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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21화 (21/212)
  • 제21화

    일행은 키메라 술사의 공방으로 돌아가 시신을 수습한 후, 공간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공방에서는 키메라 술사가 모았다는 재산을 취할 수 있었다. 대부분이 무언가의 부위 혹은 키메라에 관련된 마법서와 고대 유물 몇 점.

    실질적인 재화는 많지 않았다.

    그 사실에 금은보화를 기대하고 있던 린벨은 풀이 죽은 것 같았으나, 금방 정신을 차리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다른 물건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넬리아는 자애로운 눈으로 린벨을 바라보며 그의 뒤를 지켰다.

    ‘그때 보물이 있다는 식으로 소리쳤던 것도 모두 거짓말이었나.’

    설사 정말로 돈이 많았다고 한들 함정을 설치하고, 실험 재료를 구하기 위해서 다 사용했겠지.

    ‘산맥 어딘가에 다른 재산을 숨겨 뒀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얼마나 있을지 모르는 재산을 챙길 이유는 없었다.

    알렌은 선의의 표시로 공방에서 발견한 키메라와 관련된 마법서를 모두 프란시스카에게 넘겼다. 그녀는 기꺼운 얼굴로 자료를 챙겨 넣었다.

    알렌은 공방에서 얻은 물건 중 개인적으로 챙긴 건 하나밖에 없었다.

    ‘벤시의 눈물.’

    벤시를 통째로 생체 연성을 하면 얻을 수 있는 물약.

    만드는 공정도 까다롭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이것을 사용한다면 대부분의 저주를 해주할 수 있는 귀한 물건이었다.

    알렌은 그것 하나만 챙긴 후, 병사들을 도와 시신을 옮겼다.

    자신이 꿨던 악몽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장소.

    그때와 달리 알렌은 피하거나 도망치지 않았다.

    묵묵히.

    그 모든 광경을 눈에 새기듯 지켜보고는 도시로 함께 돌아왔다.

    그는 도시로 돌아와서는 남은 재화를 피해자의 가족에게 베풀었다. 그 후에 어딘가로 잠시 혼자 다녀온 후, 고민이 많은 얼굴로 돌아왔다.

    그렇게 도시를 떠나는 날.

    “와아아아-!”

    “알렌 공자님!!”

    도시를 떠나기 전 주민들은 남쪽 성문을 빠져나가는 일행에게 커다란 환호로 배웅해 주었다.

    그것을 본 린벨이 입을 삐죽였다.

    “저희도 같이 있었는데… 뭔가 억울한 기분이에요.”

    “얘는, 네가 아니라 공자님이 다 했잖니.”

    이넬리아가 말을 정정하듯 되돌리자, 린벨의 볼이 빵빵하게 부풀리며 이넬리아를 노려봤다. 이넬리아가 어쩔 거냐는 듯 웃었다.

    “엄마도 한 거 아무것도 없으면서….”

    “뭐?”

    “결국 엄마도 아무것도 한 게 없잖아.”

    “너, 너-”

    “흥, 메롱이다. 엄마도 나랑 똑같은…. 꺄악, 자, 잠시만 엄마!”

    알렌은 마차 내에서 모녀가 아웅다웅 다투는 모습을 지켜봤다. 정확히는, 웃고 있는 ‘척’하는 린벨을.

    장난스럽게 미소 짓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렌의 눈에는 그녀의 입꼬리가 경직된 것이 느껴졌다.

    ‘아직 다 털어 내지는 못했나.’

    전생에 있었던 이넬리아가 죽었던 것만은 못했으나, 납치를 지켜본 경험은 그녀의 심신에 큰 영향을 미친것이 분명했다.

    지금 저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좋지 못한 기억을 떨쳐 내기 위함인가?

    ‘스스로 이겨 내겠지.’

    알렌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판단하고 눈을 감았다. 전생에 기억하던 그녀라면 이 정도는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니까.

    그렇기에 알렌은 도시를 떠나기 전 확인했던 장소를 떠올렸다.

    ‘왜 아무것도 없던 걸까.’

    알렌은 회귀 전, 율리우스가 벨론 남작의 비밀 장부와 자금을 숨겨 뒀던 장소를 찾아갔다.

    율리우스는 그것을 이용해 벨론 남작을 끌어내렸으며, 막대한 성과와 영주민의 지지를 얻어 냈다.

    그러나.

    ‘흔적조차 없다니.’

    애초에 그런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아무런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회귀 전에는 미처 눈치채지 못한 사실이었다.

    운이 좋게 얻었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러나 천천히 생각할수록 안개처럼 흐릿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검은 책을 살폈다.

    『율리우스는 영지를 좀먹는 벨론 남작의 비리를 찾는 퀘스트를 받았다. 제안 시간은 6시간. 촉박하기 짝이 없는 시간….』

    『운이 좋게도 제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영주의 폭정에 당한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그가 재산과 장부를 숨겨두었다는 곳을 발견했다.』

    『그는 무능한 행동 그대로 장부와 자금을 모두 한곳에 모아 두고 있었다. 장소도 히벨 근처 숲의 공터에 있었는데, 지키는 사람이 아무도….』

    『…많은 저항이 있었으나, 세금을 빼돌린 영주와 그것을 도운 가신들을 모두 붙잡는 것에 성공했다. 이제 그들을 영지로 이송하….』

    벨론 남작은 귀족이다.

    아무리 멍청하더라도, 한곳에 그 모든 증거를 넣어 둘까. 많은 사람이 착각하지만, 무능한 것과 멍청한 것은 다르다.

    그리고 그 정보를, 그의 목숨줄이나 다름없는 정보의 비밀을.

    ‘고작 착취당했다는 영주민이 우연히 알아내는 것이 가능한가?’

    그래, 벨론 남작이 생각 이상으로 멍청하고 무능했기에 그런 짓을 저질렀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자신의 목숨이 달린 것까지 신경 쓰지 못할 만큼 멍청할까?

    ‘그가 귀족임에도?’

    일반적인 평민들은 받지 못하는 전문 교육을 받으며, 그에 걸맞은 기품과 예절을 요구받는 것이 귀족이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이종족들에게는 별다른 것 없어 보일지 몰라도, 인간만을 한정한다면 그의 능력만은 상위권에 위치할 터.

    애초에 정말 지독하게도 멍청했다면, 영지를 운영할 수 없었겠지.

    ‘이번 생에서는 그는 정상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나.’

    마치 회귀 전에 했던 행동이 모두 연기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처럼.

    조금 전까지는 의심에 불과했다면, 지금은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거기에….

    ‘무엇이 그의 행동을 바꾸었을까.’

    알렌은 자신이 모르는 거대한 무언가가 영지에 도사리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벨론 남작 혼자만 그런 행동을 했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율리우스가 향한 가비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면.’

    백작령은 어디까지가 진짜 백작령일까.

    “자, 잠시만, 엄마 가, 간지러웧, 앜….”

    “얌전히 엄마의 권위에 굴복하렴.”

    알렌은 모녀의 다툼을 보고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띄웠다.

    가문으로 돌아간다면 확인해야 할 일이 많았다.

    * * *

    가문에 돌아오기 무섭게 알렌은 라인하르트 가문의 가주, 가이엘과 마주할 수 있었다.

    율리우스는 알렌보다 일찍 가문에 도착해 있었는데, 알렌과 함께 집무실에 불려왔다.

    “…그래, 먼저 보낸 보고서는 읽었다. 우선…. 잘했다. 빠르게 일을 처리했더구나. 알렌과 율리우스, 모두.”

    가이엘은 무언가 생각하는 눈으로 율리우스를 응시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본래의 계획이 틀어졌음에도 결과가 좋다는 건….

    ‘아니, 이제 와서 무엇을.’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선택한 일이었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덕분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았나.

    과거를 후회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

    “우선 알렌. 네가 한 행동은 흠잡을 곳이 없었다. 벨론 남작과 조율하고, 계획을 세웠으며. 그 사이에 원흉을 처리했지. 중간에 도시에 키메라가 몰려들었지만… 그녀가 잘 막아 냈으니 더 말하지 않겠다.”

    그는 공적을 언급하며 의례적인 치하를 한 후 곧바로 율리우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많은 일을 했더구나. 사건의 원흉인 강령술사를 해치웠으며, 가비아를 다스리는 패른 남작의 비밀 장부와 자금까지 되찾다니….”

    율리우스는 꿈틀거리는 입가를 간신이 세워 막으며 겸손을 떨었다.

    “아닙니다. 영주민들이 협력을 잘해 줬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거기까지 말을 멈추고는, 율리우스와 눈을 마주쳤다.

    “너에게 내려 준 권한을 넘어서는 행위였다. 가주도 아닌 고작 둘째 공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영주를 끌어내린다?”

    하, 짧게 웃은 가이엘은 힐난하는 어투로 내뱉었다.

    “말하라, 율리우스. 네가 라인하르트의 가주인가?”

    “아버지, 하지만 제 덕분에….”

    그는 그의 말을 끊고는 짧게 답했다.

    “그래, 네 덕분에 빼돌린 세금을 회수할 수 있었고, 패른 남작을 비롯한 동조자까지 잡아 둘 수 있었지. 그렇다고 해서 네가 한 행동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알렌은 그 모습이 일부러 들으라는 듯 보이는 행동 같아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기를 죽이기 위함? 아니, 그것보다는 관계의 재설정인가.’

    율리우스는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한 것 같았지만.

    가이엘은 율리우스의 표정에 불만과 짜증이 조금씩 섞여 들자,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나 네가 세운 공도 사라지는 게 아니지. 권한을 넘어서는 행동이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더한 공을 세웠으니 말이다.”

    가이엘은 곧바로 서랍에서 작은 열쇠 두 개를 꺼내 각각 하나씩 그들에게 던졌다.

    “그러니 알아서 정하거라.”

    “이건….”

    열쇠에는 푸른 문자들이 작은 띠를 이루며 열쇠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1회용으로 사용 가능한 보고의 열쇠다. 가서 마음에 드는 것 하나를 골라 가거라.”

    “아버지….”

    “그리고 이걸 말하는 게 늦었구나. 율리우스, 시험에 통과했다. 축하한다.”

    율리우스는 언제 불만을 내뱉었냐는 듯, 밝게 변한 얼굴로 외쳤다.

    “감사합니다.”

    그런 율리우스에 반해 알렌은 연극을 구경하는 얼굴로 무심하게 답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알렌의 짤막한 대답에 그를 빤히 바라보던 가이엘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축객령을 내렸다.

    “오랜만에 가문에 돌아왔으니 여독이 덜 풀렸겠지. 마음을 정하면 알아서 가고, 이만 나가 보거라.”

    “알겠습니다.”

    율리우스는 아직은 서툰 예법으로 고개를 숙이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알렌은 할 말이 있다는 듯 자리에 남았다.

    가이엘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왜 그러느냐.”

    “잠시, 아버지에게 요청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을?”

    “그곳에서 시녀로 쓸 평민 두 명을 거두었습니다.”

    “아, 그랬다고 했지. 보고서에서 읽었다. 린벨과 이넬리아라고 했나? 사냥꾼 촌 출신에….”

    “예.”

    “알렌. 너는 내가 알기로 엘리자가 시녀를 뽑자고 할 때마다 거절해 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뭐 상관없겠지.”

    가이엘은 반대할 것이라고 생각한 그의 예상과 달리 흔쾌히 허락했다.

    “나는 네가 누구를 들이든, 어떠한 행동을 하든 상관없다. 네 격에 걸맞은 선택이라면.”

    그렇게 사족을 덧붙인 그는 못다 한 업무를 지속하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아직 제대로 된 수행을 하지 못할 테니, 교육을 시킬 생각이라면 엘리자한테 직접 부탁하거라.”

    “어머니께 말입니까?”

    “그래, 아들의 시녀라는데 보고 싶은 마음도 있을 테지. 요즘 얼굴을 보지 않아 섭섭하다고 했으니 찾아가 보는 게 좋을 것이야.”

    확실히 회귀를 자각한 이후, 어머니께 신경을 덜 쓴 감이 없잖아 있었다.

    어머니는 사치에 갑작스럽게 빠졌던 점을 제외한다면 그가 신경 써야 할 점이 없었으니.

    “알겠습니다. 그런데 패른 남작은….”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만.”

    아버지는 더 듣기 싫다는 듯, 그의 말을 끊었다.

    “그만하거라, 오늘은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구나. 나가 보거라.”

    “…아버지.”

    알렌은 입술을 깨물었다.

    페른 남작과 직접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벨론 남작은 그가 기억하던 무능한 모습과 달리 부족하기는 해도 적절한 판단을 내릴 줄 알았다.

    그렇다면 패른 남작은?

    그는 그가 기억하던 것과 달라졌을까?

    지금의 그는 가문의 별관에 연금된 상태. 만나고 싶다면 지금밖에 기회가 없었다.

    결국 그는 어떻게든 처벌을 회피할 수 없을 테니까.

    ‘변한 원인을, 적어도 단서만이라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완강했다.

    “아버지, 패른 남작은 정말 수….”

    “알렌.”

    알렌은 그 한마디가 마지막 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쩔 수 없나.’

    벨론 남작과 페른 남작.

    그들을 제외하고도 백작령 안에서 그들을 조종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짐작도 사실 그의 지레짐작일 뿐이지 않은가.

    실질적인 증거가 없으니 만남을 가질 명분을 만들어 낼 수도 없었다.

    “두 번 말하지 않겠다.”

    “…알겠습니다.”

    다음 기회를 노리는 수밖에.

    ‘빠른 시간 내로 방법을 강구해 봐야 겠군.’

    알렌은 예법에 맞춰 고개를 숙인 후,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모든 사람이 빠져나가 적막함이 감도는 가주실.

    그곳에 며칠 전에 저택에 들어왔다는 하녀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똑똑-

    “가주님, 명령하셨던 물건을 가져왔습니다.”

    “심부름 따위를 시킨 적은 없… 아니, 생각해 보니 있었던 것 같군.”

    그녀의 방문을 거절하려던 가이엘은 순간적으로 드는 생각에 곧바로 그녀의 입실을 허락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하녀는 며칠 전 새로 저택에 들인 하녀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문이 철컥 닫히기 무섭게 무릎을 꿇고, 입을 열었다.

    “카샤 님의 전언을 전해 드리러 왔습니다.”

    가이엘은 그녀의 태도에 익숙하다는 듯 질린 얼굴로 물었다.

    “올 때마다 얼굴이 바뀌는 건가? 악취미로군.”

    “아드님이 감이 좋으신 것 같군요.”

    아들이라, 아들. 어느 쪽을 이야기하는 걸까. 알렌? 율리우스? 아니면, 그 누군가?

    노골적으로 답을 회피하는 태도에 가이엘은 탐색하는 짓을 그만두었다.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으니까.

    “쓸데없는 소리.”

    “가주님도 한결같으시군요.”

    가이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자, 하녀는 고개를 더욱 깊게 숙이며 대답했다.

    “여기서부터가 본론입니다.”

    가이엘은 카샤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부터, 그녀에게 모든 감각을 집중했다.

    재능이 없고, 또 다른 이유 탓에 무력이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으나 하녀 한 명을 제압하기에는 충분했다.

    “무슨 전언이지?”

    “카샤 님께서는,

    「내 말이 맞지 않느냐.」

    이렇게 전하라 하셨습니다.”

    그 말에 가이엘의 행동이 굳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행동하려고 노력하며, 태연한 표정으로 물음을 건넸다. 평소처럼.

    “그래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지?”

    “그리고, 「그를 어느 곳에 보내더라도,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그 후에는, 「아무런 지원 없이 보냈더라도 충분히 조건을 충족한다면, 같은 결과를 냈을 것이다.」”

    “…백작가의 위신이 있는데 어찌 홀로 보낼 수 있을까. 백 명의 정예 병사도 사실 백작가의 이름에 비해 부족한 수인 것을.”

    “백작님은 여전히 작은 것에 매달리시는군요.”

    가이엘은 그녀의 말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분명히 그 말이 끝이 아닐 텐데.”

    가이엘은 확신하는 어조였다. 하녀는 그의 무시에도 기분 나쁜 기색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끝이 아니냐고 물었을 때는 이렇게 답하라 일렀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작은 소란을 눈감아 달라」.”

    “….”

    “거절하신다면, 「앞으로의 지….」”

    “그만, 거절할 생각이 없다는 건 너도 알 텐데?”

    “후흣.”

    그의 말에 그녀는 일부러 들으라는 듯 웃음을 흘렸다. 그녀의 태도에 가이엘은 조용히 침묵했다.

    고개를 숙였기에 그녀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예, 카샤 님도 그러실 거라 했습니다. 큰 소란으로 번지지 않게 가주님께서 협력해주신다면 이전의 약속은 유효할 것입니다.”

    “…그러지.”

    “그럼….”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릎 꿇고 앉아있던 하녀의 몸이 옆으로 고꾸라졌다. 그리고는 인격이 바뀌듯 하녀의 눈이 뜨였다.

    “내, 내가 왜 여기에…?”

    그녀는 이곳이 어디인지 둘러보다가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가이엘의 얼굴을 바라보고 굳었다.

    “가, 가, 가, 가주님….”

    한동안 그녀를 살펴보던 그는, 이번에도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다는 사실에 한숨을 내쉬고는 익숙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피곤했던 모양이야. 내가 부탁한 물건을 가져오다 그대로 쓰러지더군. 하루의 휴식을 줄 테니 심신을 다스리고 복귀하도록.”

    “예, 예. 가, 감사합니다?”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기에 가주님의 말에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럽게 생긴 하루의 휴식을 어디에 사용할지 생각하며.

    그녀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집무실을 빠져나간다.

    가이엘은 조용히 눈을 감고 의자 깊이 몸을 파묻었다.

    “언제쯤, 언제가 될까….”

    거칠어진 손이 눈가를 덮었다.

    술이 마시고 싶은 날이었다.

    한 모금만 마셔도 깨어날 수 없는, 그런 환상적인 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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