.

“크엑, 카악….”

“크아아아악!”

“파, 팔이…, 으아아아!”

결과는 참혹했다.

원 안에 위치했던 도적들은 각각 신체 어디 한 곳이 잘려 피 분수를 뿜어냈고, 근처에 위치한 도적들은 살이 뭉텅이로 파여 신음을 흘렸다.

알렌은 연습 상대조차 되지 못한 상대에게 약간의 허탈감을 느꼈다.

‘고작 이런 놈들에게 당했나.’

아니, 마력을 어느 정도 다룰 수 있게 되니 스스로가 지나치게 강해진 탓이리라.

웬만한 적들은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나, 나는 못 해. 이런 괴물이 있다는 말은 없었잖아!”

그렇게 다시 움직이려던 때, 도적 한 명이 겁에 질린 얼굴로 소리치고는 곧바로 몸을 돌렸다.

“나, 나도!”

“보물은 지, 지랄, 목숨이 먼저지.”

놈이 도망치기 시작하자, 눈치를 보던 놈들도 냅다 도망가기 시작했다. 도적들 따위에게 의리가 있을 리 없으니 당연한 결과.

알렌은 개미 떼처럼 흩어지는 놈들을 보고 피식 웃었다.

“도망칠 수 있으면….”

도망쳐 보라지.

알렌은 신체의 활력을 담아 강하게 땅을 박찼다.

쾅!

“어? 아?”

제일 먼저 도망치던 도적은 순식간에 알렌이 자신의 앞에 다다르자 얼빠진 얼굴이 되었다. 자신이 본 것이 맞는지 알 수 없는 표정.

그러나 알렌은 도적놈이 어떤 표정을 짓던 상관하지 않고 붙잡아서 바닥에 메다꽂았다.

-뿌드득!

사람이 땅에 박혀 한 그루의 나무로 변하는 걸 본 도적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머리부터 떨어진 도적의 머리는 사과처럼 터져 나가며 하얀 속살을 내보였다. 머리를 잃은 몸은 잘게 경련했다.

도적의 몸이 천천히 옆으로 무너져 내리자, 상반신이 으깨져 누군지 알아볼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으아아아아아! 살려 줘!”

“두목! 제발, 제발 두목 살려 줘!”

그들이 두목을 부르며 소리쳤으나, 이미 그는 어디로 갔는지 꽁무니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

‘이놈들도 밖에서는 어느 정도 악명이 있을 텐데….’

그에게는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보다 못했다.

이제 어느 정도 강해졌는지 슬슬 자각했으니 더는 끌 필요 없었다.

‘하나 잊은 게 있던 것 같은데….’

「당신, 검술 연습 안 해요? 나한테 검술 배우기로 약속했잖아!」

“아.”

그랬었지.

「언제 하나 쭉 보고 있었는데, 무식하게 움직이기나 하고! 빨리 움직여 봐요! 봐줄 테니까.」

“그래, 이제 도적놈들도 찾았으니….”

노력해 보지.

쓰레기 청소를 마무리할 시간이다.

* * *

“이제 얼추 다 정리했나….”

알렌은 칼날에 묻은 핏물을 털어 내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의 주위에 살아 있는 도적은 두세 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들도 최소한 어느 한군데가 짓이겨져 끔찍한 신음을 흘렸다.

「아직 세심한 힘 조절은 힘들죠? 그러게, 내가 뭐랬어요. 검술 좀 빡시게 하자니까?」

알렌이 검을 놓자, 베스틀라는 혼자서 공중에 두둥실 떠올라 알렌의 곁을 맴돌았다.

“나 정도면 방금 괜찮지 않았나? 제법 깔끔한 베기였던 것 같은데….”

「누가 그렇게 큰 동작을 한다고 해요! 그 사이에 누가 들어왔으면 어쩔 거야!」

“아니, 제법 괜찮은 공격이었는….”

「절대 아니거든요? 당신 검을 배우고 싶은 거 맞아요? 무식하게 힘으로 토막 냈잖아!」

알렌은 반박하고 싶은 마음을 참고 조용히 수긍했다.

“…그래, 다음부터는 참고해 보지.”

「참고만으로는 부족해요. 이제 할 일도 없죠? 그럼 하루 종일 연습이나 해요!」

베스틀라는 젠체하는 목소리로 그의 눈앞에서 촐랑거렸다.

알렌은 그녀의 목소리를 반쯤 무시하며, 눈을 감았다.

순식간에 감지력이 퍼져 나가며 수백 미터의 범위가 세세하게 머릿속에 박혀 들었다.

‘도적 두목은 벌써 저 멀리까지 갔나? 평범한 마법사였으면 여기에서 그만뒀겠지만….’

자신의 한계는 고작 이 정도가 아니었다.

감지력이 빠르게 확장되며 더 멀리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1km, 2km, 3km…

머리가 홍수처럼 밀려들어 오는 정보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두통이 일 때쯤, 감지 범위의 끝에서 놈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앗! 당신 코피 나요!」

“아….”

입가로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알렌이 얼른 감지력을 회수하자 머리가 깨질 것 같았던 두통이 사라졌다.

‘사용할 수 있는 마력과 감지 범위가 늘어난 건 좋은데….’

몸이 버티질 못하는군.

용의 노심을 거인의 육체를 이용해 버틸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정작 그 몸의 주인의 역량이 떨어져 잠재력을 모두 발휘할 수 없다니, 이 얼마나 웃긴 말이란 말인가.

‘이래서 위계를 차근차근 높이는 건데.’

실력은 그대론데 경지만 널뛰듯 올라갔으니.

얼른 지식과 실력을 더 쌓아 신체와의 불균형을 해소 해야 될 필요성이 있었다.

언제까지 보물을 썩힌 채로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

「괜찮아요?」

“안 괜찮을 것도 없지. 이 정도면 과분한 힘의 대가로 가벼운 편인데.”

알렌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하고는 얼른 마지막 흔적이 느껴지던 곳으로 달렸다.

「어디 가는 거예요?」

“쥐새끼 한 마리가 도망쳐서 말이야. 비겁하게 부하까지 다 버리고 가더라고.”

그 덕분에 쉽게 각개격파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대장 노릇을 한 주제에 도망쳤단 사실에 혐오감이 들었다.

「당신 조금 쉬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아니, 괜찮아. 여기서 시간을 더 지체하면 놈을 놓칠 수도 있으니….”

더 빠르게 가야겠군.

‘도적 몇 명보다 대장을 붙잡는 게 낫겠지.’

놈은 저택을 습격하려 했다는 증언을 위해 붙잡아 둘 생각이었으니까.

알렌은 속도를 더 높였다.

* * *

크로겐은 심장에 박아 넣은 광폭화 장치까지 과부하 시키며 몸을 날렸다.

내딛는 걸음에 바닥이 부서지며 돌조각이 흩날렸고, 그의 몸 주위로 옅은 흰색 막이 빛을 내며 감싸 안았다.

“제기랄, 제기랄.”

이럴 수는 없었다.

한 번 망했던 도적단을 재건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나.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찬란했던 그 시절을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

“그딴 괴물이 와서는…!”

크로겐은 알았다.

한 명의 초인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그렇기에 알렌이 자신의 반응 속도를 넘어서 부하의 골통을 깨부쉈을 때, 곧바로 단념하고 도망쳤다.

자신의 도적단이 한 번 그렇게 망했는데.

또 그렇게 망하다니.

“으아아아아아!!!”

성질에 못 이겨 내지른 소리에 놀라 멈칫했지만, 이미 흔적을 쫓을 수 없을 정도로 멀리 왔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그렇게 나아가던 중, 사람이 없어야 할 지하수로의 길 위로 한 노인이 보였다.

짙은 흰머리와 자글자글한 주름을 가지고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노인.

노인의 모습은 누가 보기에도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이질감이 들 만한 모습이었으나, 분노로 눈앞이 물든 그에게는 알아차릴 정신이 없었다.

그저 분풀이 대상이 필요할 뿐.

생각은 죽인 후에 해도 늦지 않다.

판단을 마친 크로겐은 잠시 후에 들릴 비명을 기대하며 뾰족한 가시가 박힌 몽둥이를 내려쳤다.

아니, 내려치려고 했다.

“…아? 이게 무…크엑.”

푸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도 못한 채, 목이 떨어져 내렸다.

그제서야 눈앞의 노인 또한 알렌과 같은 초인임을 알아차렸지만 이미 늦은 상황.

“…끄르륵.”

-쿵

악명 높은 도적단을 이끌었던 두목이라는 명성과는 다르게 허무한 최후였다.

노인은 그가 쓰러지던 그때까지도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알렌은 마지막으로 도적단을 이끌던 대장의 흔적을 찾았던 장소에 도착했다.

「여기예요?」

“그래, 분명 이곳인데….”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는데요?」

“그래, 그렇지.”

찍찍거리는 쥐와 천장에서 노려보는 박쥐. 어디선가 샌 하수관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통로를 울렸다.

분명히 누군가가 지나간 흔적은 있었지만, 그 흔적은 어느 순간부터 뚝 끊겨 있었다.

한순간에 갑자기 증발해 버린 것 같이.

기묘할 정도로 아무런 전조도 없이 자취를 감춘 도적.

몇 번이나 보았던 지하수로의 광경만이 그를 반겨줬다.

‘게다가 이 방향은….’

도적들이 원래 향하려던 장소가 아니었나?

알렌이 눈을 감고 다시 감지력을 뻗었다. 알렌을 중심으로 수백 미터의 범위가 세밀하게 감지되며 정보의 홍수가 밀려들어 왔다.

‘이 정도는 버틸 만하군. 조금만 더….’

그렇게 조금씩 감지 범위를 넓히던 때.

“…!!”

무언가, 아니 누군가를 발견했다.

타닥-

앞으로 달렸다. 인기척은 그대로였다. 왜 도망가지 않지? 놈이 아닌가? 그럼 또 누가….

‘직접 알아내면 되겠지.’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한 번만 꺾어서 가면….

“저, 적이닷!”

“…랫맨?”

감지력을 다시 퍼트렸으나, 그가 느꼈던 인기척의 정체는 지하수로에서 흔히 서식하는 랫맨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왜 갑자기 뛰어가요? 여기에 뭐가 있어요?」

그의 뒤를 따라 날아온 베스틀라가 묻자 알렌은 놓친 게 없는지 다시 세밀하게 살펴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잘못 느낀 모양이군.”

하지만, 순간적으로 느꼈던 그건 분명 인간이었는데….

「당신이 착각한 거 아니에요?」

그의 이상한 기색에 베스틀라까지 그렇게 소리치자 알렌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잘못 느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누가?

“우선, 돌아가지. 안타깝지만 도적 두목은 운 좋게 도망가는 데 성공한 모양이군.”

「당신 괜찮아요? 그 도적 대장 없어도 돼요?」

“사건의 주동자를 잡는 게 제일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증언할 놈들은 살려 뒀으니 아버지도 수긍하겠지.”

알렌은 천천히 물러나면서도 감지력을 집중시켜 이상이 있는지 살폈다.

그러나.

“착각이었나.”

끝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돌아가지. 기껏 살려 둔 놈들이 죽으면 이도 저도 안 될 테니.”

알렌의 어조에 일말의 아쉬움이 묻어난 탓일까, 그녀는 활기차게 소리쳤다.

「그럼, 빨리 가요! 저도 추수 감사절인가 뭔가 한번 보고 싶으니까요!」

알렌은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일부로 목소리를 높이는 그녀를 보고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고맙다.”

「당신 때문에 그렇게 한 거 아니거든요!」

통로를 돌아섰다.

가까운 하수도의 입구가 가까이에 있었다.

-스르륵

지상으로 향하는 그의 뒤로 검은 그림자가 잠시 꿈틀거리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잠잠히 변했다.

하수도는, 언제나처럼 잔잔한 적막함만이 감돌았다.

* * *

섬광이 떨어져 내린다.

쿠르르르릉-

뒤늦게 소리가 하늘에서 떨어진 번개를 뒤쫓아 굉음을 울렸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건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일 터.

율리우스가 검을 휘두르자 하늘에서 두 갈래의 번개가 용병대장의 머리로 떨어져 내렸다.

용병대장은 급히 몸을 움직였지만, 떨어지는 낙뢰를 피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고.

“끄아아아아!!”

쿠웅-

검은 숯덩어리가 되어 바닥에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와아아아아-!”

“율리우스! 율리우스! 율리우스!”

환호 소리가 몰아치며 결투의 승자가 결정되었다.

율리우스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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