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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31화 (31/212)

제31화

율리우스는 도시를 다스리는 가문의 차남으로서 축제를 시찰하기 위해 레니아와 함께 저택을 나섰다.

축제는 그가 현대에서 기억하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의 웃는 소리가 들린다. 주민들은 추수의 기쁨을 즐기며 술을 나눈다.

여러 곳에서 몰려든 상인들의 흥정 소리가 거리를 가득 채웠고, 현대에는 없는 물건들이 거리에 즐비했다.

현대에서 보았던 화려함은 없었지만, 특유의 활달함과 소란스러움은 그가 살았던 현대와 뒤떨어지지 않았다.

즐겁고 흥겨운 분위기.

그의 발걸음이 한층 가벼워지며, 축제로 한창인 도시의 거리를 거닐었다.

“도련님, 이제 돌아가시는 것이 어떠신가요? 바람이 차갑습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축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평소보다 많은 병사들이 순찰을 도는 탓일까,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일이 있었어도 크게 번지는 일은 드물었다.

“슬슬, 그렇게 할까.”

율리우스는 여러 문명의 잔재가 섞인 거리를 바라보며 레이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가 저택으로 돌아가던 중, 작달만 한 인형이 그에게로 달려왔다.

퍽-

율리우스가 고개를 내리자, 이제 얼추 10살쯤 되었을 아이가 그에 앞에 쓰러져 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무지개 마안을 사용했다.

‘남색.’

쯧, 쓸모없네.

율리우스는 속마음이 어떻든 겉으로는 친절한 모습을 연기하며 손을 내밀었다.

“괜찮느냐? 그러니까 조심해야지. 축제라고 뛰어다니면….”

“이, 이 나쁜 놈!”

움찔-

순간적으로 미소 짓던 얼굴이 깨질 뻔했다. 뭐라고? 아이의 목소리가 조금 컸는지 주변에 있던 행인들의 시선이 몰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빠가! 너 때문에! 너 때문에 죽었어!”

아이가 소리친다.

-둘째 공자님인가? 다시 바뀌셨다고 했는데….

-에이…. 사람이 한순간에 바뀌나? 지금까지 참은 거겠지. 또 돌아왔구먼.

-가짜 아냐? 허풍도 정도껏 해야지, 참.

-뭐라고? 이 새끼가.

율리우스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수군거림에 짜증이 치밀었다.

‘이번에는 또 뭔데? 하.’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상황은 익숙했다. 이미 몇 번이나 겪어 본 일이다.

자신이 바뀌었다고 아무리 소리친들, 믿지 못하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었으니. 그렇기에 율리우스는 당황하지 않았다.

도리어 연습했던 친절한 미소를 내보이며 답했다.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나쁜 놈이라는 것이냐.”

이번에도 평소처럼 해결하면 되겠지.

“무슨 일인지 알려 줄 수 있을까. 네 말이 사실이라면 직접 사죄하마. 설령, 착각했다고 한들 너를 처벌하지 않겠다.”

조금 숙연한 얼굴로 아이를 내려다보자, 주변인의 시선이 새롭게 바뀌는 것이 느껴진다.

-봐봐, 내 말 맞지? 다른 귀족이었으면 처형했을 텐데.

-저분 망나니 아니었나? 소문과 꽤 다른데….

율리우스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아이와 눈을 마주치자,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했다.

아이는 그가 그렇게 행동할 줄 몰랐다는 듯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이를 악물고 더 크게 외쳤다.

마치 그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것처럼.

“우리 아빠가! 우리 아빠가 너 때문에! 죽었어!”

“내가 직접 확인하겠다. 병사들을 시켜 확실히 조사….”

본래 몸의 주인이 저지른 일이라면 보상해 주면 될 일이고, 거짓이라 해도 아이를 용서해 줌으로써 아량을 보여 줄 수 있다.

‘생각해 보면 나쁘지만도 않은가.’

대충 그런 생각을 하며 말을 이어나가던 때, 허름한 기색의 옷을 입은 사람 몇 명이 더 그의 주위로 달려 나오더니 그를 에워쌌다.

“공자님 때문에 저희 딸이 죽었어요…. 흐흑, 그런데 왜, 왜….”

“이 망나니 놈! 네놈 때문에 아들의 팔이 걸레짝이 되었는데!”

“어머니가 도련님 때문에 죽었습니다! 도련님만 아니었으면, 아니었으면…!”

율리우스는 갑작스럽게 진행되는 상황에 혼란스러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이건 뭐….”

이놈들은 어디에 있다가 튀어나왔단 말인가.

레이나의 얼굴을 돌아보자, 그녀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짓쳐들어오는 짜증과 귀찮음을 내리누르고 입을 열었다.

“만약, 정말 내 탓이면 진심 어린 사죄를….”

“공자님!”

그러나 율리우스가 말을 끝마치기 전 병사들이 나타났다.

‘눈치도 없나?’

율리우스는 말이 몇 번이나 끊어져 심기가 불편했지만 그걸 드러낼 수는 없었다.

축제라 평소보다 배는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상황.

겨우 망나니라는 오명이 벗겨져 나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권위로 찍어 누르고 싶었다.

그러나 평소보다 배는 많은 주민들이 지켜보는 상황. 마음대로 행동하기에 상황이 좋지 않았다.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병사들은 소란을 보고 받고 곧바로 달려온 듯싶었다.

“이놈들! 감히 공자님 앞에서, 거짓을 고하다니 용서하지 않겠다!”

병사는 율리우스를 힐끔거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은 최근 이름을 높이는 그의 눈에 들기 위해 그들을 끌고 갈 것처럼 위협했다.

율리우스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행동하는 그들의 작태에 입을 열기도 전, 먼저 끼어드는 이들이 있었다.

“잠깐 멈추시오!”

통일되지 않는 복장과 중구난방인 장비들.

험악한 인상을 자랑하는 그들은 용병이었다.

“아니…!”

그들은 율리우스가 입을 열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듯 크게 외쳤다.

“어딜 약자들을 핍박하는 거요!”

마치 다른 사람들이 다 들으라는 듯.

“망나니 이름값 한 번 제대로 하는구만!”

그들이 크게 소리치며 난입하자, 약속이라도 한 듯 병사들에게 위협받던 주민들은 용병의 뒤로 몸을 숨겼다.

“그냥 보고만 있으려니 참을 수가 있어야지. 이제부터 이들은 우리 레베크 용병단에서 보호하겠소!”

병사들은 갑작스러운 용병의 난입에 반응이 늦어 버렸고, 움직일 새도 없이 두 집단이 대치된 형국으로 변해 버렸다.

“아니, 잠깐. 너희가 누구기에….”

제멋대로 진행되는 상황에 불쾌감을 느낀 그가 소리치려던 때, 먼저 그의 어깨를 짚는 손길이 있었다.

“공자님.”

“레이나.”

“…주변을 한 번 살펴보시지요.”

그녀의 말에 따라 기감을 퍼트리자, 더 많은 인파가 이곳으로 몰리는 것이 느껴졌다.

“씹….”

미담으로 조용히 수습하기에는 이미 늦었구나.

“우선, 먼저 소란을 가라앉히는 것이 어떤지요.”

“…그게 좋겠네.”

율리우스는 발걸음을 돌리기 전, 마안으로 그들을 살펴봤다.

남색, 남색, 보라색, 남색, 파랑색.

‘조연도 안 되는 쓰레기들이.’

멈춘 걸음을 다시 내디뎠다.

“이런 씨-”

“망나-”

“이거 놔-”

뒤에서는 그를 원망하는 소리와 용병들이 의기양양하게 소리치는 것이 들려왔다.

‘우연인 것 같지는 않은데….’

저택으로 향하는 그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 * *

“하하, 들어가십시오. 알렌 공자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니, 나야말로 상단주 덕분에 정보를 들을 수 있었군.”

알렌이 구했던 상단의 상단주는 극진히 고개를 숙였다. 그의 곁에서 용병들은 힐끔거리기만 할 뿐 따로 말을 거는 이들은 없었다.

당연했다.

무려 이 땅을 다스리는 가문의 적자, 자신들과 같은 자리에 있었다고 한들 그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다.

“그런데, 공자님 혹, 다른 물건이 필요하신 건 없으십니까? 말만 해 주신다면 제가….”

“아니, 됐네.”

알렌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상단주는 이렇게 찾아온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 한 번 더 끈질기게 입을 열었다.

“그러지 마시고 공자님….”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네.”

“혹시 이 리네브산 보석이….”

상인은 급한 마음에 입술을 깨물고, 앞서 걷는 알렌의 어깨를 잡았다.

“그만.”

알렌이 차가운 눈으로 그의 손길을 쳐 내자, 상단주는 그때가 돼서야 자신이 선을 넘었음을 깨달았다.

높은 등급의 용병도 구할 돈이 없어 도적 떼한테 당할 뻔했다.

그렇기에 잘하면 귀족에게 선을 댈 수 있다는 생각에 눈이 멀어 버렸다.

그는 곧바로 넙죽 허리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공자님. 제가 많이 무례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알렌은 잠시 뜸을 들이며 대답하지 않았다. 상인의 표정은 어둡게 변했다.

“…….”

알렌은 상인의 표정이 더욱 안 좋아졌을 때가 돼서야 입을 열었다.

“카릭 상단주.”

“예, 말씀하십시오. 공자님.”

“상인이 응당 자신의 기회를 붙잡으려 노력하는 건 당연하지. 그런데 욕심이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알렌은 그들을 도적에게서 구해 주었고, 그들은 알렌에게 옷과 정보를 주었다. 그들의 거래는 이미 거기서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예, 예.”

상인은 무엇을 생각했는지, 속이 타들어 간다는 듯, 표정이 흐리게 변해 있었다.

알렌은 상인의 표정을 보고 나서야, 그의 앞에서 적당한 당근을 흔들었다.

“그래도 내 일말의 도움은 받았으니….”

알렌의 머릿속에는 붉은 표지의 책이 떠올랐다.

‘이참에 상단과 줄을 만들어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상인 중에 찾을 사람이 있었다. 그가 회귀 전에 악마의 책을 구했던 상단.

지금도 그 책을 가지고 있으리라 알 수 없지만….

‘확인은 해 봐야겠지.’

상단은 작았지만 자연스럽게 접점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알렌은 담담하게 답했다.

“추천장을 주지. 이것이 있다면 영지의 검문을 조금은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을 걸세.”

“예?”

상단주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알렌은 그가 무슨 반응을 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마치 선심을 쓰듯, 그의 잘못을 용서하듯.

“내 이름을 적어 주지는 않겠지만, 가문의 인장이 찍힌 추천장만으로도 앞으로 이 영지에서 장사하기 편하겠지.”

보통 엘프들과 난쟁이들은 별다른 제한 없이 추천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 영지의 귀족에게 직접 검증받지 않는 이상 받을 수 없다.

상단주는 순식간에 나락에서 끌어 올려진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허리를 땅에 닿을 듯 크게 숙였다.

상행에 상단주가 직접 나설 정도로 작은 상단을 운영하는 그에게 추천장은 발을 크게 넓힐 기회였다.

“감사합니다. 공자님!”

“하지만….”

알렌이 슬쩍 말을 흐리자, 카릭은 경청하겠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내가 말하는 상단과 안면을 터 줬으면 하네.”

“공자님이 말씀하시는 곳 말이십니까…?”

“왜, 불만인가?”

카릭은 상인답게 본능적으로 이해득실을 계산했다.

추천장이 있다면 앞으로 백작령에서는 장사하기 편할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가 고작 공자님의 작은 부탁을 들어주는 거라면….

‘할 만하다. 아니,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

카릭은 그렇게 결론을 내리면서도, 만약을 대비해 슬쩍 여지를 뒀다.

“아, 아닙니다. 단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렌은 그의 저울질에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작게 웃고는 답했다.

“한 달 안에 자리를 주선하는 데 성공한다면, 앞으로 자네가 백작령에서 어려움을 겪을 일은 적을 걸세.”

쉽게 말해 뒷배가 되어 주겠다는 것.

서면 하나 없는 구두 약속이었으나, 카릭은 그의 말을 믿었다. 믿지 않더라도 알렌의 호감을 살 수 있으니 그에게는 이득이었다.

“반드시, 반드시 한 달 안에 만남을 성사시키겠습니다.”

“믿지.”

알렌은 몸을 돌렸다.

그는 상단주에게서 엘 라운드로 되돌아오는 길에 들었던 소문을 떠올렸다.

‘율리우스가 용병단과 결투를 한다, 라.’

“감사합니다!”

알렌은 작게 손을 흔들며 답을 해 주고, 저택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지자, 다른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그녀의 목소리가 머리에 울렸다.

「방금 왜 그렇게 한 거예요? 마지막에 손, 그거 피할 수 있었잖아요?」

알렌은 그녀의 물음에 작게 웃으며 답했다.

“추천장 따위는 얼마든지 줄 수 있지. 하지만 내가 곧바로 허락해 줬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음, 그냥 당연하다는 듯 호의를 받았겠죠?」

맞다. 그는 자신에게 선을 대기 위해 간절해 보였으니.

“그래, 내게 옷을 준 것, 정보를 알려 준 것에 대한 셈을 받았다 여기겠지. 하지만 방금은 어땠지?”

「기뻐하면서, 아」

베스틀라는 이해했다는 듯 검을 작게 떨며, 질렸다는 어조로 대답했다.

「당신, 너무 음흉한 거 아니에요?」

귀족으로써 약간의 호의를 베푸는 것 따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양한 효과를 낼 수 있다.

만약, 추천장을 그냥 내어줬다면?

그는 잠깐 기쁨을 느낄 테고, 그 감정은 시간이 지나 점차 흐릿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가 실수를 저지르게 기다림으로써, 그 후에 그와의 심리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된다.

그의 기억에 더 강하게, 오래 남을 테고.

거기에 더해 구두 약속 하나로 몇 가지 일을 시킬 수 있었으니 충분히 감수할 만한 행동이었다.

“아니, 관계에 우위를 점하기 위한 기본이다. 용인술. 사람을 다스릴 때는 행동 하나, 상대의 반응을 하나하나 모두 손에 쥘 수 있어야 하지.”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살기를 강요받는 것이 귀족이다.

귀족의 가벼운 호의일수록, 그만한 대가가 있는 법.

「당신 참 힘들게 사네요.」

“그건 칭찬인가?”

「칭찬일까요?」

그렇게 잡담을 나누며 저택으로 향하던 알렌의 걸음을 멈췄다. 그가 손잡이를 두 번 톡톡 두드리자,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그와 그녀가 만든 신호였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다 자칫 대화가 섞일 수도 있었으니.

“공자님!”

“알렌 공자님!”

고개를 들자, 이넬리아와 린벨이 그에게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검문에서 미리 사람을 보내 놨더니 벌써 소식이 전해진 것 같았다.

그녀들은 그가 없는 기간 동안 교육을 잘 이수했는지, 달리는 와중에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고 있었다.

속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걸음을 옮겼다.

“잘 지낸 것 같아 다행이군.”

이제 다시 바쁘게 움직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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