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 빙의를 싫어함-20화 (20/212)

제20화

바이론은 감격에 빠진 눈으로 백작가의 둘째 공자를 바라봤다.

“영주님을 체포해라!”

“예! 알겠습니다.”

“너는 당장 도망친 관료들을 붙잡아서 여기 데려와.”

“예!”

가비아의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실종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왔다는 그.

“찾은 비리는 모두 확보했나?”

“예! 모두 옮긴 후,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는 실종 사건의 원흉인 강령술사들을 모두 해치웠을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폭정을 일삼던 영주에게서 가비아를 해방한 구원자가 되었다.

“그리고….”

병사들이 바삐 움직인다.

그 사이로 땅에 굴렀는지 흙투성이가 된 남자가 끌려갔다.

비리와 폭정을 따르던 기회주의자들이 틈을 봐 도망쳤고, 울분을 풀기 위해 주민들이 발 벗고 병사들을 도왔다.

그 때문에 벌어진 소란으로 인해 온갖 고함과 소음이 가득했다.

“율리우스 님! 도망치던 재무관을 붙잡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래? 걔한테서는 반드시 장부를 속였다는 증언을 받도록 해. 그리고…. 음?”

바이론은 떨리는 심장을 가라앉힌 뒤, 모든 일의 중심에 있던 그에게 향했다.

“공자님.”

율리우스는 그가 다가오자 잘되었다는 듯 그를 맞이했다.

“바이론 경.”

“율리우스 공자님. 오랫동안 고통받던 가비아를 해방시켜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영주민들은 핍박받는 것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주위를 둘러보면 얼굴에 웃음꽃이 피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바이론 경, 그런 말씀 마시지요. 이건 백작가의 자제인 제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아닙니다.”

바이론이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 악한 귀족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단 말인가. 심지어 평민을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는 귀족도 넘쳐나는데.

그 때문에 처음에 그도 율리우스에게 기대를 하지 않았다.

가비아를 다스리는 귀족이 저러한데, 이 땅을 다스리는 귀족이라고 다르겠는가.

바이론은 그리 생각했다.

그도 다를 바가 없다고.

다 똑같다고.

거기에 망나니라는 악명까지 더해지니, 일말의 기대도 가질 수 없는 상황.

그러나.

‘달랐다.’

사건의 개요를 듣고는 곧바로 사건의 진상을 밝혀냈으며, 가비아의 영주를 같은 귀족이라며 감싸 주지도 않았다.

잠시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그의 모습은 이미 주변인들에게 유명했다.

‘그래 이분이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떠올렸다.

‘기사가 되기로 했었다.’

프라나를 사용하는, 진짜 기사가 되지 못했기에 행동만은 진짜가 되려고 했다.

일반적으로 마력과 프라나 둘 중 어느 것을 사용하든 기사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인식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마력을 사용함에도, 진정한 기사가 되려고 했다.

진정으로 따를 이가 나타났는데, 가만히 있는 것이 옳은가?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 되는구나. 이런 분을 망나니라 깎아내리다니….’

사람은 진정 만나 봐야 알게 된다고, 영지에 알려진 나쁜 소문은 누군가의 음모가 틀림없었다.

바이론은 어느새 율리우스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공자님 덕분에 많은 사람이 미래를 그려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린 공자님이 도시를 도와준다기에 걱정했다.

그러나 강령술사를 무찌르며 나아가는 그의 심성을 보았고, 전투에 들어가며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던 강한 무력을 보았다.

그리고 지금.

“제가 율리우스 공자님을 감히 주군으로 모셔도 괜찮겠습니까?”

영주민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

“그래.”

율리우스는 기다렸다는 듯 기뻐하는 얼굴로 대답했다.

근엄한 얼굴을 애써 지으며 웃음을 참았지만, 뒤따라오는 흐뭇함은 참지 못했는지 미소가 나온다.

드디어.

‘바이론을 영입했다.’

질서의 기사 바이론.

마력을 사용함에도, 프라나를 지닌 기사만 들어갈 수 있다는 대륙 최고 명문 기사단인 베르세르크 기사단에 입문한 유일한 인물.

과거 행적이 분명치 않아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곳에 있었을 줄이야.

“바이론, 나의 기사가 되는 것을 허락한다.”

그를 영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이상에 어울리는 모습을 연기했으며, 은근슬쩍 떠보는 질문에 그가 좋아할 만한 답변을 했다.

그 가운데 퀘스트도 해결하고, 악덕 영주를 잡아 명성을 높였으며, 거대한 공을 세우는 것에 성공했다.

율리우스는 모든 일이 막힘없이 진행되는 상황에 커다랗게 웃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하지.”

아무것도 모른 채.

* * *

알렌은 동굴을 빠져나와 헤어졌던 일행을 다시 만났다.

그녀들은 소수의 병사들과 함께 동굴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공자님!”

“알렌 공자님.”

린벨과 이넬리아는 무사히 동굴을 빠져나온 것 같았다. 확실히 동굴에 들어왔을 때부터 보이는 건 죄다 부숴 놨으니, 나가는 건 쉬웠을 것이다.

린벨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옴과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공자님 감사합니다.”

그녀의 눈가는 부어 있었다.

“엄마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는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알렌은 그녀의 감사 인사를 굳이 사양하지 않았다. 저것이 그녀 나름의 사죄일 테니.

‘표정이 나아졌군.’

도시에서 봤을 때와는 조금 달라졌지만, 프란시스카와 함께 있었을 때의 표정보다는 나았다.

이넬리아를 돌아보자 그녀는 산뜻하게 웃어 주며 똑같이 고개를 숙였다.

“저희 모녀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도 린벨과 다르지 않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자, 그녀의 눈도 붉게 변해 있었다.

알렌은 결국 이곳에 왔던 목적을 달성했다는 성취감과 피해를 완전히 막지 못했다는 씁쓸함이 뒤섞여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그래. 앞으로 나를 잘 보좌하기를 부탁하지.”

“네, 반드시! 진짜 열심히 할게요!”

“그래.”

말버릇부터 먼저 교정하고, 예절도 배울 필요가 있겠어.

알렌은 그녀가 들었으면 기겁할 생각을 하며 이 자리에 없는 일행의 행방을 물었다.

소수의 병사가 이곳에 있다는 말은, 전투가 끝났다는 것을 뜻했으니까.

“다른 병사들은 어디 있지? 프란시스카 양은?”

“그분은….”

이넬리아는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숲의 저편을 바라보았다.

알렌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일이 생겼나? 병사들을 살펴보자 그들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전투가 아직 끝나지 않았나?”

“아뇨, 전투는 다 끝났어요…. 그,”

그녀가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에 알렌이 린벨을 바라보자, 그녀는 무언가를 떠올리기라도 한 듯 속이 좋지 않아 보였다.

알렌이 병사들에게로 고개를 돌리자, 그들 중 선임 병사 한 명이 빠르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아니.

“알렌 공자님, 다른 병사들은….”

열려고 했다.

-끄아아아아아아!

병사가 상황을 설명하기도 전에 숲에서 비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알렌이 급히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두 명은 마지못한 기색으로 따라붙었다.

병사들도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 급히 알렌의 뒤로 따라붙었다.

알렌은 그 반응에 의아함을 느끼며 소리의 진원지로 향했다. 다가갈수록 비명 소리는 점차 커져 갔다.

-제, 제발! 끄아아아아!

-그만, 그만 죽여라. 인간! 나를…. 끄으윽.

점차 걸음을 옮길수록 들리는 소리에 알렌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설마….’

그가 마침내 그 장소에 도착했을 때, 그는 볼 수 있었다.

3m 크기의 키메라가 팔, 다리가 잘린 채 꿈틀거리고 있는 모습을. 놈은 기세등등했던 전과는 다르게 뿔과 눈 한쪽까지 뽑혀 초라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 상황을 만든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어머, 공자님 키메라 술사는 처리하셨나요?”

그녀는 뺨에 묻은 녹색 피를 슬쩍 소매로 닦아 내며 그에게 다가왔다.

남은 병사들은 만약을 대비해 곁에서 대기 중이었는데, 하나같이 얼굴빛이 파랗게 변해 있었다.

“…예, 그런데 저건….”

“아니다! 주인님은 죽지 않았다! 주인님! 제 말이 들리신다면 이 신실한 종을 도와주십… 끄아아아아!”

알렌의 말이 끊기자 표정을 찌푸린 그녀가 놈의 갈라진 뱃가죽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어머, 말을 끊다니… 자꾸 말을 듣지 않네요. 죄송합니다. 공자님.”

알렌은 그녀의 사과를 떨떠름한 얼굴로 받아들였다.

분명, 알렌이 기억하던 바로는 저 레그놀이라는 키메라는 상당히 거만한 편에 속했다.

그런데 지금 광경은 무엇인가.

“그만, 그만! 내 눈앞에 장기를 보이지 마라! 저의 주인이시여! 제발! 당신이 살아계신다는 걸 압니다! 제발, 제발 도와주십시오!”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나.”

린벨은 저런 광경이 익숙지 않은지 속이 메스꺼워 보였다.

이넬리아는 그 광경을 감흥 없이 바라보았다. 이미 많이 보았던 광경이었다. 딸아이는 몰라도 그녀에게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한동안 레그놀을 괴롭히던 프란시스카는 놈이 조용하게 변하자, 그제야 손을 닦아 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병사들이 급히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아직 놈을 죽이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까?”

“한 가지 이유는 지속적으로 재생하는 특성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녀는 지극히 마법사다운 이유를 대며 키메라를 가리켰다.

“마법을 연구하기 위해서예요. 제가 연구 중인 계통과 상당한 유사한 점이 있어서 알아볼 것들이 있었거든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알렌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마법사가 지식을 얻기 위해 행동하는 게 이상할 게 무엇이 있겠는가.

그녀가 사용하는 마법 계통은 미래에 그녀 스스로 창시할 계통.

그렇기에 미래와 달리 완전하지 않은 그녀는 여러 지식을 탐독하며 체계를 다듬는 것 같았다. 알렌은 그녀의 대답에 미소 지었다.

“그렇다면 이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군요.”

그는 잘린 팔의 겉면에서 새살이 돋아나는 놈의 모습을 보며, 그와 연결된 두 개의 선 중 하나를 실체화시켰다.

“이건…!”

그녀는 그걸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급히 다가왔다.

“설마.”

“저 키메라와 진명으로 이어진 계약입니다. 원래의 영성도 낮았기 때문인지 키메라 술사에게 숭배에 가까운 감정을 가졌던 것일 테고 말입니다.”

놈이 아까부터 죽은 드베르를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 알렌의 눈이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놈을 응시했다.

“아마 키메라 술사가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겁니다.”

그의 설명에 눈을 빛내던 프란시스카가 급히 말을 걸었다.

“공자님 혹시, 저 키메라를 저에게 주실 수 있을까요? 적당한 대가는….”

“예, 드리겠습니다.”

생각보다 흔쾌히 허락하는 것에 놀랐던 걸까, 그녀는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저를 무상으로 도와주셨는데, 못 드릴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이걸 얻었던 순간부터 그럴 생각이었다.

저 키메라를 사용할 곳은 많았다. 호위로 사용해도 가능하고, 그것도 안 된다면 화살받이나 함정을 푸는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이것으로 그녀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다면.

‘충분히 치를 수 있는 대가지.’

또 자신에게는 그렇게 쓸모가 있지는 않았다.

흉측한 외형에, 본질은 악….

‘악마?’

알렌은 자신이 회귀를 하게 된 가설 중 하나를 떠올렸다.

회귀가 악마랑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

‘흠…,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악마 특유의 끈적한 느낌이 없는데….’

알렌은 회귀 전, 마지막에 직접 악마와 마주하며 느꼈던 것과 다른 이질감에 잠시 말을 멈췄다.

“공자님?”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알렌은 그녀가 이상함을 느끼기 전에 생각을 끊고 자신과 이어진 두 개의 선 중 하나를 그녀와 이어 주었다.

‘나중에 그녀에게 부탁해서 따로 확인해 보면 되겠지.’

무엇이 다른지, 어디서 이질감을 느꼈는지.

확인해 보면 될 일이었다.

알렌이 그녀에게 선을 이어 준 순간, 놈도 뭔가 이상함을 느낀 걸까 축 늘어져 있던 몸이 미친 듯이 발작하기 시작했다.

“안 돼! 안 된다! 이건, 이건…. 설마, 설마, 설마, 설마! 주인님! 도와주십시오! 제발! 제발!”

프란시스카는 레그놀이 발광하자 정신을 차리고는, 멍하니 자신에게 이어진 선을 바라보았다.

“일단, 임시로 계약을 이행하겠습니다. 프린달 님은 계약 계통에도 조예가 있으시니, 나중에 조정을 부탁드리면 될 겁니다.”

그는 손을 간단하게 튕겼다.

알렌의 몸에서 쏘아져 나간 복잡한 문자열이 순식간에 그녀와 레그놀이 이어진 선을 휘감았다.

그는 선에서 느껴지는 계약의 효과에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부터 제약이 별로 강하지 않군.’

기껏해야 일정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게 막는 것이 다일까.

그렇다면 이넬리아가 진명 계약을 맺은 채 그에게 대항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해가 되었다.

“와…. 저게 마법이구나.”

린벨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멍하니 감탄사를 흘렸다.

마법을 이렇게 자세히 보는 게 처음일까, 병사들도 홀린 듯이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알렌은 그 시선에 상관없이 작업을 이어 나갔다.

그가 무언가를 써 내리듯 허공을 긁어내리자, 선을 휘감던 문자열이 터져 나가며 레그놀의 머리로 빨려 들어갔다.

“끄아아아아아아!”

레그놀은 순전히 뱃심만으로 상체를 일으켜 머리를 땅에 부딪쳤다.

-쾅! 쾅! 쾅!

프란시스카, 그녀에게도 문자열이 터져 나가며 흡수되었다. 그녀는 곧 찾아올 고통에 긴장했지만, 그녀의 예상과 다르게 별다른 고통이 없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알렌은 살짝 웃으며 능청스럽게 물었다.

“제가 프란시스카 양에게 해를 끼칠 리 없지 않습니까.”

그녀는 조용히 눈을 흘겼다.

“…속여서 기분 좋아요?”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너무 긴장하신 것 같았기에.”

알렌이 어깨를 으쓱이자 프란시스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레그놀의 고통 어린 모습에 굳은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의 농담에 멍하니 있던 병사들이 정신을 차렸다.

그들이 잠시간 대화하는 동안 마법은 순조롭게 발휘되었고, 잠시간의 시간이 지나자 레그놀은 무감정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정확히는 ‘기어’ 왔다.

“앞으로 모든 걸 바치겠나이다. 나의 새로운 주여.”

그녀는 그 모습에 제법 만족한 듯 즐겁게 웃음 지었다.

“…후후, 앞으로 연구 시간이 기대되네요.”

레그놀은 결국 프란시스카의 하수인이 되었으며, 이넬리아는 무사히 구출했다.

“다 끝났구나.”

도시를 습격한 키메라는 지금쯤이면 모두 처리를 했겠고, 그들을 습격한 키메라도 모두 물리쳤으니 남은 건 뒤처리밖에 없었다.

알렌은 잠시간 알 수 없는 눈으로 동굴을 돌아보다 앞에서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뒤쪽에서 황폐한 바람이 불어와 조용히 그를 휘감았다.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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