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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 빙의를 싫어함-18화 (18/212)

제18화

“억지로 생명을 소모하는군.”

그의 지적에 입술을 깨문 이넬리아는 비장한 어조로 답했다.

“안 됩니다. 공자님. 제 목숨을 바치더라도 반드시….”

“반드시, 뭐?”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저 괴물을 죽이지 않는다면….”

“그럼 린벨은.”

“…그 아이는 잘 부탁드립니다.”

알렌은 그녀의 대답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아낀다면서, 나에게 맡긴다고? 웃기는군.”

린벨을 언급하는 것에 그녀의 동공이 세차게 뒤흔들렸으나, 그녀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제 와서 결심을 바꾸기에는 조금 늦지 않았나.

“그녀도 여기 있다고 해도 그 생각은 여전하나?”

하지만 그것도 그의 한 마디에 무너져 내렸다.

“네!? 설마, 공자님….”

그녀가 불신하는 눈으로 쳐다보자, 알렌은 들어온 입구를 향해 손짓했다.

그의 손짓에 줄곧 입구에서 지켜보던 린벨이 빠른 속도로 튀어나와 그녀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엄마!”

“린벨… 네가 어떻게….”

그녀는 품에 안긴 린벨을 놀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도, 감싸 안은 손은 놓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강하게 껴안았다.

그리고는 힐난하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공자님 왜….”

“엄마, 그만해. 공자님께 억지로 데려와 달라고 부탁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무언가를 끊어 내듯, 증오에 찬 눈으로 키메라 술사를 보았다.

“아니, 됐어.”

“린벨….”

“내 선택이었고, 내 의지였어. 공자님 탓 아니니까 뭐라 하지 마.”

“그래도, 이렇게 위험한 곳에 오면….”

“저것 때문이지?”

엄마를 납치하고, 이곳으로 이끌게 만든 원흉이.

“…그게.”

그 한 마디에 말문이 막혔다.

“저놈만 죽이면 될 거라고 혼자 온 거잖아!”

그녀는 잊고 있던 것을 떠올리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 기억나. 잘은 안 나지만…. 어쨌든 좋은 곳이 아니라는 건 알아. 그런데, 여기까지 혼자 와서 다 쓰러트릴 수 있어?”

“….”

“아니잖아. 못하니까 지금까지 숨어 있던 거잖아. 그게 아니면? 내가 그 괴물 말처럼 짐 덩이라서 그래?”

“아니야!”

이넬리아는 급히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건 아니야.”

“나도 알고 있어. 그냥…. 그냥 그렇게 느꼈어. 내가 얼마나 약한지, 모르는 게 얼마나 많은지.”

저택을 부수던 괴물을 상대하던 프란시스카를 보며.

무수한 괴물을 물리치던 알렌을 보고.

또, 무력한 자신을 느끼며.

린벨은 그녀가 영위하던 일상이 얼마나 쉽게 깨질 수 있는지, 얼마나 사는 세상이 좁았던 건지 알게 되었다.

나는.

‘강해지고 싶다.’

알렌 공자님처럼.

그녀의 목표는 어느새 홀로 괴물을 죽이고 앞서나가던 그를 바라보게 되었다.

린벨이 이넬리아를 강하게 끌어안자, 그녀는 갈팡질팡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딸 앞에서 죽을 생각인가? 저런…, 딸이 얼마나 큰 상처를 받을지 모르겠군.”

알렌은 짐짓 안타깝다는 어조로 말하며 그녀를 보았다.

“하지만…. 저 괴물을 죽이지 못한다면….”

“그게 문제라면….”

알렌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내가 해결하지.”

“하지만, 공자님. 드베르는 정말로 강한….”

그래서 어쩌라는 말인가. 강하다고 해서.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는가.

그가 노리고자 하는 자는 언제나 드높았고, 또 멀었다.

“시녀라면,”

줄곧 답답했다.

알던 것과 다르게 진행되는 사건도, 계속해서 어그러지는 미래도, 친한 척 붙어오는 놈도.

프란시스카는 그가 기억하던 모습과 다른 행동을 한다.

기껏 영지민을 구하는 선택을 했음에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린벨과 이넬리아를 거두려 했음에도, 이넬리아가 납치당한다.

기억하던 것과 다른 함정과 키메라, 그리고 죽음을 각오하는 그녀의 모습까지.

그 모든 게.

“본분에 맞게 주인의 말을 듣도록.”

어쩌면 화풀이 상대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놈은 기껏 결심하고 받아들인 내 것을 가져갔고, 나는 되찾으러 왔을 뿐이었다.

이것으로 된 게 아닌가.

뭐가 더 필요해서, 참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그러니.

“더 이상 참지 않겠다.”

알렌의 심장 어림에서 거대한 원이 뱃고동을 울리며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눈이 기괴한 살점 덩어리로 변하고 있는 놈을 향했다.

마침내 회귀 전 그에게 후회를 심었던 원흉이자, 다시 한번 그를 방해한 수괴.

“드베르라고 했나?”

나에게 빌어먹을 엿을 먹인 새끼가.

수많은 시간 끝에 겨우 놈과 마주했다.

처음 도시로 향할 때까지만 해도 알렌의 목적은 간단했다.

과거를 바꾼다.

저질렀던 실수를 깔끔하게 해결함으로써, 마음속에 응어리진 감정을 매듭 짓는다.

거기에 하나를 더 추가한다면,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인재를 포섭한다.

그게 전부였다.

그 이상을 바란 적도, 그것 외의 행동을 한 것도 아니었다.

목적의 일을 마치는 것.

그게 전부였는데.

어째서.

“당신이 이 일의 원흉인가.”

일이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가.

알렌의 시선이 이 순간에도 주변의 키메라를 삼키고 있는 그를 향했다.

그는 알렌이 끼어들었을 때도 당황하지 않았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네는 산맥을 침입했던 불청객이로군.”

“그래. 내 것을 찾으러 왔다.”

그는 한층 기이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특히 그의 집중적인 시선이 그의 심장 쪽을 향했다.

“용의 노심을 노리는가?”

“그렇다면.”

“자네는 불가능한 것을 바라는군.”

그는 연민의 눈빛으로 알렌을 바라보았다. 알렌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게 지금 상황과 상관이 있나?”

“없네.”

“그러면?”

“그저 젊은이가 안타까워서 그러네.”

하. 웃음이 나왔다. 감히 실패자 따위가 나를 논하는가.

“키메라 술사, 그건 너도 마찬가지지.”

감각이 날카롭게 변한다. 그의 영역 안에서 실타래가 무수히 뿜어져 나와 허공을 채운다.

처음부터 이상했다.

마법사에게 감지력이란 하나의 감각, 그 이상이다.

마력의 형태를 인지하고, 교류하며, 다루는. 그 모든 수단의 뿌리이자 총체.

그런 감지력을 실패작 같은 키메라를 사용하며 낭비하다니. 그 이유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놈은, 저 괴물은.

“처음부터 마법을 내버릴 생각이었구나.”

육체를 개조할 생각이었기에 기존의 위계는 필요 없었겠지.

놈의 감지력은 수많은 키메라를 희생시키며 바닥에 가까운 상태. 그런 그가 알렌을 상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드득-

간단하다.

‘키메라 술사의 비원 중 하나는 자신의 육체를 연성하는 것.’

놈의 신체가 변하기 시작한다.

근처에 자리한 키메라 전부를 생사와 관계없이 집어삼킨 그는 거대한 살점 덩어리로 변해 꿈틀거렸다.

알렌의 심장 어림에서 거대한 원이 굉음을 발하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탈피하려 하다니, 그야말로 이야기에 나올 법하다.

“…나는 영민한 자들을 좋아한다네.”

드베른이 대답했다. 그는 반쪽밖에 남지 않는 얼굴로 씩 웃었다.

“그러니 자네도 늙은이의 부위 중 하나가 됐으면 좋겠어. 협조해 주겠나?”

놈의 골격이 변하기 시작한다. 부글거리는 기포를 내뿜으며 하나의 형태로, 악마 형태의 키메라와는 다르게 거대한 살점이 하나로 압축되기 시작했다.

알렌은 그 모습을 그저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저 행위 자체가 역겹고 끔찍할지언정 그 역시 하나의 마법이다.

마법.

자신이 이해한 계통을, 세계의 본질을 인간의 의지 아래 뒤트는 것.

그 행위는 같은 계통을 익히지 않는 이상, 역산, 간섭 그 모든 행위가 무용하다.

인간의 심상, 상상의 영역에서 뻗어 나온 술식은 잘못 건드렸다가는 이상한 방향으로 폭주할 수 있으니.

알렌은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이넬리아와 린벨을 향해 외쳤다.

“물러나.”

“하지만….”

“물러나라고, 했다.”

이넬리아가 무어라 입을 열려던 때, 린벨이 손을 잡아당겼다.

“공자님이 이길 테니 괜찮아.”

“하지만, 린벨….”

머뭇거리던 이넬리아는 린벨의 제촉과 알렌의 나가라는 손짓에 결국 입구를 빠져나갔다.

“자네는 가지 않는 건가?”

“그럼 너는 누가 막고.”

알렌은 그렇게 말하면서 앞으로 걸었다.

3m의 영역.

작디작은 영역 안에서 그는 뭐든지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야 한다.

믿음. 그게 마법의 시작이자 전부였으니.

“젊은이, 자신은 있나?”

“없으면 도망칠까?”

놈이 낮게 웃었다. 웃기는 소리다. 보내 줄 생각 따위, 있지도 않은 주제에.

“조금 있다가 모두 함께 만나겠군.”

놈의 목소리가 점점 또렷해진다.

마법이 완성된다는 징조.

알렌의 주위에 무수히 뻗어 나오는 실타래가 엮인다. 상대를 살핀다.

신체 전체에 들어찬 완벽에 가까운 근육.

각 관자놀이에 2개씩, 총 4개의 뿔이 솟아올랐고, 몸의 각 부위에는 검은 갑각이 뒤덮였다.

그 외의 부위에는 검붉은 근육들이 생생한 모습을 드러내며 징그러운 모습을 과시했다.

“내 안에서 말일세.”

타악, 놈이 땅을 걷어찼다.

그 순간 드베른의 몸이 사라졌다. 알렌의 얼굴이 차갑게 굽었다.

알렌은 주변 공간에 가벼운 충격파를 흩뿌렸다.

파앙!

놈의 몸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일직선으로 나아간 몸은 조금도 비틀리지 않았다.

놈이 크게 주먹을 휘둘렀다. 엉성한 주먹질. 그러나 그 결과는 가볍지 않았다.

콰앙!

“이런, 신체 하나를 다루지 못하다니…. 부끄럽구만. 하하.”

놈의 주먹은 알렌의 지나쳐 옆 바닥을 박살 냈다.

알렌은 그 틈을 타 실타래 일부를 사용해 공간을 후려쳤다.

쾅!

놈의 얼굴이 일순간 돌아갈 정도의 위력. 그러나 그 얼굴에 상처란 없었다.

충격파는 그의 얼굴을 두드렸지만, 놈의 머리가 흔들리는 것. 그 이상의 효과는 발휘할 수 없었으니.

“그 정도로 되겠나, 젊은이. 좀 더 힘을 내게. 새로운 몸이라…. 참, 좋군.”

드베르가 다시 주먹을 휘두른다.

몸의 움직임, 자세, 힘의 배분. 그 모든 게 처음 행해 본 듯 조잡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 모든 행동에 뒤따르는 결과는 가볍지 않았다.

공간이 비명을 내지른다. 힘의 배분에 실패한 걸음에 바닥과 벽이 부서졌다.

공격을 응시한다.

기본기도 안 되어 있는 자세.

머리를 숙였다. 놈의 주먹이 한 끗 차이로 허공을 갈랐다.

팡-

다음 공격은?

놈의 눈을 본다. 약간 아래쪽. 하체가 뒤틀리며, 수축한 다리가 하반신으로 뻗어졌다.

‘몸을 조금 뒤로.’

뻗어진 다리가 공간을 울리며 옷깃이 흔들렸다. 다시 공격이 들어온다.

한 번 피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주먹을 내지르는 것, 근육의 수축과 무게 중심 그리고 호흡의 틈과 후의 시선 처리까지.

모든 것을 보고,

몸을 움직였다.

오른쪽에서 크게 쓸어 오는 다리. 허리를 크게 젖힘과 동시에 한 걸음 옆으로.

쾅!

그가 있던 자리가 박살이 나며 구멍이 났다. 놈은 흥분한 듯 괴성을 터트리며 속도를 올렸다. 발을 움직였다. 노리는 건 호흡의 틈.

작은 충격파에 놈의 동작이 끊어졌다.

“이노오오오옴!”

공격이 쏟아진다.

상하좌우 폭우와 같이 내려치는 권격들.

눈을 감는다.

어차피 영역 안에 있다면 직접 보지 않아도 느껴지니 시각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다.

상체를 움직인다.

많이도 필요 없었다. 왼쪽 어깨를 비스듬히.

팡!

먼저 움직인 몸의 뒤로 권격이 허공을 꿰뚫는다.

숨이 격하게 터져 나왔다. 근육은 부들거렸고, 호흡은 일정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렸다.

알렌의 영역 안에서 실타래들이 엮었다. 한 손으로 수인을 맺고, 공격을 피해 내며, 다시 수인을 맺는다. 실타래가 겹쳐진다.

한 겹, 두 겹, 세 겹.

평범한 것으로는 안 된다.

간단한 충격파 따위로는 흠집도 줄 수 없다.

‘그러면?’

뭐기는.

놈을 죽일 수 있을 만한 것으로.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놈의 육체는? 키메라 기반 합성생명체.

강도는?

공격력은?

패턴은 어떻지?

‘더.’

알렌의 손이 움직인다.

그의 등 뒤로 잿빛의 북이 떠올랐다.

알렌이 허공을 두드리자, 북에서 소리가 울렸다.

두웅-

북이 등장한 순간, 드베르는 급히 귀를 틀어막았다.

어차피 이 수단이 먹힐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수인이 역으로 뒤바뀌자 허공에서 금빛 망치가 떨어져 내렸다.

“이건…!”

놈이 뭐라 소리치는 것보다 망치가 더욱 빨랐다.

쾅!

공간이 부르르 떨리며, 옅은 바람이 불었다. 뒤로 물러나며 생각한다.

‘얕았다.’

망치가 떨어지기 직전, 드베르는 초인적인 감각인지, 원초적인 본능인지, 몸을 뒤트는 것에 성공했다. 알렌은 혀를 차며 손을 거두었다.

놈의 상태가 보였다.

머리를 감싼 갑각에 자그맣게 찌그러진 흠집이 보였다.

“자네를 내가 얕봤군. 하나의 위계라고 방심했는데…. 위험했어.”

드베르는 감탄했다는 어조로 그를 보았다.

그것을 보는 알렌의 입가가 씰룩거렸다. 놈의 신체 능력은 얼마나 대단하기에. 겨우 그 정도로.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주제에.’

알렌은 알았다.

동생의 몸을 빼앗은 놈이 가질 무력을, 미래를 그리고 그 한계를.

놈은 영웅이다.

가는 지역마다 등장하는 재앙을 물리치며, 세계에 이름을 드높인다.

그런 이와 비교하기에, 키메라 술사는, 드베르는. 내 앞에 있는 놈은.

“그 정도가 끝인가?”

너무 하찮았다.

상념이 교차한다.

이따위 놈 때문에.

겨우 5 위계는 되나?

집중된 의지 아래 수십, 수백, 수천 줄기의 실타래가 각자의 형태로 엮이며 공간을 채웠다.

“놈과 비교하기 아까워.”

심상에서 정렬되는 개념을 정렬한다. 상상이 구체화하고, 현실이 개변된다.

인지 아래 구현된 마법은 제각기 엉킨 실타래에 실체를 부여했다.

회귀 전 평생을 집중한 마법의 계통은 영혼, 공간, 그리고 계약.

그가 이해한 세계의 본질이 그의 의지에 따라 뒤바뀌기 시작했다.

심장 어림에서 거대한 원이 폭발적으로 회전하며 실타래를 뿜어냈다.

“젊은이는 말을 심하게 하는군. 그러니…. 이번에는 방심하지 않겠네.”

드베르가 움직였다.

알렌은 눈을 가늘게 떴다. 알렌의 영역, 그 위로 수백 혹은 그 이상의 흑녹색의 검이 드베르를 노렸다.

주먹과 검이 오갔다. 흑녹색의 검은 수없이 단단한 육체에 부딪힌다. 드베르는 무기를 깨부수며 거리를 조금씩 좁혔다.

드베르의 자세가 빠르게 교정된다.

어린아이 같던 어설픈 몸짓에서, 좀 더 정확하게, 좀 더 빠르게 변했다.

그는 신체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었다.

“자네의 마력 조작은 특별하니 미래가 기대되는군.”

콰드득-

검들이 부서진다.

부서진 파편이 지면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그의 신체에는 작은 생채기만 자리했다.

‘결정적인 상처는?’

없다.

놈은 강하게 바닥을 걷어찼다. 일직선으로 돌진해 오는 움직임에 강제로 감각이 증폭시켰다.

찰나의 신체 증폭.

드베르의 주먹이 강하게 뻗어졌다. 그의 단순한 주먹질에 공간 전체가 울렸다.

신체를 순환하지 않는 알렌의 마력은 불완전하게 그의 감각을 증폭시켰다.

드베르의 표정이 보였다. 환희, 기쁨, 탐욕 그리고.

‘오만.’

불완전하게 증폭된 감각은 세상을 뚝뚝 끊어 인식했다.

생각이 감각을 따라잡지 못했다. 시야는 깨진 유리 창문처럼 어긋나 있었고, 소리는 이명만이 가득했다.

혼자만이 괴리된 그 세상에서 따갑게 조여 오는 황홀감에.

쾅!

“…어떻게?”

“왜? 마법사 놈이 마법으로 막는 게 그리 궁금해?”

상스럽게 말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입술을 비집고 불쾌한 미소가 튀어나온다.

“마법을 버렸으면, 닥치고 그 결과에나 만족해. 난, 너 따위와.”

다르니까. 말을 끝마칠 새도 없이 공격이 들어온다.

다시 감각이 증폭된다.

세상이 느려진다.

주위의 모든 것들이 사라지며, 오직 놈만의 모습만을 담는다.

불완전한 감각이, 들쭉날쭉 불규칙하게 늘어지는 시야 속에서.

놈의 숨결, 피부에 쓸리는 솜털, 비상하는 먼지와 돌조각 그리고 놈의 울부짖는 소리 그 모든 게 가까워짐과 동시에 멀어진다.

‘이 정도로 놈을 죽일 수 있을까.’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도 그놈의 얼굴이 떠올랐다.

동생의 얼굴이, 빼앗은 그 얼굴로, 뻔뻔하게 웃는 그 모습이.

‘항상 너는 그랬지.’

자기가 진짜 동생인 양, 원래부터 그랬다는 듯.

마력을 쑤셔 박았다.

동생의 영혼을 찾을 방도는 아직도 모른다.

그럼에도 시간은 흐른다. 동생은 언제쯤 찾을 수 있지? 놈은 점점 강해지는데 영혼을 찾을 실마리조차 없다.

‘이론을 세우면 뭐 하나.’

몸을 되돌려 줄 방도를 연구해도 정작 동생은 없는데.

역겹도록 싫었다.

놈과 언제까지 마주 보고 웃어야 되나. 아버지의 뒤 그 빌어먹을 놈들은?

그리고 언제까지 나는.

‘우선 이놈부터.’

미래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지금을 넘어야 했다.

몸을 움직인다. 마력으로 보조한다.

조금 더, 강제로라도.

‘동생아.’

감각이 증폭되며 피부가 아플 정도로 예민해지며, 모든 것이 선명해지는. 그 일그러진 풍광 속으로.

‘기다려라.’

모든 순간의 흐름이 인지되며, 잡히지 않는 흐름 속에.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는 그 황홀경에.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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