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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23화 (23/212)

제23화

패른 남작이 탈출했다는 소식은 저택을 한바탕 크게 뒤집어 놨다.

그때 경비를 섰던 병사는 징계와 더불어 추가적인 훈련을 받았으며, 저택을 순찰하는 사람의 수와 빈도가 더 늘어났다.

그러나 모든 사건이 그렇듯, 며칠이 지나자 저택은 언제 큰일이 났냐는 듯 다시 평소의 분위기를 되찾았다.

오히려 그 사건 때문에 묻혔다고 할 수 있는, 알렌과 율리우스의 공이 뒤늦게 영지로 퍼지며 그들의 평가가 한층 상승했다.

율리우스의 망나니란 악명은 좀 더 옅게 변했으며, 알렌의 이름값은 조금씩 올라갔다.

알렌은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그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의 뒤로는 린벨과 이넬리아 모두 없었다.

그녀들은 최소한으로 그를 따라다녔고, 남은 시간은 모두 시녀로서 교육을 받느라 바빴다.

“아! 형님!”

방에서 집무실로 향하던 중 복도의 맞은편에서 누군가 그를 부르며 다가왔다. 저택에서 알렌을 형님이라 부르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알렌은 활짝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율리우스.”

“형님.”

율리우스는 그를 찾아다녔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며칠 전, 알렌이 아버지께서 패른 남작이 저택에서 탈출한 것을 빌미로 율리우스의 공이 줄어들까 싶어 아버지께 항의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소식을 들은 뒤부터 그는 알렌을 좀 더 호의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형님, 레이나에게 뒤늦게 들었습니다. 아버지께 제 공이 줄어들까 찾아가셨다고….”

처음엔 삼류 엑스트라 혹은 경쟁자라고만 생각했다. 그것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에 조금 영향을 줄 정도로, 알렌은 자신에게 호의적이었다.

“아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너는 내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아니냐.”

알렌은 겉으로 웃으며 율리우스를 살폈다.

달라진 게 있나?

‘마력을 다루는 게 더 능숙해졌군.’

이제는 겉으로 새어 나오는 마력이 확연히 옅었다.

거기에….

‘기세가 변했다.’

히벨로 향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길 수 있으리라 조금은 확신했지만, 지금은 그를 뛰어넘으리라 확신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기예는? 검술은 얼마나 발전했지?

‘…조금이라면 괜찮겠지.’

알렌은 앞으로 걷는 척 그의 영역 내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율리우스는 반응하지 않았다. 이 정도로는 안 된다는 건가? 그러면?

손을 그에게로 뻗었다.

그의 어깨를 두드리는 척 위로, 마력은 사용하지 않는다. 그건 의도가 분명해지니.

그러니 아직 그는 정확히 분간하지 못하는, 미세한 살기를 담아서.

“그런데 율리우스. 몸은 조금 괜찮으냐?”

어깨에 손이 닿으려는 찰나, 그의 몸이 움찔거렸다. 무의식적으로 허리춤으로 손을 내리던 그는, 급히 어깨를 틀었다.

홱!

“아….”

알렌이 그의 반응에 무안한 척 손을 거두자, 율리우스는 순간적으로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알렌을 바라보았다.

그의 행동을 알렌은 유심히 살폈다.

‘발은 벌써 움직였군. 왼손은 검을 찾나?’

그는 어느새 검을 뽑기 직전의 낮은 자세로 변해 있었다.

“…율리우스?”

그러나 알렌이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자, 율리우스는 급히 표정을 뒤바꾼 채 어색하게 웃었다.

“아닙니다. 형님. 제가 첫 전투를 치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예민했나 봅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알렌이 흔쾌히 넘어가자, 율리우스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급히 알렌의 곳곳을 살폈다.

하지만 알렌은 철저히 비무장 상태.

마력도 사용하지 않았으며, 특별한 자세를 취한 것도 아니었다.

알렌이 평범하게 앞서 걷기 시작하자, 율리우스는 착각인가 싶어 긴장을 살짝 풀고는 그의 뒤를 따랐다.

“요즘, 율리우스 네가 무언가를 준비하느라 바쁜 것 같더구나.”

“예, 조금 휴식을 마치면 곧바로 움직일 계획입니다.”

“던전? 아니면 유적? 그것도 아니면 토벌이냐?”

“유적입니다.”

알렌은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가는 말로 그에게 물었다.

“고대 유적은 발견하기도 쉽지 않고, 발견하더라도 탐사가 어려울 텐데… 방법이 있느냐?”

“당연히 있…지가 않지요.”

율리우스는 그의 물음에 대답할 뻔한 것을 강제로 멈췄다.

“저런, 그렇다면 허탕을 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냐.”

“하하, 아닙니다. 가문의 고서에서 유적의 위치가 있을 만한 장소를 찾았습니다.”

“…가문의 고서에서?”

알렌은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가문의 고서에 그런 내용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가문의 모든 고서는 그가 회귀 전에 마법을 연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모두 읽어 봤다.

그러나 그 내용에서 은유적으로 유적을 가리키는 책은 있었어도, 백작령 내에서 유적의 위치를 추적할 만한 단서는 없었다.

“예, 그러니 한 번 시도해 볼 생각입니다. 음….”

율리우스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형님도 저를 따라오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유적 탐사에 성공하면 충분히 보상을 해 드리겠습니다.”

율리우스는 유적 탐사를 성공시킬 자신이 있는 듯, 퍽 자신감이 있는 어조로 선심 쓰듯 이야기를 꺼냈다.

가비아에서 바이론을 영입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유적을 돌며 기연도 챙기고, 명성을 본격적으로 퍼뜨릴 생각이었다.

그러니 사람 한 명 추가된다고 해서 율리우스에게 해가 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안 될 것 같구나.”

알렌은 율리우스를 따라다닐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십니까?”

율리우스는 당황한 얼굴로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지금 그를 따라가면 좋겠지.

고대 유물 몇 개를 손에 쥘 수 있고, 더는 진척이 없는 영혼, 공간 그리고 계약에 관련된 마법 서적도 잘하면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한창 마법의 중요한 고비를 맞이하느라, 며칠 후에 조용한 곳으로 갈 예정이다. 그러니,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미뤄야겠구나.”

그것뿐이다.

놈의 옆에서 흘리는 부스러기나 주워 먹으면서 어떻게 놈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이번 히벨의 전투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미래는 가변적이며, 확정적이지 않다.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분명 놈과 친분을 쌓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아….”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렇습니까?”

놈은 거절당할 거라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왜, 자기가 하자고 하는 일은 모두 따를 줄 알았나? 저택의 하인들처럼, 병사들처럼 곁에서 찬양이나 하고?

웃기는 소리.

알렌은 비웃음을 삼키며, 아쉽다는 얼굴로 표정을 흐렸다.

“지금이 아니었다면 따라갔을 것을….”

“예, 뭐…. 그러면 어쩔 수 없지요.”

놈은 정말로 자신과 알렌의 사이가 별반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형제라서? 아니면 호의적으로 대했기에?

알렌은 그의 대답에 진심을 담은 것처럼 답했다.

“미안하다. 다음에는 꼭 같이 갈 수 있도록 하겠다.”

알렌은 그런 그의 태도가.

“예, 뭐. 수련 상의 고비라면 어쩔 수 없지요. 그래도, 같이 갔으면 좋을 텐데, 아쉽습니다.”

동생의 몸을 차지한 주제에 당연히 자기 몸처럼 생각하는 그 태도가.

“나도 마찬가지다.”

정말로.

“그렇다면… 이번에 수련이 끝나시면 저에게 오십시오. 유물도 하나 드릴 테니. 늦으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말로 역겨웠다.

“하하, 그러면 정말 좋겠구나.”

구역질이 날 정도로.

알렌은 여전히 티 없이 밝은 미소로 그와 마주 보았다.

평소처럼.

* * *

“율리우스, 네 약혼녀가 찾아왔다.”

“네?”

알렌과 율리우스가 나란히 서 있는 집무실에서 아버지는 그렇게 내뱉었다.

율리우스가 얼빠진 얼굴로 되물었으나, 아버지 특유의 딱딱한 얼굴은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그 모습에 율리우스는 되물었다.

“제 약혼자가… 찾아왔다는 말입니까?”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늘 아침에 도착한다고 기별이 왔으니… 조금 있으면 도착하겠구나. 그리고….”

똑똑-

아버지는 뭔가 생각하는 듯 눈가를 쓸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멈칫했다.

“…들어오도록.”

그가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자, 가문의 집사 한 명이 들어와 빠르게 입을 열었다.

“노블리에 가문의 마차가 도착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율리우스와 그에게 말했다.

“율리우스 너는 따라오고, 알렌 너는…. 아니, 조금 있으면 알게 되겠지. 따라오고 싶으면 따라오거라.”

“저는 괜찮습니다. 오랜만의 해후인데 방해할 수 없지요.”

그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는 조금 있다 파혼하게 될 그의 약혼녀를 떠올렸다. 망나니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동생이랑 사이가 좋았는데.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

“그럼 네 맘대로 하거라.”

아버지는 그 말을 마친 후, 율리우스와 함께 약혼녀를 마중하러 나갔다. 알렌은 그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 * *

“약혼녀라….”

괜히 약혼녀 이야기를 들어서 그럴까.

그는 회귀 전 있었던, 기억 속에 묻어둔 낡은 사진첩을 꺼내 들었다.

레이첼 그라나프.

그녀는 자신에게 퍽 과분한 여자였다.

그래, 언제였지. 동생을 구할 마법을 찾는다고 막 틀어박힌 지 연구를 시작한 지 반년쯤 되던 날.

그날도 서재에 박혀 있었다.

이를 악물고 마법서를 펼치며.

진전되지 않는 연구에 절망을 느끼며.

동생과 다른 일천한 재능에 열등감을 드러내며.

연구는 일말의 성과도 내지 못한 채, 저열한 정신승리나 해댈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평소처럼 식사를 가지고 온 하인이겠거니, 들어오라 소리치자 보인 것은 그녀였다.

그녀가 찾아왔다.

“당신,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아미를 일그러뜨리고, 뭐가 그리 화가 났는지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언제나 예쁜 색이라며 자랑하던 상아색 머리칼도 다 흐트러진 채로, 그녀는 그에게 물었다.

그때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온갖 감정이 오물처럼 뒤엉켜, 스스로도 알 수 없었는데.

“여긴 왜 왔지?”

평소 같았으면 그녀의 걱정을 받아들였을 텐데. 그날은 뭐가 문제였는지.

“왜 오긴 왜 와요! 당신, 언제까지 그런 쓸데없는 연구에 매달릴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걱정….”

“내가!”

그는 온몸에 차오르는 울분을 이겨 내지 못하고 그녀에게 감정을 쏟아부었다.

뭐라고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무어라 토해 냈을 뿐이었다. 그냥 미안하다 한마디 했으면 되는 건데.

그녀는 끝까지 그의 말을 듣다 몸을 돌려 가 버렸다.

그날 이후로 그녀와 관계가 더 옅어졌다. 정확히는, 스스로 틀어박혀 있었다고 평하는 게 옳았다.

그녀에게 괜히 화풀이한 거 같아서, 그녀 말대로 쓸데없는 연구에 집착하는 것일까 봐. 차마 그녀와 마주칠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녀가 떠난 후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천천히 썩어 갔다.

“이렇게 있지 말고 이야기 좀 해 보자고요!”

“….”

그녀는 몇 번이고 더 찾아왔다.

“당신, 거기서 듣고 있잖아! 당장 나와 보라고!”

“….”

일주일에 한 번.

“제발…. 나랑 이야기 좀 해 줘요….”

“….”

한 달에 한 번.

“지금 못 보면 나 다시는 못 봐요…. 못 본단 말이야. 당신, 정말 안 나올 거예요?”

“…….”

그런 방문이 몇 달의 한 번으로 줄어들었을 때, 그녀는 처음으로 흐느끼며 말했다.

“나와 달란 말이에요….”

흐느끼며 말하던 말은 어느새 애원에 가깝게 변해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찾아올 때마다 나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어느새 그의 세상은 저택의 작은 방 한 칸.

“….”

그 한 칸에 갇혀 추레한 꼴로 변한 모습으로 그녀를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그저, 이 한 마디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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