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 빙의를 싫어함-27화 (27/212)

제27화

용의 노심.

환상종의 감응력.

요정의 친화력.

각각의 마법 체계는 특정한 목적에 따라 형성된다.

당연했다. 선천적으로 마력을 사용할 수 없는 인간이기에, 다른 종의 것을 모방해야 했으니.

드래고닉 마법 체계.

이 마법 체계의 목적은 간단하다.

용의 노심을 따라 하는 것. 용과 같은 찬란한 보석 심장을 가지는 것. 방대한 마력을 사용하는 것.

지금과 같이 고리를 늘릴 때마다 사용하는 마력과 감지 범위가 늘어나지 않았던 때, 마나의 종주라 불리는 용을 따라 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건 당연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끝은 똑같았다.

심장이 돌로 변해 가며 수반된 고통에 버티지 못하고 포기하던가.

비술을 성공시킨 후, 바뀐 심장의 출력에 몸이 터지던가.

준비해 둔 매개체의 양이 적절치 않아, 반만 바뀌던가.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3일, 4일?

시간 감각이 사라진다. 알렌은 무겁게 닫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정신이 멍했다. 얼마나 지났지?

잠을 자지 못했다.

고리가 부서지며 형성된 폭풍을 계속 유지해야 했으니.

이 폭풍이 흩어진다면 끝이었다.

“1할밖에 안 됐다고?”

헛웃음이 나왔다. 상스럽게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알렌은 왜 이 비술을 수련하던 사람이 없었는지 절절히 알게 되었다.

모두 죽었을 테니까.

심장을 작은 벌레가 하나씩 물어뜯는 기분이다.

조금씩, 천천히. 피륙으로 이뤄진 심장이 고체의 무언가로 바뀌어 간다.

먹지도 못한다. 마시지도 못하고, 자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저, 제자리에 앉아 고통이 끝나기만을 바라야 했다.

알렌은 일그러진 얼굴로 주위를 둘러봤다.

언제 용의 뼈가 다 사라졌지?

정신을 차려보니, 그의 반경 내 공간이 텅 비어 있었다. 마력 폭풍이 닿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나.

“프흐… 어떻게 하기는.”

멍청하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전신의 근육이 떨려 몇 번이고 넘어졌다.

괜찮았다. 포기하지 않기면 몇 번이고 일어날 수 있으니.

검집을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켜 세운다.

한 걸음, 한 걸음.

기어가도 이것보단 빠를 것이다. 알렌의 걸음에 따라 형성된 마력 폭풍은 점차 앞으로 나가며, 방치된 유골들과 부딪쳤다.

쾅!

커다란 충격은 몇천 년, 혹은 그 이상 방치되었을 유골의 끝을 고한다.

부딪친 유골은 오랜 세월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부서져 내리며 마력 폭풍에 흡수되었다.

심장이 다시 갉아 먹힌다.

알렌은 다시 걸었다.

천천히.

* * *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별것 아니야.”

율리우스는 눈앞의 소녀를 살폈다. 어깨까지 내려온 짧은 보라색 단발. 연한 노란색 눈동자와 귀여운 얼굴.

소녀는 미래에 미인이 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현재는 그냥 귀여운 소녀일 뿐이지만….

“아니에요! 어머니가 엄청 아프셔서 돌아가시는 줄 알고 걱정했는데….”

태양의 마법사, 아냐.

율리우스는 알고 있었다.

이 귀여운 소녀가 미래에 이름을 날릴 강력한 마법사가 된다는 사실을.

재능의 색도 선명한 주황색이었다.

‘분명히 이 시기에 서쪽 왕국, 미켈란트 산맥 근처에 살았다고 했었지.’

서북쪽 가비아 방면에서 발견되지 않았기에, 혹시나 싶어 서남쪽에서 수소문한 결과 찾을 수 있었다.

그가 알고 있는 그녀의 사연은 이 세상에서는 꽤 흔한 종류의 것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가까운 시일 내에 죽는다.

그 후에, 여느 때처럼 자신의 재능도 영원히 모른 채 살아가다가 우연히 어머니의 죽음이 흑마법사의 소행임을 알게 되었고….

‘복수를 결심하게 되지.’

그녀는 복수하기 위해 무작정 마탑들이 다스리는 자유 도시 페르타로 향했다. 어린 소녀에게 있어 동화 속에서 등장한 마법사만큼 강력한 것이 없었으니까.

그녀는 정말로 운이 좋게 도적과 괴물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아무 일 없이 도시에 도착할 수 있었고, 곧바로 근처를 지나가던 한 마법사의 눈에 띄어 거두어진다.

그 후로 정식 마법사가 된 그녀는 세상을 돌아다니며 흑마법사를 학살하게 된다.

그것이 율리우스가 아는 원작에서의 설정이었다.

율리우스는 감격이 흘러넘치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 아냐에게 슬며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아냐.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음… 엄마가 나았으니까 이제 마법을 배워 보고 싶어요. 마법사가 된다면 준귀족 님이 된다고 하니까, 앞으로 어머니가 안 아프게 하고 싶어요.”

그녀는 희망한 미래를 생각하는 듯 밝게 웃었다.

율리우스는 미래가 달라졌음에도 마법사가 되기를 원하는 그녀의 모습을 묘한 표정으로 쳐다보고는 유혹하듯 이야기했다.

“그럼, 나를 따라올래?”

“네? 공자님을요?”

그녀의 고개가 갸우뚱거렸다.

율리우스는 미래의 재앙에 대비할 강력한 패를 모아 둘 필요성을 느꼈다.

‘지금부터 대비하지 않으면 늦어.’

원작의 결말이 망한 것도 그것 때문이지 않은가.

“지금 나를 따르겠다고 맹세하면, 마법 교육도 시켜 주고, 그동안 네 어머니도 보호해 줄게. 어때?”

그녀의 눈동자가 세차게 요동쳤다.

너무나 알기 쉬운 반응. 율리우스는 반쯤 넘어왔다는 생각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지금 맹세하면 급료도 내어주마.”

“할게요! 하게 해 주세요. 공자님!”

율리우스는 진하게 웃었다.

“그럼… 잠시 따라와. 근처에 보여 줄 게 있으니.”

고개를 드니 둥근 레이더에 붉은색 점이 찍힌 것이 보였다. 이 마을 근처에 고대 제국의 유적이 있다는 반응.

고대 유적은 간단히 말해 로스트 테크놀로지였다.

지금보다 한창 발전된 문명의 잔재가 가득한 장소.

스팀 펑크, 기계 문명, 발전된 마법, 세계 식물원 등등.

수많은 종족이 발전시켰던 문명과 그 문명의 정수들이 내려오는 곳.

율리우스가 그녀를 유적에 데려가려는 이유도 간단했다.

‘처음부터 확실하게 보여 줘야지.’

앞으로 어떤 모험을 할지, 어떤 여정이 기다릴지.

아직 어린 소녀에 불과한 그녀는 그런 율리우스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리라.

율리우스는 자신만만한 발걸음으로 유적으로 향했다.

아냐는 어머니를 병마에게서 구원해 준 공자님의 말을 한 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곳을 다스리는 귀족님인데, 평민인 자신한테 거짓말을 하지는 않겠지.

그렇기에 마음 놓고 그의 뒤를 따랐다.

“와…. 언니 엄청 예쁘다!”

앞장서는 그의 뒤로 레이나에게 아냐가 재잘재잘 떠들며 따라붙었다.

화창한 날씨였다.

* * *

시간이 얼마나 지나갔지?

정신이 몽롱했다. 귀에서는 환청이 들려왔고, 눈알은 빠질 것 같았다. 램프의 기름이 떨어졌는지 싸늘한 한기만이 느껴졌다.

팔다리가 경련하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었다.

주위에 용의 뼈가 없다. 거인의 뼈는?

‘왼쪽에.’

그럼 오른쪽으로 가야지.

어느새 왼쪽 범위 안에 있던 용골들은 한 줌의 먼지가 되어, 형성된 폭풍에 흡수된 지 오래였다. 검으로 지탱하는 몸뚱어리가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못 움직일 정도인가?

‘아직은.’

그래 아직은, 할 만했다.

* * *

“와…. 공자님. 이건….”

아냐는 주변에 보이는 수없이 많은 증기 기관과 톱니바퀴로 이루어진 공간에 감탄을 흘렸다. 매끄러운 재질의 철판과 뿜어져 나오는 증기.

그 웅장한 모습에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마을에서만 살던 소녀가 어디서 고대 유물을 보겠는가.

율리우스는 그것들을 다 무시하고, 물건들을 살폈다. 어차피 고대 제국의 기술을 얻어 낼 수는 없다.

기술을 모방하기에 기술력의 격차가 엄청날 뿐더러, 대부분의 유적에는 기술을 뽑아내지 못하게끔 보안이 걸려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소설에서도 그렇게 나왔으니, 넘겼을 뿐. 물론 그렇다고 해도 원본이 있기에 따라 만들려는 시도는 무수히 많았다.

결과는 다 실패.

손재주가 좋은 드워프나 수인 일부분만 성공했을 뿐.

어차피 마법이란 대용품이 있는 인간에게서 마력을 사용하지 않는 기술이란 중요도가 낮기에 별 주목받기 힘들었다.

‘…현실성은 부족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그러한 이유는 무분별한 기술 확산을 막기 위해 급하게 추가한 설정으로 보일 뿐이었다.

“아냐, 이쪽으로 와.”

“아, 네!”

유적을 구경하던 아냐는 율리우스의 부름에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나아갔다.

율리우스는 아냐에게 사각형의 투명한 유리함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홀린 듯이 유리함 내부에 있는 물건을 쳐다봤다.

“작은 해님…?”

“음… 그래 맞아. 작은 태양이지.”

스팀펑크와 관련된 유적에서 대부분 발견되는 연료 장치.

그녀는 후에 태양의 마법사라 불릴 몸이었으니, 불과 관련된 고대 유물이 있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거 줄게.”

“네!? 엄청 귀해 보이는데….”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말하면서도 놓지 않겠다는 듯 유리함을 꽉 붙잡았다.

이거 어떡하지, 돌려줘야 하나?

갈등이 어린 얼굴로 그것을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은 퍽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율리우스는 그런 그녀를 향해 슬쩍 입을 열었다.

“앞으로 5년간 전속 계약을 하면….”

“할게요!”

율리우스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조금씩 계약을 늘려 나가면….’

재앙이 끝날 때까지 데리고 있을 수 있으리라.

‘재앙도 끝이 아니지.’

마지막의 마지막에 그런 통수를 치는 게 말이 되는가.

한 가지가 마음에 걸리는 건 원작과 달리 독기가 없다는 점인데….

‘같은 사람이니까, 결국은 잘하겠지.’

그녀도 재능이 있으니 미래에 재앙을 물리치고 명성을 쌓으면 좋으리라.

율리우스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도 시골 농민의 삶보다 화려한 영웅의 삶이 좋을 것이 분명할 테니.

‘이제 원작에 있던 기연을 찾아볼까?’

율리우스는 유적을 빠르게 돌아다녔다.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유적 탐지기의 제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 * *

한참의 시간이 더 지나간 것 같았다.

마력 폭풍이 약해졌다.

심장은 어느새 4할이 피륙이 아닌 무언가로 변해 있었다.

약해진 폭풍의 위력은 유해를 모두 부수지 못했다.

“아….”

목이 메말라 목소리가 걸걸하게 변했다. 침샘은 이미 말라붙어 입술 하나 적시지 못한다.

알렌은 흐리멍덩하게 눈을 떴다.

느릿하게 몸을 움직인다.

삐걱거리는 신체는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검을 들어 바닥을 지탱했지만, 신체가 휘청거리며 바닥에 처박혔다.

다시 일어난다. 다시 검을 들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설 수 있었다.

가까운 용의 유해로 다가갔다.

조각나 부서져 있을지언정, 완전히 박살 나지 않은 유해.

검집째로 든 검을 내려친다.

-깡!

손에 전해지는 저릿한 반발감. 그걸로 충분했다. 충분한 세월과 풍화로 인해 잔금이 가득하던 그것은 어설픈 몽둥이질 하나로 바스러져 버렸다.

‘속도가 느리다.’

알렌은 손과 검집을 묶었다.

양팔이 미친 듯이 떨려 왔기에 검을 쥐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대소변은 지독한 냄새와 이물감을 그에게 선사했고, 짙게 깔린 어둠에 방향을 구분하기도 어려웠다.

마력 폭풍과 유해가 부딪쳐 일어나는 소음에 겨우 방향을 잡는다. 질질 끄는 걸음으로 도착한 유골 앞에서 검을 들고 내려친다.

한 번.

-깡!

두 번.

-깡!

두 번 만에 바스러지는 유골.

그러나 반발력이 강했는지 몸이 쓰러지고 말았다.

눈을 돌렸다. 다시 일어나려던 순간, 다리가 풀렸다.

여기가 어디였더라? 어디까지 왔었지?

아주 잠깐 동안.

정신을 잃었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상체를 바로 세웠다. 아주 잠깐, 한순간에 불과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만약 그사이에 마력 폭풍이 흩어졌다면?

‘만약, 그렇게 죽었다면.’

율리우스.

내 동생.

나의 속죄.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망나니를 벗어나 영웅의 행보를 따라가던 동생, 못난 형이 시비를 걸어도 용서해 주고, 가문에서 날아오르기 시작하는….

아니.

정말 그게 내 동생이던가?

짝! 뺨을 두들겼다. 손톱에 잘못 긁혔는지 눈가에 피가 흘러나왔다. 고작 이딴 것 하나 못 하는 건가?

흘러내린 피가 입 안을 적시니 정신이 살짝 돌아오는 것 같았다.

‘얼마나 남았지?’

이제 심장은 절반 정도가 변한 것이 느껴졌다.

아직 용의 유골은 충분히 남아 있었다. 거인의 뼈는 조금 있다 다른 방법으로 사용해야 했다.

용의 노심만 가진다면 몸뚱어리가 터질 게 분명했으니.

알렌은 검을 쥐었다.

의식하지 않아도 검이 움직인다. 아니, 이건 검술과 조금 다르다. 검술 같은 체계적인 무언가가 아니다. 그저 죽지 않기 위한 발악일 뿐.

용의 유해가 부서진다.

이 빌어먹을 몸뚱어리는 다시 쓰러져 버린다.

다시.

“조금만 더….”

다시 일어섰다.

간절한 바람은 의지가 된다. 발현된 의지는 집념이 되며, 뻗어진 집념은 곧 집착으로 변한다. 해야 한다. 동생을 위해서. 동생을 위해서. 해야 한다.

무엇이 먼저였지?

-푸슉

피를 흘리니 정신이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다시 검을 든다.

아직까지는 괜찮았다.

‘반드시.’

괜찮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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