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9화 (19/212)

제19화

인지함과 동시에 몸이 움직였다.

놈이 공격의 전조를 보였을 때는 이미 공격 범위를 벗어난 뒤였다.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공격이 보인다.

손끝을 움직인다. 흑녹색의 검들이 놈에게 쏟아져 내린다. 불행히도,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도 내 검술은 병사보다 못 하다.

육체도 일반인 이하. 그렇다면.

‘장점을 살린다.’

무수한 검. 실타래가 엮여 녹빛이 유성처럼 흘러내렸다.

놈이 움직였다.

타닥, 괜히 육체를 자신하는 게 아니듯 하나하나의 공격이 검들을 깨부쉈다. 한 번의 휘두름에 검은 부서져 놈의 주위를 휘감았다.

순간마다 가까워지는 공격에 손끝을 움직였다.

팡!

놈의 무게 중심을 노린 공격. 빠르게 움직이던 움직임이 멈춘다. 검을 움직였다.

시선 처리, 무게 중심, 준비 동작, 공격의 전조. 이미 모든 건 알았다. 그런데 뭐가 더 필요한가.

아니.

‘무엇이 더 부족한가.’

끝없이 떨어져 내리는 검의 폭격. 그러나 놈의 신체에는 치명상이라 부를 만한 상처는 없었다.

“크아아아아아!”

드베르가 괴성을 질렀다. 그의 근육이 부풀어 오르며, 공격을 무시한다. 곧 붉게 물든 눈이 그를 향했다.

“…온전히 회수하는 건 힘들겠어.”

“왜? 모든 걸 바쳐 이뤄 낸 신체가 조금 불만족스러운가?”

놈은 입이 찢어지게 웃으며 답했다.

“그래, 조금 부족하니…. 젊은 몸이 조금 필요하네.”

그 말과 함께 고함을 내지르며 놈은 흥분한 소처럼 우직하게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가슴만을 가리며, 탐욕스러운 눈으로.

“카아아아아악!”

검들이 쏟아져 내린다. 마력이 요동친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지?

‘마법 두 번, 아니 세 번 정도.’

이미 무리를 한 신체는 격렬한 피로를 호소한다.

시간 안에 사용할 수 있는 방법.

눈을 감았다.

심상 속에는 수십 개의 방법이 떠올랐다 사라지며 방법을 토해 낸다.

원의 고리가 미친 듯이 회전하며 실타래를 뽑아낸다.

지금 만들어야 하는 것. 상상해야 하는 것.

수인이 순식간에 얽히고, 풀리며 다시 얽혔다. 심상 속에 떠오르는 건 하나의 광경이었다.

마력 전체가 호응하며 시끄럽게 울어 댄다. 드베르의 신체에 드디어 상처라고 할 만한 것들이 생기며 피부를 조각낸다.

하지만, 놈은 작은 생채기 따위 신경도 쓰지 않으며, 우직하게 돌진했다.

눈을 떴다.

이제 조금 뒤면 자신에게 도달할 터, 방법은 찾았다.

놈의 붉은 눈이 흥분으로 번들거렸다.

마침내, 놈이 초월적인 신체 능력으로 다다른 그때.

“잘….”

손끝을 튕겼다.

팡-

그걸로 충분했다.

강한 충격파에 알렌의 몸이 옆으로 튕겨 나간다. 뒤이어 드베르의 공격이 알렌이 서 있던 공간 전체를 뒤흔들었다. 뒤따라온 권풍에 머리카락이 살랑거렸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드베르의 표정이 보였다. 이런 식으로 공격을 회피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

알렌은 올라오는 핏물을 집어삼키며, 손끝으로 그를 가리켰다.

뒤늦게 눈치챈 그가 몸을 움직이기도 전, 주변에 흩뿌려진 파편이 그를 중심으로 맴돌며 그의 육체를 휘감고 갈아 버리기 시작했다.

강철을 맨손으로 찢는 강도의 육체를 평범한 방법으로는 부술 수 없다.

필요한 건, 하나의 틈.

그리고 그 틈을 찌를 검까지.

‘알아낼 만한 것 모두 알아냈다.’

드베르는 한 손으로 가슴을 무의식으로 가렸다.

놈의 주위로 수십 가지의 악기가 형형색색을 이루며 아름다운 울림을 내비치며 화음을 이루며 공동을 울렸다.

웅――

실타래가 하나의 형상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마치 평생을 조각에 바쳐 온 것처럼 더욱 정교하게. 원하는 한 자루의 검.

드베르는 생각보다 막을 만한 위력에 귀를 막고 흉측한 미소를 드러냈다.

“자네의 마법도 이제 끝인가? 생각보다 별 대단치는….”

조각이, 부서진 파편들이. 실타래가.

그 모든 것이 엮이고 얽혀 하나로 변해 간다.

[분리] [절단] [공간] [영혼] [계약] [각성] [해방]

의념으로 묶어 낸 상상은 심상 속에서 정련되며 술식으로 화한다.

마법의 본질은 학문이 아니며, 마법사는 학자가 아니다.

‘마법은 이치에 바르지 않고, 흐름을 따르는 것이 아니며.’

술사의 의식과 의념, 상상 아래 현실을 뒤바꾸는 것이 마법이다.

마법사는 그가 속한 계통에 그 누구보다 밝음에도, 정작 이해한 본질을 따르지 않는다.

그런 마법사가, 키메라 술사를 자칭한다는 것이, 그 결과가 고작 저것이라면.

“이제 얌전히 내 일부가….”

마법을 버린 대가를 받아라.

드베른의 머리 위로 칼날의 반밖에 완성되지 못한 검이 떠올랐다.

알렌은 자신의 바로 앞까지 자리한 그를 힐끗 보며 답했다.

품위 있게 미소 지으며.

“아니, 그건 안 될 말이지.”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하듯, 손끝을 튕겼다.

딱-

“나는 해야 할 일이 많아서.”

검이 떨어졌다.

“그게 무…. 아?”

털썩-

그의 몸이 허물어진다.

“아니, 이게….”

드베르의 몸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하나로 합쳐진 육체는 수증기를 뿜어내며 액체로 흘러내렸다.

검은색의 웅덩이에는, 알렌이 얼핏 보았던 그의 추한 노구가 있었다.

“왜, 믿기지 않나?”

“이, 이건 말이 안 되네. 어떻게? 어떻게 한 거지?”

“마법을 포기해 놓고, 그 결과가 고작 이것밖에 안 돼서 많이 놀랐나 봐.”

알렌은 찰박거리는 액체를 지나 그의 앞에 섰다.

답은 간단했다. 그가 노린 것은 그의 육체도, 영혼도 아닌. 그가 심장에 꽂은 돌검이었다.

그는 공격을 막을 때, 지나치리만큼 가슴을 보호했다.

처음에는 급소를 방어하는 행동의 일환으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급소마다 자리한 갑각이 있음에도 지나치리만큼 가슴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에 확신을 가졌다.

‘놈의 변이는 완전하지 않다.’

그 의심이 확신으로 변한 것은 그를 파편으로 갈아 버리려던 때.

그는 두 팔이 피범벅으로 변했을지언정, 한 손만은 반드시 가슴 부위를 가렸다.

“그런 주제에 이제 와서 궁금하나?”

마지막에는 반쯤 확신하기는 했어도 도박에 가까운 행동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현재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으로는 드베르의 근육과 갑각을 짧은 시간 내에 뚫을 수 없었으니.

“아니, 상관없지. 제발, 젊은이. 제발 나를 살려 주게. 나는 쓸모가 많네.”

드베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치는 대신 빠르게 현실에 수긍했다.

“혹시 쓸 만한 하인은 필요 없나? 제발, 제발 젊은이….”

알렌은 그의 강함이나 마법보다는, 빠르게 현실을 수긍하고 대응책을 찾는 그의 정신력에 약간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식이 많네. 오래 살아온 만큼 보물도 넘치지. 쓸모가 많을 걸세. 혹시 이 산맥에 내가 자리 잡은 이유가 궁금하지 않나?”

조금 전까지 적으로 싸웠던 이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비굴하게 애원한다, 라….

‘살려 둘 필요는 없겠어.’

놈의 정체와 이곳에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그건 직접 조사하면 될 일.

“미안하지만, 시녀는 벌써 두 명이나 있어서.”

그는 주저 없이 드베르의 머리에 발을 올렸다.

“젊은이 제발, 제발…. 혹시 보물이 필요 없나? 고대 유물은? 혹시라도 미녀….”

콰직-

그렇게 한동안 인근 지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키메라의 주인이자 이넬리아를 납치해 간 원흉은, 그 악명에 걸맞지 않게 허무하리만큼 쉽게 목숨을 잃었다.

알렌은 만약을 대비해 근처에 자리한 대부를 들었다.

-데구르르

놈의 모가지는 벼린 칼날에 간단하게 끊어져 바닥을 굴렀다.

심장까지 터트린 후 모든 게 끝났다는 생각이 들자,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알렌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1위계에 걸맞지 않은 고위 마법의 남발한 것 때문일까, 심장이 아프게 욱신거렸고, 손끝이 지속적으로 떨렸다.

“역시, 빨리 위계를 높이든. 실력을 끌어 올려야겠어.”

마지막에 억지로 발휘했지만, 미완성으로 발현된 마법.

아직 7개의 개념을 한 개의 고리로 구현하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마력이 부족해서 형태만 겨우 구현했지만….’

솔직히 아슬아슬했다는 생각을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놈이 아직 인간일 적 버릇을 버리지 못해, 자신의 육체를 확실하게 믿지 않아 약점을 가리는 행동을 했기에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만약 그것도 실패했다면… 천천히 깎아 낸다는 생각으로 장기전을 각오해야 했을 것이다.

“그건, 확실히 끔찍하군.”

드베르가 확실히 육체에 적응하느냐, 알렌이 먼저 놈의 육체를 깎아 내느냐의 싸움이 됐겠지.

그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놈의 품에서 돌검을 꺼내던 중, 간질간질한 감각이 그를 휘감았다.

“이건?”

그 감각은 바로 앞, 드베르에게서 느껴졌다. 드베르는 확실히 죽은 상태.

알렌이 눈을 감고 감지력을 극대화하자, 그의 육체와 연결된 두 개의 선이 보였다.

그 선들은 조금만 늦으면 사라질 듯 위태롭게 흔들거렸다.

“혹시?”

알렌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의 생각이 맞다면 그는 정말 값진 수확을 얻게 된 것일 테다.

이 선들은 각각 이넬리아와 레그놀, 그들과 이어진 것들로 보이니.

알렌은 급히 두 선을 자신에게로 이었다.

곧 사라질 것 같았던 선들은 알렌에게로 이어지자, 한동안 하얀빛을 점멸하다니, 이내 곧 선명하게 변하며 안정을 되찾았다.

“…좋구나.”

계약 계통을 탐구했기에 얻을 수 있었던 결과.

알렌은 자신이 계약 계통 마법을 익혔다는 사실에 지금만큼 감사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리고….”

알렌의 시선은 곧 드베르의 품속에서 나온 돌검으로 향했다.

돌검은 그의 마법 때문일까, 흉측했던 외형은 평범하게 변해 볼품없는 돌검으로 변해 있었다.

돌검 위에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붉은 동공 주위로 8개의 작은 점이 각기 다른 궤적을 그리며 회전하는….

“마치 별 같구나.”

그러나 그것 외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돌검 자체의 주재료도 흔한 돌을 깎아 만든 것처럼 보였다.

특이한 점은, 검면에 얼굴이 비칠 정도로 정성스럽게 갈려 있다는 것.

알렌은 돌검의 문양을 기억하며 품속에 집어넣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전투로 인해 박살 난 공동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썩은 시체와 누구의 것인지 모를 각종 부위.

그사이에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 시체들을 다수 찾을 수 있었다.

어느 장면이 떠올랐다. 두개골로 쌓아 올린 제단, 피가 흥건한 바닥. 죽음에 대한 존중 따위는 없다는 듯 각자 흩어진 시체.

“누가 누구를 탓한다는 건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을 손수 바닥에 하나하나 눕혔다. 그들의 시체는 제대로 된 시체가 드물었다. 팔이 없고, 다리가 없다. 눈을 부릅뜬 얼굴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나를 옮긴다.

‘미래를 안다고 해서 모든 변수를 아는 것이 아니다.’

또, 하나를 옮긴다.

‘생각한 대로 모든 일이 흘러간다면, 그건 신에 가깝겠지.’

이번에는 어린아이의 시체였다.

알렌은 잠깐 멈칫했다.

붉은빛을 띤 갈색의 머리칼의 소녀. 살아 있었다면 귀여웠을 것이다. 많은 사랑을 받았을 테고.

아이의 동공은 텅 비어 있었다.

알렌은 흔들리려는 감정을 다급히 눌렀다. 지금까지 기다리지 않고 빨리 움직였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아버지가 놈에게 시험을 내리는 것을 기다릴 게 아니라, 먼저 움직였다면….

‘아니, 그건 틀렸다.’

때를 기다리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만약 급히 움직였다고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확신이 있나? 결국 목적은 동생을 구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놈의 호감도 얻고 괜찮지 않았나.

그에 비한다면 이까짓 주민 따위는….

“…미안하다.”

입 안에서 나온 말이었다. 급히 되돌리려 했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좀 더 빠르게 오지 못해서. 지키지 못해서.”

하지만 입은 멈추지 않았다. 속에서는 토해 내야 한다는 듯, 입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속에서 구멍이 뚫린 듯.

“동생을 구하고 싶어서…. 아니, 내 욕심이었다.”

동생을 구해야 했다.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과거의 행동을 그대로 따를 필요가 있는지 묻는다면 답할 수 없었다.

미래의 알던 지식이 바뀌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다른 방법도 많았지. 그래, 이곳을 빠르게 정리하고 후에 나타나는 괴물을 정리해도 되었다.’

방법은 있었다.

몇 달 후, 영지에 나타날 괴물을 정리해도 되었고, 가깝게는 가문의 위상을 실추시키려는 놈들을 처리해도 괜찮았다.

그저, 그저.

“…나도 과거로 왔으니 그걸 누려보고자 했거늘.”

앞으로 있을 사건만을 기다리며, 대비해 두는 것. 얼마나 편한가.

갑작스러운 사고에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놀랄 필요도 없이. 그저 알고 있었다는 듯 담담하게 행동한다면 편할 텐데.

“그 결과로 너희들이 죽었구나.”

결국 그놈과 다를 게 뭐지?

자신의 이득을 위해 무고한 이를 희생시켜도 옳은가?

한 번 매듭지었던 고민이 다시 한번 그에게 물었다.

너는, 할 수 있냐고.

동생을 구한다는 미명 아래, 남은 모두를 희생시킬 수 있냐고.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야 했다.

속이 울렁거렸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럼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는 거지? 율리우스 놈과 같이 있지 않고.

결국 다 변명이었다.

이제 와서 진심으로 놈을 동생으로 받아들이고, 하하호호 웃으면서 편하게 지내라고?

대충 기억하는 미래 지식으로 가문을 번창시키고, 아름다운 미녀나 수집하며, 철저한 준비 끝에 재앙을 기다리고. 마치 놈처럼, 그렇게?

“그렇게는 못 하지.”

텅 빈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는 못 하지. 이제 와서.

시신들을 옮겼다.

옮긴 것들만 수십 구. 그 전에 얼마나 많은 수의 영지민이 납치되었을까. 죽은 이들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있을 것이다. 율리우스, 놈의 호감을 사기 위해. 보물을 얻기 위해서. 또는 바뀌어 버린 미래로 인해.

그럼에도 지금과 같이 행동하겠는가.

“내가,”

몸을 돌렸다.

공동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섞여 지독한 악취가 느껴졌다.

“너희들을 기억하마.”

알렌은 뒤에서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그는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입구로 향하는 길에는 여전히 악취가 가득했다.

지독한 악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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